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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극우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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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로 살펴보는 음모론

이 글은 대학에서 음모론과 극우를 연구하는 리처드 도널리가 2024년 7월 4일 어느 포럼에서 발제하고 정리한 것을 옮긴 것이다. 리처드 도널리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활동가이자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부편집자이다.

정말 기쁜 날입니다. 15년 만에 보수당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진 좌파들의 토론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토론회는 보수당의 총선 참패 직후 열렸다.]

제가 음모론을 탐구한다고 하면 대개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가장 황당한 음모론을 말해 주고 싶어하더군요.

그래서 먼저 슬라이드를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마 아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혹시 아시나요? “새들은 진짜가 아니다[거리의 새들이 사실은 정부에서 만든 드론이라고 주장하는 패러디 음모론].” 재밌네요, 아주 재밌는데요. 실제로 믿는 사람은 없거나 적어도 그리 많지는 않은, 일종의 장난이기 때문이죠.

두 번째 슬라이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음모론입니다.

폴 매카트니는 196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나머지 비틀스 활동 기간 동안 도플갱어가 그를 대신했다는 것인데요. 이걸로 ‘개구리 노래’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폴 매카트니가 1984년 발표한 단편 애니메이션 주제곡 ‘We All Stand Together’(일명 ‘개구리 노래’)가 너무 독특하고 평소 스타일과는 다른 곡이어서, 이를 진짜 폴 매카트니가 아니라는 증거로 음모론자들이 들고 있다는 뜻 ─ 역자]

세 번째 슬라이드입니다.

지구가 실제로는 속이 비어 있고, 스태퍼드셔주(州)의 리치필드라는 도시에 있는 입구를 통해 그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음모론인데요,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황당한 음모론도 있지만, 사실 최근의 음모론들은 이따 지난 200년을 살펴보면서 설명하겠지만, 특히 오늘날에는 이런 사소한 음모론과는 달리 사회에 매우 깊숙이 파고들어 사악한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 인구의 약 3분의 1이 2020년 대선이 도널드 트럼프가 패배하도록 조작됐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요인이 됐죠.(네 번째 슬라이드)

‘문화 마르크스주의’라는 음모론이 있습니다. 이는 원래 나치가 ‘문화 볼셰비즘’이라고 부르며 만들어 냈던 음모론입니다. 유대인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이 서구 문명을 전복하기 위해 자유주의 정치 세력을 통해 암약하고 있다는 주장이죠. 이런 주장은 수얼라 브래버먼, 미리엄 케이츠 같은 주요 보수당 정치인들, 그리고 미국 공화당의 유력 인사 테드 크루즈 같은 사람들이 되풀이해 왔습니다.

다섯 번째 슬라이드입니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주민들이 의도적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들어와 백인들을 대체하려 한다는 ‘대교체’ 음모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음모론은 이제 극우뿐 아니라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주류 우파 정당들마저 급진화시키는 핵심 이데올로기가 됐습니다.

그리고 팬데믹 시기의 정치를 돌이켜보면 미국의 큐어넌(QAnon)이나 전 세계 백신 반대 운동과 같은 음모론적 운동이 정치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큐어넌

이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음모론의 역사, 특히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큐어넌, 그레이트 리셋[전 세계 엘리트 집단이 코로나19를 이용해 대중의 자유와 사유재산을 빼앗고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려 한다는 음모론], ‘대교체’ 등으로 이어지는 음모론의 전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음모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겠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2018년 〈가디언〉이 영국의 음모론 확산 실태를 조사했는데, 조사 결과가 매우 흥미롭거나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영국인의 무려 60퍼센트가 음모론을 믿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죠.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 보면 이 조사의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바로 음모론의 정의 때문입니다.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 가장 널리 퍼진 음모론은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지만 실제로는 소수가 이 나라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었고, 영국인의 44퍼센트가 이를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음모론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정확히 말한 것이죠.

이는 명백한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오히려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이 44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게 더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이 말인즉 권력이 선출되지 않은 극소수 권력자들에게 집중돼 있다는 뜻입니다. 대기업 임원들, 고위 공무원들, 군과 경찰 수뇌부, 주요 언론사 편집장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오늘 정부가 바뀌었다 해도 이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선출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디언〉의 사례는 ‘음모론’이라는 개념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돼 있음을 보여줍니다. 20세기 중반 이 개념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의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음모론이라는 개념은 줄곧 정치 담론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왔습니다.

