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관점에서 본 박근혜 퇴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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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운동을 보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누가 뭣 때문에(또는 뭘 위해) 싸우는 걸까?’ 하고 묻는 것이다. 가령 버스 타고 가다 멀리서 어떤 집회가 열리고 있는 광경을 본다면 당신은 속으로 맨 먼저 그렇게 물을 것이다.
수백만 국민 대중(이하 민중)이 직접 참가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살펴보려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대답은 이럴 것이다: 민중이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나 좀 더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세밀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는 봉우리만 보이는 산도 가까이 가 보면 깊은 골짜기가 보이는 법이다. 우선, 민중을 가까이에서 보면 그 다수는 노동계급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조직 노동계급 사람들보다는 조직돼 있지 않거나 비정규직이거나 실업(미취업) 상태인 노동계급 사람들이 많았다. 노동계급 사람들이 운동 참가 면에서 가장 주요한 구성 성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운동의 사회적 구성면에서만 노동계급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아니다. 능동성과 투쟁성 면에서도 노동계급은 (특히 초기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특히, 철도 노동자 파업은 10월 말에 반박근혜 시위가 시작되기 전부터 벌어지면서 반박근혜 운동의 원시적(시초) 축적을 나타냈다.
11월 12일 전국노동자대회와 11월 30일 민주노총 하루 총파업은 12월 3일 전국적으로 2백30만 명이 참가한 시위가 일어나는 데에 선도자 구실을 했다. 11월 30일 민주노총 하루 총파업은 사실상 ‘총’파업이 아니라 제한된 부분의 파업이었던 데다 단시간에 그쳤지만, 정치적 상징으로서의 효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마침내 12월 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때까지 노동계급은 이렇게 운동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것이다.
노동계급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는 건 민주당·국민의당의 자유주의자들이 정의당과 철도노조·공공운수노조 지도부의 개혁주의자들과 야합해 철도 파업을 끝낸 일에서 잘 드러난다. 자유주의 정당들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박근혜를 탄핵한 게 12월 9일이고, 공공운수노조-철도노조의 개혁주의 노조 지도자들이 조합원들을 업무에 복귀시킨 게 12월 9일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철도 파업이 지속되는 가운데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파업이 더 강력해지고 확산될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또한 자기네 당들 내의 좀 더 보수적인 정치인들과 새누리당 내 비박계에 파업 종식 능력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을 설득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자유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은 두 차례 실패 끝에 12월 7일 세 번째 시도에야 비로소 철도 노동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의 저항이 그만큼 강했던 것이다.
잠재력의 현실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
반박근혜 투쟁의 사회적 구성에서 노동계급의 비중이 매우 컸음을 강조한 이유는 이 투쟁이 노동자들의 계급 투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즉,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은 단지 정치적 부패에 반대하는 민주주의 투쟁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는 노동계급 투쟁으로도 발전할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단지 박근혜 파면(그리고 박근혜 일당의 구속)만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고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을 이루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은 노동자들이 다수였으면서도 노동자들 자신의 요구들(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 폐지, 최저임금 1만 원, 노동개혁·구조조정 중단, 전교조·공무원노조의 노동조합 권리 보장 등등)을 실질적 요구로 내놓지 않았다. 겨우 몇 차례 집회 연단에서 몇몇 연사들이 폭로하는 정도였다.
반박근혜 운동의 실질적 요구가 되지 못했을뿐더러 노동자들 고유의 투쟁도 벌어지지 않았다(12월 초까지 벌어진 철도 파업을 제외하면).
이것이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원했음에도 아직까지 박근혜 일당의 퇴진만을 얻어 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박근혜 파면에 멈추지 않고 그 정권 자체를 퇴진시킬 수도 있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필자가 박근혜 파면이라는 운동의 성취를 하찮게 평가하는 건 아니다. 필자도 박근혜 파면이 “너무 기쁘다”(〈노동자 연대〉 신문 200호 1면 헤드라인).
