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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이준석이 우파 혁신?:
정권 획득을 위해 반복돼 온 우파의 변신

“85년생 이준석”이 노회한 중진 정치인들을 제치고 국민의힘 대표가 되자 기성 언론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준석 현상’에 대해 말한다.

젊은 나이와 능력주의, 안티 페미니즘 같은 이준석 개인의 성향에 주목하는 언론도 있고, 이준석이 우파 진영을 변화시키기를 기대하는 언론도 있고, 트럼프처럼 우익 포퓰리스트라는 평도 있다. 어쨌거나, 이준석 당선으로 국민의힘이 달라지고 있다는 주장이 흔하다.

그러나 여론조사 지표들을 보면, ‘이준석 현상’ 때문에 딱히 20~30대 청년층의 지지가 국민의힘으로 쏠린다는 근거는 없는 듯하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10퍼센트나 앞섰는데도 30대에서는 민주당 지지가 더 많았다. 한국갤럽 최근 조사에서는 20대와 30대 모두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지지가 살짝 높았고, 무당층이 민주당 지지보다 많았다.

이미 4월 재보선에서 20대가 국민의힘에 더 많이 투표했다는 출구조사 결과를 떠올려 보면, 최근 여론조사들에서 박근혜 퇴진 이래 딱히 ‘이준석 현상’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이준석 돌풍은 윤석열 부상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 당명을 세 번이나 바꿨는데도 우파 야당은 올해 4월 재보선 전까지 분열된 지지층을 통합시키지 못했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직을 사퇴하고 반(反)문재인 우파 후보로 대선에 나갈 확률이 높아지자 그때서야 지지층이 재결집했다. 조국 사태 이후로 정부·여당의 개혁 배신, 부동산 정책 실패, 위선, 부패 등으로 대중의 환멸이 극에 달했을 때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극우적으로 보이지 않게끔 당의 이미지를 관리한 덕에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당 내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정권 교체의 희망이 보였기 때문에 국민의힘에 지지층의 변화 압력이 강제된 것이다. 이준석의 경쟁자였던 나경원은 연전연패의 리더 이미지가 강했다.

이준석이 새로운 세력이나 정치 노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이준석의 트레이드마크라는 능력주의도 엘리트주의와 개인주의를 고취시키는 것일 뿐이다. 이준석은 박근혜 탄핵에 앞장서고 새누리당을 탈당하며 우파 혁신을 말했던 자의 하나였는데, 그들은 결국 국민의힘으로 되돌아왔다.

우경화하는 공식 정치

오히려 주목할 것은 우파 정당인 국민의힘이 힘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은 2017~2019년 정치적 빈사 상태에서 태극기 우익의 동원력에 힘입어, 사기가 떨어진 집토끼를 챙기며 회복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준석과 유승민 등 박근혜 탄핵·탈당파들은 굴욕을 감수하고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으로 되돌아갔다.

지금 우파의 변신은 강성 우파의 재결집이 바탕이 된 것이다. 이준석의 국민의힘과 태극기 우익 사이에 갈등이 있겠지만, 우파 진영의 주도권은 지금 국민의힘에 있다. 한국 우익은 전통적으로 기존 국가에 의한 권위주의를 지지해 왔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강성 우파 정권이 처참하게 실패하는 바람에 지금 한국 지배계급은 중도적 정치 안정을 이뤄 경제 회복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트럼프의 집권과 패배 등 미국의 정치 불안정도 교훈 삼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우파 정당이 중도연하고, 윤석열처럼 자신들을 궁지에 몰았던 검사 출신자를 대통령 후보로 영입하려 한다. 민주당 양정철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에 ‘능숙한 아마추어’가 많다고 했는데, 국민의힘과의 비교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러나 장차 경제·안보 위기가 더욱 심화돼 정치 양극화가 더 두드러지거나, 우파가 정치적 우위를 되찾으면 우파 속성은 다시 발현될 것이다.

문재인은 박근혜 퇴진 운동의 여파를 이럭저럭 관리한 덕에 한동안 정치 안정을 이루고 지배계급의 지지를 받았다. 지금 문재인과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지배계급의 지지가 국민의힘과 윤석열에게 돌아갈 조짐이 있자, 우파와 기업인들에 대한 아부를 늘리고 있다. 우파가 중도연하지만, 실제 공식 정치는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다.

6월 14일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한 이준석 이준석 ‘돌풍’은 그 개인의 개성 덕분이 아니다. 정권 교체 가능성을 보여 준 윤석열 부상의 부산물이다 ⓒ출처 국민의힘

우파의 바뀌지 않은 본질

우파는 자본과 자본주의 국가의 억압적인 야만적 본성을 좀 더 일관되게 대변하려는 정치 세력이다.

국민의힘은 현재의 남한 국가의 기원인 5·16 군사반란을 시작점으로 잡아도 60년 중 46년(77퍼센트 기간)을 집권한 확실히 자리잡은 지배계급 정당이다.(민주당은 새로운 경쟁자인 또 다른 지배계급 정당이다.)

