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자본주의와 장애》:
장애인 차별의 근본 원인을 밝힌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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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전장연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장애인 권리 예산’을 확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올해 예산안에서 전장연이 요구한 예산의 고작 0.8퍼센트(106억 원)만 반영했다. 이는 OECD 평균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원내대표 주호영은 “무려 106억 원”이라고 생색을 냈다.
국민의힘 소속인 서울시장 오세훈과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에 수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최근에는 이들의 지하철 탑승을 아예 막고 있다.
이런 작태들은 권력자들이 장애인 권리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전장연의 투쟁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아주 반가운 책이 출간됐다. 지난해 11월 나온 마타 러셀의 책 《자본주의와 장애》가 그것이다.
미국의 사회운동 활동가인 마타 러셀(1951~2013년)은 선천적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청소년 시절에 1960년대 민권운동을 목격하며 급진화했고, 1980년대 말 장애인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정치 개념으로서의 장애를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장애인에 대한 경제적 기회 차단에 대항한 시위를 조직하기도 하고,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에도 참여했다.
그 시기 러셀은 카를 마르크스, 하워드 진, 놈 촘스키 등의 저술을 폭넓게 공부하며 자신의 사상을 다듬어 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러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겪는 차별의 본질과 미국 장애인 운동의 쟁점들을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여러 글을 발표했다. 《자본주의와 장애》는 1998~2005년에 마타 러셀이 쓴 에세이 19편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왜 계속되는지, 차별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장애인 차별의 본질
흔히, 장애는 개인의 손상이나 결함에 따른 것이라고 여긴다. 장애를 이렇게 정의하면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것, 불가피한 것, 개인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러셀은 “장애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범주이며 노동 관계에서 비롯”하며, “자본가 사회의 착취적 경제 구조의 산물”이라고 규정한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종교적 미신이나 박해는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가족 단위로 생산이 이뤄졌기 때문에 장애인도 가족 구성원으로서 농업이나 가내 수공업 등에 참가해 일상적 경제에 기여했다.
이와 달리,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들은 더 많은 이윤을 벌어들이기 위해 더 적은 비용을 들여 더 빠른 속도로 생산해 내야 한다.
이를 위한 분업화된 집단 노동, 생산의 자동화 등에서 장애인들은 개별적 지원·보조가 없으면 규격화된 작업을 수행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장애인들은 생산 활동에 ‘부적합’한 것으로 여겨졌고, 노동할 수 있는 권리, 임금 노동자로서 착취되는 것 자체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을 임금 관계로 강제 편입했듯, 장애인 노동자를 강제로 임금 관계에서 몰아[냈다.]”(23쪽)
‘1부 장애의 정치경제학’에서는 자본주의에서 장애인이 왜 차별받고 배제되는지, 이윤을 위해 장애인은 어떻게 이용되는지 설명한다.
때로 자본가는 장애인을 고용하기도 하는데, 저임금을 통해 생산비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만 그렇다. 예컨대, 미국의 장애인 보호작업장은 최저임금 이하를 받도록 “강제”한다. 최저임금의 20~30퍼센트만 지급하는 곳도 있다.
한국에서도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를 가진 경우 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라 최저임금의 적용에서 제외된다.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의 임금은 월 평균 37만 9622원(2022년 8월)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의 20퍼센트 수준이다.
러셀은 장애인의 저임금이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낸다고 지적한다. 가령 클린턴 정부의 장애인 고용 증가 정책은, 장애인 복지를 줄이고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내몰고 이 새로운 산업 예비군을 활용해 전반적인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장애인 권리 보호법의 한계
러셀은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확대하는 개혁 입법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하지만 그 한계도 날카롭게 짚는다.
‘2부 시민권과 퇴보’에서는 민권법에 기반한 미국 장애인 권리 운동의 한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다룬다.
1990년에 제정된 미국의 장애인법(ADA)에 따르면, 기업은 장애인 고용을 거부할 수 없고 고용된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제공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997년에 노동 적령기 장애인의 29퍼센트만이 풀타임 또는 파트타임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비장애인은 79퍼센트가 고용돼 있었는데 말이다. 2020년 조사에서도 장애인 고용률은 30.9퍼센트로 별로 향상되지 않았다.
우리 나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지만, 고용된 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34.6퍼센트에 불과하다. 전체 고용률 62.7퍼센트의 절반 수준이다.(2021 장애인 통계)
고용 차별에 맞서 소송을 하더라도 장애인 노동자가 이길 가능성은 많지 않다. 체제 수호 기관인 대법원이 행정부나 기업의 손해를 면해 주기 위해 얼마든지 민권법에서 장애의 정의를 제멋대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러셀은 여러 사례를 들어 사법기관이나 법 규정을 통해 차별을 끝낼 수 없음을 생생하게 설명한다.
모든 불평등 철폐
러셀은 장애인이 차별받는 까닭이 편견이나 물리적 환경 부족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속성, 이윤을 위한 착취에 장애를 가진 몸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임을 반복해서 주장한다.
“장애인법과 같은 기회균등법은 장애인의 고용 장벽을 허물 수 없다. 기회 균등이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편견 등이 제거되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물적 생산 체제이므로, 그 발전 단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되든 절대 고려하지 않는다. 현대 생산양식이 지속되는 한 장애인 차별 또한 근절되기 어려울 것이다.”(136~137쪽)
러셀은 장애와 노동뿐만 아니라 시설 격리, 제국주의 전쟁, 재해, 공공주택, 조력 자살, 우생학 등 다양한 쟁점에 대해 여러 사례와 통계를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 논리 속에서는 장애가 필연적으로 고통일 수밖에 없음을 논리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투쟁만이 장애(인) 차별, 배제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주장한다. 따라서 “정말로 ‘평등’해지려면 모든 불평등을 철폐해야 한다.”(94쪽)
장애가 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거주하고,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문제의 근원과 투쟁의 방향에 대한 통찰의 기회를 주는 이 책을 적극적으로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