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선:
사민당이 부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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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던 독일 보수 정당들이 9월 26일에 열릴 총선에서 굴욕을 겪을 듯하다.
우파인 기독교민주연합(CDU, 이하 기민당)과 자매 정당 바이에른기독교사회연합(CSU, 이하 기사당)은 지난 70년 중 50년 동안 독일을 통치해 왔다. 그러나 이제 이들은 독일사회민주당(SPD, 이하 사민당)에 훨씬 뒤쳐져 있다.
우파가 곤경에 처한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들의 통치하에서 9만 3000명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했다. 영국만큼 나쁜 수치는 아니지만 독일에서도 대기업의 요구가 대중의 보건보다 우선시됐다.
퇴임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은 2005년에 처음 총리로 취임했다. 메르켈의 임기 동안 경제는 성장했지만, 다수는 가난해졌고 소수는 막대한 부를 쌓았다.
현재 독일에서는 최상위 1퍼센트가 전체 부의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의 하나다.
2015년에는 실업자 3분의 1이 빈곤선 아래에 있었다.[독일의 빈곤선은 중위 소득 60퍼센트, 즉 월 소득 1176유로(약 163만 원) 미만.] 지금은 실업자 3분의 2가 그렇다. 반면 억만장자들은 지난해에만 자신의 부를 1300억 유로[약 180조 원]나 늘렸다.
메르켈은 독일 자본주의의 듬직한 친구였다. 2015년 그리스에서 유권자들이 긴축 반대를 약속한 시리자를 정부로 선출했을 때, 메르켈은 그리스를 부채로 짓누르고 긴축을 강요하는 데에 앞장섰다.
메르켈은 잠깐 시리아 난민을 독일에 들여보내 준 것으로 여겨졌지만, 금세 태도를 바꿔서 추방을 부추겼다. 그러면서 부르카는 “독일에서 용납될 수 없”으며 “금지돼야 한다”고 했다.
우파는 녹색당과 사민당에 도시 유권자 일부를 빼앗겼다. 농촌 지역에서는 일부가 극우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하 AfD)을 지지했다. 그 배경에는 주류 정당들의 훨씬 심각한 정치적 위기가 있다.
2005년 메르켈이 총리에 취임했을 때 기민·기사 연합과 사민당은 거의 70퍼센트의 표를 나눠 가졌다. 이제 이들이 가져가는 표는 절반을 훨씬 밑돈다.
이번 총선에서는 독일 최초로 어느 정당도 4분의 1을 득표하지 못할 수 있다. 어느 당도 대중의 지지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사민당은 24퍼센트, 기민·기사 연합은 20퍼센트, 녹색당은 15퍼센트, 자유 시장 지상주의적인 자유민주당(FDP)은 11퍼센트의 지지를 받았다. AfD의 지지율은 11퍼센트, 사회주의자들의 정당 좌파당은 7퍼센트다.
선거 결과가 이대로 나온다면 적어도 세 당이 연정을 꾸려야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활동하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 기젤라 카야는 〈소셜리스트 워커〉에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부자들이나 이롭게 하고, 기후변화 대응, 제대로 된 복지,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임금이 필요하다고 하는 대중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는 정당들은 이제 신물이 납니다.
“독일은 부유한 나라라고들 하지만 많은 독일인이 가난하게 삽니다.”
선거 이후 주류 언론들은 어떤 조합으로 연정이 이루어질지에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수반에 누가 앉느냐를 제외하면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민당은 메르켈 임기 거의 내내 우파와의 연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일반 대중의 삶에 대한 메르켈의 우파적인 공세를 기꺼이 수용했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철도 파업을 보면 모든 주류 정당들은 반격하는 노동자들의 적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기민당은 노동조합을 더 옥죄는 법을 검토하고 있으며, 사민당은 파업 일정을 갑작스럽게 잡았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파업이 효과적임을 문제 삼은 것이다. 녹색당은 철도 파업 때문에 사람들이 차를 더 많이 타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날 것을 걱정했다.
