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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산불과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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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라펠은 보전 생태학자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당원이다. 그는 2000년대에 영국의 초원 서식지 보전 관리를 위해 불을 이용하고 관리했다. 이 글은 2022년 10월 10일에 발표됐다.
산불이 경악스러울 정도로 심각하다.1 중심부의 백색 화염은 말할 것도 없고 불길의 가장자리에 있는 잔불조차 고통스러울 정도로 뜨겁다. 자욱한 연기는 숨막히며, 매캐하고, 유독하다. 불이 자체적으로 일으키는 약한 바람을 타고 번질 때에도 그 속도는 시속 5킬로미터로 인간의 걸음걸이보다 빠르다. 오르막을 따라 위로 타오를 때는 언뜻 생각하기와 달리 속도가 두 배로 빨라져 시속 10킬로미터가 된다.2 산불은 불붙은 잔가지나 불씨를 주불 앞쪽으로 날려 보내어 기존 주불 경계 너머로 불을 퍼뜨리는 식으로 강이나 도시 기반 시설 등의 자연적·인공적 “방화선”을 뛰어넘는다. 산불은 숲 지붕을 따라 번져서 나무 줄기들을 타고 내려와 숲 지면을 불태우기에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은 불에 갇히게 된다. 비가 오거나 소방관들의 노력으로 불이 꺼진다 해도 다시 환경이 건조해지면 “좀비” 화재가 재발할 수 있다. 그 복잡한 패턴과 양상 때문에 산불의 관리와 진압은 쉴 새 없는 치열한 노력을 요한다. 화염 통제는 기술적 노하우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지구력과 집중력, 팀워크, 숙련도가 필요하고 이를 갖추려면 충분한 훈련과 자원 투자가 있어야만 한다.
연료가 축적돼 있고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큰불이 쉽사리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무시무시하고 거칠고 광포하게 타오를 수 있다. 이 고삐 풀린 ‘길들지 않은 불’[wildfire: 영어에서 산불을 뜻하는 합성어인데 문맥에 따라서 적절한 경우에는 이렇게 의미를 풀어서 옮기겠다 — 역자]은 광대한 면적으로 번져 높이와 폭이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화염을 만들 수 있다. 안락의자에 앉아 텔레비전 화면이나 뉴스로 볼 때도 그런 대화재는 소름 끼치는데, 그런 화재가 사는 곳과 지역 사회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삶과 재산, 집, 거주지를 파괴하는 광경을 보면 세계의 종말을 목도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언론에 보도되는 광경을 보면, 직접 불을 끄거나 맞불을 놓아 방화선을 치는 등 초대형 화재를 진압하려고 분투하는 소방관들이 피로와 충격에 휩싸인 얼굴을 하고는 — 올해 프랑스 화재 진압에 투입된 한 소방관의 표현을 빌리면 — “비가 오기를, 눈이 내리기를, 겨울이 오기를, 신이 가호를 베풀기를” 기다리고 있다.3
2022년과 초대형 산불의 증가
2022년 여름 북반구에서는 런던, 캘리포니아, 지중해, 시베리아 등에서 전례없는 수준의 충격적인 산불이 발생했다. 유럽의 산불은 그해 7월 유럽 전역의 기록적 폭염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연도별 누적 소실 면적을 보면, 2022년 10월 현재 유럽의 화재는 아직 2022년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06~2021년보다 심각한 듯하다(그림 1). 영국의 경우 2022년 8월 중순 현재 산불 건수가 이미 전년도 전체보다 약 500건이나 더 많다.4

그 산불들이 역사적 규모임은 전 사회적 수준의 대응에서도 드러난다. 런던 소방대는 남동부 잉글랜드 전역의 화재와 씨름한 단 며칠 동안의 출동 건수가 제2차세계대전 때의 “대공습” 이래 최다를 기록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에서는 수많은 소방관들이 7월의 폭염으로 매일 40°C를 웃도는 기온 속에서 몇 주 내내 야외에서 불을 진압하느라 분투해야 했다.
