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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찍어내기 시도와 문재인 정부의 위기

이 글은 12월 7일 같은 주제로 진행한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표문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을 찾아내 수정했다.(12월 7일)

청와대와 법무부 장관의 말 안 듣는 검찰총장 찍어내기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는 듯하다. 권력형 부패 의혹에 직면한 정권이 치부를 감추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레임덕을 앞당긴 꼴이 됐다.

지난해 검찰의 집권층 수사를 막으려고 시작된 청와대-검찰 갈등이 급기야 검찰총장 징계 해임 시도로 이어졌다. 그러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총대를 메고 벌인 윤석열 제거 시도의 명분과 절차가 너무 조잡해 국가기관들 안에서도 협조를 얻지 못했다.

문재인과 추미애는 공석이 된 법무부 차관에 여당 측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을 서둘러 임명했다

12월 1일 법원, 법무부, 검찰 등이 모두 등을 돌렸다. 우스갯소리로 공수처가 생기면 첫 수사 대상이 추미애가 될 것이라는 말도 나돈다. 권한 남용·권력 농단의 문재인 정부 버전인 셈이다. 그래서 언론도 비우호적이고 여론조사 결과도 부정적이다. 왜 정권이 윤석열을 찍어내는지 사람들이 알아채고 있다는 뜻이자 부패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침묵도 위선과 비겁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검찰총장이라는 요직의 권력자를 쳐내면서 대통령이 장관 뒤에서 웅얼거리기나 하는 것에 대해 비아냥이 나온다.

결국 추미애는 12월 1일 오전 국무총리 정세균과 문재인을 연달아 만났다. 아마 대책 회의를 했을 텐데, 1일 저녁에 나온 소식은 2일 열릴 예정인 징계위원회를 이틀 뒤로 미룬다는 것이었다. 지난 1년 동안 정권에 대한 대중의 실망과 환멸이 계속 커져서 개혁을 위한 조치라는 말이 먹히지 않는다. 결국 기세등등하게 윤석열 징계와 직무정지를 발표한 지 겨우 일주일 만에 문재인 정부의 권력자들이 모여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군색한 처지임을 드러냈다.

아수라장

12월 1일 서울행정법원 제4부는 윤석열 측이 제기한 논리를 대거 수용해 추미애의 직무정지에 제동을 걸었다. 재판부는 직무정지 상태가 계속되면 ‘사실상 해임’으로, 회복될 수 없는 손해가 있다고 했다. 검찰총장 임기제를 지켜야 하고, 장관이 매우 제한적으로만 검찰총장을 지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말해 추미애의 직무 정지와 징계 해임 시도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같은 날 법무부 감찰위원회는 추미애의 윤석열 징계청구·직무배제·수사의뢰 처분이 모두 절차상 부적정하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추미애가 임명한 외부 출신 위원들조차 추미애에 반기를 든 것이다. 추미애는 11월 초 비밀리에 규정을 바꿔 현 감찰위원회 권한(감찰 착수 전에 감찰위를 의무적으로 거치도록 한 것)을 없앴다. 그때는 이미 추미애 지시로 윤석열 감찰이 시작된 후였다. 결국 윤석열 감찰 자체가 규정 위반인 셈이다.

법무부와 검찰 안에선 추미애가 임명한 인사들이 반기의 선봉에 섰다. 결정타는 직무정지된 윤석열의 직무대행인 조남권이 역감찰을 지시한 것이다. 조남권은 1일 대검 인권정책관실에게 대검 감찰부를 감찰하라고 지시했다. 대검 감찰부가 윤석열 감찰 과정에서 규정을 어기고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인권정책관실 검사 전원이 투입된다고 한다.

윤석열 징계위원회 의장을 맡아야 할 법무부 차관이 사퇴를 했다. 그도 검사 출신이다. 추미애가 문재인을 만난 이유 중에는 이 공석을 서둘러 채워야 하는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안에서도 간부 검사와 평검사들 모두에서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 불신임 의견이 팽배하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보여 주는 것은 핵심 국가기관이자 행정부 소속인 검찰 전체가 청와대에게서 사실상 이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명하복에 가장 익숙한 집단인데도 말이다. 이 점이 지난해 조국 사태와 달라진 점이다. 지난해에는 검찰 안에서도 특수부를 중심으로 요직을 차지한 윤석열 라인을 지지하지 않는 검사들도 꽤 있었다. 그래서 올해 추미애가 인사권으로 윤석열 라인을 쳐낼 수 있었다.

이런 아수라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위기를 반영한다. 지난해보다 정권에서 이반한 층이 더 커진 것이다. 검찰, 언론, 중도와 심지어 진보 성향에서 지지층이 이반하고 있다. 윤석열의 인기가 올라간 것은 집권당의 검찰 개혁 사기극의 실체를 사람들이 점점 알아가고 있다는 것의 반영이다.

