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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엡스틴은 병적인 시스템의 증상이다

엡스틴 파일은 현 시기 국제 지배계급의 민낯을 드러냈다

독일 역사가 요아힘 페스트가 쓴 《제3 제국의 민낯》이라는 오래된 책이 있다. 나치 지도자들을 묘사한 책이다.

제프리 엡스틴 파일은 신자유주의 시기 국제 지배계급의 민낯을 드러냈다.

사건의 중심에는 그 수를 알기 어려운 아이들과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엡스틴과 그의 측근들이 자행한 흉악한 성착취와 학대가 있다. 그 범죄는 현 시대의 재력가들과 권력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오점을 오만 군데 남겨 놓았다.

〈뉴욕 타임스〉는 오점을 애써 축소하려고 이런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한물간 특권층의 민낯을 드러낸 엡스틴의 이메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엡스틴은 6년여 전 교도소에서 미심쩍은 정황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매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가 교류한 사람들 중에는 일론 머스크나 피터 틸과 같은 빅테크 거물들과 스티브 배넌 같은 파시스트도 있었다. 이들 모두 오늘날의 핵심 유력 인사들이다.

엡스틴은 영향력을 거래했다. 그 중심에는 아동들과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그가 행사한 위력, 그리고 그의 조력하에 그들을 강간한 자들이 행사한 가학적 위력이 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훨씬 광범한 영역에 걸쳐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경향을 더 극단적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만드는 경향이다. 엡스틴의 네트워크도 같은 원리로 작동했다.

엡스틴은 온갖 것을 거래했다. 피해자들의 몸과 돈, 돈 버는 방법에 관한 조언, 인맥과 정보, 리틀세인트제임스섬과 카리브해에 있는 그의 리조트나 그의 수많은 아파트에 머물 기회, 자녀를 일류 대학에 입학시켜 달라는 등의 개인적 부탁 등.

이 모든 것이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전환돼, 엡스틴 개인의 부와 영향력을 키우는 데 쓰였다.

이 추문을 가장 잘 다룬 〈파이낸셜 타임스〉는 엡스틴의 행각을 “사회적 폰지 사기”라고 일컬었다.

폰지 사기는 투자받은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의 이윤을 지불하는 투자 사기다. 엡스틴 또한 “인맥을 부와 정보, 또 다른 인맥의 원천으로” 삼았다.

저명한 지식인들도 그 도가니의 중요한 일부였다.

그중에는 미국 제국주의의 탁월한 비판자인 노엄 촘스키도 있었다.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로서, 촘스키는 미투 운동에 맞서 엡스틴을 방어했다. 미투를 “여성 학대를 둘러싸고 자라난 히스테리”라고 폄하하면서 말이다.

엡스틴의 네트워크는 국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피터 만델슨[영국 노동당 소속]이 엡스틴과 주고받은 서신은 세계 금융 위기가 절정에 달한 2008~2010년, 당시 영국 기업·통상 장관 만델슨이 엡스틴에게 기밀 정보를 유출했음을 보여 준다. 만델슨의 동기는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더럽게 부유한 부자”(만델슨 자신의 표현)가 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벌인 일의 뚜렷한 사례 하나가 2010년 4월의 일이다. 만델슨은 당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수석 경제 고문인 래리 서머스를 만났다.

그 전에 만델슨은 엡스틴과 그의 또 다른 측근 제스 스테일리와 상의했다. 당시 제스 스테일리는 거대 투자은행 JP모건의 중역이었다.

그들은 만델슨이 서머스를 만나 ‘볼커 규칙’에 반대하는 로비를 하기를 바랐다. ‘볼커 규칙’은 은행의 투기 활동을 제약하기 위해 제안된 법안이었다.

JP모건은 ‘볼커 규칙’에 맞선 공세를 펴고 있었다. 만델슨은 JP모건의 환심을 사면 장관 임기가 끝난 뒤에도 경력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모두가 한통속이 돼 거래를 했다는 점은 서머스 자신도 엡스틴의 측근이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만델슨, 스테일리와 마찬가지로 서머스도 엡스틴과의 관계가 폭로돼 명예가 실추됐다.

그야말로 모든 것, 심지어 아동 학대에서도 이윤을 뽑아 낸다는 사고 방식은 그들의 몰락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역자] 국민투표 이후 엡스틴은 틸에게 보내는 이메일에 이렇게 썼다. “브렉시트는 ⋯ 부족주의로의 회귀이자 세계화에 맞선 반격이자, 놀라운 새 동맹의 시작일 뿐입니다.”

틸은 빅테크 거물 중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가장 우익적인 자다. 틸은 명시적으로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그레타 툰베리를 “적그리스도”로 여긴다. 그녀의 환경 운동이 기술 혁신을 가로막을지 모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틸은 사악한 감시 기술 대기업인 팔란티어를 창립했고, 팔란티어는 키어 스타머를 상대로 한 만델슨의 로비로 득을 봤다.

《제3 제국의 민낯》은 으스스한 책이었지만 나는 나치가 몰락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엡스틴의 축재와 파시스트의 귀환을 가능케 한 시스템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다.

번역: 이원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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