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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시설사회를 멈추다》(홍은전 외, 오월의봄, 352쪽, 18,000원):
탈시설에 성공한 장애인들의 투쟁 이야기

《집으로 가는, 길: 시설사회를 멈추다》 홍은전 외, 오월의봄, 352쪽, 18,000원

《집으로 가는, 길: 시설사회를 멈추다》(홍은전 외, 오월의봄)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집(옛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의 거주인과 임직원의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향유의집은 모든 거주 장애인이 탈시설을 마친 뒤 지난해 4월 문을 닫았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돌봄은 거의 전적으로 가족에게 내맡겨져 있다. 가족이 더이상 돌볼 여력이 없어지면 대개는 ‘시설’로 보내져 그곳에서 평생을 살게 된다. 여기서 시설이란 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분리해서 수용하는 집단적 생활공간을 말한다.

시설을 운영하는 민간법인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효율성을 극대화하려고 시설을 점점 더 거대한 감옥처럼 만들었다. 시설에서 부정, 비리와 인권 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다.

투쟁의 기록

이 책은 향유의집 거주인들과 직원들의 투쟁을 담은 기록물이다. 투쟁은 이들이 재단 비리를 폭로하며 시작됐다. 재단 설립자 이부일 씨와 그 일가는 온갖 비리를 저질렀는데 “2001년부터 7년간 밝혀진 횡령액만 14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2008년 거주인들은 비대위를, 직원들은 노조를 조직해 재단에 맞서 투쟁을 벌였다. 재단 측을 비호하는 양천구청과 서울시에도 맞서 싸웠다.

이 책은 시설 거주 장애인들이 투쟁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갖게 된 경험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진짜 대단했어요. 나와 같은 장애인인데 휠체어를 타고 맨 앞에서 소리 지르고 집회 중에 휠체어로 전경 방패를 막 박고 그러더라고요. 장애인 활동가가 나보고 얌전하게 있지 말고 화를 내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들입다 박았어요. 그렇게 하니까 쾌감이 들었어요. ‘나도 할 수 있구나. 나도 정부에 내 요구를 들어달라고 항의할 수 있구나.’”(뇌병변장애가 있는 거주인 황인현 씨)

설립자 이부일 씨가 구속되고 관련자들이 처벌받았지만 투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설은 창살 없는 감옥이거든요. 시설에서의 하루는 먹고, 목욕하고, 싸고 끝이에요.” 하고 황인현 씨는 말한다. 시설 안에서 근근이 ‘숨만 쉬는’ 삶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슴 한켠에 품고 있었다.

그렇게 2009년 6월, 향유의집에서 살았던 거주인 8명이 시설을 나와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대선 가도를 달리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농성 두 달 만에 한국 최초의 탈시설 정책을 발표했다. 8명 모두 탈시설에 성공했다. 이것이 한국 탈시설 운동의 시발점이 된 ‘마로니에 8인의 투쟁’이다.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기반 주거 서비스를 요구하는 장애인 활동가들 ⓒ이미진

옛 비리 세력을 완전히 몰아낸 뒤에는 탈시설 활동가들이 이사장을 맡아 모든 거주인들을 순차적으로 자립시켰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탈시설이 마치 장애인을 대책 없이 내보내는 것인 양 왜곡하는 비난에 부딪혀야 했다고 한다.

탈시설은 그런 게 아니다. 장애인들이 시설을 나와 자립할 수 있도록 국가가 주택을 공급하고 일대일 활동 지원을 해 주는 것이다.

이 책은 중증장애인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돌봤던 직원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는 점에 특색이 있다. 향유의집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던 권영자 씨가 처음에는 탈시설을 걱정했지만 이후 자립한 거주인의 활동지원사로 일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고 한다(160~162쪽). 이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시설 거주 장애인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싸울 수 있음을 보여 주고, 향유의집 사례를 통해 ‘시설 밖에서의 삶’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