그럼에도 필자는 1백 년 전쯤 미국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후보이던 유진 뎁스가 한 다음 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원하지 않지만 갖고 있는 것에 투표하기보다는 차라리 원하지만 갖고 있지 않은 것에 투표하겠다.”
물론 뎁스는 투표와 관련해 이 말을 했다. 하지만 더 일반적으로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즉, 정치 행동을 할 때 현실주의적으로만 하지 말고 본질적인 잠재력도 보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의 힘이 그렇게 강력하게 발휘될 수 있었을까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위에서 자유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이 서로 야합해 기어코 철도 파업을 끝낸 일을 언급했다. 그리고 그 일이 노동자들의 힘을 자유주의자·개혁주의자들이 스스로 인정한 증거였다는 점도 지적했다.
분명 객관적 조건은 무르익었다. 세계적으로 경제 불황이 십 년째 지속되고 있다. 그 사이에 각국 지배자들이 채택한 다양한 대안들이 죄다 실패하면서 그들이 한 약속들은 불신받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파렴치하게도 경제 회복을 대의명분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바람에 노동계급의 고통과 분노가 누적돼 왔다.
여기에 세계 곳곳에서 지배자들은 분열돼 있다. 트럼프의 정책들을 둘러싸고,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난민 문제를 둘러싸고 등등. 한국 지배계급의 경우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또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어두워짐에 따라 내분이 격화됐다. 지난해 7월 중순경부터 우병우와 문고리 3인방에 대한 폭로가 시작됐고, 폭로는 심지어 〈조선일보〉도 가세한 가운데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최순실 개입의 폭로는 그 정점이었다.
지배자들 사이의 내분으로 7월부터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노동자 투쟁이 벌어졌다: 갑을오토텍 투쟁, 민주노총 총력 투쟁, 정부가 긴급조정권 발동을 검토했던 9월 현대차 파업,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반대 투쟁, 철도노조 파업 등. 철도 파업과 박근혜 퇴진 시위, 전국노동자대회, 11월 30일 민주노총 하루 파업의 상관관계는 바로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노동자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시너지 효과가 소규모로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룩셈부르크는 혁명적 또는 준準혁명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대중 투쟁과 대중 파업에 대해 얘기했다.)
경제와 정치의 위기가 심각한 이 같은 시기에 결핍된 것은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혁명적 리더십이라는 요인이다.
결핍, 즉 실종된 연결 고리
혁명적 리더십보다는, 노동자들이 주도적이면 운동이 민중적 또는 대중적이 되지 못한다고 삭히는 온건한 리더십이 현실에선 훨씬 우세하다. 그런 리더십은 노동계급이 정치 행동을 할 때엔 다른 민중과 보조를 맞추며,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게, 개개 시민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민주노총 상근간부들 가운데는 조합원들이 반박근혜 집회에서 (가령 자유 발언 등등) 능동적으로 정치 행동을 하기보다 ‘시민’에게 기회를 주라고 종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안에서 시민단체들이 민주노총 등 노동계 연사들의 비중이 너무 높다고 줄곧 불평해 온 것에 불필요하게 타협하는 것이고, 노동계급을 민중 속으로 용해시켜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능동성과 투쟁성, 특히 정치적 지도력(헤게모니)이 강력해야 하층 중간계급 사람들이 운동을 지지하면서 민중의 힘도 강화되는 것이다.
노동자의 힘이 강해야 민중의 힘도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 역이 아니다.
민중의 힘이 강해야 노동자의 힘도 강화된다는 민중주의적 사고는 계급투쟁의 동역학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런 오해는 중국 혁명, 쿠바 혁명, 베트남 혁명 등의 사례처럼 농민 운동(쿠바의 경우 빈민 운동)이 혁명적으로 일어났던 곳에서조차 노동자 운동은 취약하고 수동적이었던 역사적 사례로도 반증된다.