2022년 상반기 동안 세계 다른 곳에서도 극심한 화재가 급증했다. 미국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에서는 극심한 화재로 주민 수천 명이 대피했고, 캘리포니아의 “폭발적인” 화재들은 세계에서 가장 경험 많은 산불 진압 소방관들조차 “전례없는” 양상이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5 개발도상국·빈국에서도 2022년 상반기에 여러 기록이 깨졌다. 브라질에서는 6월 동안의 화재가 지난 15년 이래, 동기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집계가 시작된 이래 아마존 열대 우림이 가장 많이 파괴된 것과 관련있다. 불길하게도, 개발도상국·빈국(특히 남반구의)이 대개 본격적 화재철로 접어드는 8~9월이 되기도 전에 그런 기록들이 깨지고 있다.6
매년 반복되는 이런 대화재의 패턴들은 모두 너무 익숙한 것이 되고 있다. 가뭄, 홍수, 심각한 기상 이변, 녹아내리는 빙하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초대형 화재 역시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주류 언론 전반에서 그 거대한 화재들은 인류의 화석연료 사용이 초래한 기후 혼돈과 그것에 대한 자연의 반작용으로 종종 묘사된다.7 더 광범한 환경 담론에서 대화재는 자연의 무서운 힘을 보여 주는 증거이자, 인간의 자연 통제가 기껏해야 일시적이고 착각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주는 증거(애초에 그런 증거가 필요한지도 의문이지만)로 제시된다.
산불과 지구온난화의 연관성에 대한 대중의 의식이 이렇듯 높아지고 있는 것은 정치적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그 대화재들은 기후변화 부인론자들조차 부인할 수 없는 적나라한 환경 혼돈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환경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산불에 대한 주류적 파악은 “인류”라는 뭉뚱그려진 범주를 자연과 대립시키는 조야한 관점에 근거해 있다. 거기에서 대화재와 지배적 사회 시스템의 연관성은 은폐된다.
환경 숙명론을 피하고, 모두를 위협하는 대화재를 관리하고 통제할 방법을 발전시키려면, 불타고 있는 세계에 대한 더 급진적인 해석이 절실하다. 산불은 기후변화의 자연스런 귀결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강도와 빈번함, 사람들에게 주는 충격은 산불이 발생하는 사회생태학적, 역사적 맥락에 의해 결정된다. 오늘날 산불의 무시무시하고 극적이고 거대한 특징들은 거의 전적으로 세계 자본주의 지배층의 우선순위와 그로 인해 망가진 생태계에서 비롯한 것이다.
불, 생활, 노동
인간이 일으킨 불은 항시 지구 어디에서인가 타고 있지만, 이른바 인류세(인간의 활동이 근본적으로 지구 시스템에 혼란을 준 현 지질학적 시대를 지칭한다)8 이전에도 “자연 발생적”인 수준의 발화가 있었다. 이런 기저 수준의 발화가 생기는 원인으로는 확률론적(즉, 예측할 수 없는) 기상 조건이나, 태평양의 일시적 온난화 현상(엘니뇨) 같은 자연적 기후 순환, 지구 어디선가 항시 발생하고 있는 2000개 이상의 뇌우(雷雨)가 일으키는 낙뢰 등이 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런 불들은 생태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지구의 생물권 역사 전반에 걸쳐 진화에 뚜렷한 흔적을 남겨 왔다. 예컨대, 오늘날 아카시아와 유칼립투스 같은 열대, 아열대, 지중해 식물 종의 일부는 자연 발생적인 불과의 상호 의존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생태천이9 과정에서, 불에 의존하여 종자를 발아시키고 다른 종들을 경쟁에서 밀어낸다.
유칼립투스 같은 종은 발화를 “촉진한다”고 할 수 있다. 불이 잘 붙는 수액을 생성하고 줄기 껍질이 잘 벗겨지고 많은 잎을 떨어뜨려서 연료를 축적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야말로 지구 역사상 유일하게 불과 불의 성질을 포착·포획하고 조작하여 자신의 생물학적·사회적 존속에 이롭게 활용하는 데 성공한 종이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 인류는 다양항 방식으로 불을 이용했다. 수렵·채집이나 거주지 조성을 위해 초원을 불태우고, 농업과 정착에 맞게 땅을 개간하기 위해 삼림을 태웠으며, 연기로 음식을 요리하고 보존하고, 화톳불과 숯으로 열을 가하여 추운 계절을 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저장했다. 또, 불과 증기로 목재를 탄화시키고 변형시켜 튼튼한 건축 자재를 얻고, 벽난로를 이용해 집과 종교 회당, 마을 회관을 따뜻하게 데웠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불을 활용하려면 연령, 성별, 계급, 문화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불과 불의 3요소(연료, 점화원, 기류)와 긴밀하고 안정된 관계를 발전시켜야 했다.
