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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촛불은 들지 말았어야 했나?

윤석열 퇴진 운동이 벌어지자 일부 좌파는 문재인 정부의 배신을 보고도 또다시 퇴진 투쟁이냐고 비판한다. 그 일부는 더 나아가, 박근혜 퇴진 촛불을 들지 말았어야 했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런 대중 투쟁 무용론은 국민의힘의 주장과 묘하게 오버랩돼 씁쓸하다. 지금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군중 심리를 자극해 정권 탈취에 나서고 있다고 비난한다.

먼저, 박근혜 퇴진 운동과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 사이에 전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선후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면 안 된다.

박근혜 퇴진 운동은 민주당에 의한 운동 또는 민주당을 위한 운동이 아니었다.

민주당은 처음에 박근혜 퇴진 요구를 지지하지 않았다. 심지어 2016년 11월 12일 100만 명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요구할 때도 당시 민주당 대표 추미애는 박근혜와 영수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그 뒤 박근혜 퇴진 운동에 참가했을 때조차 민주당은 바로 탄핵 절차를 밟았다. 퇴진 운동이 헌정 질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제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탄핵 절차가 개시된 후에도 퇴진 운동은 석 달 동안 수십만 명 규모로 지속됐다.

불가피

박근혜 탄핵 뒤에 치러진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이것은 당시 세력 균형하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박근혜 퇴진 운동은, 그 명칭에서 나타나듯이, 자체의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다만, 스스로 그 목적을 현실로 만드는 데 필요한 자신감과 정치적 수단들은 아직은 미성숙했다. 덕분에 민주당이 그 성과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거의 어부지리였다.)

퇴진 운동이 대규모로 일어났지만, 좌파 정부를 당선시킬 정도로 높은 수위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당시 세력 균형, 노동계급 대중의 의식(특히 자신감과 조직 수준) 등을 고려해 봤을 때 박근혜 퇴진 운동이 혁명에 조금 못 미치는 격변으로 갈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촛불 혁명’은 은유적 표현이지, 운동의 성격을 이론적으로 규정하는 용어는 아니다.

박근혜 퇴진 운동 이 운동은 민주당에 의한 또는 민주당을 위한 운동이 아니었다 ⓒ조승진

그럼에도 기무사(현 국군방첩사령부)가 계엄령 문건을 준비했던 데서 볼 수 있듯이, 만에 하나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이 부결됐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됐을지 모를 일이다.

국가기구가 결코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 결정을 당시에 예정된 결론처럼 말할 수는 없었다. 탄핵 인용이 이뤄진 것은 민주당이 거리에서 힘을 뺀 뒤에도 마지막까지 거리를 지킨 대중 운동 덕분이었다.

대중 운동의 효과

그러면 박근혜 퇴진 운동은 문재인과 민주당 집권 말고는 남긴 게 없는 운동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박근혜 퇴진 운동은 수백만 명이 참가하는 대중운동이었던 덕분에, 대중의 의식과 조직의 성장이라는 퇴적물을 남겼다.

대중 시위는 축제 같은 다중 운집과는 다르다. 시위는 대중의 정치적 의견이나 정서를 강하게 표현한다. 대규모 투쟁 참가는 시위 참가자들이 그전에 하던 일상생활과는 아주 다른 경험이다.

박근혜 퇴진 운동의 참가자는 아주 많았고, 그 운동에 대한 동조자는 훨씬 더 많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 운동은 참가자와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에게 강력해 보였다. 그래서 지배계급의 다수도 박근혜를 지키려 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의식과 조직이 성장했다. 2017년 대선에서 민주당만 득을 본 게 아니다. 정의당도 200만 표를 얻었다. 진보당은 강제해산 당하던 때 파손된 지역 조직들을 전국적으로 복구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도 급증했다.

비록 개혁주의적 의식과 조직의 성장이었지만,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진보다.

그 뒤 문재인 정부의 배신에 맞서는 대규모 운동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덕분에 사람들은 문재인에게 환멸을 느끼며 사기 저하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하며 탄식했다.

퇴진 운동 참가자들은 문재인 정부보다 더 좋은 정부를 원했다는 것이고,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었다.

문제는 노동운동의 개혁주의적 지도부들이 대중의 불만과 염원을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민주당 정부를 (종종 비판적으로) 지지한 것이었다.(문재인 정부의 배신과 노동운동의 대응에 대해서는 ‘정권이 바뀐들 민주당일 텐데 뭐가 달라지겠냐?’를 보시오.)

박근혜 퇴진 운동이 문재인 정부의 배신(이는 불가피한 필연이었다)과 환멸(그로 인한 우파 정부의 재등장)로만 귀결된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

박근혜 퇴진 운동은 올바르게 기억되고, 그로부터 미래의 투쟁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교훈을 이끌어 내야 하는 귀중한 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