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에 ‘먹는 임신중지약 도입’:
정부 허가만 있으면 바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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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에 먹는 임신중지약 도입 등 임신중지권 관련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 중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세부과제로 ‘먹는 임신중지약 도입’과 ‘임신중지 법·제도 마련’이 명시됐다.
국정과제의 세부계획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관련 내용이 반영됐을 듯하다. 지난 7월, 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이수진 의원은 임신중지권과 먹는 임신중지약 도입이 포함된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먹는 임신중지약 도입은 임신중지권 보장에서 중요한 요구 중 하나로 수년째 여성들이 요구해 온 것이다. 진작 도입됐어야 마땅하다.
‘미프진’이라고 불리는 약인 미페프리스톤은 미소프로스톨과 함께 복용하면 수술 없이도 안전한 임신중지가 가능하다. 이 약들은 임신 유지에 필요한 호르몬 작용을 차단하고 자궁 수축을 유도해 임신 조직을 배출하게 만든다.
먹는 임신중지약의 안전성과 효과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입증됐다. 현재 이 약은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대만, 일본 등 100여 개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찍이 2005년에 세계보건기구(WHO)가 먹는 임신중지약을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했고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임신중지 방법이라 공인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2000~2022년 동안 590만 건 이상의 사례를 조사해, 임신중지약의 부작용은 0.01퍼센트도 안 된다고 결론 내렸다. 그조차 대부분 약물과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 했다. FDA는 심지어 ‘먹는 임신중지약이 출산보다 안전하다’고 말했다!
임신 초기에 이 약을 복용하면 임신중지 성공률이 95~98퍼센트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복용 방법만 준수하면 자가 임신중지도 가능하다. 임신중지 대부분이 초기에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먹는 임신중지약 도입은 여성들의 신체적·경제적·사회적 부담을 크게 덜어줄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여전히 먹는 임신중지약이 불법이다. ‘낙태죄’ 효력 정지로 인해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되고, 제약회사 현대약품이 이 약물의 품목허가를 2021년부터 세 차례나 신청했음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이를 허가하지 않고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아직도 음성적인 방법으로 임신중지약이 유통되고 있다. 가격도 30만~60만 원대로 천차만별이다. 여성들은 올바른 복용 방법을 안내받지 못하고, 누군가 정체불명의 약을 속여 팔아도 속수무책이다.
식약처는 ‘법률 개정이 먼저’라며 임신중지약 도입을 막아 왔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난 7월 29일에도 식약처는 입장 변화 없이 기자단의 질의에 같은 대답을 내놨다. 대선 시기에 이재명 후보가 임신중지권에 관한 입장을 밝히기를 회피한 것과 맥을 같이 했을 테다.
그러나 먹는 임신중지약 도입은 법 개정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식약처가 의약품을 허가할 때 법 제·개정은 필수적 요소가 아니다. 식약처는 일부 항암제, 알레르기 및 간염 치료제, 위고비, 비아그라 등 해외에서 안정성이 입증된 약품을 신속히 도입해 왔다. 그런데 이미 세계적으로 안정성과 효과성을 입증받은 먹는 임신중지약에 대해서만 그러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일각에서 먹는 임신중지약을 도입하려면 한국인 대상 임상시험을 먼저 시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2~3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시급하다고 판단하면 이 과정 역시 필수가 아니다. 게다가 이 약은 이미 중국,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인’들 사이에서도 안전하게 널리 사용되고 있다.
여성의 건강에 진정 해악적인 것은 임신중지약이 아니라 임신중지약을 금지하는 것이다. 임신중지약 도입을 늦추는 것은 절박한 여성들을 더 고통에 내몰 뿐이다.
임신중지약 도입은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을 위한 필수적인 조처다.
이재명 정부는 먹는 임신중지약을 당장 도입해야 한다. 이것은 정부 의지의 문제다. 대통령이 식약처에 신속 도입을 지시하고 추진하면 된다.
건강보험 적용 등 쉽고 싸게 구할 수 있어야
먹는 임신중지약을 도입할 때 의료 접근성 보장이 중요하다.
2023년에 현대약품이 ‘미프미소정’(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세트 상품명)에 대한 품목허가를 신청할 때 비급여 가격을 약 35만 원으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미페프리스톤 1정의 원가는 약 2,000~5,000원, 미소프로스톨 1정의 원가는 약 150원(4정 필요)에 불과하다고 알려졌다. 제약회사의 목적은 임신중지약 도입으로 수익을 남기는 것이다.
부유층 여성들이야 약값이 비싸든 말든 상관없겠지만, 가난한 서민층 여성들에게 비싼 약값은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런 장벽은 임신중지 시기만 늦출 뿐이다.
정부가 나서서 약값을 통제해야 한다. 임신중지약은 여성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의약품이니만큼, 건강보험을 적용해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
한편, 일부 의사들은 임신중지약을 도입하더라도 전문의에게 진료와 처방 조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임신 주수 확인, 정확한 복용법, 사후 관리 등을 위해 전문의의 진료와 상담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법으로 의무화하는 것은 문턱을 높이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WHO는 약 사용법이 간단하므로 의사뿐 아니라 사용법을 숙지한 간호사, 약사, 클리닉 상담사 등을 통한 처방이 가능하다고 말하며 이를 권장한다.
실제로 캐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튀니지 등에서는 간호사가 먹는 임신중지약을 처방할 수 있다. 영국은 팬데믹 시기에 임시로 도입한 ‘원격 진료 후 먹는 임신중지약 우편 배송’ 조치를 2022년 3월 이후 전면 제도화했다.
한국에서 산부인과 병원이 점점 줄고 있고, 일부 지방에서는 전문의가 있는 병원에 가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WHO의 권고대로 먹는 임신중지약 처방 방법의 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