불은 인간 노동 과정과 그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지만, 산업 자본주의는 불과 인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대다수의 인간이 불을 직접 활용하거나 통제하지 않게 됐다. 산업 자본주의는 기계와 기술이 사람들의 생활과 날것 그대로의 불 사이를 중재하도록 했다. 개별 가정 수준부터 사회 전체 수준의 신진대사에 이르는 모든 수준에서 그런 중재가 이뤄진다. “날것 그대로의” 불에서 “제어된” 불로 나아가는 이런 변증법적 변화는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관련있지만, 그 기원은 수천 년에 걸쳐 장인들이 제련, 도자기 제조, 숯 생산, 선박 건조에 사용한 원시적 기술에 있다. 그 장인들은 원재료에서 원하는 성질을 가공해 내기 위해 전통적인 방법으로 불의 온도와 연소 강도를 조절했다.
불을 가두고 조절하는 방법은 산업혁명을 통해 18세기 중반부터 계속 발전하고 다양해졌다. 수력이 증기력과 관련 화석연료들(석탄, 석유, 가스)로 대체되면서 모든 산업 부문에서 기계를 통한 불의 제어가 가속화됐다.10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자본주의는 그런 변화를 가정 생활로까지(요리와 난방) 확대했다. 난로에서 직접 피우던 날것 그대로의 불은 자취를 감췄다. 오늘날 산업화된 사회에서 집과 음식을 데우는 불은 정교한 화실(火室) 안에서 제어되고(보일러, 화목 난로, 가스레인지) 그 안에서 연소의 모든 요소가 기계 조작을 통해 조절된다. 그와 함께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내연 기관의 확산으로 불을 조절하는 인간의 능력은 더 고도화됐다. 우리가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연소 폭발로 운동 에너지를 생성하는 엔진 덕분이다. 물론, 그 때문에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은 더한층 커졌다.11
산업 자본주의는 불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춰서 에너지가 마치 아무 그을음 없이 생겨난다는 착각을 준다. 그러나 개인 노트북, 가정용 보일러 등 온갖 제품을 움직이는 전기는 사실 거대한 발전소 내부에 설치된 거대한 화로에서 주로 생산된다. 거리를 둔 채 불을 제어하는 이런 과정은,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 산업적 규모로 지리적으로 넓게 흩어져 있다 해도 우리가 결국은 불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얼마든지 외면할 수 있게 해 준다. 발전된 산업 사회는 인간이 편리하고 비교적 안전하게 열과 빛, 운동 에너지를 원하는 즉시 얻을 수 있게 한 듯하다. 그러나 연소라는 근본적인 요소는 현재의 지배적 사회 시스템에서 이뤄지는 기술 혁신에서 여전히 확고하고 우세한 지위에 있다.
이렇게 산업적으로 불을 “길들이는” 동시에 일상적인 불과 화재를 경험하는 사례가 줄어든 탓에 사람들은 불이 실제로 무엇인지에 관한 감각을 잃고 있다. 도시화를 통해 형성된 불에 대한 낯설음은 자본주의에서 더 광범한 신진대사 균열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그 낯설음은 우리가 겪는 소외와 결합되어, 마치 큰불이나 그 밖의 자연의 요소들을 인간사 바깥의 것이나 방화와 같은 개인의 행동에서 비롯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12 우리가 목격하게 되거나, 운이 나쁘면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큰불에서 우리는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는데, 그런 충격을 받는 부분적인 이유는 불이 여전히 사회의 신진대사와 생활을 조절하는 구실을 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불에서 아주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길들지 않은 불”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힘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소외를 반영한다.
