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검찰 갈등 격화 이후:
윤석열의 인기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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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국민일보〉 자회사)가 의뢰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검찰총장 윤석열이 1위를 차지했다. 상당 기간 1위를 지켜 왔던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최근 2위로 치고 올라온 이재명 경기지사는 각각 2, 3위로 밀려났다.
윤석열은 보수층, 중도층, 무당층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국민의힘 지지자 중에서는 62퍼센트가 윤석열을 지지했다. 한편, 무당층에서는 지지 후보가 없다는 답변이 29.4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이는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윤석열의 인기는 문재인 정부와 충돌하면서 오른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문재인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낙연 대세론의 거품도 걷혔다.
11월 6일에는 “친문 적자”라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매크로 프로그램 시연에 참석해 인터넷 뉴스 댓글 여론 조작을 지시한 혐의가 사실로 거듭 판정된 것이다. 그런 조작 때문에 대선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에는 큰 흠집이 났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측근이나 실세들이 권력형 부패 혐의를 받는 일이 점점 늘고 있어 문재인과 민주당의 시름도 깊어질 듯하다.
윤석열의 인기 상승은 이재명 경기지사에게도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듯하다. 이 지사는 그동안 문재인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를 감수하고 상대적으로 서민 친화적인 정책을 내놓아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최근 지지율이 오르자 이 지사는 주류 세력과 친문진영에 잘 보이려고 했다. 삼성 이건희를 한껏 좋게 말해 준 것이나, 아파트 분양가 억제에 반대한 것도 그의 지지층 또는 문재인에게 실망해 무당층으로 돌아선 이들에게 실망을 줬을 것이다.
윤석열은 박근혜 정부 하에서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려다 좌천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문재인과 틀어진 것도 현 집권 세력의 비리를 수사하려 해서였다. 문재인 정부의 부패와 위선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윤석열에게 기대를 걸게 된 듯하다. 주류 양당의 부패와 거리를 둔 행보가 끌어낸 일종의 포퓰리즘적 기대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원조 부패’ 정당(국민의힘)에 영입되면 그의 인기는 한때의 거품이 될 것이다. 만약에 그가 주류 양당 모두를 비판하며 독자적인 반(反)부패 포퓰리즘적 정치 행보를 한다면,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을 더 자극하는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지지 회복 노리는 우파 야당의 변장술
윤석열의 인기 상승은 국민의힘의 약점도 보여 준다. 총선 전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 이전 상태로 재통합하는 데 도달했지만, 분열된 보수층을 모아낼 새 리더십 창출에는 곤란을 겪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은 순위에도 못 들었다. 같은 기간에 (윤석열이 포함되지 않은)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다 합쳐서 7퍼센트였다. 국민의당 안철수와 무소속 홍준표까지 더해도 16퍼센트다. 이 조사에서 이낙연과 이재명이 각각 23, 22퍼센트로 1, 2위를 차지했다.
국민의힘은 중도층 껴안기 방침을 내세워 강성우파 실체를 온건한 이미지로 가리려고 한다. 그러나 우파적 정책들을 시행해 반감을 샀고 결국 부패 문제로 구속된 두 전직 대통령(이명박, 박근혜)을 배출한 정당으로서 그 정치적·사회적 기반은 그대로다. 국민의힘의 변신은 위장일 뿐이다. 이명박도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와 차별화하면서 경제 살리기와 “중도 실용”을 내세웠지만, 집권 후에 펼친 정책은 매우 우파적이었다.
체제의 수혜자들인 지배계급에게는 문재인 정부를 용도 폐기하고 우파 야당에게 베팅할 동기가 아직 부족하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 투쟁을 이럭저럭 억제하면서 경제 회복에 필요한 상대적 정치 안정을 아직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파의 회복은 문재인의 위기가 더 심화돼 정치 양극화가 가속될 때 본격화될 수 있다. 한편, 태극기 우익의 지도자 중 하나인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는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운동을 흉내내어 신당 창당을 시도하고 있다. 우파 정당의 중도 제스처 일관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좌파의 정치적 주변화
문재인의 개혁 배신과 부패, 위선에 대한 실망과 반감이 윤석열에게로 모인 것은 진보 정당들의 존재감 약화를 더 크게 보여 준다. 진보정당 후보는 겨우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만 거론되는데, 여러 조사에서 존재감이 없다. 지난 대선에서 최초로 200만 표를 넘긴 일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가 노동개악 등을 비롯한 제반 정책들을 놓고 전보다는 비판을 늘렸지만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이제라도 문재인 정부와 완전히 단절해야 한다. 정의당의 김종철 대표 체제에 대한 언론의 우호적 보도가 최근 늘어난 것은 오히려 정의당이 사회연대전략을 강조하는 등 기업인들의 부담을 덜어 줄 노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진보 정당들의 존재감이 약화된 근본적 원인은 최근 노동자 투쟁이 주목할 만한 수위를 기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스타 항공 사태 등에서 보듯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 위기에 직면해 투쟁이 승리하려면 좌파적이고 급진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노동계의 대표적 3조직(민주노총·정의당·진보당) 지도부들은 국유화 요구를 삼가는 등으로 그런 종류의 정치(문재인과의 단절을 수반할)를 제공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개혁주의 중도좌파 지도자들의 잘못된 노선과 영향력에 도전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는 급진좌파도 답보 상태이다. 그들도 문재인 정부의 위기가 우파를 이롭게 할 듯한 첨예한 쟁점에서는 말을 아껴 왔다. 그들이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 한·일 갈등, 권력형 부패 의혹, 그 의혹에 대한 수사를 계기로 불거진 청와대-검찰 갈등 등에서 문재인 정부를 급진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보기 어려웠다. “정권이 아니라 체제 변혁이 문제”라는 식으로 비껴가는 것은 회피나 도망일 뿐이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이반이 커지면서 무당층이 늘고 있다. 이 층은 아직 좌든 우든 특정한 경향으로 수렴되지 않고 있다. 윤석열의 수사 정치가 포퓰리즘적 인기를 끄는 것은 이런 상태를 반영하는 듯하다. 그러나 더 심각해질 것 같은 경제 침체와 함께 문재인 정권의 정치 위기가 깊어지면 정치 양극화 압력도 커질 것이다. 우파가 그 상황에서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게 하려면 노동자 운동과 진보 정당들은 문재인과 완전히 단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