물론 대학생들의 대규모 투쟁이 노동자 투쟁을 자극하는 일은 종종 있다. 가령 1995년 11월 대학생들의 전두환·노태우 구속 시위와 1996년 8월 연세대에서 열린 대학생 대규모 집회가 1996년 말과 1997년 초의 노동법 개악 철회 파업에 자극제가 됐다.
2010년 11월 영국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반대 대규모 시위가 공공부문 파업을 자극한 것도 또 다른 사례다.
하지만 이런 상관관계는 결코 기계적이지 않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들의 구실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정확히 백 년 전인 1917년 3월 제정 러시아에서 일어난 2월 혁명은 식료품 배급이 적은 것에 항의한 여성 시위와 노동자 파업의 직접적 결과였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그 여성들과 그 노동자들을 잇는 볼셰비키 평당원들의 역할이 있었다는 점이다.(이에 관해서는 〈노동자 연대〉 신문 제199호에 실린 기사, ‘2월혁명은 순전히 자발적이었나?’를 보라.)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이 먼저, 또 강력히 싸워야, 그때야 비로소 노동자들도 잘 싸울 수 있다는 생각은 그릇된 생각이다.
노동운동은 독자적인 경향이 강하다. 민중 운동이 강력하다 해도 노동계급의 운동은 약할 수도 있고, 강할 수도 있다. 반면 노동자 운동이 강력하면 노동자가 아닌 민중이 자신감을 얻는 것은 확실하다.
사회주의자들이 정치적 독립성을 잃지 않고, 특히 자유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의 민중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노동자들 속에서 독자적인 선동과 조직을 할 능력이 크다면 노동자 투쟁은 강력히 일어날 수 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촛불운동은 사회적 구성 면에서 노동자들의 비중이 컸고, 따라서 단순한 반부패 민주주의 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계급투쟁으로 확대·심화될 잠재력이 있었다. 그럼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어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진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또는 더 정확히 말해, 무엇이 결핍돼 있었기에 잠재력이 현실화되지 못했을까?
철도 파업 중단 사례를 다시 돌이켜보자. 노조 지도자들의 파업 중단 명령을 조합원들이 두 차례 거부한 데에는 혁명적 좌파의 구실이 있었다. 하지만 혁명적 좌파가 지금보다 훨씬 강력했다면 어땠을까?
또, 박근혜 퇴진 운동 기간 중에 아쉽게도 기아차 파업은 사실상 불발했고, 현대차 파업은 형식적인 2시간짜리에 불과했다.
바로 이런 일, 즉 노동계급 속에서 독자적인 선동과 조직을 할 혁명적 좌파의 세력이 미약했던 것이 자유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의 견제라는 장애물을 돌파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노동자들의 고유한 투쟁 방법이 꼭 ‘정치 총파업’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인 경고성 파업보다는 차라리 실제로 이윤에 타격을 주는 효과를 내는 ‘경제적’ 파업들의 동시다발이나 연쇄가 훨씬 낫다.
정치적 노동운동을 향해
노동자 투쟁을 강조하는 것이 신디컬리즘(급진적 노동조합 운동)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국가 권력문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권력 창출에는 자본주의 국가에 맞선 정치투쟁이 필요하다. 레닌은 정치를 “집중된 경제”라고 말한 바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적대가 모두 국가 권력 기구에 응축되고 농축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기업의 축적된 이윤을 ‘사회화’하는 것과 같은 혁명적 이행(移行) 문제도 기존 국가 권력 기구의 분쇄와 새로운(노동자 평의회 형태의) 국가 권력 기구의 창립 문제를 건너뛰고 그저 총파업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인 양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와 달리 레닌은 ‘정치의 최고 중요성’을 말했다. 이때 정치는 선거 지상주의자들, 대의제 민주주의자들이 말하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강요하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곧, 정치를 자유주의 정당이나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내맡기고, 일터나 노조 사무실에서는 노동조건·생활조건(좁게 정의된) 문제를 갖고 싸우라는 것이다.
