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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좌파당, 총선 패배를 상당 부분 자초하다

독일 대중의 불만과 변화 염원에도 좌파당이 패배한 이유는 무엇일까? 9월 24일 10만 명이 참가한 베를린 국제 기후 행동 ⓒ출처 Stefan Müller(플리커)

지난 9월 말에 열린 독일 총선의 최대 패배자는 집권 보수 정당인 기민·기사 연합이었다. 기민·기사 연합은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16년 만에 정권을 빼앗기게 됐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사민당이 정부를 이끌게 될 것이다.

기민·기사 연합의 패배는 독일 대중의 불만과 변화 염원을 반영한다. 이는 선거 기간에도 두드러졌다. 사회 안전망, 환경/기후 변화, 경제/일자리가 선거의 핵심 쟁점이었다. 투표 직전(9월 24일)에는 국제 기후 행동의 일부로서 베를린에서 10만 명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여론조사 기관인 인프라테스트 디마프의 조사에서는 유권자의 40퍼센트가 “근본적 변화”를 바란다고 답했다. 2017년 총선 때 여론조사와 비교해 보면 갑절로 늘어난 수치다. 당시 그렇게 답한 사람은 주로 좌파당과 녹색당 그리고 극우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지지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독일 총선의 또 다른 패배자는 바로 좌파당이었다. 좌파당은 지난 총선보다 200만 표 이상을 잃고, 득표율이 거의 반토막 났다. 정당 투표 득표율은 4.9퍼센트에 그쳐 비례 대표 의석 배분 요건인 5퍼센트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나마 지역구 투표에서 당선자 세 명을 낸 덕분에 비례 의석을 얻지 못하는 재앙은 가까스로 피했다.(독일 선거법은 지역구 당선자가 세 명 이상이면 5퍼센트 득표 요건에 미달해도 비례 대표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게 돼 있다.)

대중의 변화 염원에도 불구하고 좌파당은 어쩌다 이런 패배를 겪게 됐을까? 여기에는 분명, 보수 정당의 재집권을 막으려면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사민당과 녹색당에 투표해야 한다는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다.

장점 활용 실패

그러나 이것은 또한 좌파당 지도부의 정치적 선택에서 비롯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에서 좌파당 지도부는 좌파당을 사민당과 녹색당의 잠재적 연정 파트너로 드러내는 데 강조점을 뒀다. 그러면서 사민당과 녹색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그들을 달래려 했다.

예컨대 사민당 총리 후보 올라프 숄츠가 “독일 정부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기를 바란다면 미국과의 협력과 ⋯ 나토(NATO)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거기에 헌신해야 한다”고 요구하자, 좌파당 총리 후보 디트마어 바르치는 나토 반대라는 좌파당의 당론을 내세우기보다는 “나토 문제가 연정의 장애물이 될 이유는 없다”며 수세적인 태도를 취했다.

더 나아가, “평화 유지” 임무라면 독일군 파병을 지지할 수 있다고도 해, 모든 파병에 반대한다는 좌파당의 애초 공약에서 후퇴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 사민당과 녹색당은 에너지 전환이나 부유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등 개혁적인 공약을 내놓으며 왼쪽 깜빡이를 켰다. 그러나 좌파당은 숄츠와 그의 사민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 온 것을 비판하지 않았고, 녹색당의 불철저한 기후 위기 대응 정책과 군비 증강 지지를 비판하지도 않았다.

좌파당은 사민당·녹색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되던 자유민주당을 공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신호등 색깔 연정[녹색당-자유민주당-사민당의 연정]은 결국 유권자를 속이는 가짜 신호가 될 것이다.” 그러니 그 연정에는 좌파당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 좌파당의 지도적 인물들이 내놓은 핵심 메시지였다.

사실, 선거의 핵심 쟁점들인 기후 변화와 경제/일자리 문제 등은 좌파당이 강점을 보일 수 있는 쟁점들이었다. 예컨대, 기후 결석시위 청소년단체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모든 정당들 중에서 좌파당의 기후 공약이 가장 낫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좌파당은 연정 파트너로서 자신을 어필하는 선거 전략에 매달린 탓에 그런 장점을 활용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많은 표가 좌파당에서 빠져나갔다. 인프라테스트 디마프의 추산에 따르면, 좌파당이 잃은 200만 표 중 절반 이상은 사민당과 녹색당으로 갔다(각각 59만 표와 47만 표). 기존 좌파당 투표자 중 85만 명 이상은 기권하거나 더 급진적인 듯한 군소 정당에 투표했다.

