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로힝야족 “인종청소”:
군부의 인종차별, 아웅산 수치의 외면, 미·중 제국주의의 위선이 낳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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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 격화된 미얀마 정부의 야만적 군사작전을 피해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된 로힝야족이 50만 명이 넘었다. 로힝야족은 이슬람교도
미얀마 군은 로힝야족을 살해하고 거주지를 불태우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미얀마 정부는 부인한다. 오히려 로힝야족 무장 저항단체
9월 25일 유엔 총회에서 미얀마 대표는
그러나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탄압은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1962년 쿠데타로 군부가 집권한 이후 로힝야족은 계속해서 박해에 시달렸다. 군부는 때로는 직접, 때로는 불교도 민병대를 부추겨 로힝야족을 살해하고 인접국 방글라데시로 내쫓았다. 1982년에는 법 개정으로 사실상 시민권을 빼앗았다. 2013년 6월에도 로힝야족 600여 명이 살해되고 8만 명이 난민이 된 일이 있었다. 로힝야족은 정치적 권리마저 제약당한다.
미얀마 군부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민주동맹
국제적 비판 속에서도 침묵하던 아웅산 수치는 이번 사태가 터진 지 3주가 지난 9월 19일에야 이렇게 연설했다.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그래서 로힝야족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비판하며 노벨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당한 목소리다.
제국주의
불교도가 다수인 미얀마에서 무슬림인 로힝야족이 박해당하는 문제의 뿌리는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찾을 수 있다. 미얀마의 인접국인 타이 출신의 사회주의자 자이 자일스 웅파콘은 그전까지 미얀마 지역은
그런 점에서 〈경향신문〉이 국내 거주 미얀마인을 인터뷰한 장문의 기사 제목을
미얀마
영국 식민 당국의 이런 이간질 정책은 버마 독립 운동의 지형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30년 버마 민족주의 운동
오늘날 미얀마 지배계급은 인종차별을 이용해 민주주의 제약과 빈부격차 문제를 가리려 한다.
미·중 갈등 속에 버림받은 로힝야족
로힝야족의 비극은 현재의 제국주의 간 갈등과도 관계 있다.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탄압에 비판적인 국내 자유주의 언론들이 포착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바로 미국과 중국이 각자의 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로힝야족의 비극에 시큰둥하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연일
이런 태도는 오바마 정부 때부터 시작된 미얀마 유화 정책과 관련 있다. 중국 견제를 위해
중국에게도 미얀마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라다. 중국이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얀마가 서방 국가들의 경제 제재를 받던 지난 20년 동안 경제적
요컨대 로힝야족의 비극은 제국주의 간 갈등 속에서 양측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민족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