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뀐들 민주당일 텐데 뭐가 달라지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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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감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윤석열 퇴진 구호를 헤드라인으로 내건 본지 최신호의 도심 거리 판매는 평소보다 크게 늘었고, 많은 격려와 후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퇴진 운동 동참에는 회의적인 정서도 일각에 있다. 촛불로 집권한 문재인에게 대중이 실망해 윤석열이 들어선 것을 떠올려 보면 윤석열을 퇴진시키고 정권을 바꿔도 또다시 실망과 환멸이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인 듯하다. 쓰라린 대안 부재감의 반영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국유자산 매각 민영화 계획, 사이버안보기본법 제정 시도, 대통령 경호처의 군경 지휘권 확보 등을 발표했다. 지배계급이 겪는 경제·정치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에, 윤석열은 웬만한 압력을 밑으로부터 받지 않으면 이런 일들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윤석열 정면 반대 운동을 전진시키는 것은 더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운동의 전진을 위해서 문재인 정부하의 경험을 돌아봐야 한다.
박근혜 퇴진 운동과 문재인 정부
박근혜를 퇴진케 한 위대한 운동은 (의회 탄핵과 헌재의 인용이라는) 헌정 질서 안에서 박근혜를 쫓아내고 대선을 치르는 것으로 흘러갔고, 그 불가피한 결과는 문재인 정부였다.
스스로의 정치세력화를 통한, 민주당 정부보다 나은 정부로의 권력 교체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노동계급의 의식과 조직이 당시에 그 수준까지는 준비돼 있지 못했고, 운동 속에서도 그 수준으로까지는 고양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는 당시 좌파가 그 운동의 성격을 반부패 민주주의 투쟁에서 노동계급 계급투쟁으로 심화시킬 의식과 조직을 갖추지 못한 한계도 있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대중의 정권 교체·개혁 염원과, 지배계급의 정치 안정 추구가 타협한 결과였다.
지배계급은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집권이라는 양보를 통해 대중을 달래는 한편, 한국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경쟁력 제고 노력을 서둘러 재개하고 싶어 했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에 둘 사이에서 줄타기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지배계급의 기대에 충실하고자 한 정부였다.
필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촛불 정부 코스프레에 환상을 갖지 않고, 더 나은 정부를 가질 자격이 있는 노동계급답게 계급투쟁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본지는 문재인 정부에 환상을 갖지 말자는 촉구와 함께, 개혁주의 노조지도층과 개혁주의 정치인들의 온건함을 넘어 투쟁을 전개하자고 제안했었다.
가능성과 선택
이런 일들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초반부에 민주노총·정의당·진보당의 조직들이 모두 성장했고, 정의당의 전국 선거 득표도 크게 늘었다.
문재인이 약속한 공공부문 노동개혁이 틀어질 조짐을 보이자 2018년 6월 민주노총 조합원 8만 명이 광화문에 모였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경사노위를 설립해 노동개악을 추진하려 하고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려 하자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그 안건을 부결시켜 버렸다.
불법 촬영 근절을 요구하며 청년 여성 수만 명(“불편한 용기”)이 수개월 동안 거리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진보 좌파’(온건 좌파)의 개혁주의적 지도부들은 아래로부터의 운동들이 정부를 반대하지 않도록 무마하고, 개혁 입법(을 위한 조건)을 기다려 보자면서 기회를 낭비했다.
문재인의 역주행을 비판하다가도 우파에 유리하게 이용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금세 입을 다물었다.
심지어 계급적 특권 행사에도 당당하게 나와 청년들의 공분을 산 조국 전 법무장관 임명을 방어하기까지 했다.
운동과 정부의 중요한 충돌 때마다 중간에서 좌충우돌을 거듭하며 정부와의 대결을 회피하고 문재인의 왼쪽에 철저하게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결과, 노동 대중의 변화 염원은 문재인 정부하에서 더 급진화되기는커녕 대안 부재감을 느끼며 사기 저하되고 방향감각을 잃었다.
그래서 지난 대선 국면쯤에는 민주노총과 좌파의 정치적 존재감이 크게 약화됐고, 노동 대중은 대부분 민주당 후보 이재명이 개혁을 선사해 주길 바라며 한 표를 행사하는 것으로 개혁 염원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우파는 “운동권 내로남불” 운운하며 이런 사기 저하와 환멸로부터 반사이익을 얻었다.
지금도 윤석열 정부는 의도적으로 이런 진흙탕 프레임을 조장해 윤석열 반대 정서를 희석시키려고 한다.
대장동 수사만 봐도 그렇다.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이재명 측근들에 대한 압수수색·구속 영장들은 앞으로 검찰의 의심과 추정을 입증할 수 있게 협조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압수수색·구속 영장 발부는 실체가 불명확한 의혹만으로 부패 혐의를 기정사실화하는 효과를 낸다.
국가보안법 탄압도 “주사파(민주당 이재명 지도부를 가리킴)와는 협치하지 않겠다”는 윤석열 본인의 거짓 비방과 선전포고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다.(관련 기사: ‘안산 세월호 지원금 논란: 청년 단체 마녀사냥해 민주당 흠집 내려는 우파’, ‘[이렇게 생각한다]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논란: 윤석열 정부가 명단 공개 막은 것이 진정한 문제다’)
퇴진 운동을 키워야
지금까지 보았듯이, 박근혜 퇴진 운동에서 윤석열 집권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결코 필연이 아니었다. 촛불 운동이 헛짓한 것이 아니라, 그 뒤 문재인 정부에 맞선 투쟁을 하기를 회피한 온건 좌파의 개혁주의적 지도부들이 행한 잘못된 선택(전략)이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민주당과 차별화한다며 윤석열 퇴진 투쟁을 회피해 오류를 더 나쁘게 반복한다. 문재인 정부에 맞서 투쟁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데, 윤석열에 맞선 투쟁도 주저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본주의 시스템 실패에서 비롯한 심각하고 복합적인 위기 때문에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더 소심해진 영향도 있다.
그러나 정치 권력 문제를 회피하고서 효과적인 정치적 대안을 건설할 수는 없다.
지금의 답답한 정치 상황이 과거의 선택이 누적된 결과라면, 윤석열 퇴진 운동의 미래 그리고 윤석열 퇴진 후의 미래도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다. 앞으로 퇴진 운동과 좌파가 할 정치적 실천은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그러려면 문재인 정부하에서의 경험에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
단호하게 윤석열 퇴진 운동을 지지해야 한다. 특히, 노동자들은 노동계급의 고통을 해결할 사회경제적 요구(가령 부채 탕감, 금리 인하, 실질임금 방어, 공공요금 인상 반대 등)를 위해 싸우며 윤석열 반대 운동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
지배계급의 눈치를 보며 윤석열의 탄압과 마녀사냥에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하는 민주당을 믿고 기대해선 곤란하다. 해방은 물론이지만 개혁도 누가 선사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