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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국정원장 지명:
남북관계의 막힌 물꼬가 다시 터질까?

7월 3일 문재인 정부는 외교·안보 인사를 단행했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남북관계 악화 속에 국면 전환을 위한 인사다. 통일부 장관에 이인영, 청와대 안보실장에 서훈,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에 임종석, 정의용이 지명됐다.

이번 개편이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 계기가 될 인적 쇄신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국가정보원장에 박지원이 지명됐다는 점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3일 정의당 지도부는 대변인 논평에서 서훈 등 기존 외교·안보 인사들이 자리만 바꾼 것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박지원에게는 “국민안보를 튼튼히 하면서도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적극적인 평화노선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민중의 소리〉는 6일자 사설에서 다른 인사들에 대해서는 아쉬움과 우려를 표하면서 박지원에게만큼은 “박 후보자가 경륜을 살려 냉각된 남북간의 대화를 복원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하고 밝혔다.

박지원은 2000년 김대중-김정일 남북 정상회담 당시 대북 특사로 활동하며 정상회담 개최 합의 과정에 관여했다. 그리고 국정원은 전통적으로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막후 창구 구실을 해 왔다. 박지원의 국정원장 지명은 북한 당국한테 보내는 메시지라는 평이 나오는 까닭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있음을 대내외에 보여 주는 신호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지원이 관여했던 김대중 정부 시절에 남북관계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추진하며, 북한과의 평화 공존을 추구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남북 경제 협력을 정치·군사적 문제 해결과 분리해 추진하는 ‘정경분리’ 원칙을 내세웠다.

이것은 햇볕정책에도 ‘한미동맹을 중시하고 안보를 튼튼히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음을 의미했다. 이 점은 최근 박지원 자신이 강조하기도 했다. “DJ[김대중]의 햇볕정책은 한미동맹 속에서 남북이 교류협력을 통해 전쟁을 억제하자는 포용정책[이다.]”

그래서 북·미 관계 상황에 따라 김대중의 대북 정책은 이리저리 흔들리곤 했다.

1998년 이른바 ‘금창리’ 위기로 미국의 대북 압박이 거세졌다. 북한 금창리에 비밀 지하 핵 시설이 있다고 미국이 사찰을 요구한 것이다.(훗날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다.) 이때 김대중 정부는 미국의 주장에 찬동해 북한에 금창리 사찰 허용을 요구했다.

1999년 9월 미국이 전역미사일방어체계(TMD) 개발에 일본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면서 미국의 대북 압박은 잠시 풀릴 수 있었다. 즉, 냉전 해체 이후 미국에게 북한 ‘위협’론은 자국의 대외정책을 동아시아에서 관철하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이런 긴장 완화를 배경으로 2000년에 김대중 정부는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이 새로운 명분을 앞세워 대북 압박을 다시 강화하자, 김대중 정부는 이에 보조를 맞췄고 햇볕정책은 후퇴했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남·북한은 무력 충돌도 겪었다. 1999년과 2002년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서 교전을 벌였던 것이다. 모두 미국의 대북 공세를 배경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의 경협은 남·북한이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 ‘대북 송금’ 특검으로, 김대중 정부가 북한 당국에 비밀리에 돈을 줘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지원은 이 사건으로 구속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영화 ‘공작’이 잘 보여 줬듯이, 한국 지배자들은 남북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고 북한 당국과 뒷거래를 하곤 했다. 거기서 김대중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 거래의 중심에 박지원이 있었다.

2018년 4월 12일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 오찬 간담회에서 악수하는 문재인과 박지원 ⓒ출처 청와대

“한미동맹은 국민 정서”

한때 박지원은 매일 오전 라디오 방송에 나와 문재인을 공격한다고 해서 “문모닝”이라고 불렸던 인사다.

그러나 근래 그는 방송 시사 프로의 단골 출연자로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적극 옹호해 왔다. 이것이 박지원이 국정원장에 발탁된 또 다른 배경일 것이다.

박지원의 국정원이 남북관계에 적극 관여하려 나서겠지만, 이로써 남북관계의 막힌 물꼬가 다시 터질지는 따져볼 일이다.

최근 박지원의 언행을 보면, 그도 변화된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의 대외 정책이 한미동맹 일변도일 수는 없다고 본다. 2019년 한일 갈등 당시 박지원은 한국의 곤란한 처지를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도랑에 든 소다. 미국 풀도 먹어야 하고 중국 풀도 먹어야 하고 일본 풀도 먹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 지배계급에게 여전히 한·미·일 공조가 대외정책의 기본이라고 본다. 이는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북·미 관계가 교착 상태에 있으면 문재인 대통령이 한 발 앞서서 조정하고 타개시키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지만, 그때도 한·미 공조는 기본 전제다. “한미동맹을 떠난, 한·미의 완전한 합의를 떠난 남북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박지원은 당시 국민의당 대표로서 중국 특사 우다웨이를 만났고, 사드 배치를 우려하는 우다웨이에게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전통적으로 한미동맹은 가장 중시하는 외교정책이고, 국민 정서[다.]” 그 후 그는 사드 배치 찬성으로 국민의당 당론을 바꾸는 일을 주도했다.

지난해 한일 갈등 당시에도 박지원은 일본 아베 정부를 비난하고 미국이 한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데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의 태도는 한·미·일 공조에 있었다. 지난해 7월에는, 김대중이 1965년 한일 회담을 찬성했음을 상기시키며 “국익을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고, 8월에는 대통령 문재인이 일왕 즉위식에 참석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이는 불발돼 당시 국무총리 이낙연이 대참했다.)

8월 문재인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하자 박지원은 일본과의 협상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가, 11월 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하지 않고 연장하자 이 조처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환영했다.

“국제사회의 동의”라는 한계

문재인 정부가 박지원을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은 큰 틀에서 기존의 대북 정책을 유지하는 조처다. 김대중 정부 당시 박지원의 이력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진보 일각의 기대를 높일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문재인은 올해 6·15 기념사에서 “한반도는 … 더디더라도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으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문재인은 6월 말 올해 미국 대선 전에 북·미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이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것이 문재인이 말하는 북한 정부의 요구가 “국제 사회의 동의”를 얻는 방식이다.

물론 7월 7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도 ‘도움된다면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재차 정상회담이 열려도 북·미 관계를 교착상태로 만든 양측의 쟁점들이 해결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트럼프 정부는 국내에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으면서도, 그 와중에 동아시아에서 패권이 약화되지 못하게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7일 미국 국무부 부장관 스티븐 비건이 방한했지만, 8·15민족자주대회 추진위원회가 지적했듯이 “미국 국무부는 이번 방한 일정을 밝히며 북에 대한 소위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목표를 재확인하며 압박을 가했다.” 미국 국방부는 8월 한미연합훈련의 ‘범위, 규모를 한미동맹의 맥락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사실상 훈련 재개도 촉구했다.

그런 가운데 7월 4일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최선희는 미국이 “우리와 판을 새롭게 짤 용단을 내릴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이상 미국과 다시 협상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뿌르게 중재 의사를 표명하는 사람”, 즉 대통령 문재인도 함께 비난했다.

앞으로 남북관계는 가다 서다를 반복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는 근본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이 자아내는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의 불안정에 좌우될 것이다. “국제사회의 동의”를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와 박지원에게 한반도 평화에 관해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