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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
더 내고 덜 받으라는 신자유주의적 ‘개혁’

지난 9월 1일 보건복지부 산하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연금 개악안을 정부에 권고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기초로 10월 말까지 정부안을 만들어,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재정계산위원회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18개인데, 현재 유력한 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현재 소득의 9퍼센트인 보험료를 15퍼센트로 인상하고 수급 연령을 65세에서 68세로 늦추는 안이다. 그럴 경우 2093년에 기금 규모는 연급 지급액의 8.7배를 유지하게 된다. 올해 초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에서도 보험료 15퍼센트 방안에 의견이 접근했었다고 한다.

재정계산위원회의 권고안이 발표되자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임금 빼고 모든 것이 다 오르는 상황에서, 지금보다 보험료를 매달 10만 원가량 더 내라니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수급 연령 연장도 열 받는 일이다. 정년이 60세라고 하나 50대가 되면 퇴직하는 노동자들이 허다하다. 재정계산위원회의 권고안은 연금을 받기까지 십수 년가량 손가락을 빨거나 아니면 나이 들어서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라도 감수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연금을 아예 못 받거나 겨우 몇 년 받다가 생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것도 복장 터지는데, 얼마 안 되는 연금 지급액 인상은 불가하다고 한다.

2023년 기준 국민연금 급여액 평균은 월 60만 원을 조금 넘는다. 이 돈으로는 노후 생활 안정은커녕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최근 OECD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노인 인구 소득빈곤율은 43.4퍼센트로 OECD 국가 평균보다 3배 이상 높다.

노인 빈곤율 1위

윤석열 정부는 집권 1년차인 지난해부터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며 보험료를 인상하고, 수급 시작 연령을 늦추는 개악을 예고해 왔다. 지난해 국회 연금개혁특위의 논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정계산위원회의 권고안은 정부의 개악 방향에 맞춰 작성된 것이다.

재정계산위원회는 미래 세대를 위해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을 최대한 늦추는 데 방점을 뒀다고 밝혔다. 이대로 가면 현재 1990년생이 65세가 되는 2055년에 적립기금이 소진돼 보험료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애초 기금이 고갈될 것을 전제로 설계됐다. 보험료를 낸 사람한테만 지급하는 방식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초기엔 연금을 받는 사람보다 내는 사람이 많아 기금이 쌓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금 수령자가 늘어나 기금이 점차 고갈될 수밖에 없다. 고갈 이후엔 현재의 건강보험처럼 매해 필요한 돈을 걷어서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돼 있었다.

따라서 진정한 쟁점은 언제 기금이 고갈되느냐가 아니라 국민연금 지급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 지급에 국가 재정이 투입돼야 하는 상황을 걱정한다. 지배자들이 재정 안정성을 걱정하는 것은 이윤을 보호하고 싶기 때문이다.

평온한 노후를 위해선 서민층의 보험료를 올릴 게 아니라 부자 증세를 요구해야 한다 9월 1일 국민연금 재정계산 공청회에 앞서 열린 연금 개악 부추기는 재정계산위원회 규탄 기자회견 ⓒ출처 참여연대

국회 예산정책처의 계산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적연금 총 지출 규모는 3.7퍼센트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았다. 이번 재정추계 결과에 따라 2055년을 전후하여 기금이 소진되더라도 그해 전체 연금 지출은 GDP 대비 7퍼센트가량에 불과하다. 이미 유럽 국가들은 연금 지출액으로 GDP의 10퍼센트 이상 쓰고 있는데도 말이다.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라는 비극적 현실은 서민층의 노후를 위해 충분히 투자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 등 기업주와 부자들의 세금을 60조 원이나 감면해 주려 한다.

부자 증세가 필요하다

한편 재정계산위원회 권고안에 대한 비난 여론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자, 국회 연금개혁특위조차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지금 와서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척하지만,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도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보험료 인상을 지지한다는 점에선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개악의 필요성이 아니라 개악의 폭이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소득대체율 인상은 빠진 채, 보험료 인상과 수급 연령 연장을 제시하면 대국민 설득이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9월 1일 기자회견을 열고 “소득대체율 상향은 빠지고 더 내고 늦게 받는, 연금개악안만 담긴 재정계산보고서를 우리는 인정할 수 없다”고 옳게 비판했다.

다만 이들은 소득대체율을 소폭 높이되 보험료율을 어느 정도 인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의당도 소득대체율 인상이 빠진 채 재정 안정 논의만 반영된 것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국민연금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보험료를 올리는 동시에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소득대체율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간 이 단체들은 국민연금의 노후 보장성뿐 아니라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앞으로 기금이 고갈될 것이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보면 소득대체율을 올릴 경우 보험료는 더 인상해야 한다는 논리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도 반드시 (현 세대 건, 미래 세대 건) 노동자들의 부담이 늘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와 기업주들이 퍼뜨리는 기금 고갈론을 수용할수록 정부의 보험료 인상 불가피론에 말려들고, 결국 국민연금의 재원을 어느 계급으로부터 거둘 것인가 하는 진정한 문제가 흐려지게 된다.

따라서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우려하며 노동자 등 서민층의 보험료를 올릴 게 아니라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 정부가 국민연금 재정을 지원하고, 기업주들의 보험료 부담을 높이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럴 때 노동계급의 폭넓은 단결을 추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