“길들지 않은 불”이라는 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갈수록 빈번하게 세계 도처에서 거주지, 숲, 초원을 파괴하고 있는 갑작스럽고 재앙적인 불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이고 있다. 그 충격적인 사건들은 분명 ‘길들지 않은’(wild), 통제 불가능한 불 폭풍 — 고삐 풀린 화염 — 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건들을 모두 구속받지 않는 자연의 힘 때문인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인류세에서 생물다양성과 살아 있는 자연이 드러내는 패턴과 마찬가지로, 날것 그대로의 불도 인류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와 동떨어져서 생겨나지 않는다.13 날것 그대로의 불은 오히려 사회 시스템의 영향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사회 시스템은 거대하고 파괴적인 불이 생겨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변화시키고 강화시켜 왔다. 그런 불이 방화범이나 서투른 야영객과 같은 개인에서 시작된 것으로 규명되더라도 간과되는 사실은, 자본주의 자체가 인화성 높은 연료를 배합하고 점화한 뒤 기후 혼돈으로 그 위험한 조합에 부채질을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연료: 자연의 도서관에 불 지르기
통제화입[산불의 이점을 이용하기 위해 불에 탈 면적과 불의 강도를 정해서 불을 놓는 것 — 역자]은 수천 년 전부터 열대지방 전역에서 농지 개간과 비옥도 유지를 위해 사용돼 왔다. 이것이 이른바 “화전” 농업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하에서 아마존강 유역 등의 지역 전반에서 발생하는 파괴적인 불들은 식량 생산을 유지하려는 화전 농민들과 거의 관계가 없다.(그나마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토지 불평등 때문에 기존 농토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 파괴적인 불들은 오로지 자본주의적 토지 소유주들과 토지 강탈자들이 집약적 쇠고기 생산과, 콩, 야자, 그 외 작물의 단일 경작을 위해 열대우림에 불을 지른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열대와 아열대에서 대화재를 면한 주요 서식지는 없다시피하다. 불로 개간된 열대우림 지역이 극적으로 늘었다. 브라질에서는 타서 없어진 삼림 면적이 2021년 4월 579제곱킬로미터에서 2022년 4월 1012제곱킬로미터로 두 배로 늘었다. 이러한 충격적 삼림 파괴의 가속화 직전에는, 2020~2021년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 가뭄에 시달리던 브라질의 판타나우 습지가 파괴적인 화재로 황폐해졌다.14 2021년 가을 온 세계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기후변화 문제에 집중하는 동안, 브라질에서는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자유방임 정책, 농업 집약화, 삼림 보호 조처의 해체가 목장주들의 지포 라이터를 통해 실행되고 있었다.15
언론들의 단편적인 보도들은 코로나 팬데믹 초기 국면과 그로 인한 록다운이 자연에 유익한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시기는 시베리아, 캘리포니아, 오스트레일리아, 남웨일스 계곡 등 지구 도처에서 서식지 소각과 파괴를 조장하는 자들에게 복된 시기였다. 일부 지역에서 2020~2022년의 서식지 파괴와 손실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수준이었다. 예를 들어, 2019~2020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파괴적인 산불은 멸종 위기종인 코알라 6만 마리를 포함해 30억 마리의 동물에게 악영향을 줬다.16 불행하게도 그러한 추세는 세계 도처에서 계속될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정부와 언론들은 생태 재앙에서 눈을 돌려 최근 세계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경쟁의 부활, 이로 인한 전쟁으로 관심을 옮기고 있다.17
소농, 소작농, 토착 원주민 등 자본과 경쟁하는 관계에 있지만 훨씬 힘없는 계급 구성원들의 생계와 밀접하게 얽힌 자연 경관, 생태계, 서식지들은 자본에 거의 또는 전혀 이윤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곳들은 자본주의의 ‘길들지 않은 불’에 큰 땔감이 된다. 그 화재의 패턴 근저에는 자본주의로 인해 망가진 생태계에서 비롯하는 다른 발화 요인과 유형들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요인들과 유형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런 대화재가 생물권에 제기하는 위협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갈수록 빈번해지는 대화재는 자본주의 생태계의 또 다른 치명적 추세를 반영하고 가속시키고 있다. 그 추세는 바로 멸종 위기다. 의도적으로 불을 놓아서 자행하는 생물다양성 파괴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또, 미국의 연구자 마이크 데이비스가 지적했듯이, 대화재는 갈수록 독자적인 절멸사건[막대한 양의 생물 분류군이 거의 동시에 절멸하는 현상 — 역자]이 되고 있다.18 지구 전체 면적의 2퍼센트(지표면의 약 6퍼센트)에 지구 생물다양성의 절반 이상이 집중돼 있는 열대우림에 대한 마구잡이 파괴는 특히 야만적이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종뿐 아니라 아직 분류학자들이 분류하지 못하거나 야외 생물학자들이 수집하지도 못한 수많은 종들을 절멸시키고 있다. 그리고 광대한 전 지구적 열대 우림 지대의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는 변화, 심지어 붕괴로 내몰고 있다.(게다가 특히 기후변화에 의해, 그곳에 서식하는 동식물 다양성이 위협받는 가운데 말이다.) 열대 지방 외에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토탄(土炭) 고지대, 캘리포니아의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등의 서식지를 태우고 있는 불 또한 수많은 고유종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미 그 종들은 토지 이용 변화 때문에 서식지의 많은 부분을 잃었는데 말이다.
