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분노가 하나로 폭발한 인도네시아 항쟁
〈노동자 연대〉 구독
인도네시아에서 대규모 시위가 분출해 집권한 지 1년 된 프라보워 수비안토 연정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주말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대규모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국회의원들의 집에 숱하게 불을 질렀고, 정부 건물들을 약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는 동남아시아의 대국 인도네시아 곳곳으로 번졌다.
이처럼 분노를 폭발시키며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학생들도 많고 고참 민주화 운동가들도 있었지만, 정부의 긴축 정책으로 큰 고통을 겪어 온 도시 빈민들도 많았다.
8월 하순, 국회의원들이 1인당 5000만 루피아[약 430만 원]에 달하는 고액의 주택 수당을 지급받고 있다는 것이 폭로돼 분노에 불을 댕겼다. 5000만 루피아는 최저임금의 열 배 가까이 되는 돈이다.
8월 28일 경찰이 오토바이택시 기사 아판 쿠르니아완을 죽인 후 거리의 분노는 더 커졌다. 자카르타 시위 도중에 경찰 장갑차가 쿠르니아완을 깔아뭉개고 지나갔다.
그러고 나서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고 최루가스를 뿌리는 등 온갖 무기를 휘두르며 시위대를 공격해 두 명을 더 죽였다.

이런 국가 폭력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거리 운동은 굳건해 보인다.
이 기사를 발행하는 9월 2일 현재 학생 수백 명이 추가 탄압 위험을 무릅쓰고 자카르타 등 여러 대도시에서 다시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국가는 운동을 더 탄압하고 싶어하는 본능과 거리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양보할 필요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경찰 지도부는 재빨리 쿠르니아완의 유가족에 사과를 표명하고 진상 규명을 약속했다.
자카르타 주지사 프라모노 아눙도 유가족을 만나 조의를 표하고 장례비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는 대중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시위대는 경찰이 쿠르니아완을 죽인 다리에 “그 망할 경찰관들을 체포하라” 하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자카르타 도심 지역 퀴탕에서는 시위대가 중앙경찰청 청사 앞 도로를 향해 행진하며 긴장이 고조됐다.
경찰이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자 시위대는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지고 폭죽을 쏘며 응수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증오한다. 그뿐 아니라, 1998년 독재자 수하르토를 타도한 혁명적 항쟁 후 근본적 변화를 약속했던 더 광범한 인도네시아 엘리트층도 증오한다.
수하르토는 1960년대 중반 군대를 동원해 100만 명에 이르는 공산당원을 죽이는 ‘숙청’으로 집권한 이후 30년간 인도네시아를 통치했다.
1998년 시위 물결이 인도네시아를 휩쓸자 “개혁파”는 인도네시아 군사 지배 체제를 해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 시위대는 인도네시아에 진정한 민주주의는 없다고,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의회를 비롯한 국가의 핵심 기관들이 모두 껍데기만 남았다고 성토한다.
현 대통령 수비안토는 지난달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에 인도네시아 국기인 적백기를 자랑스럽게 흔들자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그와 사뭇 달랐다.
시위대는 노란 밀짚모자를 쓴 해골이 그려진 해적 깃발을 흔들었다. 이 해적 문양은 일본 만화 ‘원피스’에서 따온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집·자동차·오토바이·트럭에 이 문양을 붙이고 있다. 이 문양은 항쟁의 핵심 상징이 됐다.
지금까지 반정부 운동이 성과를 이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운동의 지지 기반이 광범하고, 또 쿠르니아완 같은 [불안정하게 고용돼 일하는] ‘긱 경제’ 노동자들을 대거 동참시킬 수 있었던 덕분이다.
그러나 항쟁이 대규모 탄압을 계속 버텨 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도 더 많은 부문의 노동자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수비안토 연정에 균열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더 심대한 변화가 의제에 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