음모론이라는 개념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 개념을 처음 발전시킨 이론가들은 오스트리아계 영국인 분석철학자 카를 포퍼와 미국인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라는 두 자유주의자였습니다.

포퍼는 음모론적 사고방식이 ‘열린 사회’의 적, 또는 ‘열린 사회’를 반대하는 자들의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음모론자라고 여겼는데, 뭐 반(反)마르크스주의로 유명한 그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겠죠.

그러나 음모론이 실재하며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나치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던 ‘유대인이 세계 지배를 획책하고 있으므로 절멸시켜야 한다’는 음모론이나, 전혀 다른 맥락에서 ‘트로츠키주의자와 파시스트의 비밀 동맹이 소련의 5개년 계획을 무너뜨리고 소련 사회주의를 파괴하려 한다’는 스탈린주의 음모론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이러한 음모론들은 홀로코스트, 스탈린의 대숙청과 같이 실제의 끔찍한 범죄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 음모론은 뭘까요? 음모론은 주류 정치인과 언론 등이 내놓는 현실상에 대한 건전한 의심을 넘어섭니다. 음모론은 세상이 근본적으로 음모로 움직인다고 봅니다.

음모는 실재하며, 우리 사회 상층부의 권력자들에 의해 매일매일 벌어집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수가 모든 부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들의 이해관계는 대중과 크게 다릅니다. 그래서 밀실 거래와 비밀 대화가 이뤄지는 경향이 있고, 그런 경향은 자주 스캔들로 세상에 드러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그 절반도 알지 못할 겁니다.

음모론은 이러한 음모 행위(밀실 거래, 막후 접촉)를 사회의 핵심 작동 원리로 봅니다. 그래서 시스템과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 앞뒤가 맞게 설명하기보다는, 사회 상층부에 소수의 폐쇄적 엘리트 집단이 있어서 그들이 음모를 꾸미고 서로 물밑 접촉하는 식으로 해서 사회의 나머지를 직접 지배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또 다른 구분이 유용합니다. ‘개별 사건 음모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음모론들에 사람들의 많은 관심이 모이는데요. 달 착륙이나 존 F 케네디 암살처럼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을 말합니다.

이건 아주 오래된 사회 현상입니다. 이 [일곱 번째] 슬라이드는 1321년 나환자들의 음모를 묘사한 그림입니다.

나환자들이 독약으로 수돗물을 오염시키려 한다는 음모론이 프랑스 남부에 퍼졌던 사건이었는데요. 결국 나환자들이 고문당하고, 나환자 집단 거주지가 파괴되고, 나환자들을 겨냥한 폭동이 벌어지는 등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 음모론은 ‘피의 중상모략’이라는 음모론과 매우 유사합니다. 중세 시대 그리스도교도 아이가 실종되면 그 지역 유대인들이 비난받았습니다. 아이는 유대인들에게 납치됐으며 유대인들이 사탄의 교사를 받아 악마적 제의에 이용하려고 한 거라는 식의 소문이 퍼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별 사건 음모론보다는 체계 음모론이라는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체계 음모론은 사회 전체가 어떤 식으로든 음모로 지배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음모론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프랑스 혁명 시기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같은 비밀 결사에 관한 음모론에서부터 세계 유대인 음모론, 그리고 최근의 신세계질서, 그레이트 리셋, 대교체 등 다양합니다.

이런 음모론들은 수백 년 동안 거의 끊김이 없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음모론들은 이전의 체계 음모론의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이를 ‘음모론 전통’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자본주의입니다. 음모론의 출현은 자본주의 발전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음모론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아는 데에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자본주의는 인식하기 어려운 비인격적 힘으로 조직된 복잡한 체제이며, 그 힘의 이면에는 직접적인[매개물 없이 바로 연결되는 역자] 주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런 힘을 더 잘 이해하려고 인격적 주체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사건 배후에서 한 개인이나 집단이 영향을 미친 탓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둘째, 혁명과 위기입니다. 음모론은 중대한 사회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 알고자 하므로, 새로운 음모론이나 운동의 등장은 혁명적 운동에 대한 반동과 연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따 살펴볼 것처럼, 근대 음모론은 사실상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됐고, 1848년 유럽 혁명 이후 새 국면을 맞이하며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이라는 형태로 발전합니다. 제1차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유대인 볼셰비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음모론이 등장하는데, 유대인과 볼셰비키가 [세계 지배 역자] 음모에 연루돼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음모론은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는데, 음모론이 새롭게 변화해 파도처럼 밀려오는 때는 자본주의의 위기, 기술 혁신, 급속한 사회 변화, 금융 위기 등 자본주의가 낳는 온갖 유형의 사회적 혼란과 관련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따 더 설명하겠습니다.