누가 총리가 되든 노동자들은 더 많은 투쟁을 벌여야 한다.
친기업, 전쟁 지지 노선을 걷는 녹색당
녹색당은 총선 레이스에서 현재 3위를 달리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은 녹색당이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들의 이윤 추구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녹색당 지도자들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있다.
녹색당 총리 후보 아날레나 베어보크는 2010년대 내내 독일 기업주들을 찾아다니며 “협약”을 이끌어 내기 위한 대화에 매달렸다.
베어보크는 녹색당 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래의 시장은 기후-중립적일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올 것이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누가 이런 변화를 가장 잘 이뤄내느냐일 것입니다. 저는 독일이 선두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토록 “협약”을 추구한 결과, 다국적 거대 기업 지멘스의 전 최고경영자가 녹색당 대회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지멘스는 석탄 채굴과 다른 파괴적인 인프라 사업에 발을 깊이 담그고 있는 기업인데 말이다.
최근 녹색당은 자동차 제조업체인 포르쉐와 배터리 제조업체인 커스텀셀이 전기 레이싱 카 제작을 위한 협상에 나서는 데에 도움을 줬다.
커스텀셀 최고경영자 토르게 퇴네센은 녹색당의 노선 변화를 강경한 환경주의 정당에서 “부르주아 정당”으로의 전환으로 묘사했다.
“그렇다고 녹색당의 목표가 변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녹색당은 덜 급진적이 됐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녹색당은 아프가니스탄에 독일군을 보내는 “적극적 대외 정책” 등을 적극 지지한다.
베어보크는 독일군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이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독일인으로서 세계에 져야 할 책임이 있다.”
그 “책임”에는 대대적인 재무장도 포함되는 듯하다. 베어보크는 매년 국내총생산의 2퍼센트를 국방비에 지출하라는 나토의 가이드라인이 너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녹색 자본주의”에 그치지 않고 “녹색 대기업”을 추구하는 녹색당의 방향 전환은 독일과 독일 바깥의 기후 운동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자본주의가 환경을 파괴하는 이유는 통치자들이 그 파괴에 무지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에 있는 경쟁이라는 동학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윤 경쟁 때문에 갈수록 파괴적인 방식으로 활동한다. 그래서 지구를 구하려면 자유 시장과 시장이 지배하는 세계 체제를 거부해야 한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결론을 내렸다.
녹색당 지도자들은 한때 여기에 동의한다고 했지만, 이제 자본주의가 산산조각난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반사이익을 본 사민당
몇 달 전만 해도 사민당은 재기불능 상태로 보였다.
사민당은 여론조사에서 녹색당과 기민당에 뒤쳐져서, 사민당의 장기적인 쇠락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현재 사민당 총리 후보인 올라프 숄츠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이제 숄츠는 다른 중도나 중도 좌파 정당들과 연정을 맺고 다음 정부를 이끌 인물로 널리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숄츠는 기존 연립 정부의 재무장관이었던 자로, 아슬아슬한 정치적 줄타기를 하고 있다.
숄츠는 기민당 총리인 메르켈의 가장 적합한 후계자를 자처한다.
동시에 숄츠는 최저임금 인상, 주거비 경감, 연금 개선 등 새로운 “존중”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의 개혁안은 온건하지만, 지배자들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관료적”인 중도파 지도자 숄츠가 여기에 제대로 대응할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사민당의 지지율 반등은 경쟁자의 실패 덕이 크다. 기민당 후보 아르민 라셰트는 어찌나 인기가 없는지 지역 당 조직들이 그의 사진이 없는 포스터를 요구할 정도다.