유전적 생물다양성의 상실은 그 명백한 야만성과, 서식지에서 일어난 큰불들이 기후변화를 더 증폭할 것이라는 결과에 더하여, 미래의 세대와 그들이 물려받을 생태계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대대적으로 책을 불사르는 광경을 보면 사람들은 마땅히 경악할 것이다. “산불”을 (운이 좋다면 TV 화면으로) 목격할 때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방화범이 자연의 도서관을 잿더미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상품화될 수 없고 ‘가치가 떨어지는’ 서식지들을 연료로 삼을 뿐 아니라, 현지의 생물다양성에 대한 조절되거나 계획되지 않은 파괴를 통해서도 연료를 축적해 왔다. 식민지화, 무역, 이주에 수반되는 전 지구적인 종의 이동으로 지난 500년 동안 생태계는 크게 교란됐다.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새로운 종의 정착은 때때로 산불의 연료를 늘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예컨대, 참새귀리풀은 집약적 농업으로 재배되고 잔디 종자로 쓰이면서 세계 전역으로 이식됐다. 토착 식물보다 빠른 재생 능력 때문에 참새귀리풀은 불이 나는 환경 속에서 번성할 수 있었고 그 낙엽들이 쌓여서(“북데기층”) 연료를 형성해 토착 생태계에서 더 강한 산불이 일어나게 한다. 그 외래종 풀들은 산불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토착종을 밀어내는 것이다.
성장이 빠르고 고온에 잘 견디는 유칼립투스가 세계로 확산된 것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유칼립투스과는 유구한 세월 동안 그곳의 생태계에 지대한 역할을 해 온 산불이 일어나는 데서 중심적 구실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토착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이 식민 지배를 시작하기 전 수천 년 동안 유칼립투스의 인화성을 키워서 수렵·채집에 이용해 왔다. 유칼립투스를 지중해 연안과 그곳과 서식지가 비슷한 캘리포니아에 이식한 것은 나무로 덮인 지역의 비율을 높였을지 모르지만, 산불의 위험도 키웠다. 이는 참새귀리풀의 번성과 결합돼 산불과 침입종의 악순환을 낳는다. 북유럽 전역에서는 집약적 소나무 조림이 비슷한 결과를 낳고 산불을 강화하는 효과를 냈다.
더 빈번해지고 강력해진 산불 패턴은 여러 면에서 자본주의의 생태계 교란을 반영한다. 외래종에 의한 화재 연료 축적, 집약적 농업을 위한 자연 식생의 화입 모두 현 사회 시스템이 이윤 추구에 유리한 획일적 생태계를 선호한 결과다. [자본가들에게] 생물다양성은 이윤 추구를 방해하는 골칫덩어리이지만, 산업용으로 생태계를 단순화시키는 불의 좋은 연료이다.
자본주의의 점화원: 부르주아지 방화범
연료가 쌓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화재가 시작되려면 점화원이 있어야 한다. 직접적이고 자연법칙적인 면에서 보면, 조건만 맞으면 낙뢰든 지포 라이터든 쉽게 점화원이 될 수 있다. 주류 언론은 개인의 행위를 점화원으로 주목하는데, 대개 방화범(특히 불만 가득한 청년들), 농민, 목장주, 초보 야영객들을 탓한다. 그런 설명은 뉴스에 흥미를 더하고 불을 지른 사람의 개인적 동기에 혀를 차게 만들 수는 있지만, 불이 일어난 더 큰 맥락을 보여 주지 않는다. 우리가 겪고 있는 산불의 경우, 서식지의 인화성 증대와 침입종, 생물다양성 파괴를 낳는 사회 형태가 점화원 구실도 한다. 그 문제들은 세계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계급 역학이라는 근원을 공유하는 증상들이다.
