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혁신당의 한계와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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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혁신당이 9월 22일 국회 3대 특별위원회(개헌·사법 개혁·정치 개혁)를 공개 제안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제안이 “내란세력 제로, 극우 제로, 불평등 제로”를 통해 “민주주의 울타리를 탄탄히 구축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 중대 과제”라고 제안 취지를 밝혔다.
답답한 내란 청산 지연 정국에서 조국혁신당이 나름 돌파구를 열어 보겠다는 것이다. 조국혁신당은 대법원장 조희대의 국회 탄핵소추안도 준비해 놨다고 밝혔다.
내란 청산을 내세웠지만, 3대 특위 제안은 사실 내란 청산을 위한 직접적인 실천 과제가 아니라 포괄적 정치 개혁에 나서자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현실성은 의문시된다. 가령 국힘이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무슨 수로 국회 개헌 특위에서 국힘을 배제시킬 수 있을까? 국힘과 한 테이블에서 논의한다면 내란 청산이 어떻게 가능할까?

나머지 특위들도 마찬가지다.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에 입각해 비례성을 늘리는 선거제 개혁을 하자는 것도 결국 그 목적이 극우 국힘의 당선 가능성을 줄이자는 것일 텐데, 이 역시 국힘이 포함된 국회 협상에서는 어렵다.(준연동형 비례제를 희화화시킨 위성 정당은 국힘이 먼저 시작한 것이다.) 소수 정당의 원내 입성 문턱을 낮추면 자유통일당도 수혜자가 될 수 있다.
헌법은 국가 통치 규칙의 총체로서, 불평등을 약화시킬 구체적 방법을 담는 법규가 아니다.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노동계급의 생계비 인상 투쟁이 훨씬 효과적이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은 그런 친노동계급적 실천과는 거리를 둔다.
대법원이 사법 개혁에 딴지를 걸고 나선 것은 내란 세력 청산을 사실상 반대하는 국가기관 내 쿠데타 지지 세력의 준동을 상징한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는 한국 극우를 공개 찬양했다. 국민의힘이 거리 투쟁에서조차 극우 세력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런 마당에 쿠데타 세력들을 엄벌하고 국가기관으로부터 대대적인 숙정을 요구하는 대중 투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의회 협상으로는 극우의 성장을 막을 수 없다.
급진 자유주의
창당 후 1년 반 동안 보인 조국혁신당의 실천, 지도부(핵심은 의원단)의 면면, 강령 등을 종합해 보면 그 당의 급진 자유주의 경향이 확연히 드러난다.
조국혁신당은 정치 개혁, 정치적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노동계급의 사회·경제적 요구에 둔감한 것과 대조적으로 말이다.
정치 개혁 방안도 민주주의의 원리를 도입하고 늘리는 것보다는 검찰의 분리·개편 등 권위주의 유산이 남아 있는 권력 기관들에 대해 견제와 균형 등 자유주의적 조처들을 도입·강화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조국, 김선민, 박은정, 김준형, 황운하, 신장식, 서왕진 등 그 당을 이끄는 인사들은 (학생 운동 경력이 많긴 하지만) 압도적으로 지식인, 전문직 종사자로 상당수는 (최고위층은 아니지만) 제법 높은 직위의 공직자(주로 문재인 정부) 출신이다.(반면, 지난해 총선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명단 공천을 신청했던 노동계 인사들은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전문직 출신의 급진 자유주의자들답게 당의 간부들은 개인주의도 강하다. 의원들은 각자 기고, 방송 출연, 집회 연사 등으로 인지도를 올리고 주장을 펴지만, 당 차원에서의 조직적 행동, 조직에 대한 책임성, 당 조직을 통한 대중 동원 같은 데는 거의 무관심하다.
주요 당직자들의 성 비위 사건과 그 처리 과정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성향을 드러낸 사례로 보인다. 조직적 규율·책임성·자제 같은 덕목은 뒷전이었다.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리더들도 비슷한 성향이었다. 특히, 조국 비대위원장이 본인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성 비위 사건 해결을 촉구한 피해자들에 나 몰라라 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그런 개인주의의 발로로 보인다.
대중 운동과 거리두기
실제로 대법원이 내란 세력 청산에 반기를 들자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동요하며 주춤하고, 윤석열은 때맞춰 재판부에 보석 석방을 신청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 동원 재개와 그것을 위한 서민 친화적인 개혁을 밀어붙이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 안에서 정치 제도 개혁 논의를 하자는 조국혁신당의 이번 제안은 중간계급 식자층의 급진 자유주의 정당의 특성과 한계를 드러낸다.
조국혁신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신생 정당으로서 일약 12석을 얻는 돌풍을 일으켰다. “3년도 길다”는 구호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는데, 윤석열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파격적 공약이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조국혁신당은 극우에 맞선 대중 투쟁을 제안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좌절과 국회 탄핵 국면에서 당의 거의 유일한 상징적 리더인 조국 당시 대표가 법정구속되면서 정당으로서의 존재감이 약화됐다.
그 국면에서 검사 출신 박은정 의원, (트럼프의 관세 인상 압박이 시작된 후) 전 국립외교원장 김준형 의원 등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당 자체는 리더십 부재, 조직적 규율 부재, 집단적 대중 행동 경시, 대중 동원력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존재감을 잃고 위상이 낮아졌다.(물론 일부 지역 조직들은 극우 반대 맞불 투쟁들에 참가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바로 이런 시기에 당의 살림을 맡은 사무부총장, 당의 얼굴이 돼야 할 수석대변인이 당직자들을 상대로 성추행·성희롱을 저지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