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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국정원법 개정: 개혁 아니다

민주당이 12월 9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정원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민의힘이 퇴장하거나 불참한 상태에서 상임위(정보위) 통과를 강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국정원이 댓글 공작 등 선거에 개입하고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특히 저항 세력)을 사찰하고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등을 자행했기 때문에 국내 정치 관여를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 주요 약속이었다. 그 결과로 이번 개정안이 나온 것이다.

국내 정치 관여 금지?

이번 개정안에서 국정원의 직무를 규정한 제4조를 보면, “국내 보안 정보(대공, 대정부전복)”라는 표현이 삭제되면서 “수사”가 “정보 수집·작성·배포”로 바뀌었다. 또 기존에 있던 사법경찰권(대공수사권)이 삭제됐다.

정부·여당은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전되면서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도 금지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 보면 사실이 아니다.

국가 관리들은 국내 저항 세력을 “안보 위협” 세력으로 본다 ⓒ사진공동취재단

개정안에서 국정원 직무 범위에는 “형법 중 내란의 죄, 군형법 중 반란의 죄,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제4조)에 대한 정보 수집 업무가 그대로 남았다. 이게 국내 정보가 아니면 무엇인가? 국정원-경찰-국군 안보지원사령부(옛 기무사)의 삼각 공조가 국내 대공수사 시스템이었으므로 대공수사권 이전 자체가 대공수사를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국가·공공기관 대상 사이버공격에 대한 예방 및 대응,” “팬데믹과 같은 신안보분야의 정보 수집” 등 국정원의 임무는 추가됐다.

특히 “대테러 업무”가 유지됐다. 이는 테러방지법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조항이다.

테러방지법은 “국가·지방자치단체의 권한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목적 또는 공중을 협박할 목적으로 하는 행위”를 테러로 규정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인 모호한 규정이다.

특히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장에게 강력한 정보 수집 권한을 부여한다. 여기에는 테러위험인물의 전화·SNS 등 통신 이용, 금융 거래, 개인정보보호법 상 민감정보 —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 그 밖에 정보주체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 — 가 포함된다. 이외에도 테러방지법 시행령은 국정원장에게 테러 대응에서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

이런 조처들은 “예방”이 중요하다는 명분 하에 실제 테러 행위가 없어도 취해질 수 있다. 국정원이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기만 하면 말이다. 게다가 테러방지법은 대테러 업무에 관한 한 다른 법보다 우선 적용된다.

요컨대 민주당의 국정원법 개정안은 국정원의 국내 정치 관여를 금지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수사권은 없어졌지만 위에서 살펴봤듯이 얼마든지 수사에 준하는 정보 수집과 사찰이 가능하다. 관계기관을 동원하는 국가 전반의 보안 업무 기획·조정도 가능하다. 국정원 직원의 무기 소지도 여전히 가능하다.

국민의힘은 이런 형식적인 수준의 약화일 뿐인데도 “대공수사를 스스로 포기하는 자해 행위”라며 엄살을 떨며 개정안을 반대해 왔다. 민주당이 국가 안보에 무능하다는 식으로 흠집 내려는 것이다.

공안검사 출신인 국민의힘 의원 정점식은 대공수사권을 이전하려면 예산과 인력도 경찰로 보내야 한다며 정부안을 비판한다. 그러나 국내 안전기획부(국정원의 옛 이름)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했다가 4년 만에 되살린 김영삼 정부의 사례를 보거나, 앞으로 순차적으로 국정원 대공수사 인력이 퇴직해 경찰의 안보수사본부로 이전할 가능성 등을 생각하면, 우파의 반대는 매우 위선적이다.

또 정보위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하태경이 이번 개정안을 반대하는 근거로, 문재인 정부 하에서 경찰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에서 보듯이 우파는 경찰이 보궐 선거나 대선에서 정부·여당에게 유리한 도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걱정한다.

국정원 개혁, 가능한가

과연 국정원을 대외 안보 정보만 수집하는 순수 정보 기관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까?

정의당은 국정원 임무를 대외 안보 정부 수집 수준에 한정하는 내용의 개혁법안을 여러 차례 발의한 바 있다. 정연욱 정의당 정책위의장은 여당의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해 ‘아쉽지만 환영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 안보 논리를 수용하고 국가 기관이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인정하면, 그 기관들이 국내 정보만 콕 집어 모으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강력한 권력 기관들이 통제하는 국가 기밀에 접근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친자본주의 정당들이 지배적인 의회가 국정원을 제대로 견제하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지배자들의 관점에서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대상은 국경 바깥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는 국내 저항 세력들도 국가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이다.

앞서 언급한 테러방지법이 한 사례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1월 14일 파리 참사(극단적 이슬람주의 무장 조직인 ISIS이 프랑스 파리에서 벌인 테러)를 명분으로 테러방지법을 밀어붙였다. 당시 국정원은 이 법을 통과시키려고 이주노동자를 근거도 없이 테러리스트로 몰았다.

테러위험인물로 지목된 대상이 외국인에서 한국인으로 옮겨간 것은 금방이었다. 일주일 뒤 박근혜 정부는 민중총궐기 집회(이날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목숨을 잃었다)를 “공권력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고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했다. 얼마 뒤 한상균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했다.

민주당의 반동적 과거

과거 민주당 정부들도 국가 보안에 관한 악법들(국가보안법, 테러방지법)과 검·경·정보기관이 갖는 억압적인 사찰 권한에 대해 늘 반동적인 입장에 서 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자신이 국가 탄압의 피해자였고, 집권 초에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임기 5년 동안 전임 정부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했다. 그 수는 1058명에 달했다. 김영삼이 날치기한 안기부법(대공수사권 부활)은 위헌 판결은 받았지만, 김대중은 재개정을 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국정원은 영장 없이 ‘긴급 감청’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국정원은 이런 합법적 권한을 가졌지만 불법도 숱하게 저질렀다. 그래서 이 시기 국정원장 두 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당시 국정원의 상시적 감찰 대상이 어찌나 많았는지 노무현도 포함될 정도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집권 초에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유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무려 152석을 얻어 대승했지만 보안법을 (폐지가 아니라) “개정”하겠다면서 진보 진영을 묶어 두고는 변죽만 울렸다. 결국 국가보안법은 단 한 글자도 고쳐지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중에 벌어진 반전 운동, 평택 미군기지 반대 운동, 한미 FTA 반대 운동,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탄압하는 데서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이라는 무기를 적극적으로 휘둘렀다.

박근혜 정부가 테러방지법 강행에 속도를 내던 2015년 말, 문재인은 민주당의 당대표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법안 표결 직전에야 나서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시간을 끌었다. 이조차 딱 일주일뿐이었다.

사실 테러방지법은 통과되기 전에도 2001년(국정원 발의)과 2003년(열린우리당 발의) 두 번이나 발의됐었는데, 두 번 모두 민주당 정부 때였다.

국정원, 국가보안법, 테러방지법은 주로 친북 사상/조직이나 혁명적 반자본주의 사상/조직을 표적 삼아 마녀사냥한다. 그렇게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전체 대중을 향해 누구든 자칫 잘못 보이면 탄압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 주고 사회 분위기를 경색시킨다.

따라서 국정원, 국가보안법, 테러방지법의 문제는 그런 기관과 악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직무 범위나 몇몇 조항만 조금 뜯어 고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하듯이 국정원의 권한을 경찰로 옮기고, 마찬가지로 억압적인 경찰을 비대화하는 일 따위가 아무런 개혁이 못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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