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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연대 공개 온라인 토론회 발제문:
미국을 휩쓰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규탄 시위: 배경과 전망

이 글은 노동자연대가 6월 4일 주최한 온라인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글로 옮긴 것이다. (영상 보기)

6월 2일 텍사스 휴스턴 시위 ⓒ출처 Redfish(페이스북)

5월 25일(현지 시각) 미국의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 네 명에게 살해당했다. 그 후 미국 전역이 시위 물결로 뒤덮였다. 5월 26일 미니애폴리스에서 행동이 시작돼 200여 개 도시로 번졌다. 경찰이 시위대를 강경 진압해, 적어도 두 명이 숨졌고 수백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하지만 시위대는 굴하지 않고 격렬한 항의로 응답했다.

대중적 운동에 밀린 경찰 당국은 어쩔 수 없이, 범인 네 명 중 한 명을 고작 3급 살인과 과실치사로 기소했고, 나머지 세 명을 방조죄로 기소했다. 하지만 이는 1960년대 맬컴 엑스가 한 말을 생각나게 한다. 맬컴 엑스는 이렇게 말했다. “등에 칼을 9인치 꽂았다가 6인치 빼 주는 것은 개선이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규탄 운동을 분쇄하려 한다. 6월 2일 트럼프는 연방군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사반세기 만에 처음이다. 트럼프는 이 운동을 극소수 “급진좌파”의 “폭동”이라고 비난했고, 급기야 국내 테러로 지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운동에는 흑인뿐 아니라 백인·라틴계 사람들도 대거 참가하고 있다. 반(反)파시즘 활동가들의 느슨한 네트워크 ‘안티파’가 이 운동을 배후 조종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배경

그러면, 이 운동은 어떻게 이렇게 급속히, 크게 분출한 것일까?

물론 유명한 미국 경찰의 잔혹함이 한몫했다. 2019년 한 해에만도 1000명 이상이 경찰에 살해당했다. 경찰이 아무도 죽이지 않은 날은 지난해 365일 중 27일뿐이었다.

경찰의 살해는 명백히 인종차별적이다. 흑인은 백인보다 2.5배 더 많이 살해당한다. 흑인의 뒤를 이어 라틴계가 백인의 약 1.5배만큼 더 살해당한다.

살해 경찰은 대개 기소되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 2013~2019년에 살해 경찰 중 겨우 1퍼센트만이 기소됐고, 그중 4분의 3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흑인은 경찰의 가혹 행위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몹시 천대받는다.

흑인 실업률은 주요 인종 중 가장 높다. 청년 실업률은 백인의 두갑절이 넘는다. 취업해 있더라도 흑인 남성은 백인 남성보다 임금이 25퍼센트 낮다. 흑인의 소득(4만 1361달러)은 백인(7만 642달러)보다 한참 낮고, 빈곤선(3만 680달러)보다 약간 높을 뿐이다. 흑인의 무려 22퍼센트가 빈곤층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위기로 흑인들의 고통은 증폭됐다.

“코로나19에 맞서 싸웠다. 이제 경찰 폭력에 맞서 싸우고 있다.” 6월 3일 미국 뉴욕 시위에 참가한 코로나19 긴급 대응 의료인력 ⓒ출처 미국 ‘마르크스21’

6월 4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90만 명, 사망자는 11만 명에 이른다. 〈ABC〉 뉴스의 지적처럼 코로나19는 노동계급의 질병이 됐다. 그중 특히 흑인들의 피해가 컸다.

모든 인종을 통틀어 흑인의 사망자 비율(10만 명당 54.6명)이 가장 높다. 백인(22.7명)·아시아인(24.3명)·라틴계(24.9명)의 두 배가 넘는다. 대도시 빈민가라는 거주 환경, 저소득에서 비롯한 영양 불균형, 의료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해 쌓인 기저질환, 면역력 저하 등이 원인이다.

미국 전체에서 실업급여 신청자가 5000만 명에 이르렀는데, 그중 흑인들이 가장 빨리, 가장 많이 해고됐다. 흑인 실업률은 3~4월에 11.9퍼센트포인트 올라 공식 통계로도 16.7퍼센트가 됐다. 흑인 여성 여섯 명 중 한 명, 남성 일곱 명 중 한 명이 실업자다. 구직 포기자가 흑인이 가장 많음을 감안하면 실제 상황은 훨씬 심각할 것이다.

