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노동자 연대〉 구독
이 기사는 3월 11일 온라인 토론회 ‘20대 대선 결과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토론회 영상)의 발표문을 증보한 것이다.
5년 전에 촛불로 쫓겨났던 우파로 정권이 교체됐다. 공교롭게도 박근혜가 탄핵당한 날이었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5년 전 대선, 4년 전 지방선거, 2년 전 총선에서는 “우파는 안돼” 하는 정서가 더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결국 이 흐름이 이번 대선까지 이어졌다.
이런 대선 결과가 빚어진 단연 가장 큰 요인은 문재인의 배신으로 개혁 염원이 좌절된 것에 대중의 실망과 분노, 배신감과 환멸이 컸기 때문이다.
개혁 염원 배신
사회주의 정치에서 개혁은 노동계급 등 차별받는 사람들의 차별과 착취가 완화되는 것을 뜻한다. 이 점에서 문재인은 명백히 개혁을 배신했다.
문재인 집권기에 소득 격차, 자산 격차는 더 확대됐다. 가령 최저임금을 첫해 올려 주고는 곧바로 제도를 개악해서 인상 효과를 무력화시켰다. 이후로는 박근혜보다도 더 인상을 억제했다.
청년 실업도 더 악화됐다. 탄력근로제도 더 확대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산업재해 개선도 없었다. 그 밖에도 집값 상승, 물가 상승, 금리 인상, 코로나 고통 증대 등이 불만을 자아냈다.
공정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정권 핵심부에 대한 수사는 가로막았다. 반면, 특권형 불평등 불공정 입시 경쟁을 벌인 조국을 옹호해 대중을 허탈하게 하고 분노케 했다.
우파의 화장술
결국 우파가 대중의 배신감과 환멸에서 반사이익을 얻어 승리했다.
박근혜 국회 탄핵 당시 우파는 박근혜 탄핵을 놓고 분열했다. 또한 새누리당 당명을 긴급하게 바꾸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별무소용이었다. 문재인 집권 이후에는 태극기 우파에 기대어 소생하려 했지만 선거에서 잇달아 참패했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는 과거 회귀적으로 보일 짓을 상당히 자제했다.
‘막말러’ 의원들을 징계하거나 입 다물게 하고, 초짜 애송이를 당 대표로 앉히고, 급기야 정치 신인이자 자신들의 두 대통령의 구속에 관여한 윤석열을 영입해 대선 후보로 세웠다. 그래야 득표에 확장성이 생길 거라고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반사이익 흡수에 성공한 셈이다.
정권 심판
결국 이번 대선 결과는 차악론이 환멸론(심판론)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차악론의 사기가 높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이 당선된 2002년 대선과의 분명한 차이점이다. 당시는 김대중에 대한 환멸이 커서 민주당은 차악으로 여겨졌지만 대선 직전 청년 수십만 명이 참가한 평화 염원 촛불 운동이 분출한 덕분에 노무현이 당선됐다.
민주당은 당내 주류인 친문계가 아닌 이재명을 후보로 내세워, 정권 심판론을 비켜가 보려고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당 주류와 타협한 이재명은 정권 심판론을 끝내 이기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번에 서울에서 패했는데, 이전까지 민주당 후보가 서울에서 패한 것은 1987년 이래 치른 7번 대선 중 2007년 한 번뿐이었다.
청년들의 이반도 두드러졌다. 5년 전 대선에서 문재인은 20대 연령층에서 인기 후보였고, 임기 초에는 20대가 가장 적극적인 지지층이었다. 그러나 20대는 진작에 적극적인 이반층이 됐다. 5년 전 최소 절반이 20대였을 지금의 30대에서도 이재명이 윤석열에게 상당히 뒤진 것으로 조사됐다.
일각에선 20대 남녀간 투표 차이를 과장한다. 그러나 여론조사들을 보면, 문재인 임기 동안 20대 남녀가 문재인에게서 이반한 추이는 전반적 추세와 전혀 다르지 않다. 전반적인 환멸 속에서 차악론이 좀 더 강하냐, 심판론(환멸론)이 좀 더 강했냐의 차이였을 뿐이다.
