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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과 페미니즘 논쟁

지난해 재보궐 선거 이후 20대 남성이 안티 페미니즘 성향이라는 주장이 유행하고 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안티 페미니즘을 선거에 적극 활용하고, 20대 청년들의 윤석열 지지가 높아지자 청년 남성들의 안티 페미니즘에 주목하는 글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최근 〈중앙일보〉 ‘나는 고발한다’ 칼럼에서 청년 남성들의 안티 페미니즘 문제를 놓고 다양한 필자가 논쟁을 벌였다. 2월 14일자로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글(“정의당의 페미니즘은 실패했다, 류호정도 그렇다”)이 실렸고, 박가분 작가(정의당 당원)가 반론을 펼쳤다. 2월 16일자에는 박가분의 글(“이대남에 엉뚱한 좌표 찍은 여 ... 그들의 표 계산 완전 잘못됐다”)이 실렸고, 신지예 씨가 이를 비판했다(이하 모든 존칭 생략).

청년 남성들의 안티 페미니즘을 놓고 벌인 논쟁

페미니즘을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관점은 달라도, 20대 남성의 다수가 안티 페미니즘이라는 가정은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몇몇 여론조사를 보면, 청년 남성 중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두고 청년층의 다수가 안티 페미니즘 성향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흔한데, 정확하지 않다.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모두 성평등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종숙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논문(2020)을 보면, 20대 남성의 성 평등 의식은 20대 여성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세대·성별보다 높은 편이었다.

사람들의 의식은 흔히 모순돼 있으므로, 이분법적 결론을 내는 연구는 주의해야 한다. ‘안티 페미니즘’을 느슨하게 사용할 게 아니라, 성평등에 반대하며 여성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에 한정해서 써야 한다.

일면적

‘이대남 신드롬’은 분명 과장돼 있다. 하지만 청년 남성 사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을 신지예처럼 단지 남성 우월주의 집단들에 의해 “기획된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류호정은 우파의 페미니즘 백래시에 환호를 보내는 청년 남성들의 안티 페미니즘에 개탄하면서, 그렇게 된 이유로 워마드와 “엘리트 여성운동가들의 실책”을 꼽는다. 정의당의 문제점은 좋은 정책을 잘 알리지 못한 것, 페미니즘을 쉽게 설득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페미니즘은 하나가 아니고 워마드가 페미니즘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맞다. 워마드처럼 남성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분리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운동의 주류가 아니다.

그러나 평범한 청년 남성들이 반발하는 급진 페미니즘은 단지 분리주의 페미니즘에 국한되지는 않는다(분리주의 페미니즘은 급진 페미니즘의 극단적 경향이다). 남성 일반을 권력자 또는 ‘잠재적 가해자’로 보며 남 대 여 대립 구도를 설정하는 급진 페미니즘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의 여성단체들에서도 수용돼 왔고, 좌파의 다수도 그렇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한겨레〉, 〈경향신문〉 같은 중도진보 언론이 남성 일반을 잠재적 성범죄자, 성차별주의자로 취급하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대거 실었다.

이런 점에서 박가분이 페미니즘이 성별 대립을 부추겨 왔다고 지적한 것은 일리가 있다. 20대 남성들을 극우, 일베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옳다.

그런데 박가분 역시 일면적이다. 특히, 페미니즘의 약점만 보고, 20대 남성들의 의식을 단일한 것(안티 페미니즘)으로 취급한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청년 남성의 지지율 하락을 정부의 친페미니즘 기조 때문이라고 보고 여가부 폐지에 찬성하는 사고의 혼란을 보인다. 또한 2018년 불법촬영물 항의 시위가 성차별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이었다는 점을 무시한다.

개혁 배신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친페미니즘 미사여구나 일부 정책에 일부 청년 남성들이 반발했어도, 청년 남성 다수가 현 정부에 등을 돌린 핵심적인 이유를 페미니즘 문제로 볼 수는 없다. 그런 주장은 사실 개혁이 과해서 문재인 인기가 떨어졌다는 우파의 터무니없는 비난에 문을 열어 준다.

실제로는 20대 남녀의 정부 지지율이 (양적인 차이는 있어도) 비슷하게 오르내리는 경향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20대 남녀 모두 정부 지지가 매우 높았다. 문재인이 페미니즘 언사를 가장 많이 하고 내각에 여성을 30퍼센트 할당한 것은 정부 초반이었다.

2020년 4월 총선 때도 민주당 지지율은 2017년 대선에 비해 모든 성별과 연령대에서 증가했다(당시 민주당은 우파 야당이 팬데믹 초기에 노골적인 반(反)서민성을 드러낸 덕분에 반사이익을 얻었다). 한편, 지난해 민주당이 참패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2030 청년 남녀 모두에서 지지가 하락했다.

청년층의 문재인 지지 하락은 불평등이 개선되며 삶이 나아지기를 바란 청년들의 변화 염원을 문재인 정부가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 핵심 원인이다.

정부는 자신의 개혁 배신을 정당화하기에 바빴고, 이를 위해 청년을 성별로 이간질했다. 정부의 지지 하락은 정부 탓이 아니고 이대남의 안티 페미니즘과 젠더 갈등 탓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젠더 갈등의 주된 책임조차 문재인 정부와 이를 노골적으로 이용하려는 우파 정치 세력에 있다.

이보다는 책임이 훨씬 덜하지만, 급진 페미니즘의 과도함은 상당수 청년 남성들의 반발을 낳으며 젠더 갈등이 부각되는 데 일조했다.


