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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을 사적 보험처럼 만들려는 안철수 등 국민의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가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을 채택한 뒤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공론화위원회가 채택한 방안은 현재 소득의 9퍼센트인 보험료율을 13퍼센트로 올리는 대신(44퍼센트 인상), 소득대체율을 4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조금(25퍼센트 인상) 늘리는 내용이다.

국민의힘과 우파 언론들은 이 방안조차 재정 안정을 무시하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개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낸 만큼 받는’ 연금 제도는 국가가 노후 생활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셈이다 ⓒ이미진

특히, 국민의힘 의원 안철수는 “MZ 세대가 짊어질 빚 폭탄” 운운하면서, “스웨덴식 확정기여(DC)형 제도로 전환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DC형 연금은 받는 연금액이 확정된 현행 확정급여형(DB)과 달리, 보험료 운용 수익에 따라 연금액이 변동하는 ‘낸 만큼 받는’ 제도다.

비슷한 취지에서 올 초에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신연금’ 방안을 내놓았다. 기존 국민연금과 청년들이 가입하는 신연금을 분리하고, 신연금은 확정기여형(DC)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국민연금을 사적 보험처럼 만들자는 주장이다.

스웨덴을 비롯해 남미의 여러 국가가 신자유주의적 조치의 일환으로 연금을 확정기여형(DC)으로 바꿨다. 그러나 “모두 투자수익률이 낮아 수급액이 개선된 사례가 없었다”(김연명 중앙대 교수).

원리상으로 보자면, 국가가 노후 생활 보장을 책임지지 않고, 금융 시장의 변동에 따라 낸 만큼도 못 받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우파 언론들은 젊은 세대 부담 운운하며 낸 만큼만 받는 연금 제도가 공정한 것인 양 주장한다. 현행 국민연금은 낸 것보다 더 많이 받아가니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젊은 세대이다. 어지간한 연금을 받으려면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하고, 이조차 세계 금융 시장의 변동에 따라 연금액이 크게 변동해 노후의 안정적인 삶이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보통 사람들의 노후 생활을 불가피하게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지, 사적 보험처럼 각자 국민연금에 투자해서 노후에 수익을 챙겨 가라고 도입한 게 아니다. 적자 운운할 것이 아니라 정부 재정을 투입해 국민연금 지급을 보조해야 하는 것이다.

우파들이 정부의 국민연금 지원을 한사코 거부하고, 낸 만큼 받는 것을 강조하는 까닭은 연금 지급으로 늘어날 재정 적자와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 늘어날 부유층 세금 부담을 걱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의 진정한 쟁점은 세대 간 분배 문제가 아니라 계급 간 분배 문제이다.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은 젊은 시절에 이 사회의 부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이들은 늙어서 평안한 삶을 보낼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한 재원은 이 사회의 부를 독차지해 온 부유층과 기업주들이 내도록 만들어야 한다.

개악안 수용하려 하는 민주당,
민주당 추수하는 진보 단체들

일부 우파들의 반발이 거세지만, 임기가 5월 말인 21대 국회 중에 연금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연금특위 소속의 여야 간사들은 5월 8일부터 7일간 영국, 스웨덴 등 유럽으로 출장을 떠나 “현지에서 합의를 시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몇몇 언론에 따르면, “여야 간사끼리는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을 이뤘다”고 한다. 공론화위원회에서 논의된 두 가지 안의 중간 지점인 ‘보험료율 12.5퍼센트, 소득대체율 45퍼센트’를 놓고 협상을 진행 중이란 얘기도 들린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중간 지점에서 절충해 “21대 국회에서 내는 돈 인상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폈다. 더 미뤘다가는 윤석열 정부하에서 연금 개악이 아예 물 건너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절충안은 공론화위원회에서 채택된 안보다 더 심각한 후퇴이다. 보험료는 38.9퍼센트 올리면서, 국민연금 지급액은 12.5퍼센트만 올리는 안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노후소득 보장’을 내세우며 보험료 대폭 인상을 주장하더니, 안정적인 노후 생활 보장과는 동떨어진 안에 찬성해 주려고 한다. 전세사기특별법, 안전운임제, 노란봉투법 등에서 국민의힘과 타협하며 지지자들의 기대를 배신했던 일을 또다시 반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보험료는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대폭 낮추는 연금 개악을 주도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민주노총·한국노총·진보당·정의당 등 주요 개혁주의(진보) 단체들이 모두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며 이번 보험료 인상안에 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도 국민연금 ‘공공성’을 위해 노동자들도 보험료 인상으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렇게 의회 협상을 중시하며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연금 개혁을 위해 투쟁에 나설 섟을 죽이는 일이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부차적인 것으로 방치하면, 민주당이 정부·여당의 연금 개악에 타협하는 것을 막을 힘이 없게 된다.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제안한 목적인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기업주 등 부유층의 세금을 늘려 정부가 연금을 보조하고, 그들의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을 높이라고 요구하며 싸워야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그들의 양보를 얻어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