셋째, 극우입니다. 물론 중도파나 좌파도 음모론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푸틴이 트럼프를 대통령직에 앉혔다’는 식으로요.

그러나 실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음모론은 압도적으로 우파의 현상이며 반동적 현상임이 드러납니다. 프랑스 혁명 때는 가톨릭 교회와 군주정 지지자들이 음모론에 관여했고, 19세기 후반에는 귀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자들이 음모론에 관여했습니다.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파시즘이 부상하면서 나치 등과 관련 있었으며,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극우의 역사와 밀접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이제 음모론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이 사람(슬라이드)은 오귀스탱 바루엘이라는 사람입니다.

바루엘은 예수회 신부였고 프랑스 혁명 전에는 왕당파였습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그는 혁명 동안 프랑스를 떠나야 했습니다. 당시 가톨릭 교회가 탄압받았고 많은 주교가 체포, 처형됐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바루엘은 영국으로 도망쳤고, 여기서 가톨릭 교회가 받은 탄압을 다룬 책으로 주목받았는데, 그 책은 영국에서 프랑스 혁명 반대파의 사기를 북돋는 데 이용됐습니다.

하지만 바루엘이 남긴 변치 않을 족적은 《자코뱅주의의 역사를 보여주는 회고록》이라는 또 다른 저작입니다. 그 책에서 그는 반(反)사회적 음모가 있었다는 음모론을 펴는데, 프랑스 혁명은 민중이 군주정과 귀족정에 반대해서 또 프랑스 지배계급이 엄청나게 호화롭고 오만하게 행동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소수의 음모가 집단이 배후에서 조종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루엘은 이렇게 [소수 음모 집단이 역자] 혁명을 부추긴 데는 그저 군주정을 무너뜨리거나 프랑스에 공화국을 세우려 한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세계를 무정부 상태로 몰아넣으려는 훨씬 더 사악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바루엘은 이러한 음모의 중심에 ‘일루미나티’라는 단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역사를 알게 됐을 때 충격받았고 놀랐고 경악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영국에서 음모론을 접할 때마다 일루미나티가 배후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마주쳤기 때문입니다. 이는 반유대주의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 나라에서 가장 악명 높고 유명한 음모론자인 데이비드 아이크의 저작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루엘이 이런 음모론을 편 건 230년이나 됐는데도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특히, 일루미나티가 실제로 존재했던 조직이었긴 해도 프랑스 혁명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밝히기 위해서 수많은 역사적 증거를 살펴봐야 했겠지만, 일루미나티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3년 전에 이미 없어졌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바루엘이 일루미나티를 음모의 배후라고 지목한 까닭은 그들이 본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이에른 선제후국에서 활동하던 진보적 자유주의자 집단으로, 고문에 반대하고 군주정에 반대하는 등 당시 기준으로 괜찮은 가치를 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바루엘의 책은 일루미나티의 숨은 손길이 다른 비밀 결사들, 특히 프리메이슨에 미쳐서 중대한 정치적 사건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전통을 만들어 내는 기틀이 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당시 ‘비밀 결사’라고 할 때 실제로 비밀스럽게 활동한 단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19세기 초에 비밀 결사란 국가나 교회 같은 주요 사회 기관에 속하지 않은 독립적 단체를 뜻했습니다. 이런 단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자유주의적 사상가들이 모인 곳이었죠. 따라서 비밀 결사와 실제로 연관되는 건 프랑스 혁명의 배후에는 자유주의적 혁명 사상이라는 훨씬 더 어둡고 깊은 뭔가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바루엘이 프리메이슨을 언급하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프리메이슨은 어느 정도 유럽 대륙의 급진적 민주주의 전통과 연관돼 있었습니다. 물론 프리메이슨은 다양한 성격을 띠는 단체였지만, 일부 측면에서는 그랬죠. 프리메이슨 회원 중에는 아이티 혁명을 이끈 투생 루베르튀르와 프랑스 혁명 지도자 조르주 당통 같은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바루엘의 저작에서 등장한 이러한 음모론은 유럽 사회의 변화를 비밀스런 세력의 활동 탓으로 돌리는 전통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당시 유럽 대륙에서는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다양한 사회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음모론들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등장, 봉건제의 전통적 권위 약화, 교회 권력의 약화, 무신론의 확산, 전통적 가부장제 가족 구조의 붕괴, 도시 대중의 영향력 증가, 그리고 이따 제가 다룰 유대인 해방과 같은 변화들이 심원한 역사적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 모두 프리메이슨이나 비밀스러운 사탄 세력 등 그림자 세력들이 미리 계획되고 실행한 음모라는 것입니다.

