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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종차별 반대 투쟁:
트럼프 인종차별 몰이에 대규모 시위로 맞서다

6월 20일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오클라호마주(州) 털사시(市)에서 대선 유세를 시작하며 인종차별 몰이에 나섰다.

이날 트럼프는 유세 연설에서 “경찰을 수호하자”고 외쳤고, 시위대가 인종차별적 인물들의 동상을 끌어내리는 것을 콕 집어 비난했다. “정신 나간 좌파 깡패들이 우리 아름다운 동상들을 무너뜨리려 한다.” 트럼프는 자기 지지자들이 이에 맞서야 한다고 선동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사들이다. 바깥에 있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제 바이러스”, “쿵플루”(쿵푸에 빗댄 인종차별적 표현)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유세 시점과 장소도 시사적이다. 이 날은 노예해방기념일 다음 날이었다. 100년 전 털사에서는 폭동이 벌어져 단일 사건으로는 미국 역사상 손꼽히게 많은 흑인들이 살해당했다. 1921년에 쿠클럭스클랜 KKK단은 털사 내 흑인 거주 지구에 몰려가 학살과 방화를 저질렀고, 개인 경비행기를 띄워 폭격까지 했다. 미국적십자가 사상자 추산을 포기할 정도의 참극이었다.(훗날 미국 상원 조사위원회는 폭동 이틀 만에 흑인 약 300명이 살해당했고 80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추산했다.)

〈ABC 뉴스〉가 인용한 한 의원의 말처럼, “트럼프는 인종차별에 윙크를 보낸 정도가 아니라 귀향 파티를 열어 줬다.”

그러나 트럼프가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이 “경이로운 수준”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6월 22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235만 명을 넘어섰다. 2위에서 5위까지 나라들(브라질·러시아·인도·영국)의 확진자 수를 모두 더한 것과 비슷한 정도다.

경제 상황도 심각하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5월 말 현재 미국의 실질 실업률은 25퍼센트에 이를 것(이고 흑인 실업률은 더 높을 것)이라고 추산했는데, 이는 1930년대 대불황 당시 최고조(24.9퍼센트, 1933년)에 이르렀던 수준에 육박한다.

트럼프는 처참한 경제 상황과 코로나바이러스 재앙 모두에서 사람들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리고 인종차별로 지지층을 결집하려 한다. 임기 내내 무슬림과 라틴계에 대한 인종차별을 일삼았던 트럼프가 이번에도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맞서 극우를 고무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지배자들 일부도 트럼프가 미국 안팎에서 닥치는 도전들에 대응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듯하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이 회고록에서 트럼프를 맹비난해 화제가 되고, 권력층 사이에서 (미덥지 않지만)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이 트럼프의 대체재로 취급되는 배경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이미 트럼프 지지율이 역대 최저로 떨어져, 바이든에 두 자리 수 퍼센트포인트 차로 뒤처지고 있다.

동력

미국에서 4주째 커지는 인종차별 반대 항쟁이 이런 파장의 동력이다.

〈USA투데이〉는 미국의 크고 작은 도시 1726곳(6월 19일 현재)에서 시위가 벌어졌다고 추산했는데, 열흘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그간 30개 넘는 주들에 주방위군이 파견되고, 대도시 수십 곳에서 통금을 시행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6월 19일 노예해방기념일과 그 이후 주말에도 미국 전역 100곳 이상에서 100만여 명이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 수도 워싱턴 DC에서는 시위대가 “이것은 인종차별에 맞선 봉기다”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국회의사당 진입로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를 몇 시간 동안 봉쇄했다.

연이은 경찰 폭력이 분노를 더 들끓게 했다. 로스앤젤레스 시위대는 경찰이 6월 18일에 살해한 18세 유색인 청년 안드레스 과다도를 추모하고 경찰을 규탄했다. 과다도는 자신이 경비로 일하던 자동차 매장 앞에서 근무를 서다 경찰에게 총을 맞았다. 뉴욕에서는 경찰이 흑인 남성을 바닥에 눕히고 목을 조르는 10분짜리 영상이 폭로돼 시위대가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대의 분노가 첫 유세에 나선 트럼프에게 통쾌하게 한 방 먹였다. 유세장이 있던 털사 도심에서뿐 아니라 주요 대도시에서 “트럼프·펜스 즉각 퇴진!” 구호가 나왔다. 애초에 트럼프는 자기 유세에 10만 명이 참가할 거라며 1만 9000석짜리 장소를 잡고, 행사장 앞에도 수만 명이 참가할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 참가자는 7000명 정도밖에 안 됐다(장외 행사도 취소됐다). 트럼프 선거 캠프 대변인 팀 머토트는 “‘급진파’ 시위대와 언론의 공격이 … 대통령 지지자들에 겁을 주고 있다”고 투덜거렸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는 대중 항쟁이 트럼프 같은 지독한 지배자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날 일부 항만 노동자들도 작업거부 후 행진에 참여했다. 6월 19일 노예해방기념일 캘리포니아주(州) 오클랜드 ⓒ출처 Annette Bernhardt(플리커)

