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부패 문제로: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이 더욱 격화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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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 추미애가 검찰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지난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검찰총장 윤석열은 추미애의 수사지휘권 행사가 위법이고 법제상으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일방적 지시를 받는 부하가 아니라며 직격탄을 날렸었다.
추미애는 10월 26일 법무부 국정감사에 나와, “그런 말을 하려면 직을 내려놓고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추미애는 라임 사건은 검사 게이트로, 옵티머스는 특수부 검사들끼리 서로 봐준 사건으로 규정했다.
급기야 27일 추미애는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내던 시절에 중앙지검 산하 수사팀이 옵티머스 건을 무혐의 처리한 일을 감찰하라고 법무부와 대검찰청 감찰부에 지시했다. 감찰의 목적은 윤석열이 무혐의 처리의 배후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관련 인물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 박근혜를 수사한 박영수 특검에서 윤석열과 함께 일했던 이규철 변호사 등이 거론됐다. 둘 다 옵티머스 고문에 이름을 올렸었다. 윤석열 사퇴 압박의 강도를 높인 것이다.
문재인은 이 난타전에 비겁하게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정권 핵심부와 검찰 간 갈등의 근저에는 청와대 핵심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있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는 갈등은 청와대와 검찰 사이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문재인의 측근인 조국을 쳐낸 윤석열의 수사, 수사 방향이 문재인 본인에게로 갈 수밖에 없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이 충돌의 뇌관이었을 것이다. 울산 건은 각종 인사 개입과 방해로 수사가 제대로 진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 점에서, 윤석열이 자진 사퇴 의향을 묻는 지난주 국정감사 질문에 인사권자의 뜻이 없으므로 그럴 생각이 없다고 대답한 것은 시사적이다. 그날 윤석열은 총선 직후 문재인이 임기를 지키라는 메시지를 줬다는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비겁하게 자진 사퇴 압박 가하지 말고 대통령이 직접 해임해 보라는 의사 표시인 셈이다. 윤석열은 전 법무부 장관 박상기가 (당시 새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막 지명된) 조국에 대한 수사에 선처를 요구하자, “번민을 했다”고 표현함으로써 배신당한 건 자기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비겁
다른 건 몰라도 딱 한 가지 점에서는 문재인이 윤석열을 제대로 배신했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은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면서 (임명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총장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그런 자세로 엄정하게 처리해 국민들 희망을 받으셨다. 그런 자세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 우리 청와대든 또는 정부든 또는 집권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엄정한 그런 자세로 임해 주시기를 바란다.”
이 말대로 실천한다면 문재인은 지금 바로 추미애를 해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권력형·특권형 부정이 드러나 장관직을 사퇴한 조국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며 애석해 했었다.
그런데 청와대와 검찰이라는 핵심 국가기관들이 공개적으로 충돌하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전 국민 앞에서 난타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문재인의 침묵이 더 길어지기도 어렵다. 잠재적 폭탄인 울산시장 선거 개입뿐 아니라 라임과 옵티머스 건으로 연루된 여권 주요 인사들이 더 늘어났다.
옵티머스 건에서는 (심각한 사안은 아니더라도) 차기 대통령 지지도 전체 1, 2위를 다투는 후보가 모두 로비 대상으로 거론됐다(이재명은 의혹, 이낙연은 소액이지만 지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윤석열을 그대로 두면 권력 누수가 일어날 것이다. 윤석열을 잘라도 지지층 이반은 확대될 것이다. 또한 이미 드러난 의혹들이 많아서 수사를 다 틀어막기도, 의심하는 여론을 잠재우기도 어렵다.
옵티머스 건만 해도, 문재인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이진아가 옵티머스의 돈세탁 통로였던 셉틸리언의 최대 주주였고, 옵티머스가 사기로 조성한 자금 중 1300억 원가량이 셉틸리언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기관들의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 주요 인사가 브로커 구실을 했을 가능성이나 자금의 흐름에 수사가 집중돼야 하는데도, 그보다 부차적일 수 있는 검찰의 봐주기 수사로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완전한 사기극이다.
