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했던 4년이 지나고 11월 3일 대선을 앞둔 지금, 도널드 트럼프는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피해, 실업지원금이나 식량 배급을 받으려 길게 늘어선 줄, 경찰의 인종차별과 폭력에 맞서 벌어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트럼프의 위기를 낳았다.

트럼프의 재앙적인 코로나바이러스 대처로 미국 전역에서 22만여 명이 죽고 미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불평등이 더한층 심화됐다. 가난한 사람들과 흑인들의 피해가 혹심했다. 흑인의 코로나바이러스 치사율은 백인의 세 배나 된다.

실업도 치솟고 있다.

트럼프는 재선을 위해 분투하면서 미국과 전 세계의 극우와 인종차별주의자들을 계속 고무한다.

트럼프는 파시스트 단체 ‘프라우드 보이스’에게 투표를 앞두고 “물러서서 일단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가 부추긴 파시스트 단체는 ‘프라우드 보이스’만이 아니다.

최근 TV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큐어넌(QAnon) 음모론*에 무언의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음모론은 유대인 혐오자들과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사람들을 선동하는 단골 소재다.

2017년에 한 파시스트가 버지니아주(州) 샬러츠빌에서 반(反)파시즘 시위 참가자 헤더 헤이어를 살해했을 때, 트럼프는 양쪽 시위대 “매우 선량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트럼프의 이민자 강제 추방, 강제 수용소, 이민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인종차별적 마녀사냥은 우익에게 힘을 실어줬다.

인권 단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발표에 따르면 아직도 545명의 미등록 이주민 아이들이 강제 수용소에 분리 수용되면서 생이별한 부모를 찾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는 선거에서 패하면 결과를 수용하겠다고 밝히기를 거듭 거부해 왔다.

트럼프는 극우 단체들이 미시건주와 버지니아주에서 현직 주지사들을 납치 살해하려 모의한 것을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했다.

트럼프를 “일탈”이나 심지어 미국에 대한 “존재론적 위협”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에서 펼쳐진 공포 드라마의 최신화일 뿐이다. 트럼프의 2016년 대선 승리는 미국 사회가 처한 심각한 위기의 한 증상이었다.

자본주의가 “자유와 행복 추구”를 가져온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수많은 노동계급·빈민·흑인들에게 언제나 환상이자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십 년 새 그 꿈은 점차 악몽으로 바뀌었다.

예컨대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한 2017년 초 실질임금 평균은 1972년보다도 높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적 중도의 실패가 낳은 절망과 환멸 속에서, 억만장자 트럼프는 워싱턴의 엘리트들을 뒤흔들 “반(反)기득권”, “아웃사이더”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우파는 사람들의 분노를 이민자와 소수자에게 돌리고, 낙태권이나 성소수자 권리 같은 “문화 전쟁” 쟁점으로 계급을 분열시켜 득을 보려 했다.

이는 2016년 대선에서 월가와 대기업의 대변자이자 일등 전쟁광인 힐러리 클린턴을 상대한 트럼프에게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민주당 지도부는 또다시 자신들과 같은 족속의 인물을 트럼프의 대항마로 출마시켰다. 미국 사회주의자이자 연대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캘리포니아주 롱비치 지부 공동 창립자인 마이클 브라운은 이렇게 말했다.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포괄적인 정책에 관한 논의는 거의 없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 바이든을 둘러싼 대부분의 논의는 ‘문명으로 돌아가자’거나 ‘철든 인간을 백악관에 앉히자’는 것입니다.”

조 바이든은 클린턴에게는 없던 후광이 있는데, 바로 그가 버락 오바마의 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은 대기업·국방부·CIA 등 미국 국가의 심장부에 있는 살인마들을 대변하는 후보다. 그리고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염원을 업고 당선한 오바마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부였고, 나라 밖에서는 제국주의적 학살을, 나라 안에서는 이민자 추방을 계속했다.

10만 달러[약 1억 1300만 원] 이상 기부자들의 기부금 약 2억 달러[약 2250억 원]가 바이든 선거운동본부에 쏟아졌다. 트럼프가 모은 돈의 곱절이다. 부자와 기업들에게서 온 돈이다.

전염병 대유행이 한창임에도, 바이든은 전국민 단일건강보험 정책을 지지하기를 거부하고 민간 의료·제약 기업들에게서 후원금을 챙기고 있다.

바이든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의식해 카멀라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그러나 ‘법질서 확립’은 바이든의 트레이드마크였다. 1994년에 바이든은 ‘폭력범죄 단속 및 법집행법’의 초안을 작성했는데, 이 법으로 경찰 10만 명이 거리에 [추가로] 배치됐고 민영 교도소에 재정이 흘러 들어갔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올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분출했을 때, 바이든은 사람들의 다리를 쏘도록 경찰들을 훈련시키지자고 했다.

민주당은 기업주들의 정당이지만 수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이 민주당에 투표할 것이다. 그러나 거의 어떤 기대도 품지 않고 그렇게 할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바이든 투표자의 과반(56퍼센트)이 “트럼프가 아니어서” 바이든을 찍는다.

트럼프 정부 하에서 분출했던 운동들과 노동자 저항이 바이든 지지에 갇힐 위험이 상당하다. 예컨대 “일단은 바이든”이라는 슬로건이 SNS에서 널리 유행하고 있고 지금은 일종의 캠페인이 되고 있다.