음모론은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낳은 영향에 대한 반동으로 발전했으며, 그 때문에 당시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일어나던 자유주의적 혁명에 맞선 또 다른 주요 반동적 이데올로기와 얽히게 됐습니다. 바로 반유대주의입니다.

유럽에서 자유주의 질서의 부상과 유대인들은 매우 관련이 깊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 질서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서였기보다는, 자유주의 질서 덕분에 유대인이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 국내 유대인들이 해방됐습니다. 1806년 나폴레옹은 ‘대(大)산헤드린’이라 불리는 회의를 소집해 유대인들을 프랑스 사회에 통합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내내 유대인들이 게토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과정이 이뤄졌습니다.

그에 따라 당시 반동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을 타락의 상징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 질서가 당시 유럽의 전통적 제도와 사회적 유대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여겼는데, 유대인을 이러한 새 질서의 상징으로 봤습니다.

그러한 경향은 1873년 세계 금융 위기로 더욱 심화했는데, 그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처음 일어난 대규모 세계적 위기였으며 수십 년간 장기 불황을 초래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금융 위기를 일으킨 그림자 세력이라고, 금융 시스템과 연관지어서 더욱 비난받았습니다.

바루엘이 내놓은 음모론은 이러한 반유대주의와 아주 쉽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서 ‘유대인 세계 지배론’이라고 부르는다소 이상한 이름이긴 하지만음모론, 즉 유대인들이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비밀리에 활동한다는 생각이 실제로 힘을 얻게 된 것은 [바루엘이 활동한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이 아니라]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그러한 음모론의 창시자는 헤르만 괴트셰라는 인물입니다. 멋진 수염과는 달리 아주 끔찍한 사람이었던 괴트셰는 우체국 고위 공무원이었으며 1848년 혁명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첩보원이었습니다. 그의 임무는 당시 독일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혁명 지도자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데 이용할 편지를 조작해서 마치 우체국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가장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음모론자들 중 많은 자들이 실제로는 스스로 음모에 가담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만, 이 부분을 더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1868년 괴트셰는 존 랫클리프라는 가명으로 《비아리츠Biarritz》라는 책을 썼습니다. 영어식 이름을 사용하면 사람들이 더 믿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의 한 장章에서는 이스라엘 12지파의 대표자들로 이뤄진 비밀 랍비 도당이 묘지에서 모이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매우 의미심장한 장면인데요.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Prague Cemetery》에도 나와서 더 유명해진 내용입니다만, 아무튼 그들은 묘지에 모여 전 세계에 유대인 지배를 이루려는 계획과 이를 실행할 방법에 대해 논의합니다.

그 책에서는 자본주의와 비인격적인 시장의 힘이 발전하면서 미치게 된 여러 영향을 유대인 지도자들이 의도적으로 꾸민 음모 탓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유다 지파를 대표하는 유다는 자신이 숙련 장인들을 가난한 공장 노동자로 전락시켰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산업혁명이 아니라 이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시므온은 대규모 귀족 영지를 해체해서 유대인 자본가들이 지배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을 맡았습니다. 르우벤은 증권거래소를 유대인이 지배하도록 해서 모든 국민 국가와 세속 기관들이 빚을 지게 만들어 유대인의 지배하에 놓이게 하는 일을 맡았고요. 레위의 목표는 세속주의를 조장하고 성직자에 대한 적대를 부추겨 그리스도교를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괴트셰의 소설은 그 자체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음모론 문서인 ‘시온 장로 의정서’의 토대가 됐습니다. ‘의정서’는 오흐라나[제정 러시아의 보안 경찰 역자]가 직접 썼다기보다는 여러 글을 짜깁기해서 만들었는데요. 오흐라나는 1917년 소비에트 혁명으로 무너지기 전 제정 러시아의 비밀정보기관이었습니다. 그들은 괴트셰의 소설 속 요소들을 가져와 다른 반유대주의적 글과 섞었습니다. 1902~1903년경에 벌어진 일로, 그들은 자유주의, 사회주의, 여성 해방 운동, 세속주의 같은 세력이 제정 러시아에서 부흥하던 것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이 사회 세력들은 전부 차르와 귀족들의 지배에 반대했습니다. ‘시온 장로 의정서’는 유대인이 이런 사회 세력들을 전부 조종해서 러시아 사회를 파괴하고 러시아 국민을 지배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데 이용됐습니다.

