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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로 살펴보는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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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학에서 음모론과 극우를 연구하는 리처드 도널리가 2024년 7월 4일 어느 포럼에서 발제하고 정리한 것을 옮긴 것이다. 리처드 도널리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정말 기쁜 날입니다. 15년 만에 보수당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진 좌파들의 토론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가 음모론을 탐구한다고 하면 대개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가장 황당한 음모론을 말해 주고 싶어하더군요.
그래서 먼저 슬라이드를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마 아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혹시 아시나요?
두 번째 슬라이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음모론입니다.

폴 매카트니는 196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나머지 비틀스 활동 기간 동안 도플갱어가 그를 대신했다는 것인데요. 이걸로
세 번째 슬라이드입니다.

지구가 실제로는 속이 비어 있고, 스태퍼드셔주
이런 황당한 음모론도 있지만, 사실 최근의 음모론들은
오늘날 미국 인구의 약 3분의 1이 2020년 대선이 도널드 트럼프가 패배하도록 조작됐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요인이 됐죠.

다섯 번째 슬라이드입니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주민들이 의도적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들어와 백인들을 대체하려 한다는
그리고 팬데믹 시기의 정치를 돌이켜보면 미국의 큐어넌
큐어넌
이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음모론의 역사, 특히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큐어넌, 그레이트 리셋
먼저, 음모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겠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2018년 〈가디언〉이 영국의 음모론 확산 실태를 조사했는데, 조사 결과가 매우 흥미롭거나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영국인의 무려 60퍼센트가 음모론을 믿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죠.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 보면 이 조사의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바로 음모론의 정의 때문입니다.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 가장 널리 퍼진 음모론은
이는 명백한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오히려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이 44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게 더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이 말인즉 권력이 선출되지 않은 극소수 권력자들에게 집중돼 있다는 뜻입니다. 대기업 임원들, 고위 공무원들, 군과 경찰 수뇌부, 주요 언론사 편집장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오늘 정부가 바뀌었다 해도 이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선출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디언〉의 사례는
음모론이라는 개념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 개념을 처음 발전시킨 이론가들은 오스트리아계 영국인 분석철학자 카를 포퍼와 미국인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라는 두 자유주의자였습니다.
포퍼는 음모론적 사고방식이
그러나 음모론이 실재하며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나치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던
그러면 음모론은 뭘까요? 음모론은 주류 정치인과 언론 등이 내놓는 현실상에 대한 건전한 의심을 넘어섭니다. 음모론은 세상이 근본적으로 음모로 움직인다고 봅니다.
음모는 실재하며, 우리 사회 상층부의 권력자들에 의해 매일매일 벌어집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수가 모든 부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들의 이해관계는 대중과 크게 다릅니다. 그래서 밀실 거래와 비밀 대화가 이뤄지는 경향이 있고, 그런 경향은 자주 스캔들로 세상에 드러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그 절반도 알지 못할 겁니다.
음모론은 이러한 음모 행위
여기서 또 다른 구분이 유용합니다.
이건 아주 오래된 사회 현상입니다. 이

나환자들이 독약으로 수돗물을 오염시키려 한다는 음모론이 프랑스 남부에 퍼졌던 사건이었는데요. 결국 나환자들이 고문당하고, 나환자 집단 거주지가 파괴되고, 나환자들을 겨냥한 폭동이 벌어지는 등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 음모론은
하지만 저는 개별 사건 음모론보다는 체계 음모론이라는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체계 음모론은 사회 전체가 어떤 식으로든 음모로 지배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음모론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프랑스 혁명 시기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같은 비밀 결사에 관한 음모론에서부터 세계 유대인 음모론, 그리고 최근의 신세계질서, 그레이트 리셋, 대교체 등 다양합니다.
