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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산재 사망 사고: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체제가 낳은 참사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로 ‘고삐 풀린 안전규제’가 화두로 부상한 가운데, 연말 연초 산업 현장에서도 중대재해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월 한 달 알려진 산재 사고만도 십수 건에 이른다. 포스코에서 질소가스 노출 사고로 하청 노동자 4명이 질식사 했고,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여파 속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가 화재·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관련기사: ‘잇따른 현대중공업 산재 사망 - “무분별한 휴업으로 인한 인력 부족이 비극을 낳았습니다”’)

이 밖에도 동국제강, 현대차 아산공장 협력업체, 세아특수강 협력업체, 동해레미콘, 프로그린테크 등등에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산업재해로 억울하게 떠난 동료 노동자를 추모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현중지부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벌어진 사망 사고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조건에 내몰려 있는지를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임신 3개월의 아내를 둔 27세의 한 정규직 노동자가 설비 보수 작업 중 기계 장치에 몸이 끼여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상태에서 다시 설비가 움직여 머리까지 기계에 빨려 들어가 끔찍하게 숨을 거뒀다. 만약 1차 사고가 있었을 때 즉시 설비를 멈출 비상 스위치가 있었다면, 그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전 장치가 전혀 없었기에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운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노동부 천안지청은 사망 사고 이후 하루가 지나서야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작업 중지명령을 내렸다. 노조의 항의로 6일 뒤에 전면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졌지만, 그 사이 같은 공장에서 유사한 작업을 하던 다른 노동자가 사고를 당했다.

이런 죽음들은 자본의 이윤 몰이 속에서 노동자들을 참담하게 희생시키는 체제의 야만성을 보여 준다. 포스코가 “매출액 60조 원 복원”을 자랑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이 방치돼 유해가스에 노출되고 폭발사고에 희생돼 죽거나 다쳤다. 인공지능이니 우주 탐사니 하는 얘기들이 무성한 가운데, 노동자들은 기계에 끼여서, 추락해서, 구조물이 붕괴돼서 목숨을 잃었다.

“산재 왕국”

정부 통계를 보면, 2016년 한 해에만 산업재해자수가 9만 656명, 사망자수가 1777명에 이른다.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했을 때 매일 같이 377명이 재해를 당하고 7~8명이 목숨을 잃는 것이다.

이조차 상당히 은폐된 수치다. 한국은 OECD 평균 3배가 넘는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는 나라인데, 이상하게도 재해율은 OECD 평균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중대재해가 아니면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기도 어려운 것이다.

사망자 통계도 축소돼 있다. 정부가 산재보험 보상 통계만을 집계해 다른 보험체계에 있는 집배원 과로사, 소규모 건설 공사, 특수고용 노동자 등은 제외된다. 그마저 2012년부터는 사업장 밖에서 벌어진 업무상 사고(운수업 등에서는 특히 치명적이다), 사고 발생일로부터 1년이 넘어 사망한 경우 등을 제외해 사망자가 이전보다 매년 200~300명가량 감춰져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산업재해 왕국”이다. OECD 국가들의 노동자 10만 명 당 산재 사망자 현황을 보면, 일본 1.7명, 미국 3.3명, 멕시코 7.9명인데, 한국은 무려 9.0명이다.

무엇보다 의미 심장한 대목은 은폐·축소된 정부 통계조차 숫자가 줄어든 게 아니라 오히려 늘고 있다는 점이다. 2~3년 전부터 산업재해율과 사망 만인율은 감소세가 중단되고 거의 정체 상태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10~2011년부터 좀체 줄지 않고 있는데, 심지어 2~3년 전부터는 사고 사망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 특히 건설업에서는 2009년부터 재해율이 크게 높아졌다.

이렇게 된 이유는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사용자들이 안전 투자와 인력을 축소하고, 정부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각종 안전 규제를 완화해 온 데 있다.

이명박근혜 정부가 기업의 이윤 보장을 위해 추진한 규제 완화는 그나마 있던 안전벨트조차 풀어 버렸다. 산재 보고 의무와 처벌규정, 안전검사, 안전보건 교육 등이 완화되거나 면제됐다. 이 속에서 사용자들은 산재를 은폐하기가 더 쉬워졌고, 각종 안전 규정을 위반하기 일쑤였다.

외주화

특히 안전관리 업무의 민간위탁은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정부는 2008년부터 타워크레인 규제 완화로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던 안전 검사를 민간에 위탁하고 타워크레인 조종·설치·해체 작업을 외주화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건설 현장에서만 70여 명이 타워크레인 사고로 사망하거나 크게 다쳤다.

중대재해가 빈번한 조선업종에서는 수년간 지속된 구조조정으로 인력이 줄고 외주화가 확대된 것도 큰 몫을 했다.

외주화 확대,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의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비정규직 산재 사망률이 정규직의 8배가량 된다는 조사가 나온 바도 있다(제조업 통계. 안전관리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안전보호장구에서도 차별을 받고, 사고를 당해도 제대로 보상을 받기가 어렵다.

이런 현실을 두고, 일각에서는 “원청의 노사 담합, ‘공생관계’”가 하청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내몬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측만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도 고강도·위험 업무를 피하려고 그것을 하청 노동자들에게 떠넘긴 책임이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다단계 하청구조는 원청이 비용 절감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청 기업에 떠넘긴 결과다. 이렇게 되면 안전 투자는 뒷전이 되고 안전관리에도 구멍이 뚫린다. 어느 한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노동조건이 후퇴 압박을 받고 현장 통제권도 약화되기 십상이다. 함께 협력해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게 만들어 각종 사고를 낳고 대응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더구나 정규직 노동자들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노동자들이 단결해 싸우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외주화·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사용자들의 책임을 의도치 않게 덜어 주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불충분한 문재인 개혁

산업재해의 심각성 때문에, 문재인은 지난해 7월 “산업안전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과 작업중지 명령 운영 기준, 타워크레인 안전 예방대책 등을 발표했다.

이런 개혁안들은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중대재해가 벌어진 곳에서는 노동부가 직접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명박근혜 정부하에서는 거의 볼 수 없던 일이다.

그러나 그 조처가 불충분해 곳곳에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각 노동부 지청들은 작업 중지 대상을 일부분에만 한정하거나 늑장 대처로 위험한 조건 속에 노동자들을 방치하곤 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작업장에서 충분한 안전실태 점검과 대책 마련 없이 단 며칠 만에 작업중지 명령을 해제해 버렸다.

문재인은 이런 노동부의 행태를 즉각 시정하기는커녕 그냥 보아넘기며 실질적인 강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은 안전업무의 외주화 금지 대상이 매우 제한적이고, 심각한 사고 위험에 내몰려 있는 특수고용·파견 노동자 다수를 정책 대상에서 제외한 문제도 있다.

타워크레인 안전예방 대책은 민간 위탁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는가 하면, 조종사에게 과실의 책임을 묻는 조처들(면허 취소를 쉽게 하기, 노동자 감시 강화)을 담아 건설 노동자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산재 예방을 표방하지만, 안전보다 돈벌이를 우선하는 이윤 논리에 도전하지 않는 한, 안전에 대한 규제와 투자를 ‘수익성을 제약하는 낭비’로 여기면서 노동강도를 높이고 생산 제일주의를 추구하는 기업주들에 정면 도전하지 않는 한은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안전대책과 처벌을 강화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해 나가려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