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를 자기 통치 기반 공고화에 이용해 온 남북 지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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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백두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손을 맞잡은 후 서울로 돌아오는 사이에, 여당과 보수 야당들은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개악 공격이었던 규제프리존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세간의 시선이 평양 남북 정상회담으로 쏠린 틈을 이용해, 용의주도하게 개악을 실행한 것이다.
이처럼 지배자들은 남북한 군사적 긴장만이 아니라 대화·유화 국면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해 왔다. 남북 관계를 자신의 체제를 강화하는 데 이용한다는 면에서는, 북한 지배자들도 똑같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있다. 이 성명은 그 직전에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려고 중국과 손을 잡으면서 형성된 긴장 완화 분위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
박정희 정권은 7·4남북공동성명을 “유신을 위한 멍석 깔기”로 이용했다. 그해 10월 남북 대화 분위기가 절정에 이른 시점에 박정희는 영구 집권의 길을 여는 유신헌법을 공포했다. 그러나 “7·4남북공동성명에 워낙 고무돼서 통일 세력이 반박도 못했고 그러면서 혁신계 일부에서는 10·17쿠데타
같은 기간 북한에서도 흡사한 일이 벌어졌다. 북한도 자칭 사회주의 헌법을 선포하고는 김일성의 권력을 강화했던 것이다. 참으로 “싸우는 형제”다운 사건이었다.
이산가족 상봉
지배자들은 정권에 대한 지지를 높이려는 의도에서 이산가족 상봉도 이용한다. 1985년 이산가족 상봉 같은 사례가 있다.
1980년 광주 항쟁을 피로 짓밟고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1985년 즈음에는 완연히 살아나는 노동자 운동
전두환 정권은 그해 9월에 분단 이래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실행했다. 그리고 후속으로 남북 회담을 이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옮겨 가길 의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86년 10월 한 야당 의원이 통일이나 민족이 반공보다 우위에 있는 국가 이념
제국주의
물론 남북한 지배자들 모두 제국주의 세계 체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남북 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한 지배자들은 거의 언제나 미국 제국주의에 편승했다.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7·7선언을 계기로 남북 대화가 열렸다. 냉전 해체 분위기 속에 대화가 진전되면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그러나 1991년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재천명할 수단으로 북한을 악마화하자, 이 분위기는 지속될 수 없었다. 결국 1993~1994년 북핵 위기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아무 구실도 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 관계 발전에 의욕적으로 달려든 정부였다. 그래서 2000년 6월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6·15남북공동선언이 나왔다. 이 남북 정상회담은 김대중 정부가 국내 정치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됐다. 당시 정부는 민족화해·협력 분위기를 이용해 운동을 분열시키고, 노동자 운동의 발목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긴장 완화 분위기는 2년이 채 못 갔다. 2002년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하고 새로운 북핵 개발 의혹을 제기했다. 여기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북핵 위기가 다시 고조됐다.
비록 제국주의 세계 체제 하에서 운신의 폭이 한정되긴 하지만, 이처럼 남북의 지배자들은 그 속에서도 남북 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온 긴 역사가 있다.
이번에도 문재인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고조된 민족 화합 분위기를 이용해 노동자들에게 요구와 투쟁
따라서 운동 내 일각의 견해처럼,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는 정부와의 협력이 필요하고 심지어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면, 노동자 운동이 정부의 당면한 공격에 맞서 일관되게 투쟁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가 노동계급의 역사적 경험에서 배워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