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반동적 군사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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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월 1일자 기사 ‘미얀마 군부 쿠데타 규탄한다’를 대폭 증보한 것이다.
2월 1일 미얀마(버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자 아웅산 수치 등 여당 민족민주동맹(NLD)의 주요 인사들을 구금하고 1년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지난해 11월 8일 총선으로 구성된 새 의회가 활동을 시작하는 날에 맞춰 군사 쿠데타를 벌인 것이다.
군부는 당시 총선이 여당에 유리하게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UEC)가 선출 의석 498석(상원 168석, 하원 330석) 중 22석(상원 7석, 하원 15석)에 해당하는 선거구에서 “치안 불안정”을 이유로 선거를 취소하고, 유권자 약 860만 명의 명부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후안무치한 주장이다. 해당 선거구에서 치안이 불안해진 것은, 군부와 군부가 후원하는 불교도 민병대가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청소”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가 무더기로 취소된 서부 라카인주(州)는 불교도 민병대와 로힝야족 저항 세력 사이의 교전이 가장 치열한 곳이다.
군부는 유권자 명부 조작의 증거도 전혀 대지 못했다.
군부가 미얀마 의회를 비민주적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어처구니없다. 미얀마 상·하원 총 의석(각각 224석과 440석)의 25퍼센트인 166석(상원 56석, 하원 110석)이 선거 없이 군부에 할당된다.
군부
군부 독재가 종식되고 2015년 총선에서 민족민주동맹이 승리했지만, 군부는 권력을 놓지 않았다.
군부는 내무부·국방부·국경관리부 장관 등 정부 요직에 군 출신자만 임명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받았고, 개헌에 대한 거부권이나 ‘위기’ 상황에 자의적으로 개입할 권리도 확보했다.
또한 군부는 제1 교역국인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에 힘입어 경제적·사회적으로도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군부는 미얀마 대중이 오랜 투쟁으로 쟁취한 제한적인 민주적 권리마저 되돌리려 호시탐탐 노려 왔다.
민족민주동맹은 군부 독재 종식 및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 덕에 집권했지만, 군부와 권력을 분점하며 ‘동거’했다.
민족민주동맹 정부는 서방의 투자와 교역을 늘려 미얀마 경제를 성장시키려 했다. 이는 미얀마와 중국의 관계를 벌리려는 미국의 입맛에 맞는 방향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경제 불황 속에서 미얀마 경제도 2017년을 기점으로 둔화하기 시작했다. 서방 투자는 줄어들었고, 교역에서 중국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
같은 시기 군부는 로힝야족을 또다시 학살했다. 로힝야족은 군부 독재가 시작된 1962년 이래 계속 박해받아 왔다.(관련 기사 본지 224호 ‘미얀마의 로힝야족 “인종청소”: 군부의 인종차별, 아웅산 수치의 외면, 미·중 제국주의의 위선이 낳은 비극’)
하지만 아웅산 수치와 민족민주동맹은 버마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군부를 두둔했다. 아웅산 수치 자신이 2019년 국제사법재판소 재판에서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을 변호했다. 이 때문에 군부가 기고만장해졌다.
민족민주동맹은 공식 정치에서 군부의 영향력을 줄이려 개헌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이 시도가 군부를 자극한 듯하다.
코로나19
코로나19 팬데믹은 미얀마에도 타격을 줬다. 특히 지난해 8월 이후 확진자 수가 치솟았다. 팬데믹은 경제에도 타격을 입혀, 가뜩이나 침체된 미얀마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섰다(세계은행 추산).
민족민주동맹 정부 지지율이 하락했다. 정부가 비판자들을 비민주적으로 탄압한다는 폭로도 심심찮게 나왔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에서 민족민주동맹은 선거가 치러진 상·하원 476석 중 396석을 가져가며 다시 한 번 다수당이 됐다. 반세기 가까이 대중을 잔혹하게 억압한 군부에 대한 반감이 워낙 심했기 때문인 듯하다. 군부가 지원하는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선거에서 33석밖에 얻지 못했다.
사회 불안 속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군부 의석은 줄고 민족민주동맹이 재집권하자, 군부는 통제력을 키우기 위해 반동적 쿠데타에 나선 듯하다.
군부는 최소 1년간 국가비상사태를 유지하고 빨라야 2022년에 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한다.
군부는 민주주의를 가혹하게 공격할 것이고, 로힝야족 탄압도 더한층 기승을 부릴 것이다.
주판알 튕기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한국 정부
미얀마 군부 쿠데타 직후 바이든 정부는 두 차례나 성명을 내 구금자 즉각 석방과 총선 결과 존중을 촉구했다. 2월 2일 문재인 외교부도 미국과 거의 같은 표현을 사용해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 제국주의가 민주주의를 운운할 때는 오로지 그것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도움이 될 때뿐이다.
