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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지방선거 결과가 의미하는 것

6.1 지방선거 결과의 특징은 민주당의 참패와 역대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둘은 서로 연관돼 있다.

전국 투표율은 50.9퍼센트로, 48.9퍼센트를 기록한 2002년 지방선거 다음으로 낮다. 2006년 지방선거가 51.6퍼센트를 기록해 세 번째로 낮다.

2002년 선거와 2006년 선거는 각각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와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치러졌다. 대중의 개혁 염원을 배신한 민주당 정부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표출됐고, 두 선거 모두 민주당이 참패해 우파 정당 등이 반사이익을 얻었었다.(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도 134만 표를 얻어 약진했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광역단체장 17곳 중 12곳을 차지했고(4년 전엔 민주당이 14곳), 전국 기초단체장 208곳 중 145곳을 차지했다(4년 전엔 민주당이 151곳). 민주당은 4년 만에 ‘압승’에서 ‘참패’로 쇠퇴한 것이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우세했던 지역에서도 패배했고,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만 가까스로 이겼다. 민주당 후보 김동연이 경제 부총리까지 지낸 고위 관료 출신인 반면, 국민의힘 후보는 순전히 윤석열의 지지 덕분에 후보가 된 초선 의원 출신이었는데도 김동연은 신승했다. 4년 전 경기도에서 민주당은 기초단체장(시장·군수) 31곳 중 29곳을 차지했는데, 이번에는 국민의힘이 22곳에서 이겼다.

낮은 투표율은 민주당 지지층, 특히 개혁 염원 지지층의 환멸성 기권이 주된 이유였다.

3월 대선 투표자 중 1200만 명이 6월 지방선거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대선 때는 우파 정부의 등장을 막으려고 민주당 개혁파인 이재명에게 투표했던 이들이, 이제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데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같은 사이비 개혁 쇼에나 몰두하는 등) 변화 가망성이 없어 보이자 투표할 동기를 찾지 못한 듯하다. 민주당 텃밭인 광주의 투표율(37퍼센트)이 기록적으로 낮았던 것도 그런 정서의 반영인 듯하다(광주의 대선 투표율은 81퍼센트). 일종의 지연된 심판인 셈이다.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 국민의힘 개표상황실 ⓒ출처 국민의힘
6월 2일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입장발표 ⓒ출처 더불어민주당 유튜브

유일한 원내 좌파 정당으로서, 민주당과의 동요하는 동맹을 통한 개혁 입법 노선에서 근본적으로 탈피하지 못한 정의당도 동반 참패했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지상파 3사(KBS·MBC·SBS) 합동 투표 출구조사를 보면 40대 이하의 투표율 추정치가 평균보다 크게 낮았다. 특히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던 40대는 물론이고(이번에도 민주당 지지가 가장 많은 연령층이었다), 20대도 30퍼센트 초반대로 추정된다.

물론 대선 때 윤석열에게 투표한 이들 일부도 각료 인사에서 드러난 특권층 부패와 내로남불에 대한 실망으로 투표에 불참했을 것이다. 대선에서 민주당에 투표했다가 이번에는 기권한 이들도 윤석열 정부에 호감이나 기대가 별로 크지 않았을 것이므로 결국 낮은 투표율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이번 선거 결과가 대중 전반의 보수화 때문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윤석열은 지방선거 전에 나름 조심스런 행보를 보였다. 우파 언론의 비판에도 코로나 손실보상금 지급을 결정하고,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윤석열 정부는 지방선거에서의 압승을 개악의 동력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다음 총선 전의 1년 반 남짓한 시간을 개악의 찬스라고 보면서 말이다. 낮은 투표율이나 일부 노동자 부분이 보여 주듯 대중의 불만이 높고, 국회 의석에서의 열세 등 때문에 신중하게 처신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집권 세력이 승리에 취해 오버 하다가 실수할 수도 있다.

참패한 민주당은 책임 공방으로 내분을 겪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 5년에 대한 평가와 이어져 있고, 차기 당권과도 연결되므로, 내분과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좌파 정당의 취약한 처지를 이용해 변화 염원층을 자신들에게 더 묶어 두려는 책략을 부릴 것이다. 그러나 핵심 기반(자본가 계급과 특권층)의 성격상 민주당이 개혁적으로 변신할 가망은 없다.

우파의 공세에 잘 맞서려면, 노동자 운동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친민주당 포퓰리즘 노선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연대를 강화하는 정치를 발전시켜야 한다. 혁명적 좌파는 참을성 있게 이를 추구해야 한다.

정의당과 진보당의 선거 성적

민주노총의 연대 정당들인 정의당·진보당·노동당·녹색당은 모두 345명의 후보를 출마시켰다.(이중 조율된 진보 단일 후보는 224명이었다.)

이 민주노총 (지지) 후보들 중 진보당이 21명, 정의당이 9명의 당선자를 냈다.

진보당이 상대적으로 진보한 성적을 거뒀지만, 진보 단일 후보 운동은 변화 염원층의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하에서 노동운동이 정부로부터 충분히 독립적이지 못했던 것의 부정적 효과인 듯하다.

예컨대, 정의당과 진보당 모두 영남의 이른바 진보벨트(또는 노동정치벨트)라고 불리는 울산·창원 등에서 정당 득표의 하락 추세가 이어졌다. 성적이 매우 안 좋았던 2014년 지방선거보다도 못하다.

