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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나도 안갯속 미국 공식 정치

11월 4일 오전 2시경(워싱턴 DC 현지 시각, 한국 시각으로 4일 오후 4시경), 도널드 트럼프가 사실상 대선 승리를 선언했다. “환상적인 결과다. 나가서 기록적 승리를 축하하자.” 이 기사를 쓰는 4일 오후 5시 현재 집계로도, 트럼프는 이미 지난 대선 때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 경합주에서도 모두 우세하다.

반면, 민주당 대선 후보 바이든도 경합주들 모두에서 “승리를 낙관”한다며, 모든 표를 개표하기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여러 날 동안 쟁투가 이어질 것이다.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되든, 현재까지 상황만으로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미국 지배계급 주류가 거의 일치단결해 트럼프에 맞섰는데도 (심지어 공화당 핵심 인사 몇몇도 “당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투표해 자랑스럽다”며 바이든 지지를 ‘인증’했다!) 트럼프가 도저히 무시 못할 득표를 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승리 선언하는 트럼프 ⓒ출처 Donald J. Trump(페이스북)

결집

트럼프는 이번 대선을 심각한 압력 속에서 치렀다. 두 가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첫째, 코로나19 전염병 대유행이다. 코로나19는 미국 사회의 첨예한 모순을 밝히 드러냈고, 가뜩이나 2007~2008년 경제 위기에서 회복하지 못한 미국을 1930년대 대불황 이래 최악의 침체로 몰아넣었다. 유색인종, 노동계급이 그 대가를 치렀다.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수천만 명이 일자리와 생계를 위협받았다.

이것이 촉매가 돼 둘째 사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벌어졌다. 1960년대 이후 최대의 반란 물결이었다.(관련 페이지: ‘인종차별 반대 항쟁 분출하다 “정의 없이는 평화 없다”’)

이 사건들은 미국 사회에서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계급 양극화도 훨씬 첨예해졌지만 트럼프와 지배계급 주류 사이의 쟁투도 심해졌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처럼 이 모든 상황을 ‘아웃사이더’ 운운하며 회피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재선을 위해 두 압력에 대응하며 더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트럼프는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좌파를 공격했으며, 중첩된 위기에 압착된 인종차별적·보수적 하층 중간계급들을 자기 투표 부대로 결집시키려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극우·파시스트들이 크게 고무됐다.

일례로 트럼프는 경제 위기의 피해를 크게 입은 오하이오·미시건주(州) 등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도 일정 정도 결집 효과를 누린 듯하다. 실업·폐업으로 생계가 파탄난 사람들 중 일부에게 트럼프가 경기 대침체에서 그나마 자신들을 보호할 방안으로 여겨진 듯해서일 것이다.

위기의 책임

하지만 바이든은 트럼프에 맞서는 결집축이 되기에 부족했다.

바이든이 지금의 중첩된 위기를 만든 체제의 지배자들을 대변하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정치 이력 내내 신자유주의의 핵심 기수 구실을 했고, 온갖 쟁점에서 노동계급에 반하는 입장에 섰다. 심지어 바이든은 전염병 대유행 상황에서도 전국민 단일건강보험에 반대했고,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민간 보험회사들 편을 들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분출했을 때도 바이든은 운동과 철저히 거리를 뒀다. 정치 이력의 시작을 흑백 분리 지지자들과 함께했고, 수많은 흑인들을 감옥에 가둔 ‘폭력범죄 단속 및 법집행법’을 작성한 자답다.

트럼프가 인종차별과 극우를 부추기고 천대받는 모든 사람들을 가혹하게 공격했는데도, 민주당은 바로 그 트럼프를 낳은 위기에 책임이 있는 신자유주의의 전사를 경합 후보로 내세운 것이다. 고통 받는 수많은 대중에게 바이든이 매력 있는 대안으로 비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버니 샌더스와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이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지배계급 주류 후보(클린턴/바이든)에 맞서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그 나팔수 노릇을 한 것이 철저히 잘못인 대목이다.

무엇이 필요한가

현재까지 바이든이 총 투표 수에서 트럼프에 약간 우세하지만, 미국의 비민주적 선거 제도 때문에 그것이 곧장 트럼프 낙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온갖 쟁투가 뒤이을 것을 양측 모두가 분명히 하고 있다.

무엇이 필요할까? 선거 결과를 둘러싼 법리적 쟁투의 향방에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가 대변하는 체제의 패악에 맞서 지금부터 다시 저항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는 온전히 노동계급 대중의 몫이다.

고(故) 하워드 진은 2004년 조지 W 부시의 재선 결과를 두고 이렇게 썼다. “역사가 진보하고 부정의한 질서가 무너진 것은 … 정치인들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직접 행동했을 때만 가능했다.

“비민주적인 선거의 한계에 더는 갇히지 않고, 그동안 선거기간이라고 제대로 하지 못한 일들을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한다. … 불만과 분노를 새로운 힘으로 바꿔, … 무엇을 반드시 이뤄야 하는지에 관해 대담하고 분명하게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지난여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위력에 트럼프와 지배자들 모두 두려움에 떨었던 것을 떠올리면, 그런 일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다수 대중이 스스로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강경 우익과 신자유주의 전사 사이의 선택지보다 비할 바 없이 민주적인 것이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단체 ‘마르크스21’ 활동가 버지니아 로디노와 에릭 프레츠는 이렇게 썼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부추긴] 파시즘 위협에 맞선 투쟁은 선거 하나의 승패로 끝나지 않는다.

“많은 평범한 미국인들이 소속 노동조합과 작업장에서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투쟁해야 한다. 이는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며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전투는 둘 중 누가 정권을 잡든 계속돼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오늘날의 위기를 낳은] 자본의 지배에 맞서는 것이어야 한다.”

‘흑인 목숨을 위한 파업’의 핵심 조직자 중 한 명이었던 애시-리 우다드 헨더슨도 투쟁을 준비하며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구원자가 권좌에 오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다음 목표를 위해 전념해야 합니다.”

그런 투쟁을 지금부터 현실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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