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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타도한 방글라데시 반정부 시위:
방글라데시 민중은 어떻게 진정한 변화를 쟁취할 수 있을까?

이 기사는 9월 25일 노동자연대TV가 주최한 같은 제목의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에서 자일스 자이 웅파콘이 한 발제와 토론 정리를 글로 옮긴 것이다. 웅파콘은 타이 사회주의자로, 타이 군부의 친왕정 쿠데타를 비판했다가 국왕모독죄로 중형 위험에 처해 현재 스코틀랜드에 망명해 있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팀이 덧붙인 것이다.

하시나 총리가 사임을 발표하고 국외로 도피한 8월 5일 수도 다카 총리 관저에 모여 환호하는 방글라데시 민중들 ⓒ출처 Md Joni Hossain
타이 사회주의자 자일스 자이 웅파콘 ⓒ노동자연대TV

대규모 학생 시위대가 셰이크 하시나의 아와미연맹 정부를 타도한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경찰이 실탄을 발포하고 친정부 깡패들이 날뛰는 데에 맞서 수만 명이 용기 있게 거리를 지켰습니다.

하시나는 자신을 더는 군부가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인도로 피신했습니다. 대중의 증오를 사던 경찰은 공격을 받았고, 임시정부가 업무 복귀를 지시할 때까지 한동안 거리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학생들은 경제적 고통에 항의해 시위에 나섰던 것입니다. 청년 실업률이 매우 높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그중 30퍼센트는 졸업 2년 후에도 실업 상태입니다. 공공부문의 경우 경쟁률이 8000대 1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그에 더해, 부정으로 얼룩진 공무원 할당제가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공무원 일자리 중 30퍼센트는 이른바 “독립 유공자 가족·친지”에 할당돼 있는데, 이 일자리는 실제로는 기존 집권당 아와미연맹과 연줄이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런 문제는 방글라데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리랑카, 인도, 파키스탄에서도 노동자·농민·전문직·학생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예컨대, 최근 인도 철도공사에서 신규 직원 23명을 채용했는데 지원자가 무려 2300만 명이나 됐습니다.

최근 인도에서 농민들이 거대한 시위를 벌이고, 스리랑카에서는 청년들이 정권을 타도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하시나가 도주한 후 시위대는 다카에 있는 대통령궁에 쳐들어가 되는대로 약탈하고 난장판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스리랑카에서 시위대가 마힌다 라자팍사를 타도한 후 라자팍사의 개인 수영장에 들어가 즐긴 일을 연상시킵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 대다수는 이 부패한 체제에서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2024년 총선으로 하시나는 5선을 했는데, 이 선거는 조작된 부정 선거로 치러졌습니다. 방글라데시 노동조합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은 끊임없이 공격받았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2023년 반정부 시위 후 활동가 1만 명이 체포됐고, 최소 16명이 살해되고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추산했습니다.

방글라데시 경제는 여러 해 동안 연평균 6퍼센트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지만, 그 과실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과 중간계층에게 거의 돌아가지 않았고, 정권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정권은 이 부를 군 장성들과 자본가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하시나 정권 몰락 이후 군부는 자신의 특권과 영향력을 부지하려 애쓰는 한편, 군부의 이미지를 더럽히지 않는 방식으로 사태를 수습하고자 애써 왔습니다. 그러나 군부는 하시나 정부와 꼭 마찬가지로 방글라데시의 현 상황에 책임이 있습니다.

군부는 향후 3개월 안에 자유 선거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 선거를 실제로 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학생 지도자들은 운동을 동원 해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대중 운동을 동원 해제하고 의회나 군부에 기대를 거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입니다. 스리랑카, 이집트, 타이, 1974년 포르투갈 등의 사례에서 익히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오늘날의 연속혁명

방글라데시 등 여러 나라에서 연속혁명론은 시의성이 매우 큽니다. 많은 분들이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을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관련지어 이해하실 것입니다.

아랍 혁명기의 이집트, 튀니지, [2019년] 수단, 스리랑카, 지금의 나이지리아와 방글라데시에 이르기까지 연속혁명론은 독재 타도의 목표, 즉 ‘그 다음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답을 제시합니다.

방글라데시 항쟁에 연속혁명론을 적용한다는 것은 실천적으로 네 가지 의미입니다.