또, 선거에서 이긴 지역구들을 보면, 진보당 14명, 정의당 7명이 진보 후보 단일화 방침을 적용하지 않은 호남 지역(특히 광주·전남) 당선자다. 광주·전남 광역 정당비례투표에서 두 당이 모두 국민의힘에 뒤진 것도 처음이다.

진보 단일 후보 운동에 참가한 정당들 중에서 정의당과 진보당의 성적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정의당

정의당은 역대급으로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광역의원 2명, 기초의원 7명 당선에 그쳤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광역의원 11명, 기초의원 26명을 당선시켰다. 4년 만에 4분의 1토막이 난 것이다.

광역 정당비례 득표 전국 총합에서 정의당은 91만 표를 얻었는데, 4년 전 226만 표의 40퍼센트에 불과하다. 특히 수도권에서 득표가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크게 줄어서 서울·경기에선 지방 의원을 모두 잃었다. 진보 단일 후보로 나선 울산 북구청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에 밀려 10퍼센트도 못 얻었다.

지방선거에서 비중이 제일 크고 상징성이 있는 광역단체장 선거를 보면, 당 대표 여영국 후보가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4퍼센트, 국회의원과 당 대표를 지낸 이정미 후보가 인천시장 선거에서 3.17퍼센트 득표에 그쳤다. 두 곳 모두 국민의힘이 선거 초반부터 여유 있게 앞선 곳으로, 주류 양당의 박빙 구도에 압착된 곳도 아니었다.

예상보다 더 큰 부진에 정의당 대표단은 선거 다음 날 바로 총사퇴하고, 어떠한 선거 평가나 논평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정의당에 친화적인 〈레디앙〉은 6월 2일 선거 결과의 충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민주당이 ‘참패’라면 정의당은 ‘몰락’이다.”

당선자 수가 진보당의 절반밖에 안 되는 것도 충격을 배가시키는 듯하다. 정의당과 진보당은 2012년 통합진보당에서 분열한 이후 불편한 경쟁 관계였는데, 선거 성적에서는 2016년 총선 이후 정의당이 줄곧 크게 앞서 왔다.

정의당의 선거 결과는 지도부가 창당 이후 이어 온 ‘민주당과의 협조를 통한 개혁 입법’ 노선의 파산을 보여 준 것이다. 돌아보면, 2016년 이후 정의당의 선거 성적은 민주당과 동반 등락해 왔다.

정의당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하는 듯했으나 근본적이지 못했다. 대선 초기 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언급해 혼선을 빚었다. 이후 이재명과의 차별화에 매우 신경 쓰더니 대선 후에는 다시 민주당의 ‘검수완박’ 대국민 사기극에 동참했다. 오락가락 행보로 신뢰까지 떨어졌다.

정의당은 입법 활동과 정치 협상을 중시하는 반면, 노동자 투쟁이나 사회운동에는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선진 노동자들의 신뢰도 약해졌다. 최근 3년 새 당원 규모와 지지율이 모두 줄어 왔다. 최근엔 상층 노조 관료 기반마저 축소됐다. 울산 북구청장 후보의 부진도 그런 점에서 예견돼 왔다고 할 수 있다.

종합하면, 정의당은 노동계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화되면서, 누구에 기반해 누구를 대변하려고 하는 정당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도저도 아닌 가운데, 대선에서는 반기득권 포퓰리즘을 제시했는데, 이런 포퓰리즘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런 문제들이 누적돼 존재감과 기대감이 약화돼 왔음이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확인됐다.

진보당

진보당은 4년 전(기초의원 10명)보다 배로 성장했다. 기초단체장 1곳,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17명을 배출했다. 진보당은 이전 선거 기반을 꽤 회복했다.

지난 몇 년간 진보당의 기본 노선은 (정의당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통한 개혁 성취에 무게 중심이 있었다. 심지어 진보당 지도부는 민주당의 비례용 위성정당에 참여하려고까지 했다.

그럼에도 진보당은 정의당에 비해 잘 조직돼 있다는 강점이 있다. 당비를 내는 당원 수에서 정의당의 3배가 넘는다. 민주노총 중앙 집행권을 잡는 등 민주노총 상층 기구에서도 세력이 커졌다.

진보당은 ‘스타’ 정치인과 국회의원이 없는 조건에서 기층 조직력 다지기에 열중했고, 무엇보다 노동자 투쟁 연대와 다양한 사회운동 참여에 정의당보다 더 열심이었다. 가령 진보당은 대선에서도 택배노조 파업 농성장에 함께하며 지지를 분명히 한 반면, 정의당은 TV 토론에서 이 투쟁을 언급하거나 옹호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국회의원이 없는 진보당의 조건이 역설적이게도 국회 표결 때마다 민주당과의 동맹 관계가 부각된 정의당보다 이번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한 면도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당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단연 김종훈 진보당 전 의원이 울산 동구청장에 당선된 일일 것이다.(울산 동구에서 낙선한 노동당 후보들도 평소 노동당 지지율보다 월등히 많이 득표했다.)

그런데 진보당을 비롯한 울산의 좌파 정당들과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은 울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송철호(현 시장) 후보를 지지했다. 마침 민주당 소속 동구청장 후보가 사퇴해, 부분적으로 민주당과의 선거 연합이 이뤄진 셈이다.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 정치라는 진보 단일 후보의 의의를 부분적으로 퇴색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