1962년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벌어져 군부 독재가 들어섰을 때, 미국은 이를 승인했다. 미국은 미얀마 군부가 “버마식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중국과 가까워지려 하자 그제서야 군부를 비난했다.
미국은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한 독재 정부가 자국 내에서 가혹한 학살과 탄압을 저질러도 감싸고 돌았던 오랜 역사가 있다.
2010년대 들어 미국은 미얀마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했는데, 이는 인도양을 면한 미얀마와 관계를 다져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서였다.(이는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전략과 연관 있다. 관련 글 ‘오늘의 제국주의와 동아시아의 불안정’)
이 전략은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다. 트럼프 4년을 거치며 미·중 갈등이 첨예해진 지금은 더욱 그렇다. 바이든이 민주주의 수호 운운하는 배경이다.
이를 감안하고 보면, 민주주의는 수사일 뿐이고 바이든 정부의 우선적 고려 사항은 미얀마가 중국 쪽으로 완전히 돌아서지 않게 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전략·정보 웹사이트 〈스트랫포〉는 이렇게 지적했다. “미국은 미얀마와의 연계 유지를 우선시해 쿠데타에 실용주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2014년 타이 군부 쿠데타 때도 미국은 … 타이에 대한 지원을 거의 위태롭게 하지 않는 선에서 비교적 최소한으로만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
중국
중국 역시 지정학적 이유에서 미얀마를 중시한다. 중국한테 미얀마는 인도양 진출의 핵심 교두보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중국은 반세기 넘게 미얀마 군부를 후원하고, 민족민주동맹 정부와도 대규모 송유관·교량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은 이번 쿠데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사태가 중국에만 이롭게 흘러가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신을 압박하는 미국과 그 동맹들을 의식해야 한다.
그럼에도 군부의 집권이 중국에 득이 되리라는 관측이 있다. “중국의 최우선 고려 사항은 [인도양 진출을 위한] 인프라 사업 유지, 경제적 이득, 국경 안전 보장이다. 모두 미얀마 군부가 보장할 수 있는 것들이다.”(〈스트랫포〉)
중국이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을 “안보상 불가피한 일”이라며 사실상 두둔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로 여겨진다.(홍콩, 티벳, 신장·위구르 등지에서 봤듯이 중국 자신이 민주적 권리나 민족자결권을 혹독하게 억압하기도 한다.)
벵골만을 사이에 두고 미얀마와 마주한 인도도 이번 쿠데타를 주시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과의 국경 분쟁이 격해지고 있는 것뿐 아니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
한편, 문재인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미얀마 국민들의 열망을 존중”한다고 했다.
하지만 미얀마가 문재인과 한국 지배자들에 중요한 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동남아 진출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신남방정책의 대상 중 하나다. 그 일환에서 문재인은 2019년에 미얀마를 방문해 아웅산 수치와 만난 자리에서 로힝야족 학살을 “국가 통합을 위한 노력”이라고 두둔해 줬고, 경제협력기금 10억 달러를 약속했다.
이미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한국 기업들이 미얀마에 진출했고, 군사 독재 정부에 포탄 제조 설비와 전략 물자 등을 수출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맞불〉 59호 ‘버마 민주화보다 이윤이 우선인 한국 정부’).
타이 사회주의자 자일스 자이 웅파콘이 “‘국제 사회’의 쿠데타 규탄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것은 그래서 타당하다.
저항이 시작되는가?
군부 쿠데타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미얀마 대중이다. 미얀마인들은 1988년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군부에 맞서 왔다.(관련 기사 〈맞불〉 59호 ‘버마 민중 투쟁의 역사’)
이번에도 쿠데타 첫날부터 저항이 벌어졌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미얀마인들이 쿠데타를 규탄하고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며 항의 행동을 벌였고, 주요 도시 의사들이 “정통성 없는 군사 정권 거부한다”며 3일부터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로이터〉).
또, 2월 2일에는 미얀마와 이웃한 타이에서 민주주의 투쟁을 벌이는 청년·노동자들이 타이 수도 방콕에서 미얀마 군부 규탄 시위를 벌였다. 타이 경찰은 이 시위를 폭력 진압했다. 자일스 자이 웅파콘은 “타이 독재와 미얀마 독재는 한통속”이라고 규탄했다.
웅파콘은 이렇게 지적했다. “버마 민주주의의 진정한 희망은 아웅산 수치나 서방에 있지 않다.
“아웅산 수치는 반쪽짜리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최소 5년, 아니 그보다 오래 군부와 협력해 왔다. 뿐만 아니라, 군부에 맞선 ‘8888’ 항쟁* 때도 수치는 학생과 노동자들의 운동을 흩어뜨렸다. 수치는 인종차별주의자이고, 무슬림을 혐오하는 버마 민족주의자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의 지도자라고 믿을 수 없다.
“희망은 타이와 홍콩에서 영감을 받은 버마의 새 세대 청년들의 저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