이미 당시에 반유대주의는 러시아 제정을 지탱하는 핵심 기둥이었습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도망쳐야 했습니다. 당시 러시아 제정이 곧 일어날 거라고 봤던 혁명을 ‘의정서’가 미리 폄하하고 의심스럽게 만들려고 제작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실제로 혁명이 1905년에 일어나 차르 체제를 심각하게 위협했죠.

‘의정서’는 이내 여러 언어로 번역돼 유럽과 북아메리카 전역에서 출판됐습니다. 그리고 국가별 상황에 따라 이 점이 꽤 흥미로운데요 조금씩 다른 역할을 극우 이데올로기에서 맡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독일에서는 ‘의정서’가 대중적으로 널리 퍼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독일이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유를 설명해 줬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사회주의 운동을 조종하고, 여성 해방 활동가들을 조종하고, 노동계급을 조종해서 카이저를 무너뜨리고 전쟁을 끝내서 유대인들이 독일을 장악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한편, 미국에서는 현대적 산업 시스템의 창시자인 헨리 포드가 ‘시온 장로 의정서’를 널리 퍼뜨렸습니다. 헨리 포드는 포드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 자로 유명하죠. 그는 〈디어본 인디펜던트〉를 사들여 ‘시온 장로 의정서’를 연재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 유대인》이라는 책도 출판했습니다. 헨리 포드는 ‘의정서’를 이용해 미국의 청교도적 가치관이 무너지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진행 중이던 산업혁명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의 영향 때문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때쯤에는 ‘의정서’에 담긴 유대인 세계 지배론이 서구 세계 전역에 광범하게 퍼지게 됐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음모론을 주로 당시 나치나 오늘날 나치 사상을 따르는 자들과 연관 짓지만, 실제로는 당시 우파들 사이에서 훨씬 더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특히 1917년 볼셰비키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이후에는 우파는 음모론을 더욱더 받아들였죠.

두 가지 인용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첫째는 1921년의 것인데요. 그 주인공은 위컴 스티드로, 당시 〈타임스The Times〉 신문 편집장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의정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의정서는 무엇일까? 진짜일까? 만약 진짜라면, 어떤 악랄한 집단이 이런 계획을 꾸미고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서 음흉하게 기뻐했을까? 위조된 걸까? 만약 위조라면, 일부는 이미 실현됐고 일부는 실현되는 중일 정도로 예언처럼 왜 이렇게 섬뜩할 정도로 정확한 것일까?

하고자 하는 말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의정서’가 위조된 것이라고 해도 꽤 정확하다는 거죠.

같은 해 윈스턴 처칠[정부 각료 역자]은 유대인들의 소위 ‘역사적 볼셰비즘’에 관해 글을 썼는데, 그 글에서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명적 노동계급 운동과 관련된 주요 유대인 지도자들을 나열하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들 사이의 이 운동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카를 마르크스 시대부터 러시아의 트로츠키, [헝가리의] 벨라 쿤, [독일의] 로자 룩셈부르크, 미국의 엠마 골드만에 이르기까지, 문명을 뒤엎고 미성숙한 뒤틀린 질투심과 허구적 평등을 바탕으로 사회를 뒤바꾸려는 이 세계적 음모는 꾸준히 커져 왔다. 이런 음모가 19세기 이래 벌어진 온갖 사회 전복 시도의 원동력이었다.

윈스턴 처칠이 이러한 음모론을 믿었다는 건 충격적이지만 실제 사실입니다. 이 인용문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나타난 ‘유대인 볼셰비즘’이라는 음모론을 잘 보여 주는데, 유대인들이 러시아 혁명 배후에 있는 악의 세력이라는 주장이죠. 이것도 혁명의 격랑이 몰아친 이후에 당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형태의 음모론이 또다시 등장한 사례입니다.