지방정부 참여

좌파당 지도부의 이런 선거 전략은 총선 때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좌파당은 여러 지방정부에 연정 파트너로 참여해 왔다. 베를린에서는 좌파당 창당 주역 중 하나인 민주사회당(PDS, 옛 동독 공산당의 후신)이 2002년부터(좌파당은 2007년에 공식 출범했다) 2011년까지 사민당과의 ‘적적’ 연정에 참여했고, 2020년부터는 적적녹(사민당, 좌파당, 녹색당) 연정에 참여해 왔다.

지방정부 참여는 언제나 자신의 강령이나 당론과 모순을 빚는 결과를 낳았다.

베를린 적적 연정은 집권 이듬해인 2003년부터 공공부문 긴축을 단행했다. 그해 베를린 정부는 공공부문 임금을 최대 12퍼센트까지 삭감하고, 정규직 일자리를 4분의 1 가까이 줄였다.

이런 조처들은 ‘운신의 폭’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정당화됐다. 하지만 오히려 스스로를 운동이나 노동조합과 멀어지게 하고 그 결과 좌파적 개혁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011년 베를린에서는 사민당이 과거에 수도 사업 민영화로 나아가는 계약을 비밀스럽게 추진한 것이 드러나, 수도 민영화 반대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 통일 후 주변화된 민주사회당이 성공적인 야당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 하나는 통일 직후 동독 지역에서 시행된 민영화와 긴축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좌파당 평당원들은 이 주민투표를 기층에서 조직했지만, 사민당과의 연정을 의식한 좌파당 지도부는 이 주민투표를 끝내 지지하지 않았다.

올해 3월 말 팬데믹이 한창인 와중에 사민당-녹색당-좌파당이 연립한 브레멘 주정부는 적자를 이유로 공공병원 인력을 감축하기로 했다. 좌파당 당원인 주 보건부 장관도 이를 옹호했다.

튀링겐주에서 좌파당이 참여한 연립정부는 연방정부의 이민자 추방 정책에 협조하기도 했다.

연방 수준에서 좌파당은 민영화 반대를 분명하게 표방한다. 그러나 지난해 좌파당이 참여한 베를린 정부는 지하철(S-반)을 공개 입찰에 부쳤다. 이는 민영화로 한 걸음 다가가는 조처였고, 노동조합들의 커다란 반발을 샀다.

지방정부 참여는 앞서 좌파당의 강점으로 제시된 기후 정책과도 모순을 빚었다. 2009년에 출범한, 사민당과 좌파당의 브란덴부르크주 연립정부는 지역 석탄 산업의 기득권에 도전하지 않았다. 2019년, 좌파당은 2030년까지 탈석탄을 달성하기 위한 “좌파당의 5대 기후 보호 요구”를 발표했다. 반면, 좌파당이 참여한 브란덴부르크주 정부는 갈탄 채굴 기업들의 사업 계획에 따라 2035년까지도 탈석탄에 착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브란덴부르크의 석탄 발전소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곳의 하나로 꼽힌다. 브란덴부르크의 석탄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의 13퍼센트는 해외로 수출되고 있기도 하다(2019년 1월 현재). 석탄 산업의 이윤을 위해 계속 온실가스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곳에는 석탄 산업에 의존하는 일자리가 적지 않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은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독일연방 환경부는 브란덴부르크를 독일에서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곳의 하나로 꼽는다. 이곳은 극심한 가뭄 등으로 농지 황폐화와 사막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편, 석탄 기업들이 황폐하게 만든 환경을 복구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일자리가 필요할 것이다. 기업들의 이윤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석탄 산업 노동자들을 위해 다른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좌파당이 기후 문제와 관련해 주장해 온 바, 즉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보지 않아야 한다는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좌파당은 브란덴부르크 주정부를 흑녹 연정[보수 정당과 녹색당의 연정]에 넘겨 줘서는 안 된다며 석탄 산업의 이익에 도전하지 않는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했다. 좌파당 소속 주정부 장관들은 연정 파트너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석탄 기업들로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제는 좌파당의 이런 행보가 지지자나 잠재적 지지자들의 신뢰를 갉아먹고, 다른 정당과 다를 바 없다는 실망을 자아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세력이 득을 볼 기회를 열어 줬다. 예컨대, 튀링겐주에서는 적적녹 연정 하에서 극우인 AfD가 기회를 얻었다. 지난해만 해도 이곳에서는 좌파당 지지율이 40퍼센트였지만, 지금은 AfD가 24퍼센트를 득표해 제1당이 됐다.