첫째, 국가의 무장 기구인 군부를 절대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주류 정당들을 믿어서도, 자본주의적 의회 정치에 속박돼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인종차별을 비롯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문제들 일체에 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방글라데시에서는 소수파인 힌두교 신자들과 치타공 산악지대의 소수민족들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넷째는, 투쟁이 기존의 ‘정상적’ 정치로 회귀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되고, 노동자·농민·서민을 이롭게 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투쟁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2년 스리랑카에서 기존 정권이 타도됐습니다. 지금은 인민해방전선(JVP) 소속의 아누라 쿠마라 디사나야케가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

쿠마라의 당선은 대중 운동의 정서를 보여 준 것이지만, 문제는 쿠마라가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상하고, 민영화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쿠마라는 타밀족에 대한 인종차별적 정책을 펴는 민족주의 정치 세력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스리랑카에서 좌파 대통령이 당선됐다 해서 기존 질서가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노동자·학생 대중 운동이 필요하지만, 쿠마라는 이를 동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에서 여러 차례 총파업이 벌어진 후 좌파 정당 시리자가 집권했지만, 일단 정권을 잡자 시리자는 운동을 배신했습니다. 시리자는 연속혁명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타이에서 벌어졌던 청년들의 거대한 반군부 항쟁은 현재, 의회 정치에 몰두하는 기성 신자유주의 정당들에 포섭돼 있습니다.

연속혁명 전략을 위해서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 노동계급의 독립적 투쟁이 전진해야 합니다. 둘째, 민주주의 요구에서 더 나아가서 노동계급의 요구를 제기할 진정한 혁명적 정당이 존재해야 합니다.

노동계급

방글라데시에는 노동계급이 존재합니다. 의류 산업에 노동자 450만 명이 종사하는데, 이들은 2023년 파업으로 임금을 거의 두 배로 인상시킨 바 있습니다. 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노동자 1000명 이상이 사망한 라나 플라자 붕괴 참사를 기억하는 분이 있을 텐데요. 이곳 노동자들은 아직도 체불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노동인구의 37퍼센트가 농업에, 22퍼센트가 제조업에, 41퍼센트가 서비스업에 종사합니다.

서비스업 노동자들은 대체로 사무직 노동자들입니다. 최근 파업한 의사와, 교사, 간호사, 소프트웨어 노동자들이 이 부문에 속해 있습니다.

즉, 방글라데시 노동계급은 변화를 이룰 잠재력이 풍부한 세력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 투쟁에는 거의 참가하지 않아 왔습니다.

몇몇 냉소적인 논자들은 방글라데시 정부를 타도한 학생운동이 외세에 의해 조종당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관점은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대중 운동으로 조직돼 나설 수 없다고 여기는 엘리트주의적이고,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거부하는 관점입니다.

방글라데시 지배계급은 국경을 맞댄 두 제국주의 강대국인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신중하게 줄타기하는 동시에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씁니다.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방글라데시에 대규모로 외국인직접투자(FDI)를 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사회의 맥락을 살펴보기

방글라데시 사회의 역사적 맥락을 개괄해 보겠습니다.

영국 제국은 인도를 분열 지배했고, 그 결과 식민 점령이 종식되자 인도는 종교에 따라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2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1500만 명이 피란했습니다.

영국이 만들어 낸 파키스탄은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으로 나뉘었습니다. 둘 사이의 거리는 2000킬로미터나 됐죠. 파키스탄의 지배계급은 무력에 의지해 국민 통합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두 파키스탄을 하나로 묶어 주는 요소가 종교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인도와 달리 파키스탄에서는 [영국의 식민 지배에 맞선] 독립 운동이 매우 취약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군부는 파키스탄(당시 서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당시 동파키스탄)의 정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건국 이래로 군 장성들이 권력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군부 쿠데타가 29번이나 벌어졌습니다.

두 파키스탄 중 더 지배적인 쪽은 서파키스탄이었습니다. 이를 보여 주는 한 사례는, 우르두어를 파키스탄의 공식 언어로 제정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 대부분은 벵골어를 쓰지, 우르두어를 쓰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동/서 파키스탄 간의 긴장은 결국 1971년 독립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로 신생국 방글라데시가 탄생했죠. 당시 인도는 파키스탄에 대한 해묵은 원한 때문에 방글라데시를 편들며 이 전쟁에 개입했습니다.

1973년 방글라데시에서 처음 시행된 선거에서 셰이크 무지브 라흐만 — 최근 타도된 하시나의 아버지 — 이 이끄는 아와미연맹이 압승을 거뒀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군부 쿠데타가 벌어져 라흐만은 실각했고, 라흐만과 그의 가족 대부분이 살해됐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정부는 후사인 모하마드 에르샤드의 군사독재 정권(1982~1990년)이었습니다. 에르샤드 정부는 민주주의 항쟁으로 타도됐는데, 이 운동에서 하시나와 훗날 그의 정적이 되는 칼레다 지아는 서로 협력했습니다.

