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엡스틴 음모론, 극우 운동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강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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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핵심적인 정치적 기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운동이 심각한 내홍에 빠졌다. 2019년 감옥에서 사망한 상습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틴의 범죄를 이른바 “심층 국가”[트럼프 행정부 안팎 미국 국가 내의 이너서클 ─ 역자]가 은폐했다는 음모론 때문이었다.
이 음모론이 왜 그토록 문제가 되는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MAGA 운동의 성격을 살펴봐야 한다. 트럼프가 정치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쇠락해 온 미국 제국주의를 운영한 신자유주의 기업 엘리트층에 대한 매우 광범한 분노를 일부 짚어 낸 덕이었다.
여기서 모순은 트럼프 자신도 엄연히 그 엘리트층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일으킨 운동이 미국과 세계를 도탄에 빠뜨린 자본주의 체제에 계급적 비판을 가할 수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그런 이데올로기를 대신한 것은 (대개 인종차별적인) 온갖 음모론들이었다.
그런 음모론으로 ‘대교체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자유주의적 엘리트가 백인들을 소수자로 만들어 주변화시키려고 서유럽과 미국에 이민자를 대거 유입시키고 있다는 음모론이다. 또, ‘큐어넌’도 있다. 아동 성애를 일삼는 악마 숭배자들의 막강한 비밀 결사(대개 부유한 유대인들이 참여하는)를 상대로 트럼프가 비밀리에 쟁투를 벌이고 있다는 음모론이다.
엡스틴 음모론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이 음모론은 허구가 아니라 끔찍하게도 사실적인 데서 비롯한다. 엡스틴은 20세기 후반에 막대한 부를 쌓았다(그 정확한 과정은 베일에 싸여 있다). 그는 그 부로 얻은 권력을 이용해 엄청난 수의 어린 여성과 젊은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했고, 한자리 하는 다른 남성들이 마찬가지 짓을 할 수 있도록 그 여성들을 인신매매했다. 이로써 얻은 연줄 덕에 엡스틴은 마침내 기소됐을 때도 터무니없이 가벼운 처벌만 받고 넘어갈 수 있었다. 엡스틴이 더 중대한 기소를 앞두고 구금돼 있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공식 설명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신을 받고 있다.
지난해 대선 선거운동 당시 트럼프 일당은 이른바 권력층의 엡스틴 스캔들 은폐를 폭로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은 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 된 댄 본지노는 당시 “엡스틴의 고객 명단은 … 민주당을 뒤흔들 중대 사안”이라고 했다. 현 미국 부통령 J D 밴스는 당시 “엡스틴 고객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집권 후 그 약속은 휴지 조각이 됐다. 2월에 일단의 MAGA 인플루언서들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법무장관 팸 본디는 그들에게 ‘엡스틴 파일: 제1장’이라고 적힌 서류철을 건넸다. 그러나 거기에는 새로운 내용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후 법무부가 엡스틴 파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자, 백악관을 방문했던 인플루언서들을 비롯한 MAGA 활동가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본디를 공격하고 있다.

이런 사태 전개에 대한 그럴싸한 설명이 회자되고 있다. 트럼프와 엡스틴은 둘 다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살던 시절 여러 해 동안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이다(훗날 소원해졌지만). 실제로, 테슬라 기업주 일론 머스크는 6월에 트럼프와 결별한 후 트럼프의 이름이 “엡스틴 고객 명단에 있다”고 트위터에 쓰기도 했다(나중에는 삭제했지만).
또 다른 우익 거물이 이 쟁투에 뛰어들었다. 지난주 목요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트럼프가 엡스틴의 50세 생일에 그에게 외설적 내용이 담긴 편지를 썼다고 보도했는데,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디어 재벌 루퍼드 머독이 소유한 신문사다.
과거에 머독은 (미국 언론인 마이클 울프에 따르면) 트럼프를 “부유층과 명사들 틈에 낀 어릿광대에 불과한 자”라고 일축했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2016년에 처음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후 머독이 소유한 〈폭스 뉴스〉는 트럼프가 일으킨 운동을 추동하는 데서 핵심적 구실을 했다. 〈폭스 뉴스〉는 2020년 대선 패배가 선거 부정 때문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을 연거푸 보도했다가 [투·개표기 업체들에게서] 천문학적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이제 머독은 또다시 천문학적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는데, 이번에는 트럼프 자신이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20억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이 요란한 파경은 94세의 머독이, 트럼프가 엡스틴 건으로 MAGA 운동에 대한 장악력을 잃고 있는지 여부를 저울질하는 것이라고 머독의 측근들은 풀이했다. 머독의 최측근이었던 한 인물은 이렇게 전했다. ‘머독은 시험을 해 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 문제로 자기 기반을 잃고 있나? 그 기반을 사로잡으려면 나는 어느 위치에 서야 하나?’”
그러나 엡스틴 음모론을 둘러싼 대응 과정에서 트럼프는 더 강해진 듯 보인다. 스티브 배넌 같은 MAGA 운동의 지도적 인물들이나 심지어 머스크조차 트럼프를 옹호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음모론에 기초해 건설된 운동이 음모론 때문에 약해질 수도 있음을 뚜렷이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