이런 음모론들은 수백 년 동안 거의 끊김이 없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음모론들은 이전의 체계 음모론의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이를
첫째, 자본주의입니다. 음모론의 출현은 자본주의 발전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음모론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아는 데에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자본주의는 인식하기 어려운 비인격적 힘으로 조직된 복잡한 체제이며, 그 힘의 이면에는 직접적인
따라서 사람들은 이런 힘을 더 잘 이해하려고 인격적 주체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사건 배후에서 한 개인이나 집단이 영향을 미친 탓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둘째, 혁명과 위기입니다. 음모론은 중대한 사회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 알고자 하므로, 새로운 음모론이나 운동의 등장은 혁명적 운동에 대한 반동과 연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따 살펴볼 것처럼, 근대 음모론은 사실상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됐고, 1848년 유럽 혁명 이후 새 국면을 맞이하며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이라는 형태로 발전합니다. 제1차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유대인 볼셰비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음모론이 등장하는데, 유대인과 볼셰비키가
셋째, 극우입니다. 물론 중도파나 좌파도 음모론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러나 실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음모론은 압도적으로 우파의 현상이며 반동적 현상임이 드러납니다. 프랑스 혁명 때는 가톨릭 교회와 군주정 지지자들이 음모론에 관여했고, 19세기 후반에는 귀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자들이 음모론에 관여했습니다.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파시즘이 부상하면서 나치 등과 관련 있었으며,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극우의 역사와 밀접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이제 음모론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이 사람

바루엘은 예수회 신부였고 프랑스 혁명 전에는 왕당파였습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그는 혁명 동안 프랑스를 떠나야 했습니다. 당시 가톨릭 교회가 탄압받았고 많은 주교가 체포, 처형됐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바루엘은 영국으로 도망쳤고, 여기서 가톨릭 교회가 받은 탄압을 다룬 책으로 주목받았는데, 그 책은 영국에서 프랑스 혁명 반대파의 사기를 북돋는 데 이용됐습니다.
하지만 바루엘이 남긴 변치 않을 족적은 《자코뱅주의의 역사를 보여주는 회고록》이라는 또 다른 저작입니다. 그 책에서 그는 반
바루엘은 이렇게
저는 이러한 역사를 알게 됐을 때 충격받았고 놀랐고 경악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영국에서 음모론을 접할 때마다 일루미나티가 배후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마주쳤기 때문입니다. 이는 반유대주의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 나라에서 가장 악명 높고 유명한 음모론자인 데이비드 아이크의 저작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루엘이 이런 음모론을 편 건 230년이나 됐는데도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특히, 일루미나티가 실제로 존재했던 조직이었긴 해도 프랑스 혁명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밝히기 위해서 수많은 역사적 증거를 살펴봐야 했겠지만, 일루미나티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3년 전에 이미 없어졌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바루엘이 일루미나티를 음모의 배후라고 지목한 까닭은 그들이 본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이에른 선제후국에서 활동하던 진보적 자유주의자 집단으로, 고문에 반대하고 군주정에 반대하는 등 당시 기준으로 괜찮은 가치를 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바루엘의 책은 일루미나티의 숨은 손길이 다른 비밀 결사들, 특히 프리메이슨에 미쳐서 중대한 정치적 사건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전통을 만들어 내는 기틀이 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당시
바루엘이 프리메이슨을 언급하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프리메이슨은 어느 정도 유럽 대륙의 급진적 민주주의 전통과 연관돼 있었습니다. 물론 프리메이슨은 다양한 성격을 띠는 단체였지만, 일부 측면에서는 그랬죠. 프리메이슨 회원 중에는 아이티 혁명을 이끈 투생 루베르튀르와 프랑스 혁명 지도자 조르주 당통 같은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바루엘의 저작에서 등장한 이러한 음모론은 유럽 사회의 변화를 비밀스런 세력의 활동 탓으로 돌리는 전통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당시 유럽 대륙에서는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다양한 사회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음모론들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등장, 봉건제의 전통적 권위 약화, 교회 권력의 약화, 무신론의 확산, 전통적 가부장제 가족 구조의 붕괴, 도시 대중의 영향력 증가, 그리고 이따 제가 다룰 유대인 해방과 같은 변화들이 심원한 역사적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 모두 프리메이슨이나 비밀스러운 사탄 세력 등 그림자 세력들이 미리 계획되고 실행한 음모라는 것입니다.
음모론은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낳은 영향에 대한 반동으로 발전했으며, 그 때문에 당시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일어나던 자유주의적 혁명에 맞선 또 다른 주요 반동적 이데올로기와 얽히게 됐습니다. 바로 반유대주의입니다.