이런 실천이 자아낸 실망 때문에 좌파당의 당세는 줄거나 정체해 왔다. 물론 좌파당은 단지 선거주의 정당이 아니라 운동의 정당이기도 했다. 좌파당 당원들은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반대하는 운동, 기후 운동, 병원·보육원·철도·교육 부문 등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파업과 저항에 관여해 왔다. 그러면서 젊은 신입 당원들을 가입시켰다. 옛 서독 지역에서는 2017년부터 당원 수가 다시 늘어나 2009년 수준을 회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당세 감소를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안은 무엇인가?

이런 정체와 위기를 배경으로 좌파당 내에서는 심각한 논쟁이 벌어져 왔다. “좌파당이 여성, 성소수자, 난민, 기후 변화 같은 ‘중간계급적’ 쟁점에 매몰된 결과, 임금 문제와 같은 ‘진정한’ 계급 문제에서 멀어졌다”는 경제주의적 주장이 오른쪽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것이 자아낸 당내 논쟁은 그런 쟁점들과 노동계급의 경제적 문제 모두에서 좌파당의 신뢰를 갉아먹는 효과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쟁점들을 노동계급의 투쟁과 대립시키는 관점은 옳지 않다. 그 쟁점들이 노동계급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이민자 배경인 상황에서 이민자 차별 문제를 노동계급과 분리시키는 시도는 어리석은 짓이다.

좌파당의 경험에서 얻어야 할 진정한 교훈은 선거를 통한 정부 진출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 좌파에게 딜레마와 난점을 낳는다는 것이다. 좌파당의 실패는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 영국의 제러미 코빈 등 다른 유럽의 좌파적 사회민주주의가 겪어 온 어려움과 맥을 같이한다.

진정한 희망은 의회 바깥에서 아래로부터 투쟁을 건설하는 데 있다.

이번 독일 총선과 함께 진행된 베를린 주민투표가 이를 잘 보여 준다. 베를린에서는 높아지는 임대료 탓에, 부동산 대기업을 몰수해서 공유화하자는 주민투표 운동이 벌어졌다. 좌파당은 이 주민투표를 지지한 유일한 정당이었고 좌파당 활동가들은 주민투표를 조직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리고 주민투표에서 몰수 지지가 평균 이상이었던 곳에서는 모두 좌파당 득표가 늘었다. 좌파당이 선거적 재앙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게 한 지역구 당선자의 하나도 이런 지역구에서 나온 것이다. 즉, 아래로부터의 투쟁에서 일정한 구실을 한 곳에서는 좌파당이 득을 봤다.

투쟁을 건설했던 곳에서 좌파당은 지지를 얻었다. 도이체보넨(부동산 대기업) 몰수 운동 ⓒ출처 Montecruz Foto

일각에서는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당선에 이어, 독일 사민당이 승리한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중도의 부활을 말한다. 그러나 사민당의 득표는 25.7퍼센트에 불과하다. 부활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성적이다. 그러나 어찌 됐든 이번 선거의 승자로 부상해 유럽 정치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사민당이 얼마 전에만 해도 AfD(독일을 위한 대안)에도 밀릴 만큼 빈사 상태였던 걸 생각하면, 정치 양극화가 단선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현재의 경제적·정치적·생태적 위기 속에서 사민당과 녹색당은 대중의 변화 염원과 자본의 필요 모두를 만족시킬 해결책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사민당의 처지는 불안정할 것이고, 왼쪽에서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고무하고 여러 투쟁들을 체제에 맞선 하나의 투쟁으로 연결하는 혁명적 정치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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