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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선택 —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연대의 이야기》, 데지레 프라피에, 알랭 프라피에, 위즈덤하우스, 124쪽, 14000원:
시원하고 유용한 주장

낙태죄가 올해부터 법적 효력을 잃었지만, 낙태는 여전히 법적 권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낙태권 쟁취를 위해 계속 투쟁해야 하는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는 책이 나왔다.

《선택 —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연대의 이야기》(위즈덤하우스 출판사. 이하 《선택》)은 프랑스인 저자들이 1970년대 프랑스 낙태권 투쟁을 배경으로 낙태 문제와 저자의 삶을 엮어서 서술한 그래픽 노블(만화 소설)이다. 인상적인 그림과 독특한 서술 방식이 어우러져 한 편의 단편 영화를 보는 듯하다. 쉽고 생생한 이야기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선택 —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연대의 이야기 데지레 프라피에, 알랭 프라피에 지음, 위즈덤하우스, 124쪽, 14000원

이 책은 1970년대 프랑스를 달군 낙태권 운동과 역사적 사건들의 특징을 잘 짚어내 감각적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저자와 지인이 참가했던 ‘낙태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 (MLAC)’의 용기 있는 활동과 열정을 그린 것도 흥미롭다. 1973년에 결성된 MLAC는 페미니스트, 노동조합 활동가, 급진 좌파들이 포함된 공동 활동 단체였다. 기층에서 토론회, 시위 등 운동을 조직했고, 여성에게 낙태 시술을 지원하기도 했다. 노동자 파업 연대 활동과 군사기지 확장 반대 운동에도 적극 참가했다.

저자를 포함해 낙태 불법화로 인해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고통을 묘사한 장면들은 분노가 치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의 자궁은 나만의 것이고 어떻게 하든 나의 자유입니다”라는 팻말 문구가 가슴 깊이 박히는 이유다.

이 책의 장점 하나는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처럼 평범한 남성들을 싸잡아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애는 둘이서 만들었는데, 나는 살았고 아내는 죽었다”며 불법 낙태로 아내를 잃은 남편이 “죄책감”을 토로하는 장면은 가슴이 먹먹하다.

한 여성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남자가 자기 여자가 날림으로 애를 떼든 말든 개의치 않는 마초 쓰레기는 아니에요! 1970년대 낙태 합법화 시위 때도 여성들과 함께 싸워준 남성들이 있었어요.”

이 책은 낙태 문제에 계급 불평등이 아로새겨져 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1972년의 ‘보비니 재판’ 사건이 그렇다. ‘보비니 재판’은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한 16세 소녀가 불법 낙태로 기소됐다가 운동의 압력으로 무죄 판결을 받아내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 소녀의 어머니도 기소당해 재판을 받았다. 소녀의 어머니는 이혼한 후 혼자 딸 셋을 키우는 여성 노동자였다. 불법이어도 낙태 시술이 가능했지만 비용이 엄청났다. 전문 시술자에게는 어머니 월급의 세 배를 내야 해서, 직장 동료들의 도움으로 다른 시술자를 소개받아 한 달치 월급에 육박하는 비용을 치르고 딸이 낙태 시술을 받게 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불법 낙태 현실을 고발하며 법정에서 이렇게 외쳤다. “나는 죄가 없습니다. 당신네들 법이 유죄입니다.”

재판은 비공개였지만 법정 밖에서 열린 낙태권 옹호 시위대의 당당한 외침은 법정 안까지 울렸다.

“부잣집 여자들이 손쉽게 낙태 시술을 받는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늘 가난한 여자들만 피를 본다”는 여성 활동가의 주장은 날카롭다.

“악착 같은 투쟁” 덕분에 드디어 1974년 11월 29일, 프랑스에서 낙태 부분 허용 법안이 통과됐다. 저자는 활동가들의 말을 빌어 이 법안이 투쟁의 성과이고 일보 전진인 것은 맞지만, 한계가 명백하다고 지적한다. 임신 10주 이내 낙태만 허용하고 사전 면담을 의무화하는 등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나중에 프랑스 정부는 낙태 허용 기간을 임신 12주 이내로 찔끔 늘렸고 오늘날까지 이 제약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낙태 허용 기간을 놓친 많은 프랑스 여성들이 종종 다른 나라로 원정 낙태를 간다.

이런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향후 낙태 관련 대체 입법이 이뤄지면 주류 정당들은 낙태를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선택》에서 강조하듯, 낙태는 “여성의 기본권”이므로 “낙태 완전 자유와 무상지원”이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낙태권 운동이 전진하려면,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 1970년대 프랑스 낙태권 운동이 ‘68반란’과 대규모 노동계급 투쟁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낙태권 운동은 노동계급에 기반을 둔 대중운동을 지향해야 한다.

《선택》이 프랑스 낙태권 운동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책 곳곳에 녹아 있는 낙태권 지지 활동가들의 명쾌한 주장은 청량감이 있고, 대체로 유용하다.

낙태가 여성의 법적 권리로 인정되기를 염원하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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