정치가 집중된 경제라면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에 대적(하고 결국 분쇄)하는 데 필요한 의식과 조직을 발전시키는 수단으로서 중요한 것이다.특히, 노동자들을 서로 이간시키는 정책 및 이데올로기와 대결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을 집결시키기도 하고 성별과 인종, 직무 등에 따라 분할시키기도 하므로 사회주의자들은 그런 분할을 반대해 싸워야 한다.
다른 이유에서도 국가에 초점을 맞추라는 레닌의 강조는 중요하다. 노동계급이 패배하는 이유는 흔히 역량이 결핍돼서가 아니다. 지배계급이 보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집중된 리더십이 없어서, 그리고 운동의 목적과 수단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어서다.
당장의 사례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의 목적과 수단에 대해 참가자 다수인 노동자들이 그다지 명확하지 못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문제들이다. 박근혜 퇴진인가 아니면 박근혜 정권 퇴진인가? 노동계급 고유의 요구를 제출할 건가 아닌가? 그냥 거리 집회에 참가만 할 것인가 아니면 일터와 거리에서 독자적으로도 싸울 것인가?
자본가 계급은 다양한 정치 조직들을 갖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정치 조직이 바로 자본주의 국가다. 국가가 고용주들과 기업인들의 일상적이고 집중된 지도부이다.
노동조합 운동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회주의적 의식을 가질 수 없다. 노동조합 운동의 목표는 노동계급의 해방이 아니다. 노동조합 운동은 착취 조건을 개선하거나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 사회주의 운동은 바로 노동계급의 해방, 자력해방을 목표로 한다.
노동자들에게는 해방과 조건 개선, 둘 다 필요하다.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를 명료하게 해야 한다. 해방을 확고하게 지향해야 이따금 조건 개선이라도 얻어 낼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처럼 경제 불황이 오래 끄는 시기에는 사용자들과 정부가 좀체 양보하지 않는 데다 그나마 그동안 양보했던 것마저 도로 회수해 가려 하기 때문이다.
맺으며
박근혜가 파면되자 박근혜 구속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박근혜는 당연히 구속돼야 한다. 비록 법률적 수준이지만 불평등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 손해는 보통 사람들(민중)이 훨씬 더 많이 부담하게 된다. 민중의 박탈감이 커져 그들의 사기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또한 지배자들 자신이 법치를 우습게 여기면, 민주적 권리도 침해될 위험이 더 커진다.
그러나 박근혜(그리고 이재용 외에도 뇌물을 제공한 다른 재벌 총수들) 구속이 능사인 양 그 운동에 전념하는 것은 기회를 낭비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박근혜의 유산 가운데 특히 ‘노동개혁’이나 ‘공공개혁’, ‘금융개혁’, ‘교육개혁’ 등의 이름으로 자행된 노동계급과 학생에 대한 억압과 착취, 차별 강화를 효력 없게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민주당이 새 정부를 차지하더라도,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가 지속됨에 따라 그 정부는 얼마 가지 않아 노동자와 민중을 공격할 것이다. 정의당이 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한다 해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경제 위기가 자본주의 국가에 미치는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집권당들은 없다.
사드 배치와 어쩌면 실행될지도 모를 전술핵 무기 배치 등 한국에서의 미국의 군국주의를 막을 능력과 의지를 새 정부에 기대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도 심지어 세월호 참사 책임자 규명과 처벌 같은 민주주의적 요구도 미온적이고 극도로 제한적으로 다룰 것이다. 민주당은 참사의 한 주요 원인인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의 공범이기 때문이다.
물론 박근혜 구속 문제에 초연하자라든가 대통령 선거에서 아무에게도 비판적 투표를 하지 말고 그냥 기권하자는 제안은 아니다. 그저 문제의 상대적 중요성을 적절하게 배정하자는 것이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 일터와 거리와 캠퍼스에서 노동자와 학생의 행동이 좀 더 활발하게 일어날 공산이 크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하고 명확한 정치적 목적과 목표를 가져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이다. 이는 혁명적 좌파의 몫이다.
※ 이 글은 필자가 얼마 전에 패널로 참가한 토론회에서 한 발제를 보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