2일 친민주당 언론들을 포함해 주요 일간지 사설에서 청와대와 법무부의 윤석열 해임 시도를 옹호한 언론이 단 하나도 없었다. 징계 시도를 옹호해 온 〈한겨레〉조차 이렇게 썼다. “윤 총장 징계 절차가 위법하다는 판단을 받[았으므로] … 절차적 정당성 문제로 인해 ‘총장 찍어내기’로 비치는 상황 … 겸허한 자성과 책임 있는 설명 … 징계위를 여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불편부당한 자세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조건과 신뢰의 기반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다.”

레임덕 시작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을 통제하지도 잘라내지도 못하는 대통령 문재인의 처지를 보면, 레임덕이 시작되는 듯하다.

추미애와 문재인이 12월 1일 청와대 회동에서 동반사퇴를 논의한 듯하다고 보도한 언론도 있었으나, 당사자들은 부인했다. 사실 동반사퇴하기도 어려운 처지이다. 정권에게 출구 전략이 되려면 윤석열이 추미애보다 먼저 사퇴(징계 해임이든 자진 사퇴이든)해야 하는데, 윤석열은 그럴 필요가 없고, 무엇보다 그럴 의지가 없는 상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직무정지 효력 정지 판결이 난 1일 늦은 오후 대검찰청에 출근해,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후임 장관과 검찰총장을 임명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입맛에 맞는 인물을 임명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이런 상황 자체가 검찰 개혁(위선적이기 짝이 없는)의 좌절로 보일 것이다. 정권의 힘이 빠지고 내년 상반기 재보선을 앞두고 정권의 구심력이 약화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이 우파와 적폐 세력의 공작이나 반격 때문이 아니라 정권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점이다. 윤석열이 잠시 숨을 돌린 것은 (친문 일각의 과장처럼) 그의 권력이 문재인 정부보다 더 세서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자충수로 지금 약화돼 있어서다. 즉, 윤석열 찍어내기가 역풍을 부르는 것은 개혁 배신과 위선 때문에 지지층이 이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회 다수당 지위를 이용해서 개혁 배신을 계속 실행하려고 할 것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문재인은 기업주들의 환심을 사 자기 편으로 붙들어 놓으려 할 것이다. 노동부장관이 주52시간제 적용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탄력근로제 개악을 반드시 하겠다는 의도의 천명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개혁’의 반동적 성격을 감추려고 국정원법 개정이 개혁 입법이라는 둥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진보·좌파가 청-검 갈등에서 검찰 편을 들지 않으면서도 부패한 집권 핵심 세력의 거짓과 위선을 비판하는 것은 사활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노동개악에 맞서자면서도 부패에 대한 비판을 아끼거나 회피하는 것은 일관성 결여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반면, 진보(중도좌파)와 좌파 일각이 청와대-검찰 갈등에서 누구 편도 들 수 없다는 이유로 쟁점을 회피하는 것은 그림의 절반만 보는 것이고, 상황의 정치적 맥락을 완전히 놓치는 것이다. 이 갈등의 본질은 윤석열 검찰이 집권 세력의 권력형 부패 혐의를 수사하려는 것을 막으려고 현 정부의 핵심부가 온갖 무리수를 둔 것이다. 이는 일련의 개혁 배신의 일부였다. 그렇다고 노동운동이 부패한 억압 기관인 검찰을 지지해서도 안 된다.

정부와 정치적으로 완전히 단절하기

진보·좌파가 쟁점을 회피하지 않는 길은 지금 노동개악의 주체이자 부패를 덮으려는 문재인 정부에 분명한 초점을 두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실망한 대중을 대변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우파에게 실낱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정치적으로 결별하지 않고도 노동개악에 효과적으로 맞서기는 불가능하다. 이는 노동개악에 반대한다면서 노조법 개악만 강조하고 탄력근로제 개악은 그다지 부각시키지 않는 것이 저항의 동력(노동계급의 기층)을 가동시키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권이 가장 약점으로 여기는 부패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계기로 불거진 국가기관 내의 분열을 이용해 투쟁을 전진시키려 해야 한다.

정의당은 청와대-검찰 갈등은 소모적인 권력 투쟁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특별법, 낙태죄 유지 형법 폐기, 공수처 신속 설립 등을 요구한다. 그런데 낙태죄 유지 형법이 바로 추미애 법무부에서 만든 안인데도 추미애 비판이 없고, 중대재해법을 회피하는 문재인 비판도 없다. 부패와 검찰 쟁점 회피가 단순한 오판이 아님을 보여 준다. 진보당도 말은 아끼며 문재인 정부의 부패 의혹에 말을 삼가는 것은 똑같다.

틈만 나면 정의당을 민주당 2중대라며 그것을 자신들의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 건설 프로젝트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던 일부 좌파들도 부패와 청와대-검찰 갈등 문제에서는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으로 진정한 쟁점에서 도망간다. 정권에 대한 정면 비판을 피하는 것이다. 이는 대중의 불만을 대변하지 않는 것이다. 좌파가 노동운동을 문재인 정부와 완전히 결별하는 쪽으로 이끌어야 하는데도 과제를 회피한다면, 바로 이것이 혁명적 좌파가 성장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