1987년 6~8월 대중 투쟁이 강요한 ‘(부르주아적) 민주화’ 이후만 보더라도 대선 7번 중 4번을 승리했고, 그때마다 다수당 정부였다. 총선 9번 중 6번 제1당을 차지했다. 1997년 최초의 정권 교체 전까지는 한국 공식 정치를 지배했고, 그 뒤로도 핵심 지배계급 정당이었던 것이다. 주류 정치인 모두 거짓말을 잘하지만, 오랜 집권당답게 변신에도 능하고 통치 기술과 노하우가 발달해 있다. 거짓말과 변신이 잘 통하게끔 뒷받침해 줄 언론·지식인 등의 기반도 충분하다. 이준석으로 표상되는 변화 정도는 새로운 게 아니다.

규모와 급진성 때문에 1987년 6월항쟁을 제압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그들은 재빨리 대통령 직선제를 양보하며 항쟁이 더한층 급진화하는 것을 막았다. 이후 야권 분열 덕을 보며 정권을 연장했다. 노태우 정부는 반독재 야당 출신 김영삼의 당과 합당해 국가의 기반을 재강화하고 면모를 혁신했다. 마지못해서였겠지만 5·18 광주 항쟁을 민주화 운동으로 공식 인정했다.

김영삼은 몇몇 온건한 운동권 출신자들을 영입했다. 당시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마지막 대선을 준비하던 김대중은 추미애 같은 인사의 영입을 통한 온건 이미지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준석의 탄핵 인정 발언을 계기로 박근혜와의 단절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이 또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노태우는 친구인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 보냈고, 김영삼은 전임자인 노태우와 전두환을 구속시켰다.

이명박은 “중도 실용”과 경제 살리기를 내세워 당내 경선에서 당 주류인 박근혜를 제치고 대통령이 됐다. 그다음 대선에서 박근혜도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 같은 흰소리를 하며 집권했다. 대선 기간에 아버지 박정희의 독재와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을 사과하기도 했다. 박근혜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던 2002년에는 방북해 김정일과 회담을 한 적도 있다.

박근혜는 우파를 결집하며 집권했지만 2016년 그의 탄핵에는 당시 집권당 의원 거의 절반이 참여했다.

민주당이 최근 전국 선거를 네 차례나 연속으로 이겼지만 그것은 민주당이 지배계급 정당 중 하나임을 다시금 보여 줬을 뿐, 국민의힘의 기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반공주의의 시효가 다했다?

국민의힘이 이런저런 변신을 해 왔지만 대기업들과 국가 관료를 기반으로 삼는 계급적 본질은 바뀐 적이 없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자본가 계급의 독재라는 본질을 바꾸지 않듯이 말이다.

한국 우파는 분단-냉전과 대한민국 건국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친미·반공을 기조로 미국식 자유시장 질서 편입을 추구하면서 정치 이데올로기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표방했다. 오늘날 한국 국가의 표준적 이데올로기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다.

한국 우파의 반공주의는 한국 우파의 고유한 특징이라거나 단지 낡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국정원, 경찰 보안수사대, 검찰 공안부, 안보지원사(옛 이름은 보안사, 기무사), 국가보안법, 형법의 내란죄 등 노골적인 억압 기구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 자유주의자들이 집권해도 국가 운영이 별반 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태극기 우익은 박근혜 퇴진 운동 때 촛불운동 진압을 위한 군부 쿠데타를 청탁했는데, 실제로 그 전에 이미 기무사 중심의 친위 쿠데타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사후에 드러났다. 2012년 대선 개입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인터넷 여론처럼 보였지만 실은 국가기관이 동원돼 벌인 색깔론 여론전(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벌인 심리전)이었다. 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국가보안법 사건도 박근혜 정부와 헌법재판소의 합작으로 진보당 정당 해산으로 이어졌다.

이런 노골적 억압 기구들은 적용이 뜸해진 듯해도 훼손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준석 당선을 두고 “이제 이 나라에서 반공주의의 시효가 다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오해나 착각이다. 경제 침체와 안보 위기 등으로 저항 세력을 단속할 필요가 도리어 커지는 마당에 말이다. (한 달 전 문재인 정부가 범민련 간부 두 명을 기소한 사실을 알아야 하고, 1년 전 〈경향신문〉 편집인이 ‘국가보안법은 살아 있다’는 칼럼을 써야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김영삼은 집권 첫해 민주개혁이라며 안전기획부(현 국정원) 수사권을 없앴지만, 경제 위기 직전에 국회 날치기로 안기부 수사권을 되살렸다. 지금 문재인은 그 수사권을 경찰에게 주는 것을 국정원 개혁이라고 하고 있다. 처음부터 경찰과 국정원의 안보 수사는 연결돼 있었는데 말이다.

이미지 정치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이준석의 개성이 가미되긴 하겠지만, 그의 정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한국 사회 구조와 제도, 그리고 그를 둘러싼 지배계급 인물들과 그 네트워크에 의해 제약될 수밖에 없다. 정치와 사회가 ‘지도자’들과 통치자들, 그들의 ‘사상’에 의해 이끌려 나아간다는 생각은 이준석의 엘리트주의를 사실상 공유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관념론의 발로일 뿐이다.

최근 고려대불평등과민주주의연구센터와 한국리서치가 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준석의 국민의힘 당대표 당선이 20대가 아니라 60대가 밀어준 결과이며 안티 페미니즘 덕도 아님을 보여 준다.
이는 이준석 당선이 안티 페미니즘적 20대 남성이 결속한 결과가 아니라 윤석열을 통해 정권 교체 가능성이 생기자 이제 이미지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 우파 지지층의 결집 효과라는 본지 기사의 분석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한다.(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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