물론 같은 기간 백인 노동자 실업률도 약 10퍼센트포인트 올랐다. 불안정이라는 공통의 경험이 노동계급을 짓누른다. 4월의 조사에 따르면, 28퍼센트가 가족 중에 해고된 사람이 있다고 답변했고, 53퍼센트가 생계비가 3개월 안(6월)에 고갈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모든 일은 짧게 잡아도 2007년 시작된 월스트리트발 경제 위기가 해결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반란은 지난해 프랑스, 수단, 알제리, 홍콩, 아이티, 칠레, 에콰도르, 스페인(카탈루냐), 레바논, 이라크 등지를 휩쓸었던 반란 물결의 미국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세계적 반란 물결은 “자본주의 체제가 사람들의 기본 필요를 충족시켜줄 능력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지난 반 세기 동안 가뜩이나 취약했던 복지가 대폭 삭감되고, 주로 유색인종이 도시 빈민으로 몰린 미국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경제가 악화되면 국가는 노동계급에 돌아갈 몫을 줄여 기업 수익성을 보전하려 한다.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지배자들은 부자들을 지키지만, 가뜩이나 열악한 노동자는 계속 공격했다.

사회 꼭대기와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긴장이 날카로워졌다. 지난해 일어난 여러 나라들의 투쟁들이 (다는 아니어도) 대부분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고 보면, 이번 규탄 운동에 대한 국제적 연대가 영국·프랑스·독일·스페인·브라질·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대규모 거리 시위로 신속하게 번진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내일 오전 11시에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다. 방금 말한 국제적 연대 물결의 일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으니 많이들 참가해야 할 것이다.

인종차별

미국의 인종차별이 누적된 분노의 초점이 돼 지금의 항의 행동을 불렀다. 그런데 인종차별은 왜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걸까? 노예제도 사라지고, 흑인 대통령까지 나왔는데도 말이다.

인종차별은 17~18세기의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아주 특수한 사회 현실을 배경으로 생겨났다. 당시에 미국 남부의 대농장주들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차별 관념을 강화했다. 유럽의 인종차별은 흑인 노예들이 백인노동자들과 단결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데에 동원됐다.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도 인종차별은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 크게 두 가지 기능을 하게 됐다.

첫째, 자본가들은 인종차별로 인종이 서로 다른 노동자 집단들 사이에 바닥을 향한 임금·노동조건 경쟁을 조장했다. 실제로는 처지가 비슷한 노동자 집단 사이에 마치 ‘극복될 수 없는’ 듯한 장벽을 만들어, 노동자들이 단결하기 어렵게 한 것이다.

특히 경제 위기 시기에 인종차별은 더욱 유용하게 쓰였다. 지배자들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 대중에 전가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인종차별을 이용해, 책임 떠넘길 대상을 만들어 냈다.(“너희의 삶이 파괴된 것은 외부에서 온 인종 때문이야. 그러니 우리 인종의 것을 빼앗는 자들을 배척해야 해.”) 트럼프는 바로 여기서 득을 봐 대통령에 당선했다.

둘째, 인종차별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국가간 경쟁(제국주의)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이용돼 왔다. 인종차별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가장 정교하게 구체화됐고, 이후 지금까지 제국주의 국가들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인종차별을 고수하는 이유 중 하나다.

최근의 대표적 사례가 무슬림 인종차별이다. 특히 21세기 서구의 제국주의를 인종차별과 떼어내어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 정치인들은 공화·민주 양당 모두 중동에서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슬림 인종차별을 적극 부추겼다.

이 때문에 트럼프 같은 유별난 개인들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 일반이 (정도·양상은 조금씩 달라도) 인종차별을 조장한다. 노동자 집단 사이에 극복될 수 없는 선천적 차이가 있다는 관념을 정당화하는 주장이 교육, 언론 등 모든 부문에서 쏟아진다. 반면 그들의 이해관계가 같다는 주장은 거의 없다.

이렇게 보면 미국 경찰이 지독하게 인종차별적인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어느 나라고 경찰은 항상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하지만, 민생과 치안이 경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노동 대중을 끊임없이 착취하고 천대하는 체제는 끊임없는 저항과 반발을 부르게 마련이다. 이를 제압할 강제력이 국가에게는 꼭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백인 경찰이 저항하는 유색인종 사람들을 때려잡는 것은 남북전쟁 이전부터의 전통적 풍경이었다.

