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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쥐꼬리만 한데 ‘더 내고 덜 받아야 한다’는 국민연금 개악

8월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윤석열은 “4대 개혁(연금·의료·교육·노동 개혁)을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며 “연금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밝혔다. 9월 4일에 구체적인 정부 개악안을 발표하고, 국회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미 윤석열이 발표한 내용만 봐도 ‘더 내고 덜 받는’ 심각한 개악이다. 21대 국회 연금특위안과 지난 5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더 내고 조금 더 받는’ 개악안도 거부하더니 한층 더 심각한 개악안을 내놓은 것이다.

윤석열이 제안한 국민연금 ‘자동안정화’는 연금을 삭감하려는 신자유주의 개악이다 ⓒ출처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윤석열이 밝힌 연금 개악의 핵심은 ‘자동안정화’ 도입과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이다.

우선, 자동안정화 장치는 인구 구조나 경제 여건의 변화,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 등에 따라 보험료와 소득대체율, 연금 지급 시기 등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서구 여러 나라들이 이미 연금 개악의 일환으로 시행 중인 연금 삭감 방안이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하 연금행동)이 다른 나라 사례들을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자동안정화 장치는 전반적으로 공적연금의 수준을 하락”시킨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연금 자동조정장치 도입 필요성 및 적용 방안’ 보고서를 봐도, 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할 경우 2030년부터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수급자의 생애 총급여가 기존보다 17퍼센트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추계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연금통계 결과’를 보면, 우리 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중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은 절반이 채 안 됐고, 평균 수령액은 41만 3000원에 그쳤다. 여기에 기초연금(평균 27만 9000원)을 더해도, 연금 수령액은 월평균 65만 원 정도다. 1인 최저생계비인 116만 원의 절반밖에 안 되는 ‘용돈 연금’ 수준인 것이다.

그나마 상당수 노인은 평균도 안 되는 연금을 받고 있고, 노인의 10퍼센트가량은 공적연금을 한 푼도 못 받는다. 이 때문에 노인빈곤율은 38.1퍼센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연금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으니 노인의 약 30퍼센트는 65세 이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

이런데도 윤석열은 연금 재정을 안정화시켜야 한다며 ‘용돈 연금’마저 깎으려 하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인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실시하는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개악이다.

한편, 윤석열은 ‘세대 간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며 보험료율 차등 인상도 추진하고 있다. 40~50대는 매년 1퍼센트포인트씩 4년에 걸쳐 보험료율을 올리고, 20~30대는 그 절반인 0.5퍼센트포인트씩 8년에 걸쳐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청년 세대를 위하는 척하지만, 이는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사악한 방안이다. 윤석열이 내놓은 방식대로 하더라도 20~30대가 더 오랫동안 높은 보험료율을 감당해야 한다. 청년 세대가 더 큰 피해를 보는 것이다.

중장년층이라고 해서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 정년이 60세라고 하나 50도 되기 전에 퇴직하는 노동자들이 허다하다. 이렇게 퇴직한 노동자들은 다시 열악한 비정규직 일자리를 찾아 생계를 겨우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2022년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 약 820만 명 중 59퍼센트가 50~60대이다. 이들의 보험료를 더 빨리 올리는 것은 노동계급의 생계난을 더욱 가중시킨다.

결국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은 방법만 달리해서 청년 노동자와 중장년 노동자의 보험료 부담을 대폭 올리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대통령실은 이번 개악으로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30년(2055년→2085년)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 기금 보호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노후생활 보장은 내팽개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금 기금이 바닥난다고 해서 연금 지급이 중단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구 여러 나라들은 이미 기금이 없어도 노령연금을 지급하고 있고, 한국의 건강보험도 기금 없이 운영 중이다.

윤석열 정부와 우파들은 2055년 즈음이 되면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된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그해 한국의 전체 연금 지출은 GDP 대비 7퍼센트가량에 불과할 것으로 추계된다. 이미 유럽 국가들은 연금 지출액으로 GDP의 10퍼센트 이상 쓰고 있는데도 말이다.

연금 기금 안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노후 생활 보장을 위해 연금을 개혁해야 한다. 그러려면 부유층과 기업주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과 보험료를 거둬 연금만으로도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차악을 최선으로 포장하는 민주당과 진보 단체들

한편, 윤석열이 연금 개악 방안을 발표하자, 민주당은 “차별과 삭감, 세대 갈등을 유발하는 연금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며 정부 안을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5월 윤석열에게 제안한 연금 개혁 방안도 개악안이었다.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은 44퍼센트나 높이고(소득의 9퍼센트에서 13퍼센트로), 연금 지급액은 10퍼센트만 올리는 안이었기 때문이다.(소득대체율을 40퍼센트에서 44퍼센트로)

예를 들어, 생애 월급 평균이 300만 원(현재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인 사람은 보험료가 (사용자가 절반 부담을 한다고 해도) 13만 5000원에서 19만 5000원으로 월 6만 원이나 늘어나지만, (예상 평균 납입 기간인 27년 납입을 전제로 했을 때) 국민연금은 80만 원에서 88만 원 정도로 늘어나는 데 그치는 방안이다. 지금 월 6만 원을 더 내고 30년 뒤에 8만 원을 더 받는 게 무슨 개혁이란 말인가. 게다가 개인이 보험료를 전부 부담하는 지역 가입자는 월 보험료가 12만 원이나 오르는 것이니 더 내는 것만큼 더 받지도 못한다.

민주당은 연금 지급액은 찔끔 늘리면서 보험료를 대폭 인상하는 것을 개혁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보험료는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대폭 낮추는 연금 개악을 주도한 바 있다.

재정 안정

더 큰 문제는 연금행동(민주노총·한국노총·참여연대 등 포함)이나 진보당·정의당 같은 주요 진보 단체들도 ‘노후 보장성’을 내세우며 보험료 인상에 찬성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단체들은 윤석열의 개악안이 ‘세대 간 갈라치기’이고, ‘노후생활 파탄’ 방안이라며 비판했다. 연금행동과 진보당은 이재명 대표의 양보 제안을 비판하고, 국민연금 지급액을 좀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도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노동자들도 보험료 인상으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왜냐하면 이들 개혁주의자들은 국가 경제를 위해 재정이나 연금 기금의 건전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금 기금 안정성을 중시하며 노동자 고통 분담을 받아들이면 우파들이 손쉽게 세대 간 갈라치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부유층·기업주의 부담 증가 논의는 쏙 빼놓고, 노동계급 중에서 청년이 더 부담해야 하는지, 중장년이 더 부담해야 하는지로 논점을 돌리기 쉽기 때문이다. 즉, 재원을 어느 계급으로부터 거둘 것인지 하는 진정한 문제가 흐려지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연금 개혁을 위해 투쟁에 나설 섟을 죽이는 일이기도 하다. 이미 생계난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상당수인데, 자기의 보험료 부담을 대폭 올리라고 투쟁에 나설 노동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진보 단체들은 의회 협상(민주당이 수용할 만한 수준)을 통해서만 연금 개혁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의회 협상을 중시하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부차적인 것으로 방치하면, 개혁 동력을 일궈 낼 수 없다. 경제가 지지부진해 자본가들이 좀체 양보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또, 민주당이 정부·여당과의 타협에 나서 더한층의 개악안을 수용하는 것을 막을 힘도 없게 된다.

최근 연금행동은 윤석열의 개악안을 비판하며 “우리에게 남은 것은 결국 연대와 투쟁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노동자 고통 분담론을 정면 비판하고, 기업주 등 부유층의 세금과 보험료 부담을 높이라고 요구하며 싸우지 않는다면 이 말은 공문구에 그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