유럽에서 자유주의 질서의 부상과 유대인들은 매우 관련이 깊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 질서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서였기보다는, 자유주의 질서 덕분에 유대인이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 국내 유대인들이 해방됐습니다. 1806년 나폴레옹은
그에 따라 당시 반동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을 타락의 상징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 질서가 당시 유럽의 전통적 제도와 사회적 유대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여겼는데, 유대인을 이러한 새 질서의 상징으로 봤습니다.
그러한 경향은 1873년 세계 금융 위기로 더욱 심화했는데, 그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처음 일어난 대규모 세계적 위기였으며 수십 년간 장기 불황을 초래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금융 위기를 일으킨 그림자 세력이라고, 금융 시스템과 연관지어서 더욱 비난받았습니다.
바루엘이 내놓은 음모론은 이러한 반유대주의와 아주 쉽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서
그러한 음모론의 창시자는 헤르만 괴트셰라는 인물입니다. 멋진 수염과는 달리 아주 끔찍한 사람이었던 괴트셰는 우체국 고위 공무원이었으며 1848년 혁명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첩보원이었습니다. 그의 임무는 당시 독일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혁명 지도자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데 이용할 편지를 조작해서 마치 우체국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가장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음모론자들 중 많은 자들이 실제로는 스스로 음모에 가담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만, 이 부분을 더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1868년 괴트셰는 존 랫클리프라는 가명으로 《비아리츠Biarritz》라는 책을 썼습니다. 영어식 이름을 사용하면 사람들이 더 믿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의 한 장章에서는 이스라엘 12지파의 대표자들로 이뤄진 비밀 랍비 도당이 묘지에서 모이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매우 의미심장한 장면인데요.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Prague Cemetery》에도 나와서 더 유명해진 내용입니다만, 아무튼 그들은 묘지에 모여 전 세계에 유대인 지배를 이루려는 계획과 이를 실행할 방법에 대해 논의합니다.
그 책에서는 자본주의와 비인격적인 시장의 힘이 발전하면서 미치게 된 여러 영향을 유대인 지도자들이 의도적으로 꾸민 음모 탓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유다 지파를 대표하는 유다는 자신이 숙련 장인들을 가난한 공장 노동자로 전락시켰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산업혁명이 아니라 이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시므온은 대규모 귀족 영지를 해체해서 유대인 자본가들이 지배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을 맡았습니다. 르우벤은 증권거래소를 유대인이 지배하도록 해서 모든 국민 국가와 세속 기관들이 빚을 지게 만들어 유대인의 지배하에 놓이게 하는 일을 맡았고요. 레위의 목표는 세속주의를 조장하고 성직자에 대한 적대를 부추겨 그리스도교를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괴트셰의 소설은 그 자체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음모론 문서인
이미 당시에 반유대주의는 러시아 제정을 지탱하는 핵심 기둥이었습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도망쳐야 했습니다. 당시 러시아 제정이 곧 일어날 거라고 봤던 혁명을
예를 들어,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독일에서는
한편, 미국에서는 현대적 산업 시스템의 창시자인 헨리 포드가
그때쯤에는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음모론을 주로 당시 나치나 오늘날 나치 사상을 따르는 자들과 연관 짓지만, 실제로는 당시 우파들 사이에서 훨씬 더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특히 1917년 볼셰비키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이후에는 우파는 음모론을 더욱더 받아들였죠.
두 가지 인용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첫째는 1921년의 것인데요. 그 주인공은 위컴 스티드로, 당시 〈타임스The Times〉 신문 편집장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 의정서는 무엇일까? 진짜일까? 만약 진짜라면, 어떤 악랄한 집단이 이런 계획을 꾸미고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서 음흉하게 기뻐했을까? 위조된 걸까? 만약 위조라면, 일부는 이미 실현됐고 일부는 실현되는 중일 정도로 예언처럼 왜 이렇게 섬뜩할 정도로 정확한 것일까?
하고자 하는 말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같은 해 윈스턴 처칠
유대인들 사이의 이 운동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카를 마르크스 시대부터 러시아의 트로츠키,
[헝가리의] 벨라 쿤,[독일의] 로자 룩셈부르크, 미국의 엠마 골드만에 이르기까지, 문명을 뒤엎고 미성숙한 뒤틀린 질투심과 허구적 평등을 바탕으로 사회를 뒤바꾸려는 이 세계적 음모는 꾸준히 커져 왔다. 이런 음모가 19세기 이래 벌어진 온갖 사회 전복 시도의 원동력이었다.