지배계급인 자본가 계급은 세계 자본주의를 유지시키는 핵심 세력으로서 산불이 커지기 좋은 사회 환경을 조성해 왔다. 자본주의는 토착 원주민들이 오랜 세월 계승해 온 산불 관리 체계를 파괴해 왔다. 자본주의적 경작을 위해 토지를 비우려고 의도적으로 불을 놓고 이를 “주인 없는 땅”(terra nullius) 같은 국수주의적 개념으로 정당화해 왔다. 그 결과 인간과 생물다양성의 상호작용이 급속히 사라진 탓에 식민자들은 이윤 추구 목적 외에는 불이 하는 생태적 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식민 지배하의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지역에서 산불은 경외스럽기보다는 당혹스러운 것이 됐고, 우리는 기후 재난에 직면한 지금에서야 토착 원주민 문화로부터 조언을 구하기 시작하고 있다.19
전통적인 화재 관리 체제가 파괴된 것은 서식지에서 자행된 반인간적 강제 퇴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강제 퇴거가 명시적으로 추진되지 않은 곳에서도 농촌 인구 유출, 시초 축적과 강탈을 위한 전략에 의해 비슷한 과정이 벌어졌다. 지중해 연안에서는 토지가 방치되면서 산불이 발생하기 더 쉬워졌는데, 버려지거나 비옥도가 떨어진 농지들에서 인화성이 높은 임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20
자본주의는 산불을 점화하는 데서 더 미묘한 구실을 하기도 하는데, 계급 투쟁의 문화적 부산물을 통해서 점화을 일으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고지대 서식지와 산업이 해체된 지역사회가 교차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황무지 들불의 원인으로 흔히 개별 방화범이 지목된다. 특히, 아이들과 미성년자들이 병적인 방화 충동을 갖는 집단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그런 충동은 큰불에 대한 페티시즘으로 개성을 표현하려는 것으로 소외의 증상이다. 사우스 웨일스 밸리 등 산업의 해체로 인한 빈곤이 심각한 지역에서 나타나는, 방학 기간과 결부된 방화 추세는 그들이 겪는 권태와 소외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황무지 들불은 좌절과 소외뿐 아니라 분노에 의해 시작될 수도 있다. 어쩌면, 산업이 해체된 여러 지역을 둘러싼 고지대에서 화재가 거듭 일어나는 것은 쇠락한 노동계급 지역 사회보다 자연이 더 잘 복원되고 있다는 인식의 징후일 수 있다.
산불을 촉진하는 계급 역학의 또 다른 사례는 자본가들이 자신과 경합하는 사회생태계를 이윤 추구를 위해 밀어내는 것이다. 그런 계급 역학은 지역 사회를 자연 경관과 분리시키는 체제의 극단적인 불평등과 소외를 통해 작동한다. 그런 일반적 계급 문제는 신자유주의에서 공공 서비스가 경시되고 체계적으로 열악해지는 탓에 더 악화된다. 끝없는 긴축 재정과 공공 지출 삭감, 외주화, 민영화, 임금 삭감, 노동조건 악화가 결합돼 전 세계의 소방 서비스는 산불을 다루기에는 통탄스러울 정도로 불충분해졌다. 이러한 대화재의 계급적 맥락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는 아마도 미국 전역에서 화재 진압에 동원되는 재소자들의 노동일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수많은 재소자들이 가석방 기회를 얻고자 일당이 3달러도 안 되고 훈련 기간이 2주에 불과한 산불 진압 활동에 ‘자원’한다.21 자본주의는 산불을 야기할 뿐 아니라, 실패한 산불 통제 전략의 일환으로 ‘잉여’ 인구를 화염 속에 내던지고 있다.
불난 데 부채질하기: 기후 혼돈이라는 촉진제
불이 나려면 연료와 점화원이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산불의 연료를 만들어 내는 사회생태학을 통해 불길을 키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다른 계급, 다른 문화와 얽혀 있는 서식지와 생물다양성을 불태워 없애도록 부추긴다. 한편, 자본주의의 계급 역학은 점화 동기를 낳는다. 즉, 라이터와 성냥이 계급 전쟁의 무기로 이용되거나, 소외의 결과로 방화범 개인이나 잘못된 선택을 한 농민들에 의해 무책임하게 이용되기도 한다.
