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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숲이 불탈 때》(조엘 자스크, 필로소픽):
대형 산불의 근본 원인을 들여다보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조엘 자스크는 2019년에 이 책을 썼다. 그녀는 먼저 ‘메가파이어’로 불리는 오늘날의 대형 산불이 인류가 경험해 온 보통의 산불, 혹은 작은 불과 질적으로 다른 현상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2010년대에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각지에서 벌어진 메가파이어의 경험을 살펴보며 “우리가 자연을 대해 온 관행”에서 대형 산불의 근본 원인을 찾는다.

저자가 철학자라는 사실에 독자들이 지레 겁먹지 않길 바란다. 200페이지 남짓한 에세이 형식으로 책의 내용은 전혀 난해하지 않다. 저자는 대형 산불을 겪은 사람들의 감각적 경험과 심리를 매우 생생하게 전한다.

《숲이 불탈 때》 조엘 자스크 지음, 필로소픽, 248쪽, 18,000원

불과 몇 분 만에 지역 전체를 집어삼키는 화염과 연기, 자동차를 녹여 버릴 정도로 뜨거운 열기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감각만으로는 도저히 상황을 판단할 수 없다. 그런 상황은 엄청난 공포를 안겨 준다.

공포에 휩싸이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연민 때문에 농장주나 보호자가 동물들을 단순히 풀어 준다고 문제가 완화되지는 않는다.

“연기와 열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는데 우리 사람들도 그랬지만 새들도 마찬가지였죠. 발밑으로 새들이 비처럼 내렸어요.”

“동물들은 정말이지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불이 붙은 곳 위를 뛰어다니다가 발이 타 버리는 일도 있죠. 심지어 영리하기로 소문난 돼지들조차도 불길에 휩싸인 우리 안으로 달려든다니까요.”

인명 피해가 남긴 공포와 상실감뿐 아니라 눈길이 미치는 지역 전체가 잿더미로 변한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허함을 안겨 준다.

저자는 인간이 포함되지 않은 ‘자연’이라는 이분법적인 개념 대신, 인간이 영향을 끼치고 자신을 그 일부로 인식하는 ‘경관’이라는 개념을 통해 산불 피해자들의 경험이 얼마나 충격적인 것인지 설명한다.

“사라진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산불 피해자들은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자신들이 안전해졌다고 느끼자마자, 이들은 소중했던 모든 것을 끝없이 이어지는 목록으로 나열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세계의 일부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끈을 이어 보려고 애쓰는 것이다. 하지만 사라진 것은 바로 이 끈이다.”

충격적 경험은 자연스레 핵심적인 물음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대형 산불은 기존의 산불과 무엇이 다르고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이에 관한 논란은 한국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기후 변화, 소방 체계, 임도, 수종, 개인의 부주의, 산림청과 정부 대응 체계 등 다양한 원인이 거론된다.

산청 시천면 산불 ⓒ출처 산림청

저자는 이런 원인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인간과 자연, 그리고 불을 바라보는 상반된 두 관점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한편에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행동양식과 사고가 있다.

목재와 그 부산물을 얻으려고 주변 환경에 걸맞지 않은 수종을 대량으로 이식하는 게 그 한 양상이다. 오늘날 ”‘목재 공장’과도 같은 산업형 삼림은 그 자체로 불에 타기 매우 쉽기 때문에 환경을 화염에 노출시켜 위태롭게 만든다.”

한국에서도 산불 관리의 주관 부처인 산림청은 산림 ‘경영’의 주관 부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형 산불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소나무가 지목되지만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소나무 심기를 중단하지 못한다.

기후 변화는 이런 상황 전개를 질적으로 다른 단계로 밀어 넣었다. 세계는 점점 더 불타기 좋은 조건이 되고 있다.

동시에 “산불과 전면전을 치러야 한다는 원칙은 각종 식민지화, 양도 정책, 국토 개발 정책이 19세기 중반 처음으로 공식화된 시점부터 이 정책들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원주민들이 오랫동안 활용해 온 불 사용(화전농업 등)이 금지됐고, 이는 산림에 엄청난 양의 연료를 축적시키는 동시에 효과적인 불 사용 방법을 잊게 만들었다.

이런 관점의 정반대편에는 자연에 맡겨 두면 된다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개입만 배제하면 나머지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찾을 것이라는 “낭만주의적” 사고가 있다.

저자는 이런 관점이 “존재하지도 않고 역사와도 무관한” 자연을 상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스티븐 파인의 용어를 빌리자면 “제2의 불”[인간이 활용해 온 불]은, 자연을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 지구 경관의 대부분은 인류와 불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역설이게도 이런 관점 역시 인간이 불을 사용해 자연에 참여해 온 방식을 거부하게 만드는 것으로 “자연에도 유익하지 않다.” 특히, 기후 변화와 초대형 산불이라는 어마어마한 재난 속에서 그저 내버려두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저자는 상극으로 보이는 두 가지 접근 방식이 공통점을 갖는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바로 대립되는 두 관점이 마주치게 된다. 이 두 관점은 그 목적이 소위 순결한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든 그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이든, 즉 이유는 완전히 정반대일지라도, 결국은 성역화라는 하나의 동일한 프로젝트를 공유한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발전시킨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통찰이 그에게서도 보인다. 저자는 그런 용어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지만 독자들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하에서 ‘인간의 자연으로부터의 소외’, 혹은 ‘인간과 자연의 신진대사의 균열’이라고 지적한 현상이 실제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인식이 실천적 결론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음, 즉 왜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소외’됐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이 책에서 답을 얻기는 어렵다. 이에 관해서는 본지에 소개된 이언 라펠의 글마틴 엠슨의 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개인의 방화 ‘범죄’와 불을 이용한 ‘테러’와 군사적 공격에 관해 우려하기도 하지만 갈등의 진정한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하지 않는 것은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그 아쉬움이 이 책의 장점을 상쇄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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