윈스턴 처칠이 이러한 음모론을 믿었다는 건 충격적이지만 실제 사실입니다. 이 인용문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나타난
유대인을 세계를 지배하려는 세력, 사악하고 권모술수에 능하며 온갖 사회적 병폐의 배후에 있는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게 되면 결국 인종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됩니다. 나치 독일에서 정확히 이런 일이 벌어졌고, 나치당의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은 나치당의 이데올로기와 조직 구조, 그리고 국가 운영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은 여러 구실을 했습니다. 나치 당원들과 나치 국가가 결집할 수 있도록 상대할 악역을 만들어 냈습니다. 나치는 1918년 독일 혁명 이전으로 독일 사회를 되돌리려 하며 혁명의 정당성을
나치즘
이제 현재 두드러진 극우 음모론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서, 이런 음모론들이 역사 전반, 특히 지난 200년 동안 유사한 음모론들이 한 것과 같은 기능을 어떤 식으로 수행하는지 빠르게 짚어보겠습니다.
나치즘이 몰락하고 홀로코스트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서구 사회 주류에서는 우생학, 인종학, 유대인 세계 지배론과 같은 사상들이 신뢰를 잃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노골적인 반유대주의 음모론을 공공연히 펼치는 극우 정치 세력은 줄어들었어도 오늘날까지도 이 음모론을 계속해서 새롭게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팬데믹 시기에 등장한 미국의 음모론 운동인 큐어넌은 직설적으로 유대인의 세계 음모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전의 반유대주의적 형태의 음모론을 차용합니다. 예를 들어, 세계가 부분적으로나마 로스차일드 가문의 지배하에 있다는 음모론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음모론 자체는 2010년 점령하라 운동에서도 맞닥뜨릴 수 있었고, 따라서 극우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고 어느 정도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음모론은 나치의 선전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포스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수작은 반유대주의라는 의심을 받을 때는 그럴듯하게 부인할 수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나치가 대중화한 음모론을 차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매우 중요한 현상입니다.
조지 소로스에 대해서도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는데요. 물론 조지 소로스는 서구 전역의 자유주의적 정치 운동에 자금을 대는 유대계 억만장자 금융가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극우에게 그는 자유주의적 권력층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유대인 배후조종자로 묘사됩니다.
이 포스터

인도를 통치하고 있는 극우 정당 인도인민당BJP이 제작한 포스터입니다. 여기서 조지 소로스는 인도의 거대 야당 지도자인 라훌 간디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인형술사로 묘사됩니다.
그리하여 페미니즘을 기성 권력층이 여성들에게, 특히 백인 여성들에게 아이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구워삶으려고 애쓰는 시도로 묘사합니다.
극우 조직은 이런 음모론을 통해 자신들의 적을 규정하고, 자신들이 자유주의 기성 권력층과 급진 좌파 모두에 맞서는 대안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는 등 여기서도
이런 음모론은 더는 사회의 주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발제 초반에 언급했듯이, 극우 음모론은 1920년대 반유대주의 음모론의 부상 이후 최초로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1950년대 매카시즘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소로스가 미국으로 오는 이주민 행렬과
마찬가지로, 다음 보수당 대표는 브래버먼 같은 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녀는 내무장관직을 이용해 대교체 음모론의 핵심 주장들이나,
이렇게 음모론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는데요. 이걸 바탕으로 더 많은 토론이 이뤄지길 바라고, 이 토론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시길 바랍니다. 분명 이 자리에는 음모론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걸 알려 주실, 지식 있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또한 현재 이런 음모론들과 직접 맞서 싸우신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분들도 계셨으면 하는데요. 노상 짜증 나는 경험이었겠지만, 여러분의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발제자의 토론 정리
저는 매카시즘에 대해서는 그리 아는 게 없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세계 도처, 특히 미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맞서 벌어진 반동
매카시즘
이렇게 반유대주의와 반동, 반혁명이 융합되면서 유대인 음모론으로 이어지는 다른 형태의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생겨났습니다. 예컨대 1920년대에는 쿠 클럭스 클랜
이런 종류의 주장들은 1930년대에도 계속 확산했습니다. 뉴딜 시기에는 찰스 코글린이라는 가톨릭 사제가 있었는데, 미국의 저명한 극우 인사로 대중적 극우 선전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도 뉴딜이 유대인들의 음모라고 주장했는데요. 유대인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려고 음모를 꾸민다는 무시무시한 주장이었죠.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 음모론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음모론에 대해서 여러분이 의견을 내주셔서 감사하고, 매우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분리주의 페미니스트 진영은 규모가 매우 작으면서도, 기이하고 음모론적으로 보입니다. 트랜스젠더를 놓고 제기하는 음모론은 이상하고 지독합니다. 레즈비언을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계략이라는 음모론, 아이들을 동성애자로 만들려는 계략이라는 음모론… 사실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던 흔해 빠진 주제죠. 그중 가장 메스꺼운 음모론은 엘리트 집단이 소아성애를 확산시키려는 음모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편견이 확증편향이 돼 있습니다.
