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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미국 거주한 독자의 편지:
미국 흑인 사망 항의 운동: 한국 언론의 한인 상가 ‘약탈’ 부각 부끄럽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조지 플로이드 살해 항의 운동을 보도하면서 한인 상가 약탈 피해를 부각시킨 한국 언론의 천박한 자민족 중심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좀 일반화하자면 한국 언론과 시민사회는 한반도 바깥의 세상일에 도무지 관심이 없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상을 탔네, 한국 대통령이 외국에서 칭찬받느니 어쩌니 할 때만 우쭐하지, 우리가 받는 관심을 돌려줄 줄은 모른다. 한국 아티스트들이 휩쓸고 다니는 힙합·비보잉 씬에 쏟는 관심의 10분의 1만이라도 그런 장르의 역사적 뿌리인 흑인 차별의 역사에 뒀다면, 감히 한인 사회의 재산 피해 따위를 경찰들의 흑인 살해 만행과 동등한 비중으로 다룰 순 없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몇 년을 살았지만, 동양인인 나는 단 한 번도 경찰의 불심 검문에 걸려 본 일이 없다. 그런데 흑인들에겐 차 타고 출퇴근하는 길에, 혹은 어쩌다 백인 동네에 길을 잘못 들었다가 경찰한테 제지당하고 수색당하는 일이 당연한 일상이다.

거기서 끝나면 천만다행이다. 몸수색에서 소량의 대마초(비록 최근에는 여러 주에서 합법화되고는 있지만)라도 나오거나, 범죄 용의자랑 ‘닮았다’는 약간의 심증(똑같이 20대 흑인 남성이라는 등)이 있거나, 혹은 보호 관찰 기간에 지켜야 할 규칙(전과자 친구들과 만나지 말라는 등)을 어긴 것이 드러나면 바로 경찰서행이다. 말로만 저항해도 ‘경찰관을 위협한’ 죄로 죽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며칠 만에 풀려나고 그렇지 않으면 교도소로 돌아가거나 강압적 자백으로 새로운 전과까지 뒤집어쓴다. 정상적인 생활이 될 리 없다.

여기까지만 알면 ‘그럼 마약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냐?’, ‘범죄 전력이 있으면 의심받을 만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대마초·필로폰 등은 한국에서는 (일부 연예인들이나 하는) 무서운 것처럼 여겨지지만 미국에서는 파티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일종의 술 같은 것이다. 철든 미국인은 흔히 하고, 백인 청소년들은 가벼운 꾸지람 받고 넘어갈 일이지만 흑인 청소년들은 소년원이나 교도소에 간다(가벼운 주먹다짐이나 절도도 마찬가지다). 거기서부터 흑인들을 평생 옥죄는 형사·사법 체계와의 악연이 시작된다(아니 그보다 오래전에 부모·친척들이 수감되면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도심 산업 공동화로 변변한 일자리가 사라진 흑인 거주 지역에서 전과자 출신이 뭘 해야 먹고살까?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라도 못 구하면 결국 마약팔이 아니면 장물 거래밖에 없다. 그러다 또 잡혀간다(혹은 에릭 가너처럼 목 졸려 죽는다). 일부는 강도질 등 실제 폭력을 저지르기도 한다. 가난이라는 더 큰 폭력이 부른 필연이다. 하지만 또 많은 이들은 증거도 없는 죄목으로 무기징역을 살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다는 사법기관의 협박에 못 이겨 지은 적 없는 죄를 ‘자백’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워낙 광범하게 자행되다 보니 흑인 남성의 3분의 1이 일생에 한 번 이상은 감옥살이를 하는 지경까지 왔다.

이런 엄청난 비극 앞에서 한인 상점주들의 재산 피해를 들먹이는 것은 지독한 자민족 중심주의일 뿐이다. 더 문제는, 한국 언론뿐 아니라 재미 한인 사회의 그런 옹졸한 태도가, 결국은 한인들도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 내 인종차별의 지속·강화에 일조한다는 점이다. 최근 코로나 참사를 거치면서 미국 내 동양인들은 흑인들이 일상으로 겪는 차별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를 살짝 맛보았을 것이다.

게다가 동양인 차별은 미·중 간 제국주의적 갈등이 심화할수록 기승을 부릴 텐데, 훨씬 더 차별받는 집단이 십자가를 지고 싸울 때 그들을 비난하는 여론에 동조하면 나중에 자신들이 공격당할 때 누구에게 손을 벌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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