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보
이재명 대표의 여당 연금안 긴급 수용:
노동자의 노후생활 보장보다 기업 이윤을 우선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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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이 제시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4퍼센트를 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5월 29일에 임기가 끝나는 21대 국회가 ‘연금개혁안’을 처리하자고 한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시간이 없으니 우리 민주당이 다 양보하겠다,” “우리 당 내에도, 시민사회 내에서도 이견들이 많지만 그로 인한 책임은 저희가 다 감수하겠다”고 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민주당은 국민연금 개혁 문제에서 거듭 후퇴를 해 왔다.
애초 민주당은 (민주노총 · 한국노총 · 정의당 · 진보당 등 ‘진보’ 노동단체들과 마찬가지로) 4월 말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에서 채택된 다수안을 지지했었다. 그러나 이 다수안도 진정한 개혁안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44퍼센트 (소득의 9퍼센트에서 13퍼센트로) 나 오르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25퍼센트만 오른다.
나중에 연금을 조금 더 받는다고 해도 당장 매달 보험료로 10만 원 가까이 더 내는 것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큰 부담이다.
민주당과 ‘진보’ 노동단체들은 ‘연금 공공성 강화,‘ ‘국민 노후생활 보장’ 등을 명분으로 노동자들의 부담이 대폭 증가하는 보험료 인상을 지지한 것이다.
그러나 노란봉투법 · 전세사기특별법 · 긴축예산안 등에서 거듭 드러났듯이, 여야간 협상을 이유로 민주당은 또다시 후퇴를 거듭했다.
지난 5월 7일 국회 연금특위는 여야간 협상 결렬을 발표했는데, 이때 국민의힘은 소득대체율 43퍼센트를, 민주당은 45퍼센트를 협상안으로 제시한 사실이 알려졌다. 보험료 44퍼센트 인상에 합의한 채 말이다. 민주당은 ‘노후생활 보장’ 명분마저 내팽개치고, 이미 문제가 많은 ‘더 내고 조금 더 받는 안’에서 추가로 소득대체율 인상 폭을 절반이나 줄인 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 또다시 이재명 대표가 소득대체율 인상 폭을 더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민주당이 거듭 후퇴한 안을 내놓고 있지만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 그럴수록 정부·여당은 더한층의 개악 수용을 촉구하며 타협을 거부하고 있다. 이미 윤석열은 “22대 국회에서 논의하자”며 더 심각한 개악안을 추진할 것을 밝혔고, 안철수·유승민 등 여권 내 유력 인물들도 근본적인 개악을 주문하며 타협 거부를 옹호했다.
더 고약한 점은 이재명 대표가 ‘채 해병 특검법안’ 재의결을 촉구하는 대규모 장외 집회를 며칠 앞둔 시점부터 국민연금 개혁 문제를 다시 띄웠다는 점이다. 한 전선에서 공세를 취하면 다른 전선에서는 타협을 위해 후퇴할 줄도 안다는 것을 지배계급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다.
또한 이재명 대표는 민주 개혁 염원 대중의 지지를 유지하려고 정부 규탄 대규모 장외 집회를 개최하면서도, 이 장외 집회가 노동계급의 사회경제적 요구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지층에게 연금 개악안 수용을 설득시킬 수 있는 정치 지도자임을 지배계급에게 보이려고 한다. 이에 호응해 국민의힘의 나경원, 윤희숙 같은 자들은 이재명 대표의 제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같은 우파 신문들도 개악안을 수용한 민주당을 칭찬하며, 정부 · 여당에게 협상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총선 패배 이후에도 윤석열은 국정 기조를 바꿀 의사가 없음을 거듭 보여 왔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는 영수회담 수용, 협치 제안 등으로 ‘화전양면’ 책략을 부려 왔다. 5월 25일에만 해도 이재명 대표는 해병대원 특검 집회에서 “장내에서든 장외에서든 이 폭정에 함께 싸워서 반드시 이기자” 하고 말하면서도 그 집회 바로 몇 시간 전 기자회견에서는 양보와 협상을 말했다.
이런 책략은 윤석열이 마치 개혁을 위해 설득될 수 있는 것인 양 광범한 대중을 혼란시키는 행위다. 이런 일관되지 않은 태도 때문에 상당수 개혁 염원 대중은 이재명 대표의 투쟁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이런 한계는 민주당의 친자본주의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포퓰리즘 전략을 구사해 온건 좌파 (소위 진보) 정치 세력과 연대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자본가 계급에게 인정받아 집권당이 되려는 중도 정당이다.
따라서 반정부 집회를 할 때조차 민주 개혁 입법을 넘어서지 않으려 하며, 첨예한 사회경제적 요구들이 분출하는 것은 극구 꺼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한적인 투쟁으로는 사회의 변화는커녕 윤석열 정부에 타격을 주는 것도 쉽지 않다.
해병대원 특검법안처럼 민주당과의 공조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민주당에 대한 필요한 비판을 삼가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반면 정의당은 이재명 대표의 후퇴를 받아들이며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방안대로 21대 국회에서 신속하게 연금 개악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국민연금 보험료는 대폭 올리지만 국민연금 수령액은 늘리지 않는 방안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번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의 소수안인 더 나쁜 개악안과 비슷한 방안을 지지했던 것이다. 이처럼 노동계급의 삶보다 의회 협상을 중시하며 민주당의 기회주의적인 후퇴를 용인하는 일들이 누적돼, 정의당은 민주당과 차별화된 선명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이 급속히 감소해 온 것이다.
한편, 진보당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민주노총·한국노총·참여연대 등이 포함) 은 이재명 대표의 후퇴를 비판하고, 위 언급된 공론화위원회에서 채택된 다수안을 통과시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은 애초에 민주당과의 공조로 보험료를 대폭 올리는 개악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국민연금의 공공성과 재정 안정을 위해 노동자들도 보험료 인상으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보험료 인상 불가피론을 받아들이면 연금의 재원을 어느 계급으로부터 거둘 것인지 하는 진정한 문제가 흐려지게 된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연금 개혁을 위해 투쟁에 나설 의지를 혼란시키게 된다. 자기의 보험료 부담을 대폭 올리라고 대중 투쟁에 나설 노동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중시하지 않게 되면, 민주당의 기회주의적인 후퇴도 막을 힘이 없게 된다. 의회 협상을 중시해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것으로는 진정한 개혁 동력을 일궈 낼 수 없다.
생계비 위기에 맞선 저항, 진정한 개혁을 위한 투쟁들이 노동계급의 고유한 힘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일어나야 사회의 변화를 성취할 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를 끌어내릴 힘도 만들어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