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국민연금 개악 시도와 대응 ①: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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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3월 안에 국민연금 재정추계 최종 결과를 발표하고, 오는 9월까지 ‘제5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지난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등에서 논의된 내용을 고려하면, ‘더 내고 늦게 받는’ 연금 개악을 추진할 듯하다.
조만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고 그러면 연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이 크게 증가하게 되니 그 전에 재정을 늘려 놔야 한다는 것이다.
빠듯한 살림에도 소득의 9퍼센트나 되는 연금 보험료를 내 온 노동자·서민 처지에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기금 고갈론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부가 의도적으로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밝힌 국민연금 기금적립금은 890조 원이다(2022년 12월 말 현재). 지금부터 보험료를 한 푼도 걷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현재 65세가 넘는 노인 인구 900만 명 전체에게 매달 100만 원씩 8년 2개월 동안 지급할 수 있는 돈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2022년 6월 현재 65세 이상 노인 중 433만 8000명만이 평균 39만 7000원을 받고 있을 뿐이다.
바로 이 점, 한편에 기금이 엄청나게 쌓여 있는데도 보험료 납부액에 비례해 소액의 연금만 지급하는 현실이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첫째 요인이다.
정부는 보험료 납부액에 비례해 연금을 지급함으로써 국민연금이 일종의 적금인 양 여기도록 만들어 왔다. 그러니 ‘기금 고갈’은 마치 은행이 부도나서 적금(노후 자금)을 날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제도의 애초 취지는 노후 자금을 각자 적립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책임지고 노후를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소득자에게는 더 후하게, 고소득자에게는 덜 지급하는 방식으로 부의 재분배도 이뤄지도록 했다.
정부는 이렇게 마련한 기금으로 재정을 마련하고 주식·채권·부동산 등을 사들여 경제를 떠받치는 데 사용해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노후는 각자 책임지라는 논리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기금 고갈론은 거액의 채무자가 채권자를 협박하는 꼴이다. 다 날리기 싫으면 더 내놓으라는 것이니 말이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당장 한국의 기초연금 제도도 보험료를 따로 걷지 않고 정부 재정으로 연금을 지급한다. 보험료 납부 이력과 관계 없이 노인들에게 어지간한 국민연금을 지급하는 한편, 누진세를 강화하거나 기업주들에게 추가로 보험료를 부과하면 국민연금도 그렇게 운영할 수 있다.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모두 OECD 1위를 지키고 있는 한국에서 이는 꼭 필요한 조처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민연금을 이렇게 운영하면 기금 고갈론을 이용한 보험료 인상 협박이 잘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수익자 부담 원리가 아니라 정부의 책임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역대 한국 정부가 노인 빈곤 문제를 외면하고 연금을 적금처럼 운영해 온 이유다.
정부 책임
정부가 의도적으로 불안감을 자극하는 둘째 방식은 기금 고갈이 마치 당면하고 확정된 일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앞서 1월에 발표한 ‘재정추계 시산결과’를 보더라도 “앞으로 20여 년간은 지출보다 수입이 많은 구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적립금도 계속 늘어나 “2040년 최고 1755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2055년에서야 기금이 고갈된다는 게 정부 예측이다.
무려 32년 뒤의 일이다. 게다가 이런 전망이 과연 얼마나 정확할까?
정부는 국민연금 재정 규모를 예측할 때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적용한다. 인구(출산율, 기대수명, 사망률, 국제 이주), 경제(실질경제성장률, 실질임금상승률, 실질금리, 물가상승률, 경제활동참가율, 기금투자수익률), 제도(국민연금 가입률, 지역가입자 비중, 납부예외자 비율, 지역가입자 징수율, 지역가입자 소득수준).
이 요소들 중 어떤 것들은 비교적 장기 예측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3~4년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는 한 분기 앞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다.
설령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도 반드시 노인들의 연금 지급을 중단하거나 미래 노동자들의 부담을 늘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 예측대로 2055년에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그 해 전체 연금 지출은 GDP 대비 7퍼센트가량에 불과하다. 이미 유럽 나라들은 연금 지출에 GDP의 10퍼센트가량을 쓰고 있다. 이 유럽 국가들의 노인 인구 비중이 20퍼센트를 넘지 않고, 2055년 한국의 노인 인구 비중이 50퍼센트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한국의 연금 지출 규모는 매우 적은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 것이냐 하는 데 있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이 이를 부담하게 하려고 지금부터 기금 고갈론을 내세워 보험료 인상을 강요하고 있다. 이에 맞서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생계와 노후 생활의 안정을 지키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론은 보험료 인상을 협박하는 눈속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