경찰의 흑인 살해뿐 아니라 미국의 다른 병폐들에 대한 분노도 같이 나왔다. 이번 주에는 특히 이주민 탄압 반대 구호가 두드러졌는데, 6월 18일 대법원이 트럼프 정부의 ‘이주 아동 추방 유예 행정명령’(DACA)’ 폐지 시도를 위헌 판결한 데에 고무돼서였다.

항쟁은 미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번지고 있다. 6월 중순 현재까지 연대 시위가 67개 나라로 번졌다. 인종차별·극우가 기승을 부리는 유럽뿐 아니라 인구 압도 다수가 흑인인 남아프리카공화국·케냐·나이지리아 같은 곳에서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하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심각한 경제 위기와 코로나19 재앙에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을 휴지조각 취급하고 온갖 차별과 천대로 내모는 것은 어느 나라나(한국도) 마찬가지다. 국제적으로 연대 시위가 확산되는 배경이다. 이 점은 국제 연대의 중요성과 노동자 서민을 희생시키려 인종차별을 휘두르는 이 체제에 함께 맞설 필요성을 보여 준다.

경찰 개혁과 해체 요구, 어떻게 볼 것인가?

인종차별적 경찰을 바꾸자는 말이 미국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운동의 압력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6월 17일에 경찰 ‘개혁’ 행정명령을 냈다. 그런데 정당방위 등 특정 경우에는 ‘목 조르기’를 허용한다거나(이미 그렇다)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경찰을 바꾸는 것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가 “경찰 개혁에 잠깐 신경쓰는 척했을” 뿐이라고 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도 취임 100일 안에 경찰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독립적’ 감시 위원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그러나 둘 모두 “교육·훈련”의 세부적 내용이 무엇인지 불분명했다.)

그러면서도 바이든은 경찰의 재정을 삭감하고 중무장을 금지하는 데에는 반대했다. 버니 샌더스도 부적절하게 바이든의 편을 들어 경찰 재정 삭감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런 행보는, 운동에서 드러난 깊은 분노를 뒤틀어 트럼프에 맞서려면 (공화당과 별반 다르지 않은!) 민주당에 투표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게 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적이다.

오늘날 미국 경찰이 있기까지 공화·민주 양당은 수십 년 동안 온갖 교육과 훈련을 강화했다. 그러나 역대 정부들은 경찰의 무장과 훈련을 강화하고 ‘치안’ 역량을 키우는 데에 가장(거의 유일하게) 주력했다. 그간 미국 국가는 “지역사회 치안”이라는 명분으로 거리에서 (주로 유색인종의) 위법 행위를 단속할 사실상 무제한의 권한을 경찰에 부여했다.

이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치안)하는 것이 경찰의 존재 이유다.

경찰이 검문·단속에 열심이고 무력 사용도 전혀 꺼리지 않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잠재적 범죄자이자 사회 불안정의 원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경찰이 인종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것은 경찰이 수호하는 체제가 그렇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본지 326호 ‘경찰은 왜 이렇게 인종차별적일까? 고쳐 쓸 수 있을까?’)

흑인 대통령 오바마 정부 하에서도 경찰은 ‘치안’을 이유로 유탄발사기, 산탄총, 장갑차로 무장했다. 경찰 폭력이 폭증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계기가 된 경찰의 흑인 청년 사살, 노점상 교살 등은 모두 오바마 정부 시절에 벌어진 일이다.

오바마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밀려서야 비로소 “해체 수준의 개편”을 약속했지만, 미사일을 탑재한 무인기 등 일부 중화기 사용을 제한하고 (트럼프는 이 제한조차 임기 첫 해에 철폐했다) ‘교육’을 강화하는 데에 그쳤다. 오바마는 수사·기소권 없는 ‘독립적’ 감시 위원회조차 끝내 설치하지 않았고, 이번에 플로이드가 살해된 방식인 ‘목 누르기’ 같은 치명적 기술도 금지하지 않았다.