대중의 보수화는 아님
이번 대선을 결정지은 민주당의 개혁 배신에 대한 심판 정서가 대중의 우경화를 동반한 것은 아니었다.
전국적인 우파의 총득표는 늘지 않았다. 5년 전 대선에서 홍준표와 유승민과 안철수가 얻은 표를 더하면 1704만 표였다. 이번에 윤석열이 얻은 표는 1639만 표에 그쳤다. 이번에는 우파의 승리 자신감과 투표 의욕도 더 높았고, 우파의 선택지도 분열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청년들의 투표율은 저조했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에서 20대 연령층 투표율은 전체 평균보다 10퍼센트 낮게 나왔다. 지난 대선과 비교하면 (전체 투표율은 거의 같은데도) 20대층 투표율은 5년 전보다 11퍼센트 낮다. 5년 전 20대 후반, 30대 초반이 이번 대선에서 30대 연령층을 이뤘을 텐데, 이들의 투표도 줄었다.
후보 선택은 어땠을까? 선거 직후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20대 투표자의 51퍼센트는 투표일이 일주일이나 일주일도 안 남은 시점이 돼서야 투표 후보를 정했다.(‘투표당일·투표소에서 정했다’는 12퍼센트) 그리고 출구조사에서는 20대 연령층의 절반이 선호 후보의 당선이 아니라 싫은 후보의 낙선을 위해 투표했다고 답했다.
이런 결과는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우파와 윤석열에 대한 신뢰로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청년층에서는 오히려 대안 부재 현상과 정치적 유동성이 더 두드러진다.
노동운동
그렇다면, 중도 정당 민주당의 개혁 배신에 실망하고 화가 난 정서가 왜 심상정 등 좌파가 아니라 보수파인 우파에게로 갔을까?
5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은 노동자들, 특히 철도 노동자들의 두 달 넘는 파업이 방아쇠 구실을 했다.
촛불 운동이 2016년 12월 초순 무려 230만 명 규모로 커지자 여야의 주류 정치세력들은 철도노조 파업을 중단시키고 박근혜를 국회에서 탄핵하는 것으로 대처하려 했다. 반부패 민주주의 운동이 계급투쟁으로 변모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그때 급진좌파들은 대부분 침묵하거나, 일각에서는 다소 엉뚱하게도 “이재용 구속, 재벌 반대”라는 구호를 제출했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개혁주의에 도전하기를 사실상 회피한 것이다.
결국 운동의 헤게모니는 이후 민주당 측으로 넘어갔다. 사회운동 내 친민주당 개혁주의자들은 촛불을 문재인 집권의 응원부대로 삼으려 했다.
이런 노선의 문제점은 문재인 집권 후에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노동운동의 개혁주의 지도부들(민주노총, 정의당, 진보당)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해 개혁을 얻으려고 했다. 이 공상적인 노선으로 노동운동은 주변화됐다.
이 노선은 단지 우파에 맞서서만 문재인을 엄호한 것이 아니다. 문재인의 개혁 배신에 대한 대중의 불만으로부터도 문재인을 엄호했다. 조국 사태가 대표적 사례였다.
주요 좌파는 조국 사태 때 그의 특권형 불공정 문제를 변호하거나 침묵했고, 이후 정권 부패 수사를 막으려는 소위 ‘검찰 개혁’을 지지해 줬다.
정의당은 그런 지지의 대가로 선거제 개혁을 얻어 내려 했다. 그러나 되레 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 설립으로 뒤통수를 맞았고, 진보당은 이 위성정당에 참여하려고 시도했었다.
단기적 선거 이득을 위해 공정·정의 염원을 배신했으니, 주요 좌파의 이런 노선은 지지층에게 실망스런 야합으로 보였을 것이다. 선거주의도 문제지만, 민주당에 의존해 국민의힘을 견제하면서 개혁을 얻어내려는 전략을 스스로 취해 왔기 때문에 대선 국면이 돼서야 “양당 체제”가 문제라고 주장해도 그 지적에 힘이 실리기 어려웠다.