일단 불이 붙으면 촉진제(직접적인 공기 유입이나 다른 가연성 높은 재료들)가 불을 키운다. 자본주의에서는 자체 역학이 낳은 연료와 점화원으로 시작된 화재가 기후변화로 인해 초대형 화재로 커진다. 가뭄, 폭염, 강풍 같은 극단적 기상 이변들이 빈도와 강도가 증가해 산불이 커지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초대형 산불의 증대는 환경 ‘문제’를 고려할 때 전체론적 시각과 총체적 관점이 중요함을 널리 보여 줬다. 산불은 생물다양성 훼손과 기후변화의 증상이자 그로 인해 강화된다. 동시에 산불은 자본주의의 생태적 기능 장애가 낳는 역설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이산화탄소는 불을 억제하는 구실을 하고 실제로 가정용·산업용 소화기에서 그렇게 사용된다. 그러나 변증법의 오묘한 이치에 따라 자본주의는 이산화탄소를 불의 촉진제로 만들었다. 화석연료 기반 체제인 자본주의는 지구의 대기를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로 가득 채워 지구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 심지어 북극권의 영구동토층에서도 — 산불이 맹위를 떨칠 조건을 마련하고 있다.
그래서 산불 문제의 해법은 기후변화를 해결하고 산업 경제를 탈탄소화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서비스에 투자하는 것과 동일하다. 산불에 의한 어마어마한 탄소 배출을 고려하면, 모든 층위에서의 탈탄소화 노력에 산불 대응을 포함시켜야 한다.22 그러려면 COP26이 홍보하는 탄소 상쇄처럼 지나치게 단순한 해법을 철저히 재평가해야 한다. 스티븐 파인이 “화염세”라고 부른 이 기후 혼돈의 시대에 우리는 “넷제로” 같은 기업 친화적 탈탄소 방식을 경계해야 한다. 그 방식은 소나무와 유칼립투스처럼 빨리 성장하고 불이 잘 붙는 나무 종의 단일재배 조림을 조장한다.23 “넷제로” 방식에 수반되는 지극히 미심쩍은 계산법과 거래제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삼림 조성으로 탄소 배출을 상쇄한다는 구상은 폭염과 초대형 화재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 많은 문제를 낳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캘리포니아 산불은 백 년치 탄소 배출권을 날려 버렸다.24
또한 산불은 목적 의식적 토지 관리와 결합된 소방 서비스의 필요성을 시급하게 제기한다. 전 세계 서식지에서 생물다양성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식생 연료의 인화성을 약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체론적 방식은 녹색 일자리를 창출할 커다란 잠재력이 있다. 특히, 불에 관한 정보 제공과 교육으로 포괄적 산불 관리 서비스를 확충한다면 그 잠재력은 훨씬 더 클 것이다. 우발적·의도적 화재의 위험성을 적극 알리는 서비스는 산불의 근본 원인을 사회적 문제로 다루는 데서 도덕적 비난과 처벌보다 더 유익할 것이다. 탈탄소화를 향한 필수적이고 포괄적인 조처에 산불 대응·관리를 포함시키고 그에 따른 자원 할당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인류 문명은 화재와 기상이변, 생태계 붕괴의 악순환으로 위협받게 될 것이다.25
결론: 사회주의라는 산불 억제책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꽤 근래에 등장한 화석연료 기반 체제로,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는 체제로 응당 여겨지고 있다. 이 사회 시스템의 망가진 생태적 신진대사의 중심에서 자본주의는 거의 50만 년 동안 인간의 노동 과정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해 온 혁신인 불을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스템이 불을 통제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여름마다 일어나는 재앙적 산불이 바로 그 증거다. 우리는 자연과 사회의 신진대사에서 불이 하는 중심적 구실에서 소외된 탓에, ‘길들지 않은 불’이 사회 시스템의 직접적 산물임을 아무렇지 않게 간과하고 있다. ‘길들지 않은 불’은 자연과의 동반자 관계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사회 시스템의 직접적 산물이다. 자본주의가 궁극적 방화범이다.
오늘날의 ‘길들지 않은 불’들은 인류가 생태적으로 미성숙하다는 징후다. 한때 인간은 자연을 다루면서 익힌 자신감을 갖고 불을 이용해 자연을 변화시켰다. 오늘날 대화재를 일으키는 인류의 미숙함은 언론이 나무라는 남웨일스 등 산업 해체 지역의 청년들과 권태로운 아이들보다 별로 나을 게 없다.
