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유혈 진압에도 계속되는 쿠데타 규탄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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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청년
미얀마 각지의 병원 약 70곳에서 의료 노동자들이 조업을 중단하고, 일부는 전면 파업을 촉구하며 대열을 지어 시위에 참가했다. 양곤에서 시위에 참가한 국영 병원 간호사 아예 미산은 외신에 이렇게 말했다.
미얀마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는 철도 노동자들이 조업을 중단하고 시위에 참가했고, 교사, 광원, 제조업 노동자들도 쿠데타 규탄 행동을 벌였다.
지난 수십 년간 군부에 탄압받던 로힝야족 등 소수민족들도 시위에 나섰다.
군부는 강경 탄압으로 대응했다. 시위 진압 부대가 연일 곤봉을 휘두르고 새총과 고무탄을 쐈다. 군부는 장갑차와 탱크를 동원해 시위대를 위협했다. 야음에 인터넷이 차단되고 경찰이 시위 조직자들을 급습하는 일이 속출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탄압 때문에 2월 16일 현재 최소 9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이 다쳤다.
군부는 시위대 폭력을 빌미로 민주적 권리를 전면 공격하고 있다. 16일에 군부 대변인은 시위대 폭력으로 경찰 1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군부는 그나마의 민주적 권리조차 파괴하고 사회 통제력을 강화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군부 쿠데타에 맞선 미얀마인들의 운동은, 볼리비아에서 반동적 쿠데타에 맞서 벌어진 대중 저항, 타이에서 군부와 왕가에 맞서 벌어진 반독재 투쟁과 공통점이 있다.

미얀마인들이 그런 투쟁들에서 영감과 교훈을 얻어 대중 항쟁을 계속하기를 바란다. 타이 사회주의자 자일스 자이 웅파콘의 지적처럼,
미얀마 투쟁은 이웃한 타이의 반독재 투쟁에서 힘을 얻고, 또 타이에도 힘을 주고 있다. 2월 14일에 타이 수도 방콕에서, 타이의 반독재 운동가들과 타이 거주 미얀마인들이 양국 군부를 같이 규탄하는 수천 명 규모의 집회를 벌였다.
웅파콘은 이렇게 지적한다.
역사 속에서 봐도, 미얀마 군부를 떨게 할 힘은 미얀마 노동자들의 강력한 대중 행동에 있었다.
1988년 군부 독재에 맞섰던
하지만 당시에 아웅산 수치는 자유 선거 보장을 약속한 군부를 믿자며 대중 행동을 자제시켰다. 일단 파업과 시위가 잦아들자 군부는 선거 결과를 무효화시켰고 아웅산 수치는 연금됐다.
이번 쿠데타 직후에도 민족민주동맹
국제사회가 아니라 대중 저항이 희망이다
민족민주동맹
미국과 유럽의 몇몇 정부가 미얀마 군 장성 일부에게 제재를 가했지만, 그 지배자들의 진정한 관심사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아니라 미얀마를 둘러싼 지정학적
웅파콘의 지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