톨게이트, 건강보험 콜센터 노동자 등 주목할 만한 개별 투쟁들이 벌어졌지만, 광범한 연대는커녕 노동조합의 테두리 안에서도 연대가 부족했고 개별 노조의 투쟁을 상층이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처럼 노동운동 자체가 조합주의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정치화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됐다. 이런 효과로 좌파적 대안의 부재 현상이 존재했다. 그래서 노동자와 서민의 선거 표심이 이재명에 대한 차악론적 기대에 머물렀다. 그리고 바로 같은 이유에서 좌파 자신의 선거 성적도 보잘것없었다.
요컨대, 아래로부터의 투쟁 대신에 문재인을 개혁 주체로 세우고 그의 개혁 배신에 침묵해 왔던 것의 결과로 주요 좌파는 문재인과 함께 덩달아 실망의 대상이 됐다. 주요 좌파의 대선 득표 결과를 보면, 어쩌면 이번에 함께 심판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대선과 좌파
이런 문제는 주요 좌파가 문재인 정부 후반부에 와서야 민주당을 비판하거나, 대선을 앞두고 민중 후보 단일화 등 상층 조정을 시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문재인 정부 후반부에 민주당을 비판하기 시작했지만, 대선 기간에도 2개월 넘게 1천 수백 명이 참가한 택배노조 파업을 다섯 차례나 열린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경적인 제3지대 공조론으로 실망을 샀다.
노동운동이 조합주의적 개혁주의적 한계를 보이고 그로 말미암아 정치적 존재감이 줄어들고, 정의당 후보의 “노동이 당당한 나라”라는 말이 구호에 그치자, 〈한겨례〉와 〈경향신문〉 등이 “노동 없는 대선”을 걱정할 정도로 노동과 좌파는 이번 대선에서 존재감이 아주 미미했다.
대표적인 노동자 밀집지구이자 노동정치 1번지이던 울산에서 이재명의 득표는 5년 전 대선(문재인)보다 늘었다. 반면 심상정 후보는 울산에서 득표가 3분의 1로 줄었다. 민주노총 대선 방침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변혁당과 노동당은 민주당의 배신과 민주당을 지지한 정의당의 패착이 이번 대선에서 자신들에게 선거적 기회를 줄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이런 부정확한 기대감 때문에 좌파 대부분이 20대 대선이 “한국 사회의 전환점”이라는 주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과의 협력 노선을 취한 온건 좌파들을 말로 비판하고 선거에서 더 급진적 공약을 내건다고 해서 불리해진 세력균형이 만회되는 것이 아니다. 폭넓은 운동으로 변화 염원 대중의 정치의식과 사기가 고조될 때, 좌파의 존재감이 커지고 좌파적 요구가 사람들에게 현실성 있게 다가올 수 있다.
새 정부의 전망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와 팬데믹 위기, 국제 질서 불안정, 그리고 기후 위기 등 4중의 위기가 체제와 지배계급을 압박하고 있다.
이 위기들이 서로 연결·조합되면서 위험이 증폭된다. 미·중 갈등이 경제 회복을 어렵게 하고, 전쟁 위기가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방해하는 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국제 질서와 경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자 SK그룹 회장인 최태원은 수년 전 미·중 갈등이 고조될 때, “이런 지정학적 위기는 처음 겪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글로벌 위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적·사회적 위기가 점점 깊어지고 지배계급은 더욱 날카롭게 분열돼 있다. 위기 대처를 놓고 합심하지 못하고, 공식 정치는 늘 분열해 있다.
북한·중국·일본과의 관계 문제, 경제 회복과 고통 전가를 위한 노동자 공격의 속도, 점증하는 사회적 불만 등 수많은 문제가 첩첩산중이다.
이번 대선 결과는 자본가 계급이 자신의 전통적 선호 정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선호한 결과로 봐야 한다. 그들은 윤석열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일제히 윤석열에게 규제 혁파와 함께 노동개악을 주문했다. 그들이 원하는 노동개악에는 노동조건뿐 아니라 노동쟁의법 개악이 포함돼 있다.