유대인을 세계를 지배하려는 세력, 사악하고 권모술수에 능하며 온갖 사회적 병폐의 배후에 있는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게 되면 결국 인종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됩니다. 나치 독일에서 정확히 이런 일이 벌어졌고, 나치당의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은 나치당의 이데올로기와 조직 구조, 그리고 국가 운영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은 여러 구실을 했습니다. 나치 당원들과 나치 국가가 결집할 수 있도록 상대할 악역을 만들어 냈습니다. 나치는 1918년 독일 혁명 이전으로 독일 사회를 되돌리려 하며 혁명의 정당성을 [유대인 음모 탓에 일어났다고] 훼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둘 다 유대인 음모에서 비롯된 두 가지 측면이라고 나치가 주장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나치당의 기반이 대자본과 노동계급 운동 둘 다에 반대하는 중간계급이었다는 점을 볼 때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음모론은 나치 운동을 조직할 수 있는 일관된 이데올로기적 틀을 제공했습니다.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은 나치 이데올로기와 나치 당 조직 방식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나치즘

이제 현재 두드러진 극우 음모론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서, 이런 음모론들이 역사 전반, 특히 지난 200년 동안 유사한 음모론들이 한 것과 같은 기능을 어떤 식으로 수행하는지 빠르게 짚어보겠습니다.

나치즘이 몰락하고 홀로코스트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서구 사회 주류에서는 우생학, 인종학, 유대인 세계 지배론과 같은 사상들이 신뢰를 잃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노골적인 반유대주의 음모론을 공공연히 펼치는 극우 정치 세력은 줄어들었어도 오늘날까지도 이 음모론을 계속해서 새롭게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팬데믹 시기에 등장한 미국의 음모론 운동인 큐어넌은 직설적으로 유대인의 세계 음모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전의 반유대주의적 형태의 음모론을 차용합니다. 예를 들어, 세계가 부분적으로나마 로스차일드 가문의 지배하에 있다는 음모론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음모론 자체는 2010년 점령하라 운동에서도 맞닥뜨릴 수 있었고, 따라서 극우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고 어느 정도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음모론은 나치의 선전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포스터(슬라이드)는 〈로스차일드 가문〉이라는 나치 선전 영화로, 로스차일드 가문이 세계 정복을 꾀해 온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수작은 반유대주의라는 의심을 받을 때는 그럴듯하게 부인할 수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나치가 대중화한 음모론을 차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매우 중요한 현상입니다.

조지 소로스에 대해서도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는데요. 물론 조지 소로스는 서구 전역의 자유주의적 정치 운동에 자금을 대는 유대계 억만장자 금융가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극우에게 그는 자유주의적 권력층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유대인 배후조종자로 묘사됩니다.

이 포스터(슬라이드)는 서구 밖의 사례인데요.

인도를 통치하고 있는 극우 정당 인도인민당BJP이 제작한 포스터입니다. 여기서 조지 소로스는 인도의 거대 야당 지도자인 라훌 간디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인형술사로 묘사됩니다.

‘대교체’ 음모론은 엘리트 집단 주로 소로스가 주도자로 지목되는데요 이 유럽과 북미에 사는 선주민[백인]을 대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백인들을 유입시키고 있다는 음모론입니다. 이 음모론은 소로스나 유대인과 명시적으로 연관을 짓지 않더라도, 초창기 반유대주의 음모론의 기본적 뼈대와 기능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교체’ 음모론 덕분에 극우는 자본주의 기성 권력층과 좌파 둘 다 국경 개방을 지지하기 때문에 사실상 같은 편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해협을 건너려는 난민들에게 그런 주장을 해보세요.

‘대교체’ 음모론은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 발생하는 더 다양한 사회 현상을 설명하려 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서구 나라들의 출산율이 낮은 까닭이 노동계급의 사회적 조건이 악화되고 여성의 자유가 신장됐기 때문이 아니라, 백인 인구를 감소시켜 비백인들로 대체하려는 의도적 전략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거죠.

그리하여 페미니즘을 기성 권력층이 여성들에게, 특히 백인 여성들에게 아이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구워삶으려고 애쓰는 시도로 묘사합니다.

극우 조직은 이런 음모론을 통해 자신들의 적을 규정하고, 자신들이 자유주의 기성 권력층과 급진 좌파 모두에 맞서는 대안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는 등 여기서도 [극우 음모론의] 기본적인 기능과 뼈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음모론은 더는 사회의 주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발제 초반에 언급했듯이, 극우 음모론은 1920년대 반유대주의 음모론의 부상 이후 최초로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1950년대 매카시즘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소로스가 미국으로 오는 이주민 행렬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참가자들에게 돈을 쥐여주고 있다고 비난한 도널드 트럼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이 발제는 트럼프 재선 4개월 전에 행해진 것이다. 역자]

마찬가지로, 다음 보수당 대표는 브래버먼 같은 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녀는 내무장관직을 이용해 대교체 음모론의 핵심 주장들이나, ‘문화 마르크스주의’ 등 다른 음모론도 널리 퍼뜨려 왔습니다.

