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 항쟁의 불길이 치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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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국회의사당, 의사당 주위에 모여든 분노하면서도 환희에 찬 젊은이들, 약탈당해 폐허가 된 정치 엘리트의 호화 저택.
이것이 네팔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근래에 항쟁이 분출한 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스리랑카에서도 펼쳐졌을 법한 광경이다. 세계 곳곳에서 지배계급은 자신들이 처한 위기의 대가를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가하려고 긴축 정책을 펴고 착취를 강화하고 있다.
아시아 등지의 개발도상국에서 항쟁 물결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항쟁의 계기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그 배경에는 모두 신자유주의에 대한 증오가 있다.
네팔은 세계에서 가난하기로 손꼽히는 나라다. 약 3,000만 명의 인구가 인도와 중국을 가르는 히말라야산맥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네팔에서 국가 폭력, 부패, 불평등, 민주주의의 부재 문제가 전면에 떠올랐다.
그런데 많은 언론들은 이번 항쟁을 “Z세대 시위”로 묘사한다. 기성 세대의 지배에 넌덜머리가 난 젊은이들의 외침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겪는 좌절의 근원은 세대 갈등보다 훨씬 깊은 데에 있다.
28세 이하 청년의 20퍼센트 이상이 실업 상태인데, 이는 네팔 평균 실업률의 두 배에 달한다. 게다가 이 끔찍한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임시직과 생계를 위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학자들은 15~65세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600만 명이 외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추산한다.
또, 네팔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외딴 농촌에서 빈곤하게 사는 수많은 사람들도 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는 많은 가구가 간신히 생계를 부지하지만, 그곳 청년들의 실업은 집계조차 되지 않기 십상이다.
모두가 이런 처지인 것은 아니다. 신흥 부유층이 등장했다. “네포 키즈[족벌주의를 뜻하는 ‘네포티즘’과 자녀(‘키즈’)의 합성어]”라고 불리는 이들은 대개 네팔 정치 엘리트층의 자녀들로, 최상류 생활을 누리며 이를 거리낌 없이 과시한다.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주에, 여러 정치인들의 자녀들이 사치스러운 라이프스타일과 명품 보석, 궁궐 같은 저택을 자랑하는 영상이 널리 퍼졌다.
그 영상을 공유한 수많은 사람들의 한 명인 비크람 트리파티는 이렇게 썼다. “권력은 국민의 것이지 극소수 특권 정치인의 것이 아닙니다. 이제 지난 30년간 권력을 누리고 국민의 돈을 펑펑 써 온 정치인들을 몰아낼 때입니다. #NepoKid”
네팔의 부유층은 세계 다른 곳의 부유층과 다를 바 없다. 가증스럽고 미움받는다.
그러나 수치스럽게도, 2008년 군주 독재 종식 후 들어선 연립 정부들은 상황을 거의 개선시키지 않았다.
네팔공산당(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파)이 주도한 최근의 연정 또한 문제의 일부였다.
네팔의 좌파 정당들은 모두 공산주의 정당이나 사회주의 정당을 자처하지만 실천은 우파 정당들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우파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대중 저항에 직면하자 탄압으로 대응했다.
이번 달 초 정부가 인터넷을 통제하려 한 것을 계기로 수십 년간 쌓인 분노가 폭발했다.
이틀간 거센 시위가 이어졌다. 소요를 벌인 사람들은 국회의사당과 엘리트들의 저택 몇 채를 불태웠다.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약 51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시위에 밀려 73세 총리 카다 프라사드 샤르마 올리(일명 KP 올리)는 사임해야 했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환희에 휩싸였다. 지금은 군인들이 거리에 대거 배치돼 있지만 말이다.
네팔 동부에 사는 라케시 니라울라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혁명을 계기로 사람들은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더 나은 정부가 가능하다는 희망 말입니다. 지도자들이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고 거듭나 네팔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사람들은 바랍니다.”

제국주의
그러나 성공적인 이번 반란의 성격이 무엇이고 누가 거기서 득을 볼지를 놓고 벌써부터 다툼이 치열하다.
시위 운동 자체는 학생·청년들의 느슨한 연합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참가자 다수는 자발적으로 운동에 동참했다. 그러나 시위를 주도하던 단체들은 현재 자신들의 평화적 행진을 ‘정치’ 세력들이 납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주정 복고주의자들을 비롯한 우파 정당들은 이 상황을 이용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그중 하나인 국민민주당은 인도의 극우 정당 인도국민당(BJP)을 모방하며 차기 정부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른 기회주의자들도 사태에 개입하려 하는 듯 보인다. 이는 네팔이 제국주의의 역학에 얽혀 있는 것의 반영이다.
