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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대결의 시대로 후퇴하나?

6월 9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대북전단(삐라) 문제를 이유로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선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통신선을 비롯해 남·북한이 구축한 모든 통신선이 닫힌 것이다. 이미 기능이 정지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곧 철폐 조처를 밟을 듯하다.

6월 4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여정은 담화를 내어 문재인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막지 않는다면, 개성공단 완전 철거,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그리고 이제 북한 당국이 그 “첫 단계의 행동”에 착수한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부는 우파 성향의 탈북민 단체들이 대북전단을 계속 보내는 데 불만을 갖고 있었다.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전단 살포 중지”가 명시된 까닭이다.

북한 당국의 불만은 대북전단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9일 북한 당국은 남한 당국이 “계산할 것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앞서 7일 북한 공식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문재인 정부가 북·미 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선순환을 강조한 것은 “달나라에서나 통할 달나라 타령”이라고 했다.

북한 당국은 대북전단 문제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누적된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남북 관계가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이전으로 회귀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있으나 마나 한

2018~2019년에 남·북·미 정상들은 수차례 정상회담을 하면서 몇 가지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중에는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체결된 남북 군사합의가 있다. 이 합의를 두고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이제 북한 김정은 정부는 9·19 남북 군사합의가 “있으나 마나 한” 약속이라며 합의 파기를 경고하고 있다(6월 4일 김여정 담화). 왜 이렇게 됐을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들이 합의에 실패한 후, 북·미 대화는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주도해 온 대북 제재는 계속 유지·강화됐다.

코로나19가 세계 곳곳으로 번지자, 북한 김정은 정부는 서둘러 국경을 닫았다. 그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도 대북 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2018년 트럼프는 북한에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약속했지만, 금세 한미연합훈련이 재개됐다. 북한으로선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위선적인 행보도 문제였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하고 ‘한반도 평화 경제’를 강조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함께 한미연합훈련을 계속해 왔다. 지난해 8월 한미연합훈련에는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질서 유지’와 ‘안정화 작전’ 훈련이 포함됐다. 이는 북한 점령 훈련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약속한 “단계적 군축”도 전혀 지키지 않았다. 군축은커녕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를 능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군비 증강을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가 도입하는 F-35, 글로벌 호크 등은 모두 북한을 자극하는 전략 무기들이다.

그래 놓고는 문재인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남북한이 평화경제로 일본을 뛰어넘자’고 했다. 그 직후에 북한 당국이 문재인을 가리켜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이라고 맹비난한 까닭이다.

이중적 행태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직접 불만을 드러내 왔다. 예컨대 지난해 7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 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과 합동 군사연습 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 말에서 북한 당국이 왜 지난해부터 다양한 단거리 발사체 시험 발사를 집중적으로 벌였는지를 알 수 있다. 혁명가들이 북한의 이런 군사 행동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일각에서는 북한 최신 단거리 발사체 시험 발사가 북한이 남한의 F-35 기지와 성주 사드 기지를 사정거리에 둘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여정의 담화 발표에 이은 북한의 통신선 차단 조처는 올해 문재인 정부와 여권 인사들이 연일 대북 화해협력 제스처를 보내는 와중에 나왔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방역 협력, 남북 철도연결 등의 남북 협력 사업 제안 등을 꺼내 왔다. 문정인 같은 여권 인사들도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계기로 지금이 남북 대화를 재개할 호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한의 호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남북 관계를 개선할 실질적인 조처에서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에 계속 협력하고 있다. 그리고 문정인조차 인정했듯이,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국제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남북 협력 사업도 계속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인도적 지원도 미국의 제재에 걸리면 중단했다. 2019년 문재인 정부는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 지원을 결정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타미플루를 실을 화물차량이 대북 제재에 저촉된다고 지적하자 지원 사업이 중단된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지금 북한 당국이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협력 제안에 대해 왜 이리 반응이 없는지 짐작이 된다.

한반도에서는 당분간 긴장이 높아질 듯하다. 물론 일정한 냉각기를 거쳐 다시 대화가 재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분명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그 한계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좌파는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도 문재인 정부와 독립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경향신문〉 등이 주장하는 “북한은 대남 압박 멈추고, 정부는 대북 정책 재점검해야” 식의 태도가 아니라, ‘우리’ 정부의 친제국주의·군국주의적 행태부터 우선 비판하고 반대해야 한다.


대북전단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이 문제 삼는 “삐라”(전단)는 오래된 문제다. 냉전 시절에 남·북한 정부들이 삐라를 심리전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남한 정부도 북한 못지않게 삐라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지금도 북한이 보낸 삐라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소지한 자는 보안법상 처벌 대상이다.

2000년대 들어 남한에서는 정부가 아니라 우파 성향의 탈북민 단체들이 대북전단을 풍선에 실어 북한으로 보내기 시작했다.(물론 이런 소수 탈북민의 문제적 행위를 근거로 북한 당국이 탈북민 전체를 “쓰레기”라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다.)

그런데 이런 단체들은 대개 활동 자금을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 즉 미국 국무부)이나 보수 교회 같은 단체들의 후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한겨레 라이브〉 6월 9일자)

대북전단 살포는 별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남북 간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별 없는 행동이다. 대북전단 살포는 매번 남북 간에 긴장을 높였고, 심지어 무력 충돌까지 벌어지게 했다. 예컨대 2014년 북한은 경기도 연천 지역에서 대북전단을 실은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해 남한이 대응 사격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접경지역 지자체 단체장들이 집단으로 나서서 대북전단 살포에 반대하고 있다. 최근 김포에서는 지역민들이 쌀을 담은 페트병을 조류에 실어 북한으로 보내려는 탈북민 단체의 시도를 저지했다.

따라서 진보·좌파가 대북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라고 두둔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북전단 살포를 법으로 금지하고 제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대북전단을 실은 풍선이 법으로 막히더라도, 우파들은 얼마든지 새로운 선전 수단을 찾아낼 것이다. 반면에 이런 규제 논리는 외려 좌파들을 겨냥한 무기로 쓰일 수 있다.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저지·처벌을 요구하는 것보다 진보·좌파가 살포 현장에서 반대 시위를 하거나 접경지역 주민들이 전단 살포에 반대해 여는 맞불 집회를 지지하는 것이 낫다.

6월 15일 일부 문장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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