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 특정 기업의 탐욕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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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아파트 붕괴 사고에 이어, 경기도 양주 채석장에서 석재가 붕괴해 노동자 3명이 매몰돼 숨졌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2월 11일에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석유화학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벌어져 4명이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무고한 노동자들이 연이어 중대재해에 목숨을 잃자 옳게도 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주류 언론들은 이런 재해가 기업들과 그 오너들의 “[끝 모를] 탐욕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광주 아파트 시공사인 HDC 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은 현대 재벌 계열의 시공능력평가 9위 기업이고, 양주 채석장 사고의 원청인 삼표산업은 시멘트업계에서 1~2위를 다투는 기업이다.
그런데도 이 기업들은 안전 투자와 관리 책임을 완전히 경시했다. 그저 이윤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는 데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산이 이미 같은 광주에서 지난해 학동 건물 붕괴 참사를 일으킨 전력이 있듯이, 삼표산업도 계열사의 광산이 붕괴한 사고 전력이 있다.
노동자의 안전은 나 몰라라 하며 돈벌이에 전념한 결과로 기업 경영진들은 막대한 부를 누려 왔다.
HDC와 현대산업개발의 회장이었던 정몽규는 2020년에만 보수로 40억 원가량을 받았다. HDC 배당금으로도 50억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표산업 오너 일가가 포함된 경영진도 지난해 배당금으로 636억 원을 가져갔다.
탐욕 부추기는 체제
그런데 이런 탐욕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 기업주와 경영자들이 왜 하나같이 돈벌이에만 관심 있고 무책임할까?
이른바 탐욕은 기업 간 경쟁에 기초해 돌아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최대한 돈을 많이 버는 것(최대한 돈을 덜 쓰고 최대한 많은 이윤을 뽑아내기)이 가장 생산적이고 효과적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이라고 교육받는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작동되는 방식이다.
그래서 사회가 잘 돌아갈 때는 기업의 “탐욕”이 고무되고 칭찬 받는다. 이윤의 기회를 신속하게 포착하는 “기업가 정신”이라면서 말이다.
반면, 중대재해가 벌어지고 상황이 나쁘게 돌아가면 수익성 극대화를 위한 경영자들의 (이전까지 칭찬의 대상이던) 냉혹한 노력은 “탐욕”과 “과도함”, “무책임”으로 비난 받는다.
언론들은 중대재해의 책임이 기업에 있다고 할 때조차도 특정 기업의 경영 구조나 몇몇 오너들의 “다소 과한 행태”에 비난을 집중한다. 그럼으로써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체제 작동의 부분적 결과로만 사람들의 관심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현산이나 삼표산업 오너들이 배당금을 더 적게 받는다고 해도 안전보다 이윤이 우선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어떤 기업이 이윤을 벌어들이지 못한다면 이들은 경쟁에서 뒤처져 파산하거나 운 좋은 더 큰 기업에 인수될 것이다.
벌써 삼표산업의 위기 상황을 이용해 그 자리를 쌍용레미콘, 아주산업, 유진기업 등 경쟁사들이 치고 들어온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경쟁자의 실패를 두고 더 판돈이 큰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이윤율을 높여야 한다는 계속적인, 더 사활적인 경쟁 압력을 받는다.
건설사들의 수주 경쟁이 금품이나 향응 제공 등 온갖 부패와 비리로 얼룩지는 진흙탕 복마전인 것도 이런 이유다.
예컨대 최근 현산은 참사에도 불구 하고 안양 관양동 현대아파트지구의 재개발 시공권을 따냈는데, 이는 재개발조합에 막대한 수익과 보상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현산은 그 비용을 노동자들과 입주민들에게 최대한 떠넘겨 메우려 할 것이다.
기업들의 우선순위: 이윤 〉 생명
자본주의는 자본가들이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경쟁하는 시스템이다.
자본가들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윤 중 많은 부분을 경쟁자보다 더 많이 더 빠르게 기계·설비에 투자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그래야 경쟁자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싸게 팔아서 시장을 점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건설 산업만이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자본가들은 이런 경쟁적 축적 논리에 휩싸인다.
이런 경쟁 속에서 신기술이 발전하거나 생산성이 혁신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과 노동 조건에 대한 투자는 계속해서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엄청난 생산력과 동시에 엄청난 야만도 낳는 체제다.
39짜리 고층 아파트를 단숨에 지어 올릴 정도로 기술력이 발전했지만, 기초적인 안전 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아 6명의 무고한 목숨이 숨진 것이 바로 그 사례다.
그런데 기계·설비가 아니라 오직 노동력만이 추가적인 부를 생산해 내기 때문에, 이런 경쟁은 모순적이게도 장기적으로는 체제 전체의 이윤율을 낮춘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경기 침체나 당장의 경쟁 압력에 직면해 흔히 인건비나 현장 관리 비용을 우선 줄인다. 그것이 빠르고 손쉬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설비·기술 투자는 흔히 더 장기적이어서 고정 비용화돼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늘리고 줄이기 어렵다.
이것이 건설업에서 다단계 하도급을 통한 비용 절감 논리가 판치는 이유다. 노동자들을 상시고용해서 고정비용화하는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자본가들은 아주 필수적인 안전 조처에 들어가는 돈조차 줄여서 이윤을 확보하려 한다. 참사가 일어났던 광주 아파트 현장뿐 아니라 다른 공사장들에서도 여러 건설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불량 콘크리트를 쓰거나 철근을 아낀다는 내부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
2018~2021년 3년 동안 대우건설은 매해 작업장에서 산재 사망이 벌어졌음에도 안전보건 관련 예산을 해마다 줄여 왔다.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이 2013년 접대비로 6000만 원을 쓰면서 안전 교육에는 겨우 54만 원을 지출한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광란의 축적 경쟁 속에서 끔찍한 참사가 계속 잉태되는 것이다.
물론 자본가들도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쟁은 자본가들을 극도로 단기적 시야와 행동에 매몰되게 만든다. 그래서 사고가 나더라도 그게 자기 사업장은 아니길, 오늘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안전 규칙을 다 지키려면 비용(과 시간)이 늘어 경쟁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하라는 체제의 압력이 기업가 개인의 탐욕을 낳는 원인이다. 그런 압력은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자본가도 이 경쟁 체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도 경쟁 시스템의 포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이 시스템에서 막대한 권력과 부를 누리는 수혜자들이다. 이윤 추구 과정에서 사고와 재해가 벌어져도 자본가들은 거의 처벌받지도 않는다.
결국 자본가들은 이윤에 살고 이윤에 죽는다.
그런데 그 이윤이 결국 노동자의 노동에 의존한다는 사실도 봐야 한다. 이는 노동자들이 단결해 이윤 만들기를 멈추고 저항한다면 자본가들의 양보를 얻어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기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이런 참사에 항의하고, 안전에 더 투자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기업주와 그들을 보호하는 정부를 규탄하고 투쟁해야 한다.
그런 투쟁들에 동참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아지고 더 급진적이 된다면 자본주의 자체를 끝장내자는 주장도 더 힘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