미국은 1990년대 군주 독재와 공산당 사이에서 내전이 벌어질 당시 군주정에 무기를 지원하는 등 오랫동안 네팔 정치에 간섭해 왔다.
최근 미국은 투자 기금을 통해 네팔 국가의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국 정부는 네팔이 미국의 숙적인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에 분개했다. KP 올리가 얼마 전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과 회담을 한 후 사임한 것에 미국은 분명 반색할 것이다.
중국 역시 일대일로 등 경제적 영향력을 이용해 네팔 국가의 정책에 영향을 미쳐 왔다. 2024년 양국은 대규모 인프라·무역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네팔 내 우파 세력들과 제국주의 외세 모두들이 이번 반란 이후 네팔을 차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는 군주 독재 타도 이후 들어선 정부들의 실패를 보여 주는 징표다.
그 정부들의 대부분을 이끌었던 네팔 좌파는 현재 철저한 불신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그것이 필연은 아니었다.
세력이 변변찮던 네팔공산당(마오주의파)은 1990~2006년에 반독재 “전민항쟁”을 벌였고 결국 승리했다.
그들은 농촌 대부분을 장악했고 수많은 농민과 도시 거주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당시 그들은 민중의 핵심 수호 세력으로 여겨졌다.
단계론
그러나 이미 그때 마오주의자들의 미래 비전에 패배의 씨앗이 있었다.
다른 개발도상국·빈국의 많은 공산당들과 마찬가지로 네팔 마오주의자들은 네팔이 “사회주의로 나아갈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믿었다. 그들은 “나울로 잔바드,” 즉 신인민민주주의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마오주의자들은 신인민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해 봉건 지배를 청산하고 부르주아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네팔이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 전단계로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준비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런 “단계론”을 뒷받침하며 그들이 든 근거 하나는 사회주의를 실현하기에는 네팔 노동계급의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또 네팔이 너무 후진적이고 외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네팔공산당(마오주의파)의 대변인 크리슈나 바하두르 마하라는 2005년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구상은 2단계 혁명이다. 1단계는 다당제 민주공화국 수립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면, 우리는 국가의 평화적 전환을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를 전환하는 두 번째 단계는 결코 오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노선에 따라 마오주의자들은 인구 다수인 농민과 도시 빈민의 요구를 억제했다. 또 그들 자신도 우파가 용인하는 한계를 넘어서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 결과 집권 공산당은 제국주의가 1990년대 이래로 강요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 갔다.
실질적인 토지 개혁도, 농업 혁신 시도도, 지주 권력 혁파도, 공공부문 생산 확대도 없었다.
좌파가 급진적 개혁을 시도하다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자유시장에 반하는 정책을 배제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정당들과 다를 바 없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행하는 마당에, 그들과 마찬가지로 부를 축재하지 않을 까닭은 또 무엇이겠는가?
2023년에 네팔 좌파 학자 카젠드라 프라사이는 이미 그런 과정이 상당히 진척돼 있다고 지적했다. “좌파 정당·후보들은 선거에 막대한 자금을 쓰는데, 그 자금을 부유층에게서 은밀하게 지원받거나, 후보 자신이 부자라면 스스로 충당한다.”
네팔에 만연한 빈곤과 막강한 지주 권력에도 불구하고 좌파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 ‘전민항쟁’으로 네팔 군주를 타도했을 때 마오주의자들은 대중의 막대한 신뢰를 발판 삼아 더 큰 변화를 추진할 수도 있었다.
예컨대 즉각적인 지주 토지 몰수와 재분배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부르주아적 혁명에서 멈추지 않고 훨씬 더 철저한 사회 변화를 추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계혁명론”은 노동자 혁명의 가능성을 없애 버렸다.
한때 군주정에 맞서 마오주의자들을 지지했던 대중의 분노는 이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지난 거리 시위에서 분출한 에너지와 상상력은 좌파가 살리지 못한 잠재력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이번 운동은 단순히 정부를 퇴진시킨 것에서 멈출 필요가 없다. 네팔의 빈곤을 낳은 체제 자체를 겨냥할 수도 있다.
네팔에서 시위가 불타오르는 지금, 네팔의 옛 좌파는 죽었다. 희망은 지난주 시위를 계기로 새로운 좌파가 탄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