한편 녹색당은 총리 후보 베어보크가 이력서를 조작한 것이 폭로되자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
덕분에 숄츠는 노동계급에게 별 대단한 약속을 하지 않고도 기민당과 녹색당의 지지를 빼앗아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 사민당이 녹색당과의 연정을 주도했을 때, 사민당은 복지를 삭감하고 대중의 생활 수준을 공격하는 긴축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수많은 유권자가 등을 돌렸다. 처음에는 지방선거에서 그랬고, 나중에는 총선에서도 그랬다. 그 후 사민당은 의회에서 다수당 지위를 잃었다.
기업주들의 압력을 받은 사민당이 또다시 “개혁”을 가장한 공격을 펼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만연하다.
극우의 위협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주류 논평가들은 극우 정당인 AfD의 위협을 논외로 취급한다.
지금 AfD는 여론조사에서 간신히 두 자릿수 대를 유지하고 있다. 2015년 인기가 상승하던 때와는 대조적이다.
당시 AfD는 독일 연방의회 내 최대 야당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오늘날 당 지도자들은 더 장기적인 전략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 전략은 선거에 한정돼 있지 않다.
AfD는 핵심 근거지인 작센주(州)에서 집회로 지지자들을 모으고 있다. 검은 가죽 재킷과 부츠를 맞춰 입은 나치 폭력배들은 대부분 은퇴한 중간계급으로 이루어진 집단과 쉽게 어울려 지낸다.
AfD는 언제나 이민자와 범죄,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행동”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춰 왔다. AfD에서 유출된 한 내부 문건이 이들의 전략의 한 가지 핵심 요소를 확인시켜 준다. 이 문건은 극우적 언사와 결합된 “세심하게 계획된 도발”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AfD 간부들은 기꺼이 이를 따랐고 미등록 이주민들을 “가스실로 보내야” 한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AfD는 한정된 지역 기반 바깥에서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 못하지만, 그들이 제기하는 위협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이들이 전국에서 얻는 지지율 10퍼센트도 매우 상당한 위협이다. 강경 우익, 보수 정당 투표자들과 공공연한 파시스트들이 서로 엉겨 붙으면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AfD가 독일 사회에 켜켜이 쌓이고 있는 환멸과 코로나바이러스에서 비롯한 좌절에서 득을 보지 못하는 것은 잠깐뿐일지 모른다.
인종차별과 전쟁에 반대하는 좌파
선거에서 주된 사회주의 세력은 좌파당이다.
좌파당은 동독의 옛 공산당원들, 왼쪽으로 분열해 나온 사민당원들, 서독에 있는 그 밖의 사회주의자들의 결합으로 형성됐다.
좌파당은 지극히 개혁주의적인 요소들과, 투쟁을 변화의 열쇠로 보는 훨씬 급진적인 세력들을 포괄하고 있다.
좌파당은 이미 베를린과 브레멘에서 사민당·녹색당과의 연정에 참여해, 자신이 기꺼이 후퇴할 태세가 돼 있는 정당임을 입증했다. 그들이 참여한 지방정부들은 긴축 정책을 폈다.
몇몇 좌파당 지도자들은 이제 전국 수준에서 이런 연정에 참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한다. 그러나 사민당이 나토(NATO) 반대를 주장하는 좌파당을 연정에 끌어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두건
좌파당 연방의원인 크리스티네 부흐홀츠의 선거 운동에서는 인종차별과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이 두드러졌다. 부흐홀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추방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독일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모든 사람들이 모든 수준의 선거에서 투표할 권리를 지지합니다. 그리고 두건 착용 금지에 반대합니다.”
“독일 시민권을 갖지 못해 97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투표하지 못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민당은 이런 상황이 계속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녹색당은 지방선거 투표권은 보장해 줘야 한다고 합니다.
“오직 좌파당만이 독일에 오래 머물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선거에서 투표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좌파당은 해외에서 벌이는 전쟁을 끝내고 무기 수출을 중단하라고 요구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일에도 불구하고 사민당과 녹색당은 나토를 계속 옹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