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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계급투쟁과 별개인가?

운동 내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는 흔한 한 가지 이유는 “경제결정론”이라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문제를 경제와 계급 관계의 문제로 환원하기에 차별 문제를 적절히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혁명적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의 편집자 샐리 캠벨이 계급과 차별의 관계 문제를 설명한다.

차별이 계급 투쟁과 무관하다는 주장은 언뜻 그럴 듯하게 들린다.

차별은 계급을 고스란히 반영하지 않으며, 계급을 가리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의 공장 노동자든, (같은 직종 남성만큼은 아니어도) 높은 보수를 받는 런던 금융가의 증권 중개인이든 모든 여성은 차별을 당한다. 그러나 공장 노동자와 부유한 여성이 겪는 여성 차별은 사뭇 다르다.

계급은 삶의 모든 측면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며, 다른 불평등한 인간관계들, 가령 흑인과 백인,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와 이성애자의 불평등한 관계는 모두 특정 형태의 계급 사회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래서, 예컨대 노동계급 여성이 자본가를 위해서 하는 구실은 분명하다. 노동계급 여성은 육아(다음 세대 노동자를 기르기)와 가사(자신을 포함한 지금 세대 노동자를 돌보기)를 대부분 떠맡아 하며, 사랑이나 필요 때문에 (무보수로) 그런 일을 한다. 반면 지배계급 여성은 그런 구실을 하지 않으며, 노동계급 여성을 고용해 그 일을 대신 하게 한다.

이러한 계급 분열 때문에, 차별받는 집단 내 단결은 필연적이지 않다. 지배계급 여성들 중에는 그 자신이 여성 차별에 시달림에도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자각하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자들이 언제나 있다. 파리 코뮌 당시 파리의 부유층 여성들은 군대가 코뮌을 분쇄한 것을 축하하며, 코뮌에 가담한 여성 투사들의 눈을 우산으로 찔렀다. 마거릿 대처는 여성 차별적 욕설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수많은 노동계급 여성을 절망에 빠뜨리는 정책을 폈다. 미국 부시 2세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이었던 흑인 여성 콘돌리자 라이스가 미국과 세계 도처에서 흑인이나 여성의 지위 향상에 도움을 줬다고 말할 수도 없다.

서로 다른 차별을 받는 집단 간의 단결도 필연적이지 않다. 여성이 차별받고 무슬림이 차별받는다고 해서 이들이 반드시 단결해 저항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상황은 그 반대일 수 있다. 공격받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좀 더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의 사상, 즉 우리를 서로 경쟁하는 여러 집단으로 분열시키고 “우리의” 지배자들과 단결시키려는 사상은 우리에게 강력한 압력으로 다가온다.

마르크스주의를 경제결정론으로 오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스탈린주의가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했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엄격하게 위계적인 소련을 옹호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에서 심장과 내장과 뇌를 들어내고 경제 성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직된 “이론”을 만들어 냈다.

왜곡

마르크스는 사회의 “경제적 토대”에서 출발했지만, 그가 말한 경제적 토대는 삶 자체의 생산과 재생산을 의미할 뿐이다. 인간은 의식주를 얻기 위해 항상 집단으로 노동했다. 그리고 인간이 의식주를 해결하는 방식은, 계급 사회 이전의 수렵·채집 사회에서든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든, 사회의 정치, 예술, 자녀 양육 방식 등 모든 것에 심대한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일방적 과정이 아니다. 지배계급이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려다가 더한층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고, 정치 투쟁이 새로운 경제 발전을 위한 길을 열 수도 있다. 대체로 말해 마르크스는 많은 전선에서 투쟁이 벌어지지만 생산 조직 방식이 일차적 요인이라는 역사관을 제시했다.

노동계급은 생산에서 하는 집단적 구실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마르크스는 “만국의 피억압자여 단결하라!” 하지 않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했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이라는 집단적 세력이 인류 전체를 해방시킬 혁명을 이끌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여성 차별, 인종 차별, 성소수자 혐오 따위의 후진적인 사상을 지닐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공통의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단결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집단적 행동을 한다는 것은 흑인 노동자, 여성 노동자, 이주 노동자와 함께 행동한다는 것이다.

차별을 계급적으로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은 차별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상이한 사람들이 모인 분열된 집단이라는 약점이 아니라 단결된 계급이라는 강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런던 빈민가의 흑인 소년을 위한 해결책과 방글라데시의 굶주린 여인을 위한 해결책은 따로 있지 않다. 문제는 자본주의이고 혁명은 그 해답이다.

투쟁 경험, 함께 싸우며 얻는 자신감은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사상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혁명의 경험은 이런 효과를 극도로 강렬하게 낸다. 1917년 10월 혁명 직후 몇 달도 안 돼 러시아 여성들은 투표권과 공직 입후보 권리를 얻었다. 낙태할 권리, 이혼할 권리가 법으로 보장됐다.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게 됐고 동방 민족들에게 종교와 언어의 자유가 허용됐다. 얼마 전까지 유대인을 차별하던 사회에서 유대인들이 최대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들의 지도자로 선출됐다.

이것은 계몽된 볼셰비키가 후진적인 대중을 위해 정책을 통과시킨 결과가 아니라, 대중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며 능동적으로 참여한 결과였다. 남편의 구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괴롭힘 등 차별을 피부로 느끼는 일상생활의 온갖 문제들이 공개적 논쟁 대상이 됐고, 그래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

1923년 트로츠키는 혁명을 통해 가정의 구실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고 썼다. 왜냐하면 “전에는 노동자들 자신이 노동계급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화와 심각한 갈등을 무심코 지나쳤지만, 이제는 광범한 선진 노동자 층이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고, 이들의 삶이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며, 이들의 모든 비극적 가정사가 많은 사람들의 논평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을 소수의 지배에서 해방시키는 혁명은 우리 삶의 모든 측면도 해방시켜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의 도약”을 가능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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