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 첫해 가장 낮은 최저임금 인상:
저임금·미조직 노동자들, 실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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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 320원, 월 환산(주 5일 8시간 근무) 약 215만 원으로 결정됐다. 올해보다 고작 290원(2.9퍼센트) 인상된 것으로, 사실상 실질임금 삭감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제시한 2024년 비혼 단신 월 생계비(265만 원)보다 50만 원이나 적다.
이번 최저임금은 이재명 정부 첫해 결정으로, 향후 노동 정책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이번 인상률은 IMF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면 역대 정부 첫해 인상률 중 가장 낮았다. 윤석열 정부 3년간 평균 인상률(3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쿠데타 미수범 윤석열을 퇴진시키고 더 나은 처지를 바랐던 노동자들은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사실, 최저임금 심의 내내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포함)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취임 후 여러 차례 경제 성장을 강조하며 재벌 총수들을 만난 것과 대조적이다.
또한 〈한국경제〉 보도를 보면, 국정기획위원회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사용자 측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시점을 연 2회로 분할하는 안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이러한 행보는 최저임금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는 신호일 것이다.
이번 결정은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노동자들의 생활수준 향상보다는 기업들의 이윤을 우선시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공무원과 공공부문 노동자 임금 인상률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민간기업들에도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돼 왔다.

이번 결정은 IMF 때보다 더 힘들다는 (저임금 노동자들보다 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을 최소화해 자영업자들(다수가 중간계급)을 달래서, 이들이 우파 지지로 돌아서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인 듯하다.
이재명 정부가 최근 ‘민생회복 소비 쿠폰’을 추진하는 것도 일시적으로나마 (서민층 생계 지원도 있지만)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완화하려는 것이 주요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를 일단 제한하고 자영업자들을 달래는 방식으로 지지율을 높이려는 시도는 경기 회복과는 별 관계 없을 것이다.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 임금이 억제돼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데도 경기가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영업자 계층에 대한 일시적 달래기로 끝날 공산이 큰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들의 불만이 커지면 극우를 포함한 우파가 다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으로 실망감이 커지자 극우파들은 주로 자영업자나 실업자 등에서 지지를 넓혀 왔다.
한편, 최저임금의 주요 대상자인 미조직·청년 노동자들은 윤석열 탄핵 운동의 중요한 일부였는데, 이들을 소원케 하는 것은 극우가 그들에게 파고들 여지를 넓혀 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재명 정부가 중간계급의 지지를 늘리려고 저임금·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지금은) 참아 달라고 하는 것은 우익이 재기할 시간을 벌어 주고 계급 세력 관계를 역전시킬 재료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염원에 찬물 끼얹은 한국노총
주요 언론들은 이번 최저임금 결정이 “17년 만에 노·사·공 합의”로 이뤄졌다는 점을 부각했다. 대통령실도 “이재명 정부 첫 최저임금 결정이 노사 간 이해와 양보를 통해 결정”됐다며 환영했다.
한국노총 측 노동자위원들이 끝까지 협상장에 남아 합의해 준 것이 ‘노동계도 최저임금 실질 삭감에 찬성했다’는 모양새를 만들어 준 것이다.
이는 생계비 고통이 큰 저임금·미조직 노동자들의 생계 염원을 배신한 것이자, 올해 임금 인상 투쟁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최저임금 결정을 모범 사례로 들먹이며,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상 자제를 압박하려 들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 쪽 노동자위원들은 공익위원 제시안에 항의해 집단 퇴장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이번 최저임금 결정에 대해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하며 결코 수용할 수 없음을 밝[혔다].”
그러나 양대 노총 지도부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 요구액을 지난해보다도 낮춰서 제시했고, 협상 내내 양보를 거듭했다.
민주노총이 막판에 협상장을 뛰쳐나왔지만 내년 최저임금이 사실상 결정된 시점에서 벌인 면피성 행동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양대 노총 지도부 모두 정권 초반부터 발목 잡는 모양새는 피하고 싶어 한 듯하다. 그래야 앞으로 이재명 정부와 협력해 다른 개혁 요구들을 얻어 낼 수 있다는 계산인 듯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사용자들은 아래로부터의 엄청나게 커다란 압력에 직면하지 않고선 좀체 양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일상 집행부를 운영하는 이재명 정부도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다.
협상장 밖의 힘을 크게 키우는 운동을 건설하지 않으면 정부와 사용자들이 설득될 리 만무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