게다가 설사 그 프레임으로 보더라도 당시는 검찰과 정권이 밀월 관계에 있을 때라서 그조차 권검 유착 혐의를 떨치지는 못한다.
결국 검찰 내부에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추미애가 반(反)윤석열 목적으로 임명했던 서울남부지검장이 추미애를 비난하고 윤석열을 편들며 사표를 냈다.
최근 제주 고유정 사건을 맡아 유명세를 탄 부장검사 한 명은 “검찰 개혁은 근본부터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 검사는 2016년 조사를 거부하는 박근혜에 대한 강제 수사를 주장했던 검사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 정치인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했다. 그는 추미애가 검찰 ‘개혁’ 과정에서 축소한 특수부가 아니라 우대한 형사부 검사이다.
검사 출신이기도 한 금태섭 전 의원이 지난주 민주당을 탈당한 것도 시사적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강경 비판에 나선 서민 단국대 교수, 김경률 회계사,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은 모두 민주당 개혁파에 친화적이었던 인사들이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기반이 권력형 부패 의혹을 틀어막으려는 과정에서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배경엔 개혁 배신에 대한 대중의 환멸이 자리 잡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환멸은 정치적 불안정을 낳을 것이다
본지가 그동안 꾸준히 주장해 왔듯이, 경제·안보 위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입지는 갈수록 약화될 것이다. 물론 정치 위기가 얼마나 어떻게 발전할지, 레임덕이 곧 올지는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동안 문재인은 야당들의 무능과 오판으로 정치 위기가 심화하는 것을 막아 왔다.
국민의힘은 중도화 방향으로 회복하는 듯했지만, 그 회복은 멈춰 있다. 국민의힘의 전통적 지지층은 중도우파 성향과 태극기 우파 성향으로 분열돼 있고, 국민의힘은 그 둘을 통합할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배자들은 당장 정권 교체 대안도 불투명한 국민의힘이 전면적으로 문재인과 맞서는 걸 꺼리는 듯하다. 문재인이 비록 줄타기를 하지만, 친기업 노선에 충실한 데다가, 아직까지는 진보· 노동계 지도부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대표적 3조직(민주노총·정의당·진보당) 지도자들은 문재인과의 포퓰리즘적 제휴에 미련을 가지고 정치적 차별화·단절을 회피하면서 정치 불안정 격화 방지에 일조하고 있다.
물론 진보계에서도 민주당에 대한 불만이 자라나는 것은 정의당 선거에서도 얼핏 드러났다. 당선이 유력해 보이던 배진교 후보(현 의원)가 원외인 김종철 후보에게 패했다. 배 후보는 지난 10년간 김 후보에 견줘 상대적으로 민주당과 가깝게 지내 왔다.
물론 김종철 신임 대표는 대표 취임 후 노동자 양보론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연대전략을 꺼내들었다. 진보당은 당명을 바꾸고 지도부를 새로 뽑았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 노선에 아직 진정한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
좌파는 좌파적 개혁주의로 기울거나, 좌파연하는 노조 지도자들을 추수하거나, 서로 분열해 있어서 주류 개혁주의 전략에 효과적으로 도전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원조부패에다 무능한 우파는 내부적으로 분열해 있고, 진보·좌파도 가시적 대안으로 자리잡지 못하면서, 청년들의 점증하는 불만은 주로 무당층으로 표현되고 있다.
경제 위기는 계속되는 코로나 위기 속에서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체제의 부조리와 불평등이 더 악화된다는 뜻이고, 각국 정부들이 갈수록 신용을 잃을 것이라는 뜻이다. 청년들이 기성 정치 세력들로 수렴되지 않는다면, 정치 상황의 불안정성과 휘발성은 강화될 것이다. 이미 이를 배경으로 지난해부터 세계적 반란이 시작됐다. 한국과 정치·경제적으로 밀접한 미국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가까운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로 반란이 번져 왔다.
이런 상황은 자칫 박근혜 퇴진 이후 문재인 정부가 가까스로 안정시킨 정치 질서가 청년들의 불만 표출로 또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지배계급 속에서 낳는 듯하다. 특히,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든 아직 어딘가로 수렴되지 않는 기층의 불만이 심각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