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자본론》 ④:
왜 자본주의에서 경제 위기는 필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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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본론》 연재 기사 마지막 편으로, 자본주의가 위기로 치닫는 경향에 대해 알아본다.
이전 글에서는 자본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근본적인 분열, 즉 생산을 통제하는 자본가 계급과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하는 노동자 계급 간의 분열에 대해 살펴봤다.
그러나 이 체제에는 또 한 가지 분열이 존재한다. 서로 경쟁하는 자본가들 사이의 분열이 그것이다. 이들은 착취의 전리품과 시장 지분을 놓고 서로 끊임없이 싸운다.
이들 사이의 경쟁은 생산 과정에 반영된다.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 방식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는 벌어들인 이윤의 일부를 재투자하는 것이다. 특히 더 크고 빠르고 성능 좋은 기계에 대한 투자가 일반적이다.
마르크스가 ‘자본 축적’이라고 부른 이 과정 덕분에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경제 체제가 됐다. 또한 이 때문에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체제이기도 하다. 경쟁자들만큼 노동자들을 혹독하게 쥐어짜지 못하는 자본가는 이윤이 줄어들어 결국 도태된다.
그렇기에 작업장 안전이나 연금 또는 환경보호 규정처럼 이윤에 걸림돌이 되고 자본 축적을 방해하는 요인들은 모두 [폐지되거나 완화돼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윤과 축적을 향한 자본주의의 눈먼 질주는 위기를 촉발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인간의 필요보다 이윤이 먼저이고 사회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총체적인 계획이 없기 때문에 혼란과 무질서가 시장을 지배한다.
자본가들은 이윤이 생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우르르 몰려가서 투자한다.
이 때문에 갑자기 제품이 팔리지 않고 창고에 쌓이는 ‘과잉 생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생산을 중단하고 납품업체는 파산한다.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소비재 생산 기업도 타격을 입는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위기의 근원에는 더 근본적인 경향이 작용하고 있다. 이전의 글에서도 살펴봤듯이, 마르크스는 ‘산 노동’과 ‘죽은 노동’을 구별했다.
산 노동은 가치를 창출하지만 죽은 노동은 그러지 못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축적은 보통 산 노동에 대한 죽은 노동의 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단순하고 값싼 기계로 하루에 자동차 한 대를 만든다고 가정하자.
그들이 몇 년 뒤에 더 비싼 최신 기계로 하루에 자동차 열 대를 만든다 해도 그들이 투입한 산 노동의 총량은(따라서 창출되는 가치는) 이전과 동일하다.
물론 개별 자동차의 가치는 하락한다. 각각의 차에 투여된 산 노동의 양이 줄기 때문이다.
한편, 새로 들인 기계가 이전의 것보다 10배 내지 1백 배 비싸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자본가가 버는 이윤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본가가 투자한 액수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즉 ‘이윤율’이 하락한 것이다.
물론 새 기계에 맨 처음 투자한 자본가는 가격 경쟁에서의 우위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시장 점유율을 더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경쟁자들이 너도나도 새 기술을 채택함으로써 결국 최종 생산품의 가격은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윤율은 계속 떨어지지는 않는다. 《자본론》 제3권에서 마르크스는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여러 요인들을 지적했다.
하지만 대다수 선진국에서 이윤율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고, 현재는 제2차세계대전 직후의 호황기에 비해 한참 낮은 상태다.
이윤율이 하락하면 체제 전체[세계자본주의]의 건강에 적신호가 온다.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은 격화하고, 자본가들의 뒤를 봐주는 국가들 간의 경쟁도 격심해지면서 경제적 갈등뿐 아니라 군사적 갈등도 고개를 든다.
노동자들은 더 심하게 쥐어짜이고, 이전 세대의 노동자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권리들(연금, 의료 서비스, 무상교육 등)이 공격받는다.
또한, 기성 정당들이 대중의 염원에 부응하지 못함에 따라 정치도 극우파와 극좌파 사이에서 양극화된다.
파시즘, 대량 실업, 전쟁으로 얼룩진 1930년대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어떤 야만을 잉태할 수 있는지 똑똑히 보여 줬다.
현 시기는 1930년대보다 경제 위기가 더 질질 늘어지고 있다. 1930년대와 동일한 측면들이 있지만 그 전개 속도는 더 느린 것이다.
또, 이번 위기가 1930년대처럼 대참사를 통해 해결되고야 말 것도 아니다.
1930년대와는 전혀 다른 시나리오로서, 자본주의의 부를 창조하는 자들이 그 부를 장악해 자본가들과는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식으로 해소될 수도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이를 위한 투쟁의 지침서다.
서른한 살의 조지프 추나라는 영국의 혁명적 반자본주의 잡지인 《소셜리스트 리뷰》 편집자 가운데 한 명이다. 중미 선주민계인 그는 흥미롭게도 케임브리지대학교 물리학 박사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