마이클 브라운은 노동계급의 반격이 절실한 때에 로스앤젤레스 지역 노동조합들이 민주당 지지 호소에 집중하는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로스앤젤레스지역노조연맹은 선거 때마다 노동조합 활동 거의 전부를 제쳐두고 민주당을 위한 가가호호 방문 선거운동과 전화 후원 모금에 몰두합니다.

“그 결과, 협소한 선거 정치 바깥에서 노동운동이 활동할 여력이 남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다. 1960년대에 미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핼 드레이퍼는 이렇게 물었다. “1968년 대선, 누가 차악이 될 것인가?”

이는 1964년 대선 후에 있었던 일들에 관해 쓴 말이다. 당시 대선에서는 공화당의 인종차별주의자 배리 골드워터와 민주당의 린든 존슨이 경합했다.

존 F 케네디의 부통령이었고 케네디 암살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존슨은 흑인 평등권 운동에 대한 조건부 지지 정책도 계승했다.

민주당은 흑인들을 민주당의 투표 부대로 끌어들이면서도 운동의 급진성은 제약하고자 했다.

흑백 분리 지지자였던 골드워터는 흑인 평등권 운동에 반대하는 공약을 내걸고 선거 운동을 벌였다.

존슨이 계승한 케네디의 또 다른 정책은 베트남에 군사력을 쏟아붓어 베트남 민족해방투쟁을 짓밟는 것이었다. 몇몇 좌파들과 반전 운동 일각은 골드워터에 맞서 존슨에 투표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존슨은 집권하자마자 베트남에 대부대를 파병했다.

훗날 드레이퍼는 이렇게 물었다. “1964년 대선에 누가 진짜 차악이었나?”

차악을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고 해서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아무 차이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드레이퍼는 이렇게 썼다. “이 고전적 사례의 교훈은 차악이 최악과 같다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그런 터무니없는 교훈을 얻으려는 게 아니다.”

우익

진정한 교훈은, 기성 체제를 떠받치는 자들에게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힘을 희생시켜서는 우익에 맞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점거하라’ 운동 참가자이자 팟캐스트 ‘그린 앤 레드’ 출연자 스콧은 2000년대 후반에 겪은 그런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조지 W 부시의 전쟁 몰이에 맞서 거대한 운동이 있었는데, 사실 오바마는 그 운동을 흩어 버리고 월가에 팔아 넘겼다.” 좌파와 사회 운동이 민주당의 꽁무니를 쫓자 우익이 힘을 얻었다.

드레이퍼는 이렇게 썼다. “민주당이 노동운동 표를 확보함으로써 미국의 정치 지형은 점차 우경화해, 린든 존슨 같은 자가 차악으로 보일 지경이 됐다.

“이것이 차악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을 때조차 차악을 지지하면 우파에 맞선 진정한 투쟁의 가능성을 깎아먹는 핵심 이유다.

“선택지가 자본가 정치인들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그런 제한된 선택지를 받아들이는 데에서 패배가 온다.”

트럼프를 만들어 낸 이 썩어빠진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바이든은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희망은 민주당 밖에서 투쟁을 건설하는 데에, 썩어빠진 체제를 대변하는 양당 체제와 결별하고 진정한 변화를 위한 투쟁을 건설하는 데에 있다.

마이클 브라운은 이렇게 덧붙였다. “민주당도 공화당도 우리 편이 아닙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지금 존재하는 거리의 사회 운동을 심화시키는 구실을 해야 합니다.

“노동조합 안에서 계속 뿌리를 내려야 하고, 독립적인 노동계급 정당의 필요성을 포함해 계급 정치를 계속 고취해야 합니다.”

선거 뒤에도 운동과 저항을 계속 건설해야

미국에서는 트럼프 집권 첫날부터 계속 시위가 벌어졌다.

트럼프의 임기는 300~500만 명이 참가한 ‘여성 행진’, 무슬림 입국 금지 조처에 맞선 시위·파업과 함께 시작됐다.

그후 몇 년 동안 교사 파업 물결이 몰아쳤다.

2018년에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파업에 참가한 교사는 자신들이 “혁명을 시작한” 기분이라고 전했다. 그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오클라호마주 교사들과 뉴저지주의 일부 교사들도 뒤이어 투쟁에 나섰습니다.”

올해에는 파업이 수천 건 벌어지기도 했다. 다수는 코로나19 대유행에서 안전하지 못한 노동 조건에 항의하는 비공인 파업이었다. 미국 노동자 투쟁을 보도하는 인터넷 언론 〈페이데이 리포트〉에 따르면 비공인 파업이 3월 초부터 약 1100건 벌어졌다.

6월 ‘흑인 목숨을 위한 파업’처럼 노동자 투쟁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연결하는 노력도 있었다.

손바닥만한 마을에서조차 사람들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고 외치며 행동을 벌였다.

이번 항쟁은 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담론을 열어젖힐 것이다.

8월에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유색인 사회주의자들’ 회원인 앨버트 리는 분위기 변화에 관해 이렇게 전했다.

“이전에는 저나 다른 사회주의자들이 경찰 해체나 교도소 폐지에 관해 말하면, 너무 급진적인 생각이라고 치부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상식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바이든과 민주당이 아니라 이런 투쟁들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그린 앤 레드’ 출연자 로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어떻게든 물러나야 합니다.

“하지만 투쟁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누그러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바이든을 지지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저 투쟁을 계속할 거예요.

“좌파 중에는 바이든에 투표하라고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고, 녹색당에 투표하라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투표를 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논쟁은 지저분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사실 근본에서 보면 이런 주장들은 선거에 집착하는 태도입니다. 운동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