이렇게 음모론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는데요. 이걸 바탕으로 더 많은 토론이 이뤄지길 바라고, 이 토론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시길 바랍니다. 분명 이 자리에는 음모론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걸 알려 주실, 지식 있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또한 현재 이런 음모론들과 직접 맞서 싸우신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분들도 계셨으면 하는데요. 노상 짜증 나는 경험이었겠지만, 여러분의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발제자의 토론 정리

저는 매카시즘에 대해서는 그리 아는 게 없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세계 도처, 특히 미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맞서 벌어진 반동[1917~1920년의 제1차 적색공포 역자]이 반유대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매카시즘[제2차 적색공포 역자] 이전 미국을 생각해 본다면, 제1차 적색공포 시기에 팔머 급습이라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때 미국 전역에서 수천 명의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들이 대대적인 탄압을 받으며 체포됐고, 동유럽에서 반유대주의를 피해 최근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이 특히 표적이 됐습니다.

이렇게 반유대주의와 반동, 반혁명이 융합되면서 유대인 음모론으로 이어지는 다른 형태의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생겨났습니다. 예컨대 1920년대에는 쿠 클럭스 클랜(KKK)이 부활했는데, 전성기에는 회원이 500만 명이나 됐습니다. 맞습니다. 1920년대에 회원이 500만 명이나 됐습니다. KKK는 미국에서 성장한 전통적 반反가톨릭 음모론[주로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인 가톨릭 신자들이 미국이 아니라 교황에게 충성하고 미국의 가치를 훼손하려 한다는 음모론 역자]과 유대인 볼셰비즘 음모론의 핵심 주장들을 결합시켰습니다.

이런 종류의 주장들은 1930년대에도 계속 확산했습니다. 뉴딜 시기에는 찰스 코글린이라는 가톨릭 사제가 있었는데, 미국의 저명한 극우 인사로 대중적 극우 선전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도 뉴딜이 유대인들의 음모라고 주장했는데요. 유대인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려고 음모를 꾸민다는 무시무시한 주장이었죠.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 음모론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음모론에 대해서 여러분이 의견을 내주셔서 감사하고, 매우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분리주의 페미니스트 진영은 규모가 매우 작으면서도, 기이하고 음모론적으로 보입니다. 트랜스젠더를 놓고 제기하는 음모론은 이상하고 지독합니다. 레즈비언을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계략이라는 음모론, 아이들을 동성애자로 만들려는 계략이라는 음모론… 사실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던 흔해 빠진 주제죠. 그중 가장 메스꺼운 음모론은 엘리트 집단이 소아성애를 확산시키려는 음모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편견이 확증편향이 돼 있습니다.

분리주의 페미니스트 진영 내에서는 이것이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와도 연결돼 있습니다. ‘심록저항군’이라는 작은 단체는 반유대주의적인 단체인데, 트랜스젠더 문제는 본질적으로 트랜스휴머니즘, 즉 사람들을 로봇으로 만드는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을 로봇으로 만들려는 유대인들의 음모가 있다는 거죠.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있는 저 자신이 점점 어리석어지는 것 같네요. 그런데 이런 음모론이 정말 흥미로운 까닭은 극우 음모론의 한 흥미로운 측면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극우 음모론은 사회 상황이 악화할 때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을 두고 사회 상황 배후에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에 맞서 일어난 사회 세력들 배후에도 음모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성 운동 배후에도, 페미니즘 배후에도, 노동운동 배후에도, 미국의 비판적 인종 이론 배후에도 음모가 있다는 것이죠.

이것이 현재 미국 극우가 조직하는 방식에서 매우 중요한 특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이든 임기 역자] 4년간 사회 기층에서의 극우의 선동이 지속돼 왔습니다. 학교운영위원회에 찾아가 트랜스젠더 포용적인 교육에 반대하고, 미국 역사 교육을 ‘비판적 인종 이론’이라며 공격했습니다. 그들이 알지 모르겠지만, 미국 역사는 상당히 인종차별적입니다. 이 주제도 따로 발제를 할 만한 정도이지만, 다른 분들께 맡기겠습니다. 극우 이데올로기는 이런 진보적 사회 세력과 운동을 적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규정합니다. 이것이 음모론이 극우 이데올로기 안에서 작동하는 핵심 방식입니다. 극우 사회운동을 결속시키고, 극우 정당을 결속시키는 방식인 거죠.