2022년 1월 24일 MBC ‘100분 토론’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당”이라고 밝히고 있다 ⓒ출처 〈MBC〉

정의당의 페미니즘은 어떤가?

류호정은 워마드를 비판하는 한편,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들어간 “엘리트 여성운동가들의 실책”도 지적한다. 그것은 “박원순·오거돈 성폭력 사건” 방관, “피해호소인”이라는 “해괴한 신조어” 사용,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 옹호,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아들의 “여혐”을 감싼 것 등이다.

말하자면, 민주당의 페미니스트들이 “내로남불”의 모습을 보인 것이 페미니즘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2020년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부실이 문제됐을 때 민주당의 페미니스트 의원들(남인순, 김상희)이 주류 양당간 진영 논리로 이를 변호한 것은 청년층의 분노를 샀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윤미향 비판에는 위안부 문제 미해결 현실에 대한 개탄도 있었는데, 당시 민주당은 윤미향에 대한 비판을 모두 우파적·친일적인 공격인 양 싸잡았다.

한편, 류호정이 박원순 사건에서 민주당의 페미니스트 의원들(남인순, 김상희, 진선미 등)이 “피해호소인” 용어를 쓴 것을 문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 용어는 “해괴한 신조어”가 아니라, 여성운동 일각에서 급진 페미니즘의 주관주의적 성폭력 개념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수 년 전부터 사용돼 왔다. 류호정 자신도 박원순 사망 뒤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YTN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2020년 7월 13일).

피해자 중심주의

7월 16일 우파 변호사 김재련(게다가 박근혜 정부의 여성가족부 인권증진국장을 지냈다)이 민주당과 서울시가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이를 “2차가해”라고 비난하자, 상당수 페미니스트들(그 전에 이 용어를 사용한 사람들도 포함해)이 김재련의 주장에 동조했다.

박원순의 사망으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조건 해당 여성 편을 들지 않았다고 ‘2차가해’로 비난하는 것은 확증편향일 뿐이다.

당시 민주당의 페미니스트 남인순 의원이 보인 진짜 문제는 임순영 서울시젠더특보에게 피소 사실을 유출한 것이었다. 남인순에게 정보를 준 게 한국여성단체연합 김영순 상임대표로 드러나 김영순은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여연은 대중의 불신을 사게 됐다.

김재련 등 우파가 민주당을 공격하고자 급진 페미니즘의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 개념을 활용하자 여성단체들은 혼란에 빠졌다. 진상을 알 수 없어도 무조건 피해 호소 여성 편에 서야 한다는 주장을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수용해 왔기에, 이 사건은 우파에게 유리하게 이용됐다.

정체성 정치의 논리에 따라 박원순 사건에서 심지어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김재련과 제휴해 활동했는데, 신지예도 그중 하나다. 윤석열 캠프 합류는 좌절됐지만 신지예는 여전히 윤석열을 지지하고 있다.

류호정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지지하므로 이 문제로 인한 여성운동의 혼란에서 교훈을 제대로 이끌어 내지 못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엄밀한 진상 조사의 필요성을 부정하며 합리적 문제 제기를 가로막아 왔고, 이것은 여러 피해를 낳고 여러 운동 내에서 수많은 분열을 야기해 왔다.

개혁 입법 전략

류호정은 민주당으로 간 몇몇 “엘리트 여성운동가들의 실책”을 협소하게 지적할 뿐, 그들이 내포하고 있는 근본적 문제는 제기하지 않는다.

여성운동 지도자 출신 정치인들이 성평등을 실현하겠다며 민주당에 들어갔지만, 노동계급 등 서민층 여성의 조건은 별 개선이 없었다. 문재인은 내각에 30퍼센트 여성 할당으로 주류화 지향 여성운동가들의 환심을 샀지만, 노동계급 등 서민층 여성을 위한 개혁은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류호정은 여성운동의 주류가 공공연한 친자본주의 정당인 민주당과 동맹하는 전략을 취해 온 것을 비판하지 않는다. 정의당이 한동안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삼가며 드러내놓고 협력했고, 정의당의 페미니즘도 페미니스트들의 공직 진출을 통해 성평등을 실현한다는 ‘성 주류화’ 전략을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당의 페미니즘은 이데올로기 면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페미니즘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고, 실천 면에서도 더 나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정의당은 사회운동과 정치를 예리하게 분리시키는 입장을 취하며 기층에서 운동을 건설하는 데 나서지 않는다. 정치는 입법 활동이나 선거 대응 수준으로 협소해진다.

정의당 의원들이 의회 연단이나 언론을 통해 차별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며 몇몇 개혁 입법안을 발의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전혀 충분하지 않다. 성별 대립에 반대하며 진정으로 성평등을 실현하려는 정당을 표방한다면, 기층에서 급진적이며 노동계급 남녀가 단결하는 폭넓은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

2016년 폴란드에서 낙태권 시위(‘검은 시위’)가 대규모로 일어난 데는 여성들의 높은 자발성과 함께, 좌파 정당 라젬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아쉽게도 정의당은 한국의 낙태권 운동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성평등한 사회는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참가하는 대중 운동으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성별 이간질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노동계급 여성과 남성, 청년과 노년의 사람들이 공통의 적에 맞서 단결하는 것이다. 이 말은 차별에 맞서는 투쟁이 계급투쟁과 분리된 것이 전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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