인류세를 미래가 있고 역사적으로 지속 가능한 시대로 만들기 위해 인류가 갖춰야 할 생태적 성숙은 인류가 성취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 대안은 이미 있다. 우리는 산불 — ‘자연적’인 것이든 자본주의에 의한 인위적 생태 변화의 산물이든 — 의 발생과 강도를 제어하는 데 필요한 과학적·문화적 지식을 이미 갖고 있다. 기후변화를 완화하고 조절하고 황폐화된 생물권을 복원할 방법을 이미 알고 있듯이 말이다. 그런 지식들이 그저 이론적· 실천적 급진주의로 치부돼 외면받고 있지만 말이다. 신진대사에 균열을 일으키고 축적의 쳇바퀴로 굴러가는 자본주의는 이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런 해결책들을 거부한다.
우리가 목격하거나 직면하고 있는 산불은 자본주의의 치명적 모순이 낳은 증상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생산수단과 생산 방식을 향상시켜 왔다. 노동을 통해 자연을 변화시키는 우리의 능력을 향상시켜 온 것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이전의 삶의 방식과 비교하면, 자본주의하 소외는 우리를 미숙한 아이로 퇴보시켰고, 이런 생태적 사춘기는 어쩌면 자멸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산불을 ‘길들지 않은 불’로 부른다는 것 자체가 생태계에 대한 이해에서 우리가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보여 준다. 환경 숙명론은 기후 혼돈의 파괴적 증상을 신비화한다. 자본주의의 역학이라는 인과관계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생태적으로 성숙하고 인위적 산불을 유익하게 통제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방화범 체제를 거부하고 사회주의와 지속가능한 생태계로 대체해야 한다.
- 이 글을 소방관이자 친구, 동지인 닐 윌리엄스를 기리며 바친다. 초고에 대해 의견을 준 이 잡지[《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부원들에게 감사한다.↩︎
- Siegel, 2017.↩︎
- Gunter, 2022.↩︎
- Gregory, 2022.↩︎
- BBC News, 2022; Davies and Wertheimer, 2022.↩︎
- Spring and Kelly, 2022.↩︎
- Igini, 2022.↩︎
- “인류세”에 대한 설명은 Royle, 2016을 보라.↩︎
- 생태천이(生態遷移)는 종들의 특정한 혼합 방식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식지에 자리잡는 과정으로, 때로는 화재와 같은 재앙적 사건 뒤에 일어난다.↩︎
- Malm, 2016.↩︎
- 불을 다룬 역사학자 스티븐 파인은 전통적 불의 사용과 현대적 사용 간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 자세하고 유익한 논의를 한다 — Pyne, 2021. 자연의 지질학적 순환과 다른 순환들을 변화시키는 불의 능력을 언급하면서, 파인은 인위적 화재가 산업화 이전 시기와 산업 시대에 끼치는 영향을 각각 “장기 화염세(Long Pyrocene)”와 “단기 화염세(Short Pyrocene)”로 일컬었다.↩︎
-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인간과 자연의 신진대사 관계에 “회복할 수 없는 균열”을 낳는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Empson, 2016을 보라.↩︎
- 생물다양성과 사회 형태들 간의 상호연관성은 이전에 이 잡지에서 논의됐다 — Rappel, 2021을 보라.↩︎
- 판타나우 화재로 2020년 한 해에만 이 열대 습지의 30퍼센트가 파괴되고 1700만 마리의 동물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 Gill, 2021을 보라.↩︎
- 아마존의 산불 시즌은 우기가 지나간 뒤인 매년 4월 말이나 5월에 시작된다. 삼림 파괴율이 매년 곱절이 되고 있는 추세는 기하급수적 손실을 예고한다. 2030년까지 세계 삼림 파괴를 “종식”한다는 COP26의 목표는 삼림 파괴를 가속시켰을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귀국한 보우소나루와 그의 일당들이 브라질 엘리트층에게 2030년 그날이 오기 전에 되도록 많은 세계의 숲을 제거하라고 조언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COP26 과정과 결과에 대한 비판은 Empson, 2022a를 보라.↩︎
- Reiner, 2020.↩︎
- Vaughan, 2022.↩︎
- Davis, 2020.↩︎
- Massy, 2018.↩︎
- Freund, 2021.↩︎
- Brock, 2020.↩︎
- Vaughan, 2021.↩︎
- Pyne, 2021.↩︎
- Hodgson, 2022.↩︎
- Empson, 2022b.↩︎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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