제가 음모론을 단순히 환멸감, 소외감, 특히 무력감의 표현이라고 일반화하는 시각을 비판하고 싶은 까닭이기도 한데요.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시각입니다. 무력감을 표현하는 상황도 있죠. 중요한 예로 9·11 테러 음모론이 있습니다. 세계에는 단 하나의 세력만이 존재하고, 그 세력은 미국 정부 배후의 비밀 조직이며, 일반인은 비행기를 탈취해 건물에 충돌시킬 수 없다는 생각은 극도의 무력감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세상을 전혀 통제할 수 없고 그저 ‘그들’이 좌지우지할 뿐이라는 무력감을 보여 주는 것이죠.

하지만 음모론적 이데올로기에는 어떤 면에서는 힘을 주는 요소도 있습니다. 이건 특히 극우 이데올로기의 한 측면인데, 극우의 조직화 방식으로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2021년 초 미국 국회의사당 공격의 핵심에 음모론이 있었습니다. 투표용지가 조작됐다거나 개표기를 중국에 외주했다는 등의 주장이었죠.

나치가 자신들의 신념 때문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유대인을 인종차별적으로 공격하고 홀로코스트를 자행할 힘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음모론을 더 잘 일반화할 수 있는 관점은 불신입니다. 불신이 이 모든 현상의 핵심에 있으며, 특히 현시점에서 두드러집니다.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권력 기구들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시기입니다.

팬데믹 동안 이런 현상이 뚜렷해졌는데, 심지어 의학계, 각국 최고 의료 책임자들까지도 신자유주의 권력 기구들의 정책과 연루되면서 명성이 실추됐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의 신자유주의화 과정을 겪으면서 서구 자본주의의 주요 권력 기구들 대부분의 신뢰도가 크게 실추됐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은 이렇게 대응합니다. ‘권력 기관들을 수호해야 한다. 팩트체커들을 동원해야 한다. 누군가 음모론을 퍼뜨릴 때마다 사실 확인을 해서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데 관심 없습니다. 이미 신뢰를 잃을 대로 잃은 정치 체제에 신뢰를 다시 쌓아 올리는 데 관심 없습니다. 영국 사회에서는 이런 불신이 브렉시트에서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는 이민자들을 원치 않아서 브렉시트에 투표했습니다. 인종차별이 계기였죠. 그러나 또 많은 사람들은 정부에 일격을 가하려고 브렉시트에 투표했습니다. 기존 권력 기구들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고, 이 점이 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좌우했습니다.

어젯밤 총선 결과로도 불신이 드러났습니다. 단지 60퍼센트만이 투표에 참여했죠. 서구 정치의 모든 권력 기구들이 정당성 위기에 처해 있으며, 우리는 그 기구들을 지탱해 주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현 상황에 대처해야 할까요? 저는 마르크스주의가 힌트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개별 사건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건들 해결의 실마리 제공도 마르크스주의의 일부이지만요. 그러나 우리는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도구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거대한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다중 위기라고 할 수 있죠. 현재 인류의 삶 속 여러 층위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위기입니다. 사회의 위기, 물질적 생활수준의 위기, 환경 위기, 제국주의 위기 등 오늘날 체제에 들끓고 있는 위기를 끝없이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위기의 원인이 뭔지 사람들에게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일관된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극우나 음모론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젯밤 우리는 노동당이 모래성을 커다랗게 쌓아 올리는 걸 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코빈이 2019년 총선에서 패배했을 때보다 50만 표나 적게 받았음에도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영국에서 티파티 운동이 현실화하는 순간이 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극우가 성장해 노동당에 대항하는 거대한 세력이 되는 순간 말이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엄청나게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건데, 단순히 매우 큰 문제인 수준이 아니라 우리 삶을 건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극우를 막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체제는 불평등과 고통뿐 아니라 수많은 무지와 거짓, 혼동을 낳아서 체제의 본질을 가리고,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거짓된 설명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극우를 막기 위해 체제를 떠받치고 신뢰를 회복하려 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당과 개혁주의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길을 가면서 사람들을 자본주의 체제의 분쇄로 이끌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결정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전자는 미국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고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영국에서 후자를 시도하자고 제안하고 싶고, 그렇게 해서 심각한 불평등과 고통을 낳는 이 끔찍한 체제가 분쇄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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