분리주의 페미니스트 진영 내에서는 이것이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와도 연결돼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 미국 극우가 조직하는 방식에서 매우 중요한 특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음모론을 단순히 환멸감, 소외감, 특히 무력감의 표현이라고 일반화하는 시각을 비판하고 싶은 까닭이기도 한데요.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시각입니다. 무력감을 표현하는 상황도 있죠. 중요한 예로 9
하지만 음모론적 이데올로기에는 어떤 면에서는 힘을 주는 요소도 있습니다. 이건 특히 극우 이데올로기의 한 측면인데, 극우의 조직화 방식으로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2021년 초 미국 국회의사당 공격의 핵심에 음모론이 있었습니다. 투표용지가 조작됐다거나 개표기를 중국에 외주했다는 등의 주장이었죠.
나치가 자신들의 신념 때문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유대인을 인종차별적으로 공격하고 홀로코스트를 자행할 힘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음모론을 더 잘 일반화할 수 있는 관점은 불신입니다. 불신이 이 모든 현상의 핵심에 있으며, 특히 현시점에서 두드러집니다.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권력 기구들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시기입니다.
팬데믹 동안 이런 현상이 뚜렷해졌는데, 심지어 의학계, 각국 최고 의료 책임자들까지도 신자유주의 권력 기구들의 정책과 연루되면서 명성이 실추됐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의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겪으면서 서구 자본주의의 주요 권력 기구들 대부분의 신뢰도가 크게 실추됐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은 이렇게 대응합니다.
우리는 그런 데 관심 없습니다. 이미 신뢰를 잃을 대로 잃은 정치 체제에 신뢰를 다시 쌓아 올리는 데 관심 없습니다. 영국 사회에서는 이런 불신이 브렉시트에서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는 이민자들을 원치 않아서 브렉시트에 투표했습니다. 인종차별이 계기였죠. 그러나 또 많은 사람들은 정부에 일격을 가하려고 브렉시트에 투표했습니다. 기존 권력 기구들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고, 이 점이 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좌우했습니다.
어젯밤 총선 결과로도 불신이 드러났습니다. 단지 60퍼센트만이 투표에 참여했죠. 서구 정치의 모든 권력 기구들이 정당성 위기에 처해 있으며, 우리는 그 기구들을 지탱해 주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현 상황에 대처해야 할까요? 저는 마르크스주의가 힌트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위기의 원인이 뭔지 사람들에게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일관된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극우나 음모론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젯밤 우리는 노동당이 모래성을 커다랗게 쌓아 올리는 걸 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코빈이 2019년 총선에서 패배했을 때보다 50만 표나 적게 받았음에도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영국에서 티파티 운동이 현실화하는 순간이 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극우가 성장해 노동당에 대항하는 거대한 세력이 되는 순간 말이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엄청나게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건데, 단순히 매우 큰 문제인 수준이 아니라 우리 삶을 건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극우를 막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체제는 불평등과 고통뿐 아니라 수많은 무지와 거짓, 혼동을 낳아서 체제의 본질을 가리고,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거짓된 설명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극우를 막기 위해 체제를 떠받치고 신뢰를 회복하려 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당과 개혁주의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길을 가면서 사람들을 자본주의 체제의 분쇄로 이끌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결정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전자는 미국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고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영국에서 후자를 시도하자고 제안하고 싶고, 그렇게 해서 심각한 불평등과 고통을 낳는 이 끔찍한 체제가 분쇄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