사실 자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운동을 이럭저럭 관리해 사회적 평화를 다소 회복한 덕을 봤다. 하지만 그들은 그 대가로 민주노총 관료들이 우대되고 노동개악이 지연된 것에 불만이 커졌다. 수익성을 높이고 시장 점유율을 늘리려면 한시가 급한데, 언제까지 참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손경식은 신년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가 잘한 것도 있지만 노조 편향적이었던 것은 문제라며, 노동개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경식은 CJ그룹 일가이며 회장 출신이다. 그의 발언은 CJ대한통운 파업과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사용자들의 불만을 대변한 것일 것이다.
한편, 우파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한·미·일 동맹 강화를 함축), 지정학 정치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미국 중심의 질서에서 위상과 서열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
윤석열도 이런 견해인 듯하다. 그는 반중 정서를 강하게 드러내며, 주한 중국대사와의 논쟁도 불사했다. 윤석열은 당선 확정 5시간 만에 바이든과 통화를 했다. 5월이 취임인데, 5월 한미정상회담 설이 나온다. 그렇게 되면 역대 가장 빠른 속도다. 윤석열은 다음날 일본 총리 기시다와도 우호적으로 통화했다. 반면 중국과는 중국 대사 면담만 했다.
새 정부의 기조는 분명하다. 신자유주의, 그리고 친미 안보 강화 노선.
물론 윤석열은 이런 기조를 임기 초부터 전면적으로 추진하지는 못할 것이다. 문재인과 민주당에 대한 환멸에서 반사이익을 얻어 집권했지만, 대중이 우경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첫째, 촛불 운동 이후 노동계급의 조직이 성장했는데, 그들은 건재하다. 그 대표 사례 하나가 택배노조인데, 이들은 무임금 장기 파업에도 조직을 유지했고, 성과를 거뒀고, 여전히 단결된 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둘째, 선거 결과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대중이 우경화한 결과가 아니다. 변화 염원 대중이 대안 부재와 (노동계급의 경우) 계급의식 부재로 어쩔 수 없이 우파에게 정치적 주도권을 넘겨줬지만, 의식의 후퇴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20대 청년 투표에서 드러난 젠더 차이는 아주 부차적이다. 부차적 차이를 일부러 부각하는 것은 점증하는 사회적 불만에서 체제 수혜자들의 책임을 호도하고, 대중을 분열시켜 불만을 돌리고, 일부를 기반으로 삼으려는 책략이다.
오히려 부동산이나 일자리 문제에서 드러나듯이, 세대 내 계급 불평등이 더 본질적 분단선이다. 노동계급 청년 남녀 모두 문재인의 개혁 배신에 실망하고 화가 났다. 그러므로 새 정부의 신자유주의나, 안보 위기를 고조시키는 정책에 빠르게 태도를 전환할 수 있다. 투표에서는 조금 달랐어도, 장차 새 정부의 개악에 맞선 투쟁에서 단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들로 윤석열 정부는 우파적 의제를 띄우면서도 당분간은 조심스럽게 움직일 듯하다. 경제 불황 속에서 집권한 영국의 마거릿 대처도 네 차례나 집권에 성공했지만, 첫 집권기에는 노동계급에 대한 보편적 공격을 서두르지 못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을 이간질해서 각개격파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렇게 해서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가 취약해진 후에야 두 번째 집권기에 강성인 광원노조를 공격했고, 이후 노동법들도 개악했다.
이런 점들과 사용자들의 공세 필요성을 고려하면, 노동자 투쟁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 그러면 좌파 정치세력들도 이런 운동들에 힘입어 다시 기지개를 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조합주의(경제주의와 부문주의)적인 대응에 머물고 연대를 구축하는 정치를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그런 투쟁과 부흥은 개혁주의적일 것이고, 이는 변화의 가능성을 제약할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드러나듯이 세계 정치가 하도 역동적이어서 개혁주의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격동적인 정치 상황이나 거대한 대중 투쟁이 전개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혁명가들에게는 선거 결과에 대한 실망이 클 필요도 없고, 지속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