그 후 양대 주요 정당인 하시나의 아와미연맹과 칼레다 지아의 방글라데시국민당(BNP)이 방글라데시 정치를 지배했습니다.

두 정당 모두 노동자·학생·서민의 대안이 못 됩니다. 둘 모두 반대파 활동가들을 탄압했고, 신자유주의 정치를 추진했으며, 이슬람주의 정당들에게 구애했습니다.

하시나는 인도와 인연이 깊습니다. 하시나는 1975년에 인도로 망명했고, 인도의 양대 정당 인도인민당·인도국민회의 모두와 개인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국민당은 1978년에 군 장성 지아우르 라만이 창당한 정당으로, 칼레다 지아는 그의 부인입니다. 지아우르 라만은 대통령 재임기에 21차례의 군부 쿠데타를 가차없이 진압했고, 경찰과 군대의 규모를 두 배로 늘렸습니다.

임시정부

학생 시위로 하시나가 타도된 이후, 무함마드 유누스가 학생운동 대표자 두 명과 함께 임시정부를 이끌게 됐습니다.

유누스는 대형 은행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소기업들에게 대출을 제공하는 그라민은행의 설립자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빈곤을 퇴치하려면 사람들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고, 부자들에게 과세하고 군비 지출을 삭감해 교육·의료·복지 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한편, 유누스는 학생들에게 이제 시위를 끝내고 교실로 돌아가라고 촉구하고 IMF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좌파를 보면, 압도 다수는 연속혁명 전략을 받아들이지 않는 스탈린주의자들입니다. 그 좌파의 일부는 개혁주의자가 됐고, 다른 일부 좌파는 간헐적으로 무장 투쟁을 벌였습니다.

방글라데시인들은 더 나은 사회를 누려야 마땅하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서민 대중은 더 나은 새로운 사회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가뭄·홍수 등 기후 재앙으로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1970년에는 사이클론이 비옥한 갠지스강 삼각주 저지대를 휩쓸어 50만 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대다수 방글라데시인들에게 해방이란 그저 의회 선거를 하고 그 결과로 지배계급의 서로 다른 부분들이 군부와 손잡고 새 정부를 꾸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해방은 연속혁명 전략을 통해서만, 즉 혁명적 정당을 건설해 노동자들의 독립적 투쟁을 강화하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발제자의 토론 정리

한 방글라데시인 동지가 ‘방글라데시인 거의 모두가 [하시나를 타도한] 운동을 지지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글쎄요, 약간 과장된 말입니다. 아와미연맹 지지자들이 시위대를 공격했고 그런 자들이 지금도 여러 기구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입니다.

유뉴스가 세계 여러 나라 수많은 지도자들에 비하면 친절한 동네 아저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만, 유누스를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유누스의 정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볼 만합니다. 그가 임금을 대폭 올릴 것인가? 그가 노동계급 권리를 증진시킬까? 그가 정치에 대한 군부의 영향력을 줄일 것인가? 그가 부자들에게 과세할까? 이 점에서 저는 어떤 시청자 한 분이 말한 김대중의 사례를 유념할 만하다고 봅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정치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 답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방글라데시 좌파의 문제가 있습니다. 좌파 정당인 공산당은 혁명적 조직이 아니라 개혁주의 조직입니다. 그리고 개혁주의자들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합니다. 정치는 의회에서 하는 것이고 경제는 노동조합의 몫이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에 더해, BNP와 아와미연맹도 분명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려 하고 있습니다.

또, 두 당 모두 이슬람주의 정당인 ‘이슬람의 신자들’과 관계를 맺으려 애써 왔습니다. 이 두 정당과 군부의 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군부는 둘 중 누가 집권하든 그들과 협력할 수 있는 세력입니다

사실 지금도 군부는 막후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군부는 임시정부에서 누가 직책을 맡을지 결정했고, 앞으로도 결코 제풀에 권력을 내놓지 않을 것입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 대중은 절대 군부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연속혁명 방식으로 진정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쟁취하려면 대중투쟁과 혁명적 지도력 모두가 필요합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군부의 힘에 맞서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권력자들에게 기대는 ─ 그런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중요합니다.

방글라데시에서 투쟁이 계속돼야 합니다. 물론 혁명적 정당이 없다면 그 투쟁을 승리로 이끌 전략과 지도력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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