미국 국가는 경찰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인종차별을 적극 활용했다. 비교적 최근 사례를 둘만 들면, 첫째, 공화당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마약과의 전쟁’을 빌미로 경찰력을 강화해 1960년대 흑인 저항 운동의 마지막 잔재를 파괴했다. 둘째, 1992년 LA 소요 이후 당선된 민주당 대통령 빌 클린턴은 흑인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을 군대 수준으로 중무장시켰다.

시위대에 “폭동” 운운하는 비난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이번 운동에서 많은 경우 경찰의 야만적 폭력에 맞서 시위대가 방어적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폭동에 불이 붙었다. 그래서 대개 시위대의 분노와 방화가 최초로 향한 곳도 경찰서였다.(그중 다수는 가혹 행위 전력이 있는 경찰의 근무지였다.)

저항 운동이 성장하다 보면 ‘비폭력’ 고수가 불가능한 순간이 온다. 바로 국가와 체제가 더는 운동을 용인할 수 없다고 보고 무자비하게 공격할 때다. 이런 공격에 맞서는 데 필요하고 적절한 정당방위 수단을 채택하길 주저하면 그 운동은 주저앉게 될 것이다.

전망

앞서 발제한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① 플로이드 사망 규탄 운동은 2007년 이래 이어진 세계적 경제·정치 위기와 그에 대한 항의의 표현이다. 따라서 이토록 거대하고 광범하고 격렬한 것이다.

② 인종차별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자본가 계급은 인종차별을 유지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킬 강력한 이해관계가 있다. 경제 위기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트럼프 정부가 이 운동을 야만적으로 진압하려는 것도, 인종차별적 우익을 고무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 권력층 주류도 그런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당파를 가리지 않고 시위대 ‘폭력’을 비난하고, “투표로 심판” 운운하는 이유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지배자들은 결코 일치단결해 있지 않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을 “서로 싸우는 형제들”이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운동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해관계를 공유(“형제들”)하지만, 이 운동과 그 이후 파장을 서로 간 경쟁에 이용(“싸우는”)하기 위해 벌써 혈안이 돼 있다.

이미 미국 지배자들은 경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두고 격렬한 쟁투를 벌이고 있었다(트럼프 당선 자체가 바로 그 쟁투의 의도치 않았던 결과다). 이 때문에 이 운동이 낳은 정치적 충격파 속에서 미국에 심각한 정치 위기가 닥칠 수 있다.(11월 대선도 그 일부다.)

둘째, 운동이 당분간 격렬하게 이어질 수 있다. 운동의 주요한 동력인 미국 국가의 평범한 대중 천대에 대한 문제는커녕, 당면 요구인 살인 경찰 처벌조차 대규모 운동 없이는 어렵다는 데에 공감대가 크다. 차별과 천대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운동 내부적으로 달라도 말이다.

인종차별의 원인이 부자들이 수익성을 회복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강렬한 분노와 (미국과 세계가 뭔가 잘못돼 가고 있고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만큼은 광범하다.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 ⓒ출처 Joe Brusky(플리커)

이는 지난 10년 간 미국에서 여러 방식으로 표현돼 왔다. ‘점거하라’ 운동, 조금씩 성장하던 공공부문·학교·불안정 노동자들의 파업 등. (지금은 민주당 권력층에 협력하고 있지만) 버니 샌더스의 선거운동도 그런 분노와 변화 염원의 표현이었다. 실업, 차별, 천대라는 공통의 고통에 시달리는 다인종 노동계급 사람들이 지금 함께 투쟁하고 있다.

인종을 뛰어넘은 노동계급 서민층 단결이 승리에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사례가 많지만 하나만 들면, 미국 흑인 차별이 정점에 이르렀던 19세기 말 ~ 20세기 초 대중적 노동자 조직(1880년대 노동기사단, 1890년대 초창기 미국노동자연합(AFL), 1910년대 초 세계산업노동조합(IWW) 등)들은 인종 장벽을 넘어 흑백 노동자들을 단결시켰다. 그런 단결 속에서 노동계급의 전투성, 확신, 조직이 고양되는데, 이는 근본적 변화로 나아갈 핵심 발판이다.

이 운동이 계급적 천대와 인종차별이 결합된 대중적·정치적 운동으로 발전한다면, 거대한 폭풍이 돼 세계 질서를 강타할 것이다. 체제 위기 자체를 배경으로 한 이번 운동에는 그런 잠재력이 있다. 한국에 사는 우리가 (내일 기자회견부터 시작해) 이 운동을 흠뻑 지지해야 할 이유다. 다시 말하지만 내일 오전 11시에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이 열릴 기자회견이 그런 지지를 보낼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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