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몰리뉴의 실천가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입문 33:
흉악 범죄와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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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ㆍ예슬의 비극적 죽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동 성범죄에 큰 분노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한편, 우익 언론과 이명박 정부는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부추겨 사회 통제를 강화하려 한다. 존 몰리뉴의 이번 칼럼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끔찍한 범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모든 나라에서 때때로 특정 개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 이런 범죄가 성
자본주의 언론은 항상 이런 비극적 사건들을 좋아한다. 그런 사건이 일어나면 언론은 오래된 공식에 따라 충격적
물론 언론이 그런 짓을 하는 주된 동기는 신문을 더 많이 팔아먹거나 시청률을 올려서 이윤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언론과 언론을 통제하는 지배계급은 이데올로기적
타고난 악마
우리 지배자들에게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악한 존재이고 따라서 위로부터 통제될 필요가 있다고 우리가 믿는 것이 대체로 이롭다. 인간 본성의 고유한 결함들 때문에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오래된 기초이다. 그래서, 끔찍한 범죄가 발생하면 그것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악하다는 메시지를 언론이 사람들에게 주입하기 아주 좋은 기회가 된다.
또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
지배계급은 또, 우리가 우리끼리 서로 두려워하기를 바란다. 외부의 적
그리고 지배계급은 노동자들의 전반적 지적 수준이 낮게 유지되는 것을 선호한다. 그들은 우리가 사회 구조나 인간의 행동을 일관되게 또는 정교하게 인식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으로, 흉악 범죄가 발생하면 항상 히스테리컬한 분위기에서 당국의
그렇다면, 언론과 지배계급의 이런 반응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자는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는 이런 흉악 범죄들
히스테리
둘째, 그런 사건들은 항상 피해자, 피해자 가족, 가해자 가족에게 끔찍한 개인적 비극이고, 사실은 가해자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 중 언론의 사생활 공개나 선정적 보도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끔찍한 범죄의 가해자도
구체적 사실들을 무시한 채 모든 범죄를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만병통치약 같은 범죄 이론이나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는 생물학적 또는
그리고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언론이 부추기는 온갖 증오와 히스테리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확고하게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복수를 부르짖는 것에 반대한다. 복수는 피해자에게 이롭지도 않고 복수를 감행하는 사람들을 타락시킬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형량을 강화하라거나 더 가혹한 새 법률을 제정하라는 요구에도 반대한다. 그런 조처들이 범죄 억제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 분명히 흉악 범죄들은 비이성적이고, 따라서 이성적 계산으로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지배계급이 그런 조처들을 다른 목적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법률이나 경찰
요컨대, 그런 끔찍한 범죄들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즉 그런 범죄를 만들어 내는 사회, 병들고 폭력적이고 성차별
존 몰리뉴는 《마르크스주의와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