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반정부 시위는 “색깔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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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반미 자주파 언론 〈민플러스〉의 강호석 기자는 네팔 반정부 시위를 “미국의 ‘색깔혁명’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시사한다(9월 15일 자). “색깔혁명”은 미국 등 서방이 배후 조종한 시위라는 뜻이다.
강 기자는 네팔 “내부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외부의 공작”이 더 주된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사전에 짜여진 듯한’ 일사천리의 진행은 내부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다소 낯선 패턴이다.” 시위 발생에서 총리 K P 샤르마 올리(마오주의 정당인 네팔공산당 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파 소속) 사퇴와 임시 총리 지명에 이르는 기간이 엿새밖에 안 되고, 군 수뇌부가 시위 세력과 임시정부 구성을 협의했다는 것은 “외부의 개입”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사태 전개의 “속도감”을 갖고 “외부의 공작”을 의심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모름지기 역사에는 상황이 평소처럼 완만하게 진행되지 않고 급속도로, 격렬하게, 폭발적으로 전개되는 시기가 있다.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에서는 열흘 동안에 5명의 대통령이 등장했다.
1917년 3월 8일(그레고리력)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일주일 만에(3월 15일) 황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면서 200년 동안 존속해 온 제정 러시아가 붕괴했다. 그러자 러시아 최고사령관 미하일 알렉세예프 장군은 전선 사령관들에게 임시정부를 지지하라는 전보를 보냈다. 임시정부가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혁명을 “사전에 짜여진” “외부의 공작”이라고 의심해야 하는가.
물론 네팔 반정부 시위는 혁명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혁명의 시작은 아래로부터의 대중 행동으로 기존 국가기구 전부 또는 일부가 파괴되며 근본적 사회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네팔에서는 (아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네팔 반정부 시위는 2022년 스리랑카, 2024년 방글라데시 항쟁, 2025년 인도네시아 항쟁과 유사한 형태의 반란이다.
단계론과 연립정부
〈민플러스〉는 서방 제국주의와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러시아 및 그 우방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투쟁들을 무엇이든 “색깔혁명”이라고 비난해 왔다. 2019년 홍콩 항쟁, 2021년 쿠데타에 저항한 미얀마 대중 항쟁, 2024년 방글라데시 항쟁, 2025년 인도네시아 항쟁 등등.
이 나라들의 독재 정부를 중국에 우호적인 ‘반제국주의 세력’이라고 보는 진영 논리 탓이다.
네팔이 중국과 인도라는 아시아의 두 대국 사이에 위치해 있는 데다(인도는 네팔 왕정을 지지했었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자, 샤르마 올리 정부는 중국과의 정치·무역 관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미국이 오래전부터 네팔에 개입해 온 것은 사실이다. 1990년대에 미국은 왕정과 마오주의 반군이 벌인 내전에서 왕정을 지원했다. 트럼프 1기 정부는 2017년에 밀레니엄 챌린지 코퍼레이션(MCC)의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네팔의 송전설비 건설과 고속도로 유지·보수 사업에 5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미국은 부패와 억압에 맞서 싸운 운동을 왜곡하고 흡수해 친서방적 방향으로 틀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개입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나라의 운동이 친미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 식이면 1987년 6월 항쟁도 친미 시위가 될 것이다. 당시 미국의 레이건 정부는 노동계급의 거대한 반격을 부를까 봐 전두환 정권의 쿠데타 계획을 반대했다. 또, 2017년 3월 헌법재판소가 박근혜를 파면하자 미국은 그 결정을 “존중”했다. 그렇다고 해서 6월 항쟁과 박근혜 퇴진 운동이 미국의 영향력에 좌우된 친미 운동인가?
진정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은 네팔에서 부패, 극도로 빈곤한 경제와 불평등, 억압적 통치로 인해 대중의 불만이 엄청났고 이것이 반란에 불을 당겼다는 점이다.
샤르마 올리 정부는 부패하고 억압적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3억 3,180만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패키지에 합의했다. 구제금융에는 언제나 “구조 개혁”이 따라붙는다. 그것은 민영화(사유화) 등을 골자로 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이다. IMF는 민간 자본으로 91개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계획을 구제금융 패키지에 포함시켰다.(히말라야 산맥에 인접한 네팔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샤르마 올리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정권과 유착한 신흥 부유층(“네포 키즈”)이 형성됐다. 개혁은커녕 계급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두 눈으로 본 노동자와 청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샤르마 올리 정부는 시위대를 유혈낭자하게 진압했다.(이것만 봐도 마오주의가 결코 마르크스주의적이거나 사회주의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결말은 또한 네팔공산당(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파)의 “단계론”에 내재돼 있었다. 1단계 (인도에 맞서) “다당제 민주공화국”을 수립한 뒤 2단계로 위로부터의 국가의 평화적 개혁을 추진한다는 전략이었다.
이에 따라 네팔공산당(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파)은 (다른 4개 정당들과 함께) 자본주의적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국가는 그 계급적 성격상 노동계급의 장기적·전반적 이익을 실현할 수 없다.
마오주의자들이 약속한 개혁은 온데간데없고 부패와 불평등이 만연하자 노동자들과 청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물론 네팔 항쟁이 혁명적 노동자·농민 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 있다. 미국이 지원하는 친서방 세력과 국왕 복귀를 원하는 왕정주의자들을 포함한 우익 세력들이 정치적 혼란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네팔 항쟁이 애초부터 “색깔혁명”의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네팔 운동의 모순과 노·농 대중의 잠재력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네팔 반란은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과 청년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그 희망 속에서 옛 좌파인 마오주의가 아니라, 제국주의와 우파에 맞서는 새로운 좌파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