운동의 압력

지금 미국에서 경찰의 중화기 보유를 이유로 경찰서장이 사임하고, 경찰 재정 삭감이나 “해체” 등의 주장이 나오는 것은 오직 아래로부터 운동의 압력 때문이다.

이 요구에는 중요한 상징성이 있다. 한국에서도 공안·폭력 경찰의 만행에 수십 년 동안 시달려 왔지만, 경찰 재정과 기반 자체를 건드리자는 실질적 요구가 대중적으로 부상한 적은, 더구나 주요 당국자들이 직접 언급한 적은 거의 없음을 상기해 보라.

경찰 재정을 삭감해 의료·교육 등 복지 예산으로 돌리라는 요구는, 이 운동이 경찰의 인종차별적 폭력을 규탄하며 시작됐지만 사회의 우선순위에도 문제를 제기함을 보여 준다.(‘평범한 사람들을 돕는 데가 아니라 단속하는 데 돈을 더 많이 쓰다니!’) 시위 진압 경찰 한 명을 무장시킬 돈이면 코로나19 긴급 대응 의료진 수십 명에 안전 장비를 공급할 수 있다는 폭로는 그런 물음이 집약된 것이다.

그러나 재정 삭감의 정도와 용처에 관해서는 여전히 쟁점이 있다. 최근 로스앤젤레스·뉴욕 등 주요 대도시에서 (주로 민주당 소속) 시장들이 경찰 예산을 많게는 수억 달러까지 줄이겠다고 발표했지만, 그 돈 중 실제로 복지에 가는 돈은 매우 적거나 그조차도 불분명하기 일쑤다.

경찰 재정은 여전히 막대하다. 뉴욕시장은 경찰 재정을 15퍼센트 가까이 삭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남은 재정(60억 달러 이상)도 여전히 뉴욕 교육예산 전체(약 34억 달러)의 두 배에 가깝다. 이런 재정은 최대한 삭감되고, 경찰 무장에 드는 막대한 자원을 대중의 진정한 필요에 맞게 써야 마땅하다.

“경찰 해체” 주장은 작은 개혁조차 우물쭈물하고 거부하는 권력층을 규탄하며 나오는 것이다. 이 구호는 플로이드가 살해당한 미니애폴리스시에서 처음 나왔는데, 시장 제이콥 프레이가 조지 플로이드 살해 경찰들 전원 기소조차 마뜩찮아 하는 데 대한 반발의 표현이었다.(‘그러면 아예 해체해 버려라!’)

많은 미국 시위대는 경찰 중 일부만이 아니라 경찰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 때문에 경찰 해체를 외친다. 시경 당국이 임명하든, 연방정부가 임명하든, 심지어 선거로 선출하든, 경찰은 경찰이고, 인종차별적 본성은 “해체”가 아니면 없앨 수 없다는 의식의 표현이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처럼, 인종차별적이지 않은 경찰은 집단으로서는 없다. 경찰은 노동 대중에 맞서 체제를 수호하는 최전방 부대고, 그래서 지배자들은 경찰과 법 집행 기구 전체를 물리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무장시킨다. 미국에는 다양한 경찰(과 법 집행) 제도가 있고, 심지어 검찰을 비롯해 몇몇 인사들을 투표로 선출하는데도 그 성격이 바뀌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압박(이용)해 경찰을 해체하는 문제도 이와 연관해 봐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체제 안정·수호를 위해 조직된 (무장력을 독점한) 정치 조직이다. 그래서 그 존재의 핵심 이유가 경찰(과 검찰, 군대, 법 집행 기구 일체 등) 기구로 직결된다(관련 기사 본지 118호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한국에서도 국정원과 검찰 개혁 논란이 불거졌지만 간판만 바꾸거나 업무 이관 같은 조삼모사식 ‘개혁’에 그치기 일쑤였다.

자본주의 국가를 재정 삭감으로 해체할 수는 없다. 노동 대중의 혁명적 투쟁으로 이를 해체하고, 단결한 노동자들이 직접 운영하고 통제하는 노동자 국가로 대체해야 한다. 그래야 인종차별적 경찰, 나아가 인종차별과 온갖 천대가 없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지금 미국 운동에서 경찰에 맞서 제기되는 여러 요구들은 경찰이 수호하는 체제 자체를 타격하는 쪽으로 나아갈 잠재력이 있다. 혁명적 좌파가 중요한 구실을 할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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