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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사회주의 활동가 인터뷰:
“이번 시위는 지배층에 대한 집단적 증오를 사람들에게 각인시켰습니다”

최근 여러 아시아 나라들에서 대규모 시위가 잇달아 분출하고 있다. 그중 하나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 8월 국회의원 수당 인상안에 대한 분노 등을 계기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인도네시아의 사회주의청년조직(OKMS)에서 활동하고 있는 네시아 씨에게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들어 봤다.

항의는 일단 잦아들었지만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때 모습 ⓒ출처 Arah Juang

8~9월에 이어진 인도네시아의 시위는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습니까?

8월 25일 자카르타에서의 첫 대규모 시위에는 중고등학생, 대학생, 노동조합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대부분은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 8월 28일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가 경찰기동대 장갑차에 치여 사망하자 시위대가 경찰서와 의회 건물을 공격하고 불태우는 등 시위가 격화됐습니다. 배달 노동자들이 시위에 가세하기 시작했습니다.

8월 30일 대통령 프라보워는 시위 “엄정 대응”을 지시했습니다. 그 후 경찰이 시위대에게 발포하고, 시위 장소의 조명과 전기 공급을 차단하고, 시위대를 추격하고, 군 병력이 대도시 주변을 순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실들과 대학들은 재택근무와 원격 강의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9월 7일 이후 시위가 잦아들었습니다. “17+8 요구안”이 발표되고 #ResetIndonesia[“인도네시아를 리셋하라”] 해시 태그가 퍼진 후에는 온라인 활동이 더 떠들썩하게 벌어지고 있죠.

한편, 경찰은 프라보워 정권을 계속 비판하는 활동가들과 인플루언서들을 추적하고 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 엘리트들은 구금된 시위대를 회유하며 정권이 사실은 억압적이지 않다는 인상을 주려 합니다.

시위의 배경은 무엇이었습니까?

정치 엘리트들의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정책들이 근저에 있습니다. 그 정책들은 지배층과 일반 대중의 극심한 격차를 낳았고, 대중 자신의 다양한 저항을 체계적으로 탄압해 왔습니다.

프라보워 정권은 전임 대통령 조코위를 본받아 정치 엘리트 분파들의 다수를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그들 사이에서 정치 권력(관직)과 경제 권력을 안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러면서 군부도 더 강화됐습니다. 군부는 1965년의 재앙[공산당원, 소수민족 활동가 등 200만 명을 학살함 — 역자] 이래 가장 강력한 정치 엘리트 분파로 남아 있죠.

군국주의의 강화는 이러한 권력 안배 정책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를 위해 형사법(RKUHP)과 형사소송법(RKUHAP), 국군법(TNI)을 개정하는 등 여러 법적 장치들과 총선 관련 정책들이 도입됐습니다. 정치 엘리트들 사이의 경제 권력 배분을 위해서도 다양한 법적 장치들이 도입됐습니다.

그 외의 정책들도 분노에 불을 지폈습니다. 예컨대 2025년 7~8월에 정부는 주로 영세 농민들이 내는 세금을 일제히 올렸습니다.

그렇게 거둔 세금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이롭지 않거나 해로운 정책들을 개발하고 시행하는 데 쓰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프라보워는 80주년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국회의원 수당을 올리겠다고 해 기름을 부었습니다. 국회의원 한 달 수입을 1억 루피아(약 850만 원)으로 늘린 것이죠.

시위의 주된 요구는 무엇이었습니까?

시위는 1억 루피아에 달하는 국회의원 수당 인상안을 폐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국회를 해산하라는 요구도 나왔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첫 시위는 8월 25일에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운동이 진행되면서 주된 요구를 둘러싸고 분화가 일어났습니다. 먼저, 제가 활동하는 사회주의연합(PS)과 사회주의청년조직(OKMS)을 비롯해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하는 연합체 ‘민중과 함께하는 노동운동’(GEBRAK)이 제기한 비교적 급진적인 요구들이 있습니다. 국회의원 월급을 노동자 평균 임금 수준으로 할 것, 경찰 예산과 군비의 대폭 삭감, 무상 의료, 무상 교육 등이 그것입니다.

이 요구들은 노동자들과 그 밖의 다양한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대중의 분노를 더 진보적인 의식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고안한 것입니다. 노동자·민중이 정치 엘리트 전반을 타도하고 권력을 장악해 자신들의 권력을 세워야 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다른 한편,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NGO, 재외 인도네시아인 단체들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이른바 ‘17+8’ 요구가 있습니다. 제기되는 모든 요구를 모아서 모든 단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포괄적’ 요구안을 정식화한다는 발상으로 만들어진 요구죠. 그 결과 온갖 절충이 이뤄진 ‘잡탕’이 됐고 날카로운 요구들이 빠졌습니다.

17+8 운동 측은 자신들이 노동자·민중을 대표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뜻하는 바는 수많은 소셜미디어 댓글을 수집하고 추려서 요구안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수는 경찰 개혁 요구인데, 국회와 경찰로 하여금 국민을 지킬 것을 서약하게 하라거나, 경찰의 인권 침해에 대한 독립적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라거나, 법치주의 실현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들은 1998년 수하르토 독재 타도 이후 시도된 바 있지만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17+8 운동은 몇몇 상징적 조처를 받아들인 정부를 신뢰함으로써 대중의 분노를 무마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후 정부의 대응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정부는 2019년 부패근절법 개악 반대 운동 이래로 정립한 탄압의 패턴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2020년 노동법 개악 반대 운동, 2024년 선거법 개악 반대 운동, 2025년 국군법 개정 반대 운동을 탄압할 때와 비슷합니다. 프라보워 정권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량 체포와 기소, 범죄화, 디지털 공격, 반동적 민간인 동원한 공격 등을 펴 왔습니다.

더 나아가 8월 30일 프라보워가 시위 “엄정 대응”을 지시한 후에는 군대가 대거 동원됐습니다. 군인들이 거리를 순찰하고, 심지어 거리에 탱크까지 배치했습니다. 시위 현장에 배치된 군인들도 늘어 왔습니다.

수천 명이 체포됐습니다. 정치 활동이 범죄화·추적되고 있습니다. 활동가 세 명은 현재 실종 상태입니다.

이런 탄압은 대중들의 공포를 키웠고 그 결과 운동이 위축됐습니다.

그러나 엘리트층과 대중 사이의 경제 불평등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 월급·수당은 1억 루피아에서 6,550만 루피아로 줄었을 따름이고, 최저임금은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프라보워 정권하에서 더 격렬한 분노가 분출할 수 있습니다. 이번 시위는 지배계급, 특히 국회와 경찰에 대한 집단적 증오를 사람들에게 각인시켰습니다.

이런 자생적 시위에는 조직과 지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희 PS는 당시 저항위원회 설립을 촉구했습니다. 모든 대학 캠퍼스와 마을, 공장에 저항위원회를 세워 행동, 파업, 점거를 조직하고 정치 토론, 대중 집회, 교육의 거점으로 삼자고 말입니다. 그런 위원회는 물자 조달을 조직하고 노동자와 민중의 투쟁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비전은, 그런 저항위원회들로부터 오늘날 정치 엘리트들의 부패한 